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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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 이데올로기 숭배하는 중국 사대주의자 리영희

   좌익은 리영희 교수를 지성인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동양적 관념론은 참 지성의 적이다. 미국을 비판하는 미국인에게서 참 지성인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미국 지성인들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선택하되 그것들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미국인들은 우리는 최선을 모델을 선택하는 것일 뿐 결코 민주주의도 시장 경제도 완전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의 지성인들은 역사적 경험에서 배우고 반성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관찰한다. 미국 지성의 장점은 비평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판을 수용하면서 미국의 지식인들은 계속 방향타를 수정하기에 미국의 학문은 권위가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영희 교수의 동양적 지성은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바꾸지를 못한다. 1950년에 모택동과 중국 공산주의 경제를 숭배하기로 결정한 후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를 묻지 않고 평생 끌고간다. 미국인에게 이데올로기는 취사 선택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면, 리영희 교수는 좌익 이데올로기를 숭배한다. 그는 자기가 숭배하는 마르크스 사상이 완전하다는 관념론에 빠져있으며, 이것이 그의 반미주의의 뿌리이다. 마르크스 사상이 숭배하는 그는 마르크스 사상이 아닌 것은 모두 나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이 결론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석하며, 짜집기하여 맞춘다.

    리영희 교수처럼 남북통일을 주장하는 좌익 논객의 문제는 남북한 통일에 기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남남 분열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좌익 이데올로기를 숭배하는 자들은 빨갱이이거나 지적 색맹 둘 중 하나이다. 빨갱이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적화 통일 야욕을 감추기 위해 그들의 전쟁 도발 가능성을 숨긴다. 지적 색맹은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이 남침하였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자기네 주장에 불리한 것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 지적 색맹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이 동양적 관념론에 빠진 엉터리 지식인들의 문제이다. 이들은 엄연학 객관적 사실을 숨기거나 큰소리로 부인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실을 보는 힘을 상실하는 것이 지성인가?

    우리나라는 해방된지 60년이 가까워오고 있는데 여전히 자유시장경제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공산주의 경제를 선택할 것이냐를 두고 여전히 국론이 양분되어 있다. 리영희 교수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이며,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공산주의를 말한다. 그는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논객이지만 그의 주장은 옳은가? 그는 미국 자본주의는 이기주의라고 말할 때 한 가닥의 사실은 있다. 자본주의 자체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은 화폐만을 말하지 아니하고 노력과 기술과 지식 등 비물질적 자원을 포함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욕심이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며, 미국인들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북한처럼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하여야 할 이유인가?

    물론 북한 공산주의와 통제 경제에도 한가지 장점은 있을 수 있고, 미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도 한가지 단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 한가지 장점 때문에 북한 공산주의와 통제 경제의 그 모든 폐해를 숨기는 것이, 그리고 그 한가지 단점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주는 그 모든 혜택을 부정하는 것이 지성이며, 민족 공조인가? 미국인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계속 손질하며 발전시키는 데 비해, 리병희 같은 좌익은 이데올로기를 숭배한다. 미국에서 좌익과 우익은 다양한 의견 표현을 위해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리병희 같은 좌익 이데올로기 숭배자들 때문에 좌익의 존재는 곧 국론과 사회의 분열을 의미한다.

    이런한 좌익의 존재 때문에 1980년대부터의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엉터리였다. 본래 민주주의는 평민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발전하였으며, 시장경제는 농노 혹은 천민에게도 근면을 밑천으로 신분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기회를 젝하기 위하여 발달하였기에 민주주의는 시장 경제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이 사이비 민주화 운동가들은 한국에서 자유 시장 경제 (Free Market Economy)을 버리고 마르크스식 사회주의를 채택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 마르크스식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식 통제 경제는 북한의 집단 농장이 그 예이듯이 서민의 신분을 농노 혹은 소작농의 신분으로 격하시킨다. 이렇듯 한국 좌익의 경제관은 거꾸로가는 민주화운동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의 자유 시장(Free Market)도 공산주의 국가들의 통제 경제도 서민 경제에 기여하라는 취지에서 발달하였다. 그러면 어째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정반대의 경제 체제가 발달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의 경제관은 남의 것을 빼았으려는 못된 심보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기독교적 경제관은 "주라"(Give)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가복음 10장 21절)고 말씀하셨다.

    공산주의 국가의 통제 경제는 누가 열심히 일하였느냐를 묻지 않고 사유 재산을 몰수한다. "네 것이 내 것이다"가 이들의 철학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경제관은 "내 것이 너의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 기독교적 교훈에서 가장 지혜로운 투자는 주는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그리고 기독교 문명권에는 정신적 가치관이 있다.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상 사회는 물질적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유물론자들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늘의 보화를 추구한다. 시장 경제는 우리 시대에 경제적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희구한다.

