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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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서 속의 왕따 심리와 좌익의 반미감정

   요즘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현상은 남남 분열이다. 언제 부터인가 사람들이 너는 좌익 나는 우익이라며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 전혀 정치적 이슈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좌익 혹은 우익 진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좌익이고 무엇이 우익인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좌익과 우익의 개념은 다르기에 한 사회를 좌익과 우익으로 양분하는 선을 긋는다는 것은 실로 애매모호한 일이다. 만일 미국의 한 거리에서 시민에게 "당신은 좌익이요 우익이요?" 하고 묻는다면 질문받는 사람이 황당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나라에는 좌익과 우익을 분명히 가름하는 몇가지 잣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친미와 반미이다. 이라크 전쟁 참전 찬성과 반대 논란은 결국 친미와 반미로 압축된다. 또 하나의 잣대는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 의지이다. 한총련이나 범대위처럼 북한의 적화통일 음모를 지지하는 이적 집단은 좌익이요 공산주의의 침략과 맞싸워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애국 시민들은 우익이다.

   사실 친미주의자와 반미주의자로 한국 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다. 한국전쟁 이래 한미 동맹 오십 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미국이 우리의 우방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어려운가? 만일 미국이 우리의 우방이라는 사실이 명약 관화할진대 친미주의자와 반미주의자로 한국 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 우리 편과 적을 구분하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들의 문제를 소경의 문제에 비유할 수 있다. 소경의 문제가 무엇인가? 자기 편과 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소경을 징집해 사격 훈련을 시키는 군대는 없다.

   한총련과 범대위와 전교조 등 남한의 좌익을 통틀어 친북 좌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북한 동포를 사랑한다. 그러나 친북 좌파는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보다 북한 공산당의 수령 독재 체제를 선호하는 자들이다. 김정일의 적화통일 구상에서 학살 대상 명단 첫줄에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남한의 좌익이다. 월북한 남로당 간부들을 모두 총살형에 처한 자가 김일성이었으며, 독립군 출신 공산당 간부들을 모두 학살한 자도 김일성이었으며, 러시아 스탈린의 수천만명에 달하는 피의 숙청 대상도 공산당원들이었으며, 월맹도 적화통일 후에 제일 먼저 월남의 좌익들을 학살하였다. 그럼에도 적장에게 충성하는 남한의 좌익의 문제는 눈뜬 소경의 문제에 비유된다.

   해방 정국에 북로당과 남로당이 있었다. 북로당도 남로당도 빨갱이였다. 그러면 그들은 동질 집단이었는가? 아니다. 한국 전쟁 때 박헌영씨를 따라 월북한 남로당원들을 김일성은 모두 학살하였다. 오늘날 북한 공산당원들도 남한 친북 좌파도 빨갱이다. 그러면 그들은 동질 집단인가? 아니다. 그들은 사상 구조가 전혀 다르다. 왜 1975년 4월 30일 월남의 수도 사이공에 진군한 월맹군이 제일 먼저 월남의 좌익들을 학살하였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신한 자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배신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즉, 월남에서 자기 편과 적을 구분할 줄 몰랐던 자들은 공산주의 치하에서도 자기 편과 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 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로, 1970년대에 월남과 캄보디아에서 좌익의 문제는 눈뜬 소경의 문제였으며, 오늘날 한국에서 또 다시 그런 증상을 가진 자들을 혹자는 친북 좌파라고 부른다.

   소경의 문제는 편견이다. 옛날 이야기에서 코끼리 다리를 만진 소경과 코끼리 코를 만진 소경이 코끼리의 모습에 대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편견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관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진다. 196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하시기 전에 GNP가 75불이었던 우리나라가 세계 120개국 중에서 꼴찌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밑에 인도가 달랑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인도에 수억마리의 소가 있었다. 낙농 대국 뉴질랜드보다도 더 많은 소를 뷰유하고 있으니 소를 수출하기만 해도 금방 고소득 국가가 된다. 그러나 소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힌두교의 세계관 때문에 인도에서는 낙농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인도가 풍요로운 낙농 자원을 가진 낙농 빈국이었다면 한국은 빈곤한 낙농 자원에서 출발한 낙농 대국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우유가 넘쳐나지만 196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우유 구경하기 힘들었다. 해방 후 미국이 지원한 식량 원조 중에 우유가 있었으나 생전 처음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의 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이 한국 사람 무시하고 가축 사료를 줬다는 소문이 돌면서 반미 감정이 확산되었기에 미국이 우유 원조를 중단했다. 한국에 우유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68년에 국빈으로 뉴질랜드에 방문하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그 나라의 낙농산업을 유심히 관찰하신 후 우리나라에서도 낙농정책을 강력히 실시하시고저 1969년 2월 22일에 한독 낙농목장을 준공하시면서부터였다. 이렇게 소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도처럼 풍부한 낙농자원을 가진 낙농빈국이 되기도 하고 한국처럼 빈곤한 낙농자원에서 풍요로운 낙농산업이 발전하기도 한다.

