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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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보다 기독교 신앙이 더욱 한국적이다

(이 글은 2003년 10월 24일에 제 칼럼 http://column.daum.net/sion/ 에서 어느분과 한국인의 종교에 대해 토론하던 중 샤머니즘이 한국 종교라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님은 샤머니즘이 한국 신앙이고 기독교 신앙은 이스라엘 신앙이라고 말씀하시는데 혹시 사실을 거꾸로 알고 계시는 것 아닌가요? 만일 기독교 신앙이 이스라엘 신앙이라면 이스라엘에서는 기독교 예배가 금지되어 있으며, 한국은 이스라엘에 기독교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님이 거꾸로 알고 계시는 것과는 달리 기독교 신앙이 샤머니즘보다 더 한국 신앙에 가깝답니다. 본래 샤머니즘이란 옛날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서 성행했던 무속 종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시베리아 무속 종교는 곧 한국 종교라는 주장에는 상당한 논리적 모순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속 종교가 한국 종교라는 주장은 한국인에게는 철학과 사상이 없다는 주장과 똑같은 것이므로 우리는 거부하여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과 무속 종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복음에는 사랑이 있으며, 이 사랑은 안에서 바깥을 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에는 이웃 사랑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샤머니즘의 기복 신앙은 자기집 울타리를 넘지 못한답니다.

   무엇이 기독교인의 기도와 무당긋의 차이인가요? 미국에는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서, 동네를 위해서 무당긋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속 신앙은 신앙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이기적입니다.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기껏 자기와 자기 가족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무속 신앙은 공짜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신앙이라고 부르기가 어렵습니다. 무당긋을 거저 해주는 무당이 있던가요? 아닙니다. 무당의 신령은 많은 돈을 내놓아야만 무당긋을 받아주는 욕심장이입니다. 거저 주고 받는 공동체 정신이 샤머니즘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의 기도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욱 풍성하게 넘친답니다.

   어째서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문화가 발전하지 못하는가요? 사람들이 자기와 자기 가족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어째서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신앙 부흥이 있을 때는 국력이 튼튼하여지며 경제가 성장하였는데, 무당긋이 많아질 때는 국력이 쇠퇴하고 경제적으로도 삭막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샤머니즘의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은 열심히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는데 비해, 샤머니즘 운화권에서는 돈 있는 사람이 뭐든지 자기네 가족 몫으로만 챙깁니다.

   인터넷 시대에 한국 문화가 더 발전하였는가요? 아닙니다. 요즘 우리는 무당들이 많아지고 무속 신앙이 번창하면서 한국인의 정신 문화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음을 봅니다. 가난한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처음 왔을 때 기독교 신앙이 빨리 자랐습니다. 기독교에는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 좀 생기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복음을 외면하고 자기 가족밖에 모르라고 하는 무속 신앙에 빠져듭니다. 왜 1960년초보다 120배 더 잘 살게 된 나라에서 가난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까? 그것은 졸부들이 자기네 가족밖에 모르는 동네는 너무도 삭막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물줄기가 있고 없고는 사막과 옥토이 차이입니다. 자,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는 사회가 점점 사랑이 메마른 사막처럼 삭막해져 가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좌익 망상가들은 사회주의를 하면 서민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주의를 해도 사막은 여전히 사막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유럽에서 비행기로 수입해온 산해 진미를 즐기고 있을 때 삼백만 명의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사회주의는 사막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로지 기독교의 사랑의 복음만이 사막을 옥토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샤머니즘이 한국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역사 철학이 없다고 우기는 것과 똑같습니다. 무당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우주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인생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무속 신앙에는 신학이 없으며, 우주의 기원에 대한 질문도 답변도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시작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속 신앙에서는 내일의 개념도 없습니다. 무속 신앙의 시간은 오늘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자기 집에 붙어 있는 액운을 떼는 것이 사람들이 무당긋을 벌이는 유일힌 예입니다.