    자유 시장(Free Market)은 본래 서구 기독교국, 즉 서구인들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던 시대의 서구에서 발전하였다. 한국 전통사회가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듯 유럽 봉건사회의 백성은 귀족인 영주와 농노인 농민들로 양분되어 있었다. 농노는 열심히 일하여도 농노였으며, 영주는 놀고 먹어도 부가 세습되었다. 여기서 서민들에게도 잘 사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자유 시장 경제가 발전하였으며, 18~19세기 산업화와 더불어 더욱 가속화되었다. 자유 시장의 발전과 더불어 서민 증산층이 등장하였으며, 백성을 영주와 농노로 나누던 봉건제도는 철폐되었다. 농노의 신분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서민들에게 분명 자유 시장은 신분과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우상으로 삼는 좌익과 달리 기독교 사회에서 자유 시장은 주인(master)이 아니라, 종(servant)이다. 그런데, 이것은 좌익 경제 이데올로기를 주인(master)으로 삼고, 오로지 그 이데올로기를 위해 살며 죽으려는 좌익 경제관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유 시장(Free Market)을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 모델이라는 판단을 한다. 그럼에도 자유 시장은 우리의 종이지 주인이 아니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자유 시장 위에 기업 윤리, 즉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한 윤리가 있다. 그래서 서구 선진국에서는 기업주는 후한 기부자(Giver)이다. 그러나 좌익이 많은 후진국일수록 기업주는 악덕 상인으로 여겨진다. 자유 시장을 종이 아닌 주인으로 여기는 사회에는 착취가 있다. 이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못된 근성을 가진 좌익들이 있는 사회에서는 힘이 착취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이라는 경제 발전 모델은 우리의 하인이되 우리가 얼마든지 좋은 하인으로 만들 수 있는 하인이다. 그런데 한국 좌익의 문제는 우리가 하인으로서 부려야 할 경제 이데올로기를 상전으로서 섬기려 한다는 데 있다. 한국 좌익 중에서도 리영희 교수는 1950년부터 중국 공산주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상전으로 삼기로 작정한 자이다. 그런데 리영희처럼 공산주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상전으로 떠받드는 좌익의 문제는 지적 색맹이 된다는 것이요, 앞뒤가 꽉막힌 편파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 공산당 군대가 1950년에 남침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적 체험인 이 역사적 사실조차도 좌익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 그들은 지적 색맹이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일 정권이 지금 무력 적화통일 준비를 하고 있음을 좌익은 숨긴다. 왜? 좌익 이데올로기를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은 앞뒤가 꽉막힌 자들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 경제(Free Market Economy)가 서구 기독교국에서 발전하였다고 말할 때 물론 우리는 교회가 경제학 이론을 발전시켰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유 시장 경제의 발달은 기독교 문명에 그 기원이 있음이 사실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는 각각 전혀 다른 방법으로 시장 경제를 발전시켰다. 중세 시대의 유럽인들은 재물이 많은 자를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여겼다. 성 프란시스처럼 물질적 가치보다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기 것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수도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경제 효용에 대한 연구는 수도원에서 발전하였다. 즉, 같은 땅, 같은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좀 더 생산성을 높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방법과 기술들이 발전하였다. 그 이전의 생산은 가내 수공업이었는데, 생산의 분업화와 전문화 개념은 수도원에서 발전하였으며, 이 지식이 훗날 세속 사회에서 공장을 발전시켰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Protestant Reformers)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시장 경제를 발전시켰다. 개신교 윤리에서 근면은 미덕이다. 로마 천주교에서 재물 소유는 탐욕이라고 가르쳤다면, 개신교는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고 가르쳤다. 더 이상 신부의 성직만 신성하지 않다. 밀레의 만종에서 보듯이 자기 일터에서 성실히 일하는 농부의 일도 신성하다. 왜냐하면 일의 사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일의 보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자의 생활 수준 향상은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런 기독교 윤리에서 자유시장경제가 발전한다. 봉건사회에서 농노는 평생, 자자손손 농노이다. 그러나 개신교 윤리가 봉건사회제도를 무너뜨렸으며, 이제 누구나 열심히 일하는 자는 누구나 기회가 주어졌다. 봉건 시대의 신분이 세습이었다면 이제 하층 서민에게도 노력에 의하여 신분이 향상되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정국의 남로당의 경제관은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경제관과 정반대였다. 남로당원들은 붉은 완장 차고 죽창 들고 다니는 일 외에는 놀고 먹는 자들이었던 듯하다. 노름으로 세월보내는 자들보다 근면한 자가 잘 살게 되는 것은 정한 이치라면 억울하게 남로당원들의 죽창에 학살에 희생된 우리 동포 중 대다수는 근면한 분들이었다. 그런데 좌익은 이런 근면한 분들을 학살하고 재산을 몰수하였다. 바로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국가는 가난을 면치 못하는 이유이다. 열심히 일하나 놀구 먹으나 받는 배급이 똑같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는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러시아와 동구의 경제가 무너져서 1990년대에 자본주의를 도입하였으며,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중국도 일지감치 공산주의 경제를 포기하였으며,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북한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인 것이다.

