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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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정치와 한국판 홍위병 운동의 기원

   국민을 대통령으로 받들겠다던 노무현씨가 애국 시민들의 뜻을 거슬러 한총련 합법화를 추진하며, 심지어 남로당 4.3 반란 사건까지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입법기관의 의결권을 무시한 채 사법기관에 법 개정을 강요하는 것은 법치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요, 준법 서약마저 생략한 양심수 석방 등 보안법을 단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일연의 조치들은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하는 무모한 작태이다. 이렇듯 그의 불분명한 안보관을 애국 시민들이 우려하고, 그의 초법적 행동을 식자들이 탄핵 사유로 지적하는 노무현씨에게 16대 대선 때 표를 던져준 일부 20대 젊은이들은 그들의 한 표의 행사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민주주의 선거란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대한민국의 법치 민주주의는 미국의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이씨왕조의 왕가가 다시 집권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왕정 시대로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국민이 스스로 나라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이 투표권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에도 군부 출신 대통령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도 조지 워싱턴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이 영국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우리의 지도자인가를 묻던 미국인들은 국민이 스스로 지도자을 선출하는 민주주의 이론을 관철시키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독립 전쟁이라는 혁명을 일으켰다.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민주주의의 주권 행사는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때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16대 대선 때 20대 중에 법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인물에게 표를 던진 이들이 나타난 것일까? 주권 행사의 의미를 망각한 이 현상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미국의 것과 너무도 다른데 기인한다. 미국 정계에도 몇년에 한번씩 위헌시비가 온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청교도 선조들이 그 문제에 대해 뭐라고 기록하였는지를 읽는다. 헌정 사상 단 한번도 개헌된 적이 없는 것이 미국의 헌법이다. 미국 고전 문학을 읽어 보라! 미국 고전 문학은 하나의 위대한 정치 철학의 담론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토론을 하였으며, 오늘의 미국 지식인들이 아무리 빨리 읽어도 결코 다 읽을 수 없는 무궁 무진한 지혜의 샘을 남겼다. 미국의 역사는 아주 짧다. 그러나 미국 선조들이 남긴 민주주의 유산의 권위는 미국 사회에서 절대적이다.

   바로 이점이 미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의 대조적인 차이점이다. 그의 선동적인 여론몰이 정치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인물이 김대중 선생이다. 그 한 예가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민주화 운동? 영국 왕정에서 벗어나려던 미국의 민주화 운동에는 엄청난 철학이, 정치 철학이 있어서 삼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광주 민주화 운동에 그 어떤 정치 철학이 있단 말인가? 심지어 아무런 민주화 이슈도 없는 폭동을 그들은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도(正道)를 빗겨간다.

   윤상원이라는 광주의 한 혁명가가 그가 사상 의식화 교육을 한 노동자들을 인솔하여 1980년 5월 20에 광주시의 경찰서들을 파괴하고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시민군을 조직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김대중 선생 추종자들은 윤상원의 폭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무수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광주 사태의 원인은 윤상원씨의 폭동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광주 사태의 발발 원인과 책임을 미국에 돌렸기에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도 생기고 반미 운동을 하는 NL 주사파까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퍼뜨리는 홍위병들의 여론몰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미국의 언론에는 홍위병들의 여론몰이가 발디딜 틈이 없다. 설사 유례 없는 반전 시위도 조용하게 진행된다. 무언가 국민 의식에 차이가 있다. 한국의 정계에는 홍위병들의 여론몰이가 있다. 노사모가 그리고 명계남과 문성근이 이끄는 여러 언론탄압단 조직들이 한국 민주주의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홍위병들의 여론몰이의 표적이 되었을 때 한국에는 세가지 타입의 반응이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처럼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 어른이 계시는가 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절대로 변명하지 않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이문열씨처럼 논필로 홍위병들의 여론몰이에 맞서는 이가 있다.

