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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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과 고르바쵸프 그리고 부시와 노무현의 정상회담

   좌익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거짓말 중에 주한미군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며 따라서 미군은 절대로 철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 자국의 이익이란 냉전 시대의 러시아 공산주의 팽창정책의 견제이다. 그러나 사실 냉전시대가 사실상 종식된지 이미 12년이 지났다. 러시아는 혁명으로 공산주의를 붕괴시켰으며, 중국은 중국공산당 스스로 공산주의 강령을 포기하였다. 동구 공산국 국가들도 모두 1990년대에 붕괴되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이지만 북한식 공산주의가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으로 파급될 우려는 없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토착 샤머니즘과 결합되어 있기에 쉽사리 붕괴되지 않지만 타문화권으로 전파되지도 못한다. 오직 남한만이 적화통일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냉전 시대의 러시아 공산주의 팽창정책의 견제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반도에 주둔한다는 좌익의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미국은 한미동맹의 의리와 명분을 위해 여태껏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책임을 이행해 왔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지난 3월 4일 영국 더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부시는 너무 앞서 나가지 말라"는 돌출발언을 하여 화제를 일으켰던 노무현씨의 미국 방문이 앞으로 한달 남짓 남았다. 그런데 앞으로 있을 이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이 냉전 시대 종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금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지정학적 입장에서 고려한다면 오늘의 노무현 정부의 상황과 1980년대의 미국 레이건 정부의 상황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 11~22절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이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고자 하였다. 유학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놀러 가겠다는 것이지만 아들의 고집을 꺽지 못한 아버지는 재산을 미리 상속하여 준다. 먼 나라에서 그는 허랑방탕하였다. 아마 그는 카지노도 가고 섹스 관광도 하는 그 시대의 플레이보이였던 듯하다. 그러다 마침내 재산을 다 날린 그는 거지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제서야 그는 그의 경제관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뭇아가씨들에게서 인기를 얻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제의 문제는 생산 없는 소비였다. 그리고 객지에서 돈이 다 떨어지니 그의 주변의 친구들도 그를 버렸다. 마침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지만 아버지 집에 품군으로 취직하려고 돌아온다. 뜻밖에도 아버지는 이 탕자를 품군이 아니라 아들로서 대환영한다.

   본래 이 탕자의 비유는 한 죄인의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는 종교적 회심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1990년 초에 이 이야기가 러시아의 정치적 회심을 빗대어 인용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러시아는 돌아온 탕자라는 말을 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1980년대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처했던 냉전 상황을 잠시 되돌아보자. 대통령이 되어 국방 보고를 받은 부시의 일성이 "도대체 이렇게 많은 핵무기가 무엇에 필요하다는 말인가?"였다. 이 이야기는 1980년대의 레이건 대통령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오늘의 한국처럼 북핵 위기에 처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목적이 노벨 평화상이었다면 1970년대의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군비를 축소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군비를 축소하는 동안 러시아는 계속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보니 한국에서 1998년~2002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북한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에 미국이 처해 있었다. 당시의 미국 영화에는 핵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를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이 있었다. "The Day After"라는 영화는 핵전쟁 하루만에 폐허가 된 미국의 비참한 모습을 그린다. 사실 그럴만한 위험 요소가 당시에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정책이 미국이 솔선수범하는 평화정책이었다면 레이건의 정책은 위대한 미국의 힘을 재건하는 정책이었다. 카터는 무기를 없앰에 의해 평화를 보장받으려 했으며 레이건은 전쟁 억제 수단의 확보에 의해 평화를 보장받으려 했다. 그래서 레이건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군비 증강에 예산을 쏟았지만 여전히 러시아는 미국에 비해 세배나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만일 러시아가 선제 공격하여 핵미사일을 미국의 핵시설에 발사하면 미국이 보복하거나 항복하여야 하는 위험한 상황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서로 겨냥하고 있는 미소 양국의 핵기지 중에서 미국의 기지가 먼저 공격받으면 미국은 잠수함에 비치된 핵무기로 보복 공격하는 수단밖에 남지 않는다. 문제는 잠수함에서는 정밀 조준 발사가 불가능하므로 미국의 보복 미사일 발사가 소련 민간인 거주 지역에 떨어질 경우 미국은 또 다른 보복 즉 러시아의 핵미사일이 미국의 도시들에 발사되는 보복에 직면하게 된다. 뒤늦게 러시아와 군비 경쟁을 벌였으나 이렇듯 러시아가 선제 공격할 경우 속수 무책이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이렇게 미소 양국의 냉전의 긴장이 그 절정에 달하돈 1986년 봄에 러시아의 고르바쵸프가 미국측에 내놓은 평화협상안이 미국의 정가와 언론계에 소요를 일으켰었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다가 한 편이 갑자기 줄을 놓으면 다른 한 편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시 미국이 그런 입장이었다. 만일 이 안을 스위스가 내놓았으면 그럴 듯 했겠다. 그러나 당시 핵무기에 관한 한 미국을 세 배나 능가하던 군사 초강대국 러시아, 전세계를 적화 통일시킬 때까지 만족할 줄 모르는 팽창주의자, 러시아 제국의 주장이 돌연 평화협상안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무엇으로 그를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의 타임지 표지 기사 제목 “진실인가 아니면 북극곰의 속임수인가?” 가 반영하였듯이 미국의 정가와 언론계에 신중론이 우세하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침공할 때 선전 포고 대신 평화 협정을 맺어 상대국을 방심시키는 것은 히틀러의 상투 수법이 아니던가? 도대체 갑자기 평화 제스추어를 쓰는 북극곰의 본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고르바쵸프는 데땅뜨 제의는 진심이였다.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막강한 힘을 가진 소련의 통치자였던 고르바쵸프는 남들이 보지 못한 사실을, 러시아의 공산주의 경제가 벼랑끝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서구의 경제는 날로 그 생산성이 증대되는데 러시아의 경제는 날로 그 생산성이 낙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페레스토로이카, 즉 개방 정책이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았으며 공산당 우두머리로서 공산당을 와해시키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1990년 8월에 이런 개방 정책을 품은 러시아 군부가 구데타를 일으켰으나 러시아 국민은 스탈린식 공산주의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하였기에 군부 구네타는 사흘 만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고르비처럼 꾸물거리지 말고 화끈하게 개방하자는 옐친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고르바쵸프는 밀려났다. 옐친이 공산주의 경제를 하루 아침에 서구식 시장 경제로 바꾼 결과는 혼란을 초래하였기에 공산당 재집권의 위험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러시아 국민은 러시아가 공산주의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하였기에 2000년에 푸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1년 여름의 러시아 군대가 어떤 군대였던가? 적어도 보유 핵무기 수와 병력의 수에 있어서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그 러시아 군부가 방송국과 정부 주요 관청들을 장악하고 구데타를 일으켰으며 고르바쵸프 대통령 등 정부 고위층을 연금하였다. 누가 이 막강한 러시아 군의 힘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군부 구데타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약속이나 한듯이 러시아 국민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러시아 탱크 위로 기어올라갔다. 70년간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살던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공산주의와 결별한 이 사건을 가리켜 사람들은 탕자의 돌아옴이라고 말한다. 냉전 시대에 언제 3차 대전이 발발할지 모르는 위기가 있었다. 그 어떤 국제정치 이론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내놓치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러시아인 스스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군사력을 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 국민이라는 자존심도 내던졌으며, 러시아 식민지였던 구소련 공화국들을 모두 독립시켜 주었다.