   그러기에, 공동체 정신이 없고, 미래관이 없는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문화가 발전하지 못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서구인들보다 영리합니다. 그럼에도 문화는 미래의 비전이 있는 서구 문화권에서 먼저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멀리 미래를 내다 보는 지도자들이 많아질 때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오늘만 생각하는 무리들이 정치 지도자들이 된 민족은 불행합니다.

   그 기복 신앙이 자기집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역사적 시야가 오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애국심이 있기 힘듭니다. 일본 제국이 침략하던 구한말에 무당들은 무엇을 했던가요? 무당 애국자기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반면, 기독교는 학교를 세우고 교육 사업을 하면서 민족혼을 일깨웠습니다. 미션 스쿨의 역사가 한국 교육의 시작이요, 난세에 민족 지도자 배출의 시작이었습니다.

   셋째로, 샤머니즘이 한국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에는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모순을 드러냅니다. 종교에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변이 있습니다. 그런데 샤머니즘에 이런한 물음들과 답변이 있나요? 없습니다. 샤머니즘에는 신학도 구원론도 없습니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미신 신앙일지는 몰라도 종교는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런데 샤머니즘에는 천국 복음이 없습니다. 샤머니즘 세계에서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되고, 후대 사람들이 귀신이 된 자기를 내쫓기 위해 무당긋을 벌이는 일이 무한히 반복될 뿐입니다.

   그들이 귀신이 있다고 말하기에 샤머니즘이 한국적입니까? 아닙니다. 성경도 귀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힘센 귀신에게 뇌물을 바쳐 다른 귀신들을 내쫏는 무당긋이 한국적입니까? 아닙니다. 영물들 중에 귀신들이 있지만 천사와 마귀의 모든 영물들 위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무속 신앙에서도 무당의 신령들 위에 참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제가, 이 글 처음에서 말씀드린 대로 만일 님은 기독교를 이스라엘의 민족 종교로서 여기신다면 님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시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이스라엘 민족 종교라면 어째서 이스라엘에서 기독교 예배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어째서 한국에서 이스라엘로 기독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나요?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에 엘로힘과 여호와가 있습니다. 그런데, 엘로힘은 모든 민족의 하니님이요, 여호와 혹은 야훼는 약한 자의 하나님입니다. 히브리 민족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 창세기 첫 장에서 하나님 명칭은 여호와 혹은 야훼가 아니라 엘로힘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라고 번역된 모든 명칭은 엘로힘입니다. 즉, 모든 민족의 하나님, 곧 한국인의 하나님이십니다.

   샤머니즘의 신령은 신령에게 뇌물을 갖다바치는 자의 집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요즘 무당의 신들이 한국 사람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이들의 신관은 민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첫장부터 기독교의 복음이 한 민족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심을 아주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무당의 신이 한국인의 신이라는 주장은 고대 중국인들의 수호신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은 동네마다 수호신들이 있다고 믿었으며, 동네 수호신들끼리 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 신과 일본 사람 신과 중국 사람 신이 서로 싸웁니까? 그런 신은 참 신이 될 수 없기에 결코 한국인의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샤머니즘 신앙이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라면 한국 무속 신앙의 신령들 이름은 옛날 중국의 무사들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아니, 어째서 그런 것들이 한국인의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일, 님이 한국인의 사랑은 자기집 울타리를 넘지 못하며, 한국인의 역사 시계에는 오로지 오늘만 있으며, 한국인에게는 종교도 사상도 철학도 없다고 주장하신다면 샤머니즘의 신이 한국인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모든 천사들과 마귀들 위에 참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리고 한 동네 신이나 민족 신이 아니라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민족의 조상이 알고 믿었던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신다면 샤머니즘 신앙보다는 기독교 신앙이 훨씬 한국적 신앙이심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가 보세요. 이스라엘에서는 기독교 예배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에 기독교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민족은 한국 백성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한국인의 하나님이요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입니다. 한 민족의 수호신이 아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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