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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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갈망의 해 종려주일이 우리 민족에 주는 도전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1939년 히틀러의 세계 정복 야욕에 직면한 프랑스의 평화주의는, 1950년 김일성의 남침 야욕에 직면한 한국의 평화 낙관론은, 1975년의 호지명의 적화통일 야욕에 직면한 월남의 반전 평화론은 평화를 빼앗기는 길임을 세계는 보아왔다. 항구적인 평화가 우리 모두의 꿈이라면 우리 시대에, 이 세상에 평화를 침해하는 적이 있다는 것이 현실임을 우리는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통해 배워왔다.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는 사담 후세인의 제2의 바벨론 제국 건설 야망에 직면한 자유 민주주의 세계는 거짓된 반전 평화론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한 평화를 얻는 길을 선택하는 결단을 하였다.

   2003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결단을 요구한다. 새 정부의 친북한 성향에 당황한 미국은 우리나라에 우리가 미국과 더불어 자유 민주주의 진영에 속해 있는지 아니면 김정일의 공산정권 편에 속해 있는지 선택을 분명히 하여 달라고 요구한다.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은 우리가 여전히 미국 편에 있음을 암시하는 제스추어이다. 그러나 북한 김정일 세력을 추종하는 한총련을 합법화시키려는 의도를 담은 노무현씨의 발언은 국민의 눈에는 그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친북 좌파 사상으로 물타기하려는 것으로만 비쳐진다. 이렇듯, 정녕 지금 이 나라에는 자유 민주주의 사상을 공격하는 친북 좌파 세력이 있기에 뜻있는 애국 시민들이 자유 민주주의 수호의 깃발 아래 모이고 있는 것이다. 해방 정국의 이데올로기 분쟁이 재현된 이 시국은 실로 민족 대결단의 때이다.

   그런데, 해방 정국의 좌익 대 우익 이데올로기 분쟁이 재현된 것으로 보이는 오늘의 이데올로기 분쟁은 해방 정국의 이데올로기 분쟁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해방 정국 남로당의 박헌영씨는 공산주의 이론가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김일성, 김정일 숭배자는 아니었다. 같은 공산주의자로서 김일성이 왜 박헌영을 총살형에 처했는가? 박헌영은 황장엽씨에 앞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반기를 들 자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해방 정국 때는 공산주의 인간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분명 정신이 이상한 자들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공산주의 경제 체제는 분배의 평등을 실현시키는 커녕 생산의 효율성을 계속 떨어뜨려 경제의 효용성을 무한히 절감시키는 모순된 체제임을 보아왔다.

   우리 사회에 주사파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들도 북한 경제는 실패한 경제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16대 대선 기간 중 반미 운동의 선봉에 섰던 것으로 여겨졌던 노무현씨가 이번에는 이라크전에 한국군을 파병하자는 주장의 선봉에 섰다. 그는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중도 좌익이라고 부른다. 분명한 것은 이제는 해방 정국의 박헌영씨처럼 공산주의가 민족의 빵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만일 여전히 있다면 그들은 저능아들이며, 저능아들의 좌익 논리는 우리 사회에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서독의 경제적 성공을 본 동독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포기한데 비하여,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의 경제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친북 좌파 세력이 불어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관찰하면 남한 사회에 친북 좌파가 활개치게 한 몇몇 주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문익환 목사, 강정구, 리영희 등이다. 스스로 민주주의 정치인이란 명함을 들고 다니던 김대중씨는 실은 일종의 공산주의 경제관을 가지고 있던 자였다. 한국적 경제 이론의 양대 산맥이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와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 경제이다. 개발 경제 이론은 선 성장 후 분배 평등이라는 경제 전략에 의거하며, 대중 경제 이론은 분배 평등을 먼저 실시하며 성장이 따라온다는 김대중씨의 가설에 의거한 이론이다. 한국의 경제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 이론이 주도하였으며,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대중 경제 이론이 고개를 들고 나와 노무현 정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노무현씨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더 거인으로 보는 이유는 노무현씨는 독자적인 사상을 가지지 못하고 그의 참모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는데 비해 김대중 씨는 한 세대의 운동권 학생들에게 그의 대중 경제 철학을 주입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대중 경제는 이미 두번 실패하였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뿌리를 두고 기독교 신학으로 가장한 민중신학과 맞물려 198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들의 투쟁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중소기업 육성책으로 시작되었으나 그 정책은 오히려 일년에 수천 개의 중소기업이 부도나게 하는 정책이었다. 분배의 평등을 강조하는 경제관은 있었으나 그의 집권 말기의 IMF 사태는 오히려 빈익빈을 가속화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거짓말을 많이 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거짓말하지 않은 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집권하면 못 사는 사람들을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사실 그의 경제 철학의 신념이기도 하였다. 그가 어디서 그의 이런 경제관을 형성하였는지는 모르나 아마도 해방 정국의 박헌영씨의 공산주의 경제관을 상속한 듯하다. 그의 경제 전략은 하향 평준화였다. 그는 그의 하향 평준화 철학을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정책으로 밀고나갔기에 커다란 정책적 과오를 범하였다. 그런데, 사실 그의 하향 평준화 전략은 그의 대중 경제 이론에서부터 확대되었다. 문제는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의 김대중씨의 대중 경제 이론은 기업의 소유주를 없애고 노동자가 기업을 운영하게 하자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금 노동자들로부터 노동권을 가장 탄압한 대통령으로 원성을 사고 있다. 국가 경제에는 외화벌이 수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 때라고 해서 달라질 수 없다. 그런데 그에게는 처음부터 수출 기업의 외화벌이 개념이 없었다. 그는 기업을 외화벌이의 산업전사로 보지 않고 해체시켜야 할 재벌로 보았다. 그래서 그의 외화벌이의 대안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 유치와 관광 산업 육성이였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하려고 보니 국내의 노동 시장에는 외국에 없는 강성 노조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대중 경제는 현실과 맞지 않음이 드러난다.

