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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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파병과 한국 경제의 상관 관계

   전쟁은 때로 전쟁 당사국이 아닌 나라의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일본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전 특수였다. 2차 대전 후 일본은 자국의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외화가 없었다. 그런데, 한국전 특수가 그들에게 경제 호황의 기회였다. 한국전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은 무기를 태평양 건너에서 공수해 오기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에 군수산업을 의뢰하였는데 그때 미국이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쓴 전쟁 비용이 얼마나 많았는지 미국이 한국전을 위해 사용할 무기를 미국에 수출하여 벌어들인 외화가 일본 경제를 급성장시켰다.

   한국에는 월남전 특수가 있었다. 미군이 월남전을 위해 쏟은 비용이 5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 한국 정부에 지불한 액수가 상당히 많았다. 한국군은 월남에 미국의 용병으로서 파병되었었다. 즉, 군인의 봉급을 미군과 동일한 기준으로 받았다. 아직 한국인 연 GNP가 100불도 안되던 시절에 미군 최하 봉급을 월 1,000불로 잡아도 일반 한국인 평균 수입의 백배나 되는 봉급이요, 당시 국군 사병 봉급의 천 배에 달하는 급여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우리나라를 동북아 물류 유통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남북 철도 연결에 많은 투자를 하였으나, 실은 한국의 물류 유통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신 분도 박정희 대통령이셨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하셨을 때 김대중씨는 극구 반대하였었다. 당시 사람들은 차도 별로 없는데 고속도로는 어디다 쓸 것이며 막대한 공사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를 물으며 무척 황당해 했었다. 그리고, 여론에 따른 정치를 한다면 경부 고속도로 공사는 포기하셔야 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밀고 나가셨다.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된지 십 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앞을 내다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에 감격해 하였다. 경부 고속도로 없는 한국 경제의 발전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김대중씨 추종자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붙인 독재자라는 별명과는 달리 그는 선견지명과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였다. 따라서 위대한 지도자를 독재자로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 고속도로 건설 비용이 얼마나 들지 정확히 산출하셨으며 우리 돈 한푼 안들이고 그 비용을 정확히 마련하셨다. 월남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대신 그는 그 봉급을 한국 정부가 관리하도록 미국과 계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파병 군인에게는 국내 한국 군인과 동일한 봉급을 지원하고 나머지를 국고에 넣어 경제 발전 기금으로 사용하였다. 경부 고속도로 비용은 이렇게 마련되었다. 한국 경제가 섬유 가공 수출에서 몇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월남전 특수가 우리나라에는 그 기회였던 셈이다.

   요즘,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놓고 국론이 갈라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의로운 전쟁의 명분 외에도 이라크 전쟁은 우리나라의 경제와 세가지 면에서 이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한미 동맹의 표시는 한국 경제의 신용도와 비례한다. 정부가 S.K. 를 건드렸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수조원이 빠져나가는 금융 위기에 봉착했었다. 그 위기를 막아준 것이 우리 정부의 이라크전 참전 발표였다. 둘째, 지금 외화에 목마른 러시아 때문에 유가 인상을 못하고 있지만 향후 몇년 내로 사담 후세인이 석유를 경제 무기화할 것이 명약 관화하다. 그리고 그 가장 큰 피해자는 석유 한 방울 안나는 우리나라 아닌가? 셋째, 한미 동맹에 의거하여 여태껏 미군이 한국의 유조선을 보호해 주고 있다. 미군의 보호 없이는 해적 때문에 우리나라는 중동에서 석유 수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분명,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경제적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한 경제적 이해 관계만 놓고 주판알을 굴릴 것이 아니라 이라크 파병 문제를 혈맹의 의리상의 선에서 샐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 전쟁 때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었다. 지금 그들은 지원병이지 당시 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니깐 갑자기 모병되어 한국 전선에 투입되었다.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때의 함경도 흥남의 무서운 추위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당시 백만 대군이라는 중공군의 인해 전술이 있었는데, 흥남으로 후퇴한 미군 병력을 전멸시키기 위해 십오만 명의 중공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후퇴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지금 피난하지 않으면 인민군에 잡혀 죽는 북한 동포들이었다.

   그 광경을 본 미군 지휘관은 배에 피난민도 태우기로 생사를 건 결단을 한다. 곧 떠나려는 미군의 배에 무수히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임신한 탈북자 아낙네가 뒤쫓는 경비병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외국 공관으로 뛰어들어가는 그런 다급한 상황이 그때도 있었다. 병력 철수 작전을 위해 대기 중이던 미군의 배가 떠나려 하며 뒤에서 중공군 대병력이 달려오고 있다. 이때 미군 용사들은 한 명이 피난민이라도 더 태울 시간을 벌기 위해 장진호 빙판 위에서 중공군을 맞아 장렬한 전투를 하였다. 그리고, 1970년의 미국 GNP가 겨우 4,000불이었으니 1951년에는 그보다 훨씬 적었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선박에 있는 모든 값비싼 장비들을 전부 꺼내서 불태워버렸다. 한 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태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십만 명의 피난민이 탈출한 흥남 대철수 작전은 이렇게 전개되었다.

   그날 우리 동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미군 용사들이 전사하였는가? 그들의 목숨이 미국인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북한에서 그때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그 장전호 전투에서 상이군인이 된 용사들이 아직도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고 있지 아니한가! 미국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혈맹이다. 북한의 김정일 같은 폭악한 군주의 폭정에 시달리는 이라크 국민에게 자유를 선물해 주는 일에 한국인은 그토록 인색하단 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을 위하여 수만명의 피를 흘린 혈맹을 위한 최소한의 의리는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이 우리를 위해 총을 들었었다. 우리는 그 빚을 언제 갚을 것인가? 전투병을 파병할 기회를 영영 놓지려 할 것인가! 우리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파렴치한 민족으로 후손에게 기억되려 하는가!

꼬리문 보급차량
미군의 차량들이 21일 남부 이라크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하고 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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