   518 광주사태의 발발 원인에 대하여 윤상원 일당이 많은 유언비어를 퍼뜨린 이래 일부 정치인 지도자들이 다시 유언비어를 증폭해 왔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선생을 그 배후 지도자로 받들고 선동적인 여론몰이를 하던 운동권 학생들의 대자보가 과격 시위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 사이에 윤상원 폭도가 조작해 유포한 유언비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음에도 각 대학의 대자보를 통하여 전국에 동시에 퍼져나갔으며, 그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거짓말이 사실을 지배하였으며, 심지어 그 거짓말에 의거하여 역사를 조작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잡기도 실은 이 유언비어에 근거하였다. 여러차례의 철저한 현장 검증으로 그 유언비어들이 사실이 아님을, 유언비어가 사실을 지배할 수 없음을 검찰이 발표하였는데도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법정이 거짓말 편에 서서 정의를 짓밟았다.

   어째서 유언비어가 폭동을 불러일으키고, 폭동이 유언비어를 증폭시키고, 유언비어가 다시 폭동을 증폭시켜 군이 진압작전에 나서야만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당시 여론몰이의 주체는 운동권 학생들이었는데,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윤상원 폭도가 조작한 유언비어의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전국 대학가에 대자보로 유포하였었다. 당시 운동권은 지도부에서 전달하면 전국 대학 벽보에 일제히 똑같은 대자보가 나붙은 통신망이 있었다는데서 우리는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들과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이문열씨는 2001년 7월 8일의 그의 시론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에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홍위병을 섬뜩하게 떠올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형식논리만 갖춰지면 못할 짓이 없었다는 점이다. 극히 추상적이고 초보적인 원칙만 갖춘 구호 아래 저질러진 숱한 문화적 파괴와 억압의 사례를 보라." 이어서 그는 홍위병의 여론몰이에는 1) 비전문적 정치논리에 의지한 전문성 억압, 2) 공격 대상에게 반론이나 회복의 여지를 주지 않는 공격성과 파괴성, 3)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도 그들의 견해가 김대중 정권의 견해와 일치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이문열씨가 말하는 김대중 선생의 홍위병은 사실 중국 문화혁명 때의 모택동의 홍위병을 빗댄 말이었다. 1966년 8월18일 중국 북경 천안문 광장. 인민복 차림에 왼팔에 붉은 완장을 찬 학생들 100만명이 질러대는 함성이 광장을 흔들었다. "여러분, 낡은 세계를 쳐부수고 새 세계를 건설하여 저 위대한 프로 레타리아 문화혁명을 단호히 수행합시다!" 울부짓듯 소리치던 이 학생들이 모택동이 사망하기까지 10년동안 중국 대륙을 격동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홍위병'이었다. 국가주석직을 유소기에 물려주고 당주석 자리만 유지하 고있던 73세의 노혁명가 모택동은 자본주의 경향으로 흐르던 당시 중국 경제학계 동향이 공산혁명을 일으킨 자신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권력의 핵심에서 재야 정치인으로 밀려나 있었던 모택동은 훗날 1980년 봄 김대중 선생이 운동권 학생 조직을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공격 대상이었다. 1980년 봄 김대중 선생의 운동권 학생들은 제4공화국 실세 인물을 공격하였다면 1966년에 모택동의 홍위병은 우익 보수 지식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개월간 홍위병들은 대도시는 물론 지방 구석구석까지 휩쓸고 다녔다. 공자의 초상과 불상을 파괴했고, 중국의 전통 복장이나 양복을 입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욕설을 퍼부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반혁명분자'라는 팻말을 목에 걸은채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발굴중인 명나라 황제 시신은 화형당했다. 오늘날 노사모의 노무현에 대한, 친북 좌익의 김정일에 대한 행태가 그러하듯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는 종교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그 결과 모택동이 얻은 것이 무엇이었던가? 1969년 중국은 사실상의 무정부상태로 정치와 경제가 마비상태에 빠졌다. 1968년의 산업생산량은 '66년에 비해 12%나 하락했다. 질서를 회복 시킬 필요성을 절감한 모택동은 군대의 힘을 이용해 홍위병을 제압하고 학교로 되돌려보냈다. 그리고 이점이 중요하다. 홍위병을 조직하여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모택동 자신이 홍위병의 도움으로 재집권한 후에 사회 질서 회복을 위해 군을 동원하여 홍위병들의 시위를 진압하였다. 1980년 5월 20일 공산주의 혁명가 윤상원이 인솔하는 좌익 노동자들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도청을 접수한 다음 시민들을 강제로 시민군에 편입시키며 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런 무정부 상태가 일주일 이상 계속되고 있는데도 방치할 정부가 세상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런 민주주의 철학이 없는 이런 폭동을 단지 군이 그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격상시키며, 무기 반납 요구를 거부하고 사격하는 그들과의 시가전이 불가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당시 광주사태를 전국 대학가에 속보로 알리는 대자보는 5.18 사태 발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남대 학생 이백명이 5월 15일부터 금남로에서 시위하였는데 5월 17일에 학생회장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2시경 자진 해산하던 학생들 사이에 '경찰이 전남대 학생회장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생들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 소문 사실 여부는 그때 밝혀지지 않았다." 1980년 5월 17일이 언제이던가? 김대중 선생이 전국 운동권 학생들의 비밀연석회의를 이화여대 강당에서 소집했던 날이 아니던가. 그날 그 시간에 그들의 학생회장이 비밀히 서울에 갔다는 사실을 아무리 몰랐다 하더라도 그의 신변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은 옳지 않았다.