    만일 남로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북한의 노동당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당이 노동당 하나밖에 없는 나라에서 노동당원이 된다는 것은 북한 사회의 귀족 계급이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민은 당이 정해주는 집단 농장 같은데서 일하고 배급받는 농노의 신분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지적 색맹 좌익의 눈에는 이것이 진보로 보인다. 리영희 교수는 경제에 대하여 알고서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마르크스 이론을 지지하는 것인가?

    리영희 교수는 단지 몇개의 단어의 관념론에 빠져 속단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그는 자본주의는 이기주의라고 말하지만 화폐만 자본이 아니며, 자본은 생산 요소 중 하나이다. 쌀집 배달부였던 정주영씨도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조중훈씨도 화폐 자본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성실이라는 내면적 자본을 밑천삼아 그들은 미8군에서 건설 용역과 운송 용역을 따내어 건설과 물류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층 서민이 최고 경영인의 위치에 오르는 이런 성공의 이야기는 공산주의 통제 경제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분명 자본주의에는 서민에게 미래에 도전할 꿈과 새로운 기회를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럴진대, 리영희 교수가 마르크스주의, 특히 중국 모델을 한국이 수용하자고 주장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가? 미련한 좌익은 러시아와 중국이 하는 것은 양잿물도 따라마시려고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상황은 한국 상황과 달랐다. 영토가 세계에서 제일 넓은 러시아에는 광대한 농경지와 지하자원이 있다. 그러나 오랜 왕정 통치를 거치는 동안 백성이 소수의 귀족과 다수의 농노로 갈라졌다. 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러시아의 귀족은 광대한 땅을 가지고 있었으나 소작농은 몹시 가난하였다는 것이 왕정국가로서의 러시아의 사회 문제였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이라기보다 러시아 왕정에 대항하는 혁명이었다. 러시아 귀족이 대농장 지주였으며, 아직 시장 경제는 시작되지 않았었다. 서구 유럽에서는 자유 민주주의가 왕정을 타도하였지만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왕정을 타도하였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로마노프 왕조의 니콜라스 2세 황제는 좀 무능했을 뿐이지 사람들을 학살하지는 않았다. 수천 만명이 학살되었으며, 국민은 집단 농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여야 했다. 지유시장경제가 없었기에 공산당원을 제외한 서민들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없었으며, 생산성은 날로 떨어졌다. 그리고 러시아 경제가 파탄나기 직전이었던 1990년에 러시아는 마침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서구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다.

    중국 역시 청나라의 낡은 경제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20세기 초 청나라에는 국력 약화와 빈곤의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외형상 대제국이었던 청나라의 각종 이권 사업이 유럽 열강에 넘어갔다.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용인 줄로 알았는데 1894-1895년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였다. 이미 산업국이 된 일본을 여전히 농업국인 청나라가 당할 수 없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등장한 손문과 쟝개석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의 국력 회복을 우선 과제로 보았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무명의 공산주의 혁명가 모택동이 점차 그의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모택동은 빈곤의 문제를 보았다. 청나라 역시 제정 러시아처럼 대지주와 농노로 갈라진 사회였다. 소수의 부호들은 거부였으나 다수의 소작농들은 몹시 가난하였다.

    모택동은 공산주의 이론가는 아니었으며, 단지 서민들의 빈곤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이렇듯 처음부터 중국 공산주의는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이었지 결코 공산주의 이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북한 공산당과 리영희 교수는 어째서 공산주의 종주국이 공산주의 경제를 버리는 것인지 배신감을 느끼지만 중국으로서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중국 건국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쉬웠다. 이점이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도 중국과 북한이 크게 다른 점이다. 북한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국가 존속의 이유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이데올로기는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실험 결과 서구의 자유시장경제가 동구의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것이 입증된 이상 더 이상 공산주의 경제를 고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종주국들이 일찌감치 폐기처분한 마르크스 경제가 한반도에서 필요할 이유가 있는가? 한국 좌익은 어째서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폐기 처분한 것을 줏어오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서민에게 신분과 생활 수준 향상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서구의 자유시장경제가 적합함에도 불구하고 리영희 교수와 한국 좌익은 어째서 마르크스 경제 모델만을 고집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이상한 일은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와 중국이 아닌 한국에 자본주의를 적대하는 좌익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한 이유는 러시아와 중국 사대주의 성향이 강한 좌익이 너무 그들의 흉내를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러시아와 중국은 마르크스 이론을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음에도 한국 좌익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 타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숭배하는 좌익의 우매한 아집 때문이다. 그리고 반지성적인 좌익의 이 우매한 아집이야말로 민족 화합과 국가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공항 때 직업을 구하러 다니는 미국인들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도록 도와준 미국이
많은 무상 원조를 하였으므로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부자 나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1929년부터 1939년까지 미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당시 어디가나 직업 정보를 얻기 위해 줄서 있는 실업자들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대공항 때 미국인들이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