   똑같은 소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제 정책이 달라지듯이 똑같은 친구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인 관계가 달라진다. 이 세상에 아무도 완전 무결한 사람은 없기에 만일 우리가 친구의 단점만 들추어 낸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과 절교하여야 한다. 그러나 친구의 덮어주어야 단점을 덮어주고 장점을 보는 사람은 우정을 키운다. 대인 관계에서 친구가 필요하듯이 외교에서 우방은 필요하다. 좌익은 우방도 외교도 필요없이 우리 민족끼리 살면 된다고 우긴다. 그래서 좌익은 외국인이면 배척하고 무시하며 반미감정을 품는다. 이런면에서 좌익은 구한말의 국수주의자들과 같았다. 그들은 서방 세계와의 외교를 단절하는 쇄국 정책만을 고집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주권의 상실이었다. 나라의 주권은 다른 나라에서 인정해 줄 때 있는 것이기에 우리나라의 주권을 승인하는 우방과의 외교는 몹시 중요한 것이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점령하였으나 반년도 못되어 쿠웨이트 주권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왜? 쿠웨이트의 주권을 인정하는 국제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 주권이 일본에 넘어갔다. 왜 넘어갔는가? 당시 서방에 우방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아직 국제사회에서 주권 국가로서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우리나라의 주권을 승인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주권이 승인받도록 외교적 도움을 준 미국의 역할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이라크 전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던가! 군사적 지원이 아니라 외교적 지원을 해 줄 나라가 그토록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 시민권을 가지고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우리의 혈맹인 덕택이 크다. 우방은 필요하다. 그러나 주체 사상에 세뇌된 친북 좌파의 눈에는 우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

   바른 길과 그릇된 길을 식별할 줄 모르는 소경이 운전대를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편과 적을 구별할 줄 모르는 좌익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친북 좌파는 대미 외교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면 반대 시위를 벌인다. 그들 중 정말 빨갱이도 있을 것이고 외교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수주의적 좌익의 문제는 동포를 차별하는 지방색이다. 어디 좌익이 동포를 차별하는 이유가 지방색 뿐이겠는가? 좌익의 문화는 왕따 문화이다. 서로 이용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펴다가 금방 서로 왕따시키는 것이 좌익의 생리이다. 이렇게 외국인도 동포도 무시하고 차별하는 좌익의 생리가 결코 올바른 민족주의가 아님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아메리칸 드림'에 학력도 소아마비도 장애가 아니었다"는 말을 한 뉴욕 한인회장 김석주씨이다. 그는 중증 지체장애자가 왕따되는 한국 사회에서 중학교 1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가정 형편이 가난하니 한국 사회에서의 차별은 더욱 심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1976년 27살의 나이에 소아마비로 인한 불구의 몸으로 단돈 6백달러를 손에 쥔 미국행이었다. 오늘 미국 굴지의 기업 회장인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한국에서 제일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사람들이 혀를 끌끌차고 안됐다고 하면서도 차별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은 아예 다른 인간으로 제쳐놓고 일을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여겼다. 미국에 대해 인종차별을 얘기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인간차별을 겪었다. 미국에 살면서, 특히 유대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내가 장애인이란 생각을 깜빡 잊고 보통사람인 걸로 생각했다."

   미국인은 김석주씨를 그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도, 중학교 1학년 중퇴의 이유로도 왕따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끌어주었기에 오늘의 김석주씨가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이토록 우호적인 미국인에 대해 좌익이 그토록 반미감정을 품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오늘날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한국 좌익의 왕따 심리는 결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시대에 문둥병 환자는 동네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1909년에 입국한 한 미국인은 어느날 길에서 한 더러운 옷을 입은 말기 문둥병 환자가 굶어죽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자기 집으로 데려와 깨끗이 씻고, 새옷을 입히고, 밥을 해주면서 정성을 다해 치료하여 살렸다. 그리고 여러 미국인들이 힘을 합쳐 여수애양병원을 설립하였다.

   1960년대의 한국 사회는 천막 까배기 공장 주인이 동네 유지요, 판자집 연탄 공장 사장이 중산층을 대표하던 때였다. 새로 등장한 모나미 볼펜은 참으로 신기한 발명품이었으며, 라면이 값싼 영양식으로 대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무렵 흑백 텔레비전이라는 신기한 물건이 등장했다. 그때 처음 등장한 TV 드라마가 "뻬앗긴 일요일"이었다. 이제 나이 아홉이나 되었을까 하는 거지아이가 깡통 들고 이집 저집 대문 두들기면서 "밥 좀 주세요"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이었다. 이 아이는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귀공자로 태어났다. 그런데 1953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에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이 이 아이의 삶을 이토록 비참하게 바꾸어 놓았다.