   1980년 봄의 운동권 학생들의 시위를 4.19의거와 동격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1980년 봄의 운동권 학생들의 시위는 표면상 학생들의 시위였으나 그 배후에 김대중 선생의 정치 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순수한 학생 운동이 아니었다. 오늘날 2001년~2003년 인터넷 홍위병들의 전신은 1980년의 대자보 홍위병들이다. 이만큼 대학가에 운동권 학생들이 붙이는 대자보의 역사는 길다. 사실, 한국 대학가의 대자보는 김대중 선생의 운동권 학생들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기원은 중국 문화대혁명 때의 대자보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6년 5월 25일 북경 대학 식당 동쪽벽에 처음으로 대자보가 나붙었다. 북경대 여성 강사 섭원재 등 7명이 연서한 것으로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후 유행이 된 대자보는 문화혁명이 불붙는 계기가 됐었다. 중국 사회를 크게 뒤집는 힘을 대자보라는 새로운 통신 매체가 발휘안 것이다. 그러나 이 대자보 배후에는 홍위병을 조직하는 정치 세력의 사주가 있었다. 섭원재의 대자보가 붙은 지 며칠 뒤인 1966년 6월 초 청화대학 부속 중학교에 붙여진 대자보에서 처음으로 이런 표현이 나타났다. "우리들은 붉은 정권을 방위하는 위병이다." 그리고 그 서명이 홍위병으로 되어 있던 것이 홍위병 운동의 기원이었다.

   1980년 봄 김대중 선생의 운동권 학생들의 대자보가 우리나라 대학가 게시판에 나붙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우리나라 대학가의 학생 운동은 순수한 학생 운동이 아니었다. 대자보 여론몰이 정치는 재야 정치인이 대중을 선동하는데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지 모르나 결코 민주적이지 않은 정치 운동이었다. 어느날 아침 전국 대학가에 똑같은 대자보가 일제히 나붙는다. 그리고 대자보에 학생들에게 생소한 인물 이름에 대한 선동적인 공격과 비난 문구가 가득하다. 그리고 전국적 학생 시위 시간이 그날 몇시에 있으니 시위하러 모이라는 문구로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아무런 정치 철학이 없었다. 민주주의 토론도 없었다. 전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학생들을 거리로 몰아내어 시위에 동원시켰다.