   한달 후(2003년 5월)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 때 노무현와 부시 대통령의 만남은 얼마나 자연스러울 것인가? 1986년 봄에 미국 정치권에서 고르바쵸프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냈던 것 못지 않게 지금 미국의 정치권에서 노무현씨의 진위 파악에 촉각을 내세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미국과 러시아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은 처음에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번거로운 예전이 생략되고 고르바쵸프의 전용 승용차가 백악관으로 안내를 받았으며 레이건이 백악관 현관 밖에 마중나와 있었다. 그런데 명배우 출신인 레이건이지만 아직 경계심을 풀수 없었는지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러시아 식 중절모를 쓴 고르바쵸프가 승용차에서 내려 넉살 좋은 미소를 띠우며 먼저 레이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레이건이 씩 웃으며 악수에 응했다. 그는 곧 고르바쵸프에 친근감을 느끼며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며 인류를 핵 전쟁의 공포에서 상당히 해방시켰던 저 역사적 미소 정상 회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86년의 미소 정상회담이 인류를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핵전쟁의 공포에서 해방시킨 큰 의미가 있었다면 2003년의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어깨에도 북핵 문제 해결의 부담이 놓여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평화적 해결의 의미는 애매모호하다. 지난해 12월에도 엉터리 변호사 노무현이 "미국을 말리겠다"며 김정일을 위한 엉터리 변호를 해주었기에 그의 대통령 당선 선물로 김정일이 영변의 핵봉인을 떼었던 사실이 있다. 강도 앞에서 경찰의 손을 묶는 것은 평화적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강도를 대담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 선량한 이라크 국민들로 하여금 하루 아침에 약탈자의 무리가 되게 하였는가? 이라크 경찰의 무력화였다. 노무현의 엉터리 변호와 북핵 위기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김정일을 위한 그의 엉터리 변호는 김정일에게 북핵 위기 도발의 명분을 준다. 북핵 위기는 가급적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을 말림"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미 동맹을 견고히 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한미 동맹 회복의 기회가 되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미군 병사를 환영하는 이라크 국민들

2003년 4월 9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입성하는 미군을 환호하는 바그다드 시민들 .
전쟁 준비를 하던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전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지금 이라크인은 패전국 국민답지 않게 희열에 넘쳐 있다. 그들의 자유의 승리를 위하여!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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