   전쟁이 할키고 지나간 땅에 무수히 많은 전쟁 고아들이 있었다. 인민군이 공무원, 군인, 경찰, 지식인들과 그 가족들을 학살하고 지나간 자리에 붉은 완장찬 남로당 빨갱이들이 도토리 키재기하여 자기네보다 잘사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래서 남북한 휴전 회담이 성립된 후에 우리나라에 무수히 많은 전쟁 고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낮에는 깡통 차고 구걸하러 다니며 밤에는 다리 밑에서 가마니 덮고 자던 이들은 그후 어찌 되었는가? 아무도 보살펴 주는 이 없던 그들은 그 시대의 가장 약자들이었다. 가마니 덮고 다리 밑에서 버티기에 겨울은 그들에게 너무도 추웠다. 한 명 두 명씩 그들은 추운 겨울날 다리 밑 가마니 속에서 움크리고 잠들다가 영영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당시 이 전쟁 고아들의 유일한 구원의 수단은 미군 병사들에게 입양되는 것이었다. 지난해 6월 미군장갑차 전용도로에서 두 여중생 사고를 당한 미2사단도 고아원, 양로원 등 대민 봉사를 아주 많이 하는 부대였는데, 이 부대에서 먹이고 재우던 거지 소년들 중에 신호범이 있었다. 어느덧 청소년으로 자랐을 때 구두닦이 일을 하던 어느날 가족이 너무도 그리워 엉엉 울었다. 그때 한 미군 장교가 뒤에서 포근하게 감싸더니 “얘야! 나하고 미국 갈래! 내가 너를 아들 삼으마” 속삭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켜 동양인 최초의 미국 상원이 되게 하였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왕따 대상이던 이 거지소년들과 고아 소녀들을 미국인은 아들딸로 입양하였다.

   이처럼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우방이 있는 것은 좋은 일임에도 퇴폐적 반미감정에 사로잡힌 한국 좌익의 문제는 그들의 심성 속에 깊히 뿌리박은 왕따 심리와 소경의 독선이다. 그런데, 신약성경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에서 우리는 선한 소경 바디메오를 본다. 그의 사업은 구걸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예수님이 자기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다는 말을 들은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여리고 성의 거지 바디메오에게 가장 돈벌이가 잘되는 시간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였다. 그러나 이 사람은 시력을 얻기 위해 그의 구걸하는 일을 잊어버렸다.

   경제적 실리로 따지자면 소경 거지의 눈이 떠지면 그의 구걸하는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소경 거지가 눈이 성한 거지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동정을 받기 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부르짖었으며 그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다. 소경은 빛과 어두움을, 영적 소경은 선과 악을,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지 못한다. 남의 문제, 옛날 얘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인은 좌익과 우익이라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로 스스로 소경이 되게 하는 안경을 쓰고 있지는 아니한가. 미국이 냉전 시대의 적이었던 중국과 러시아와 오늘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만큼 외교는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지난 반세기 동안 혈맹이었던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나라는 친미주의와 반미주의의 양편으로 국론이 갈라져 있다. 그리고 한 학교에서 두 선생님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에 학생들은 어느 편이 옳은지 혼동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좌익과 우익 양편의 이데올로기의 편견이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찌 한국인이라고 전혀 흠잡힐 일이 없겠는가? 신문을 보라. 뉴스를 보라. 온갖 비리와 범죄 소식들로 가득하지 아니한가. 한국인이 완전하지 못할진대 미국인이라고 전혀 흠잡힐 점이 없을 리 있겠는가? 그들도 사람이며 사람에게는 실수가 있다. 2차 대전 때 일본을 공격해 달라고 미국이 소련에 엄청난 군사장비와 자금을 지원해 주었더니 일본에 총 한방 안쏘고 초군사 강대국으로 등장한 것이 소련이다. 분명 미국에도 정책적 실수가 없었다. 그러나 좌익의 눈에는 미국이 우리의 혈맹이라는 사실이, 해방 후 이십 년간 우리나라 예산의 90%를 무상지원했으며, 관세 특혜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북한의 남침 방지를 위해서 주한미군의 주둔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좌익 이데올로기의 편견이 그들을 눈뜬 소경으로 만들었다.

   편견으로 시야가 흐려질 때 방향을 모르는 문제가 생긴다. 아무도 소경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차에 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눈을 뜨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과연 한국인에게 우리가 저버린 문둥병자를 집으로 데려가 치료하던 미국인을, 우리가 저버린 거지 소년을 아들 삼아 상원의원으로 키운 미국인을, 우리가 저버린 장애인을 미국 대기업 회장이 되기까지 밀어준 미국인을 왕따시킬 명분이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아울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간절히 부르짖었던 소경 바디메오의 기도가 오늘 우리 민족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좌익과 우익으로 양극화된 이데올로기가 지금 우리 시야를 흐리게 하기에 지금 그 기도는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영적 진리를, 보다 위대한 진리를 위해 부르짖던 기도가 울려퍼지던 때에 우리나라가 발전하였었기에 지금도 더욱 그 기도는 필요하다.

미군 병사와 한국 어린이들

주한미군 병사가 찍은 1960년대의 한국 사진.
한 미군 병사가 차를 세우고 한국의 어린이들과 놀고 있다.
그러나 좌익 편견이 있는 자의 눈에는 미국인의 우정과 호의가 안보인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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