   1975년 4월 월맹군이 남침하였을 때 그것은 월맹군의 남침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위한 민중 봉기라는 성명을 발표함으로 자국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적화통일을 자초했던 짠후탄 신부처럼 김대중 선생은 목소리가 큰 정치인이다. 그는 늘 여론몰이에 능하다. 그의 집권 기간 중 MBC를 여론몰이의 수단으로 삼은 그는 1980년 봄에 대자보를 여론몰이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김대중 선생처럼 목소리가 큰 정치인의 기만과 진정한 민주화 운동을 구분해야 한다. 면학 풍토가 있어야 할 대학가를 대자보로 어지럽히는 풍토와 홍위병을 동원한 여론몰이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 막는다.

   386운동권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아무런 분별력 없이 특정 정치인의 홍위병 노릇을 하던 그들은 윤상원 폭도가 조작한 유언비어들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사실처럼 여론몰이를 해왔고, 또 그 거짓된 유언비어가 사실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 운동을 해왔다. 그런즉, 거짓으로 사실을 지배하게 억지를 부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판단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전두환 대통령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규하 대통령의 적극적 권유와 내각의 추대에 의해 대통령 후보가 되었음이 밝혀진바, 이 경우 최규하 대통령의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의 명예와 노벨상 수상을 국익에 우선하던 김대중 선생에 비해 전두환 대통령은 오로지 국민의 충실한 종복이 되기 위해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는 이문규씨와 달리 전혀 홍위병들의 여론몰이에 맞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합수부는 일개 수사기관이요, 수사기관에는 전혀 계엄군 통솔 권한이 없다. 일개 수사기관장이 계엄사령관이 아님은 노무현씨가 수산부장관 시절에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미래에 등장할 인물인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아직 시민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때에 윤상원 폭도가 그런 유언비어를 조작하였기에 그 유언비어 출처를 의심하여야 할 때에 당시 홍위병들은 그 유언비어를 전국에 유포하였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던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윤상원 폭도는 처음부터 반미 운동을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윤상원 폭도가 왜 5월 20일 광주의 방송국들을 전부 불태웠는가? 북한의 배후 지원이 의심시되는 그의 유언비어 삐라로 광주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왜 그가 그의 일당들을 인솔하여 5월 20일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의 무기를 탈취하여 시청 건물을 점거하고 시내 전역의 파출소를 파괴하였는가? 518측의 문서에도 그날 시민군의 수가 이십 만명이 넘었다 하였으니 실제로는 그 수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에 비해 여러 대학교와 형무소 및 주요 공공시설에 분산된 계엄군 수를 다 합하여도 이백 명이 안되었다. 아직 계엄군에는 공포탄조차 지급되지 않았으나 시민군은 전원이 실탄이 장착된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날 아시아자동차에서 장갑차와 버스를 탈취한 시민군 장갑차에 두 명의 국군 장병이 깔려 죽자 장병들은 지휘관에게 공포탄이라도 지급하여 달라고 아우성쳤으며 그날 밤 11시에야 공포탄이 지급되었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장갑차 압사 희생자도 총기 희생자도 시민군 편이 아니라 국군 장병 편에 있었다. 아무리 군인이라 해도 시민군 대 군인의 비율이 1000 대 1 혹은 2000 대 1이었다면 어느편에서 두려움을 느꼈을까? 오죽하면 더 많은 국군 장병이 폭도들에게 사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 군이 21일에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여야 했었을까?

   그 당시는 북한 인민군 전병력이 휴전선 일대에 집결하여 광주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남침 명령을 기다리던 때였는데 무엇 때문에 윤상원 폭도 일당은 5월 21에 화순, 담양, 장성, 나주까지 가서 경찰서를 습격하고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였는가? 그리고 왜 형무소를 습격하였는가? 1997년 신창원 탈옥수 한 명이 도주하였을 때 국민은 그가 다시 체포될 때까지 2년 7개월 동안 얼마나 불안에 떨었었던가! 그런데, 삼천 명이나 되는 죄수들을 풀어주어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민주화 운동하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단 말인가? 이때 형무소를 경비하던 몇명 안되는 계엄군에게 이 형무소를 사수하는 것은 그들의 임무였으며 이 전투에서 계엄군과 시민군 양편에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형무소를 경비하던 국군 장병들이 윤상원 폭도 일당에게 항복하는 것이 옳았단 말인가? 이들이 형무소를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폭도들로부터 지켜낸 것이 죄란 말인가? 김대중 선생의 홍위병들은 법치 민주주의를 거꾸로 이해하는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더구나 이것은 윤상원 폭도가 일으킨 폭동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음모설을 유포하는 NL 주사파는 지능지수가 얼마나 낮은 자들이란 말인가? 아무리 반미 운동을 해도 NL 주사파는 좀 근거 있는 주장을 하며 반미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5.18 광주사태 정말 아픔이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친 수사기관과 검찰의 조사는 민간인 사망자 166명 중 군인이 사용한 M16 총탄으로 죽은 시민은 45명 뿐이었으며, 나머지는 폭도들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탈취한 칼빈총 총탄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윤상원 폭도 일당이 사살한 수십 명의 군인 장병 외에도 그들은 이토록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면서 그들이 제작하여 광주 전 지역에 뿌린 삐라에는 공수부대가 학살하였던 것처럼 유언비어를 조작하여 퍼뜨렸던 것이다. 그럴진대, 더 이상 5.18광주 사태가 어떤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왜곡되는 것은, 그리고 폭도들로부터 광주 시민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임무에 충실했던 장병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폭동은 폭동이다. 폭동은 폭동이기에 지금이라도 우리는 윤상원 폭도 일당이 조작하여 유포한 유언비어, 단지 윤상원 폭도 일당이 뿌린 삐라에 적힌 유언비어 그대로 주장할 뿐 청문회에 단 한 명의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던 그 거짓에 바탕을 두지 말고, 사실에 근거하여 518 광주 사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근자에 김정일 똘마니들이 친북 좌파 게시판에 석가 탄신일에 즈음하여 양심스 석방이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더니 정말로 노무현씨가 그런 취지의 발표를 하였다. 이것은 법치 민주주의 국가의 올바른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삼권분립의 원칙을 대통령 스스로 어기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위험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폭동을 일으킨 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뿐 아니라, 유공자로 포상한 것도 부족한가. 그들이 이제 한총련을 합법화시키고 남로당의 4.3 반란 사건마저 정당화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 사이에 윤상원 폭도가 조작하여 전국적으로 유포한 유언비어가 얼마나 독버섯처럼 친북 좌파 세력이 불어나게 하였던가! 이제 노무현씨와 강금실 법무가 검찰의 공안부를 없애며 보안법까지 철폐시키려 함은 윤상원 폭도가 1980년 봄에 유언비어를 퍼뜨린 행위들을 더욱 정당화시키기 위함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 위기를 가져오는 무모한 짓을 하려는 강금실은 도대체 대한민국의 법무인가 북한의 법무인가?

   노무현 정권의 의도가 이토록 국민의 의혹을 불러일으킨다면 실로 지금은 광주 사태를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격상시킨 김대중 정군의 치졸한 행위를 그간 국민 화합을 위해 참아왔던 시민들이 입을 열어야 할 때이다. 이제 사실로 사실을 가리자.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역사가 거짓으로 후대에 전해질 수 없다. 광주 시민의 진정한 명예는 윤상원의 혁명 폭도들이 총을 들고 위협함에도 끝까지 그 폭도들에 합류하기를 거부하였던 광주의 민주 시민들에 의해 기억되어야 함을 우리는 안다. 노무현 정권에서 한총련 합법화를 추구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거짓과 큰소리로 사실을 지배하러 들던 자들이 아닌가? 이제 사실로 사실을 가리자. 지금은 애국 시민들이 한총련 합법화를 추진하는 무리에게 삼권분립에 입각한 법치 민주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정치 철학을 요구해야 할 때이기에 이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북핵 반대 시위를 하는 애국 시민들

2003년 우익 애국지사들의 시위 문화에서도
이제는 대자보를 응용한 표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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