  대중 경제는 이미 두번이나 실패하였음에도 어째서 그 참모진이 대중 경제 이론의 후계자들로서 구성된 노무현 정권이 탄생된 것일까? 노무현 당선자 인수위는 참여연대가 그 주축을 이루었으며, 다수의 인수위원들이 교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학계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는 교수들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80년대에 양산한 운동권 학생들의 문제는 대중 경제가 그들의 세계관으로 굳어진 입장에서 학문을 하였다는 것이다. 설사 그들이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중 경제 이론의 선입견을 가지고 출발한 학문에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의 학문의 시계는 여전히 1970년에 정지되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진보 세력이라고 내세우지만 실은 퇴보 집단이다.

  그럼에도 왜 16대 대선에서 거꾸로 가는 경제 이론이 승리하였을까? 북한 전위당의 문건과 동일한 문성근의 흑색선전구호, 노사모의 불법선거운동, 100대 대기업에서 선거 자금을 수금하였으면 국민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노무현 후보의 거짓말 등 여러 부정선거운동들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대선에서 진정으로 승리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중 경제의 후계자들의 경제 정책의 모순점을 대다수 국민들은 선거 유세 기간 중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좌익 운동권의 경제 이론에는 두가지 거짓말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좌익 운동권의 논리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치닫는 위험성이 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 동조 세력을 키워온 데에는 두가지 음성적 거짓말, 즉 진실을 숨기는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는 선 성장 후 분배 평등의 정책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그들은 개발 경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악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개발 경제의 목표는 처음부터 분배 평등이었으며, 대중 경제의 하향화 평준이 아니라, 선진국형의 상승화 평준이었다. 따라서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선 성장 후 분배 평등의 전략을 세운 정책이었다. 그리고 아직 분배 평등 정책이 실시되기 전에도 서민들의 생활 수준이 월등이 높아진 것이 역력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 이전에는 미국이 국가 재정의 90%를 지원해 주어도 국민 GNP가 75불밖에 안되었으며, 전화 있는 가정이 드물었다. 그런데 국가 경제가 성장하니 그 혜택이 온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좌익 운동권이 말하지 않는 두번째 사실은 좌익 경제 이론에는 성장 전략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북한 경제 실패의 원인을 자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테러 지원국 리스트 때문에 서방 은행에서 자본을 빌리지 못하는 것이 북한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그들은 설명한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제 정책 실패의 원인을 자본 부족에 돌린다! 북한과 친북 좌파는 북한이 서방 은행의 돈을 맘껏 빌리지 못하는 상황을 미국의 경제 봉쇄 탓이라고 돌린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 북한에 막대한 경제 원조는 늘 해주고 있어도 북한 경제 봉쇄를 한 적은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과연 공산주의 경제 체제가 우월하다면 어째서 러시아와 중국의 은행들은 북한에 넉넉하게 자본을 빌려주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북한에는 남한에 없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지 아니한가!

  친북 좌파는 북한 경제 정책 실패의 원인을 자본 부족에 돌리며, 그들의 퍼주기식 지원 주장도 이런 설명에 의거한다. 그러나 북한에는 남한에 없는 두가지가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이 북한에 있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남한에도 값싼 노동력이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남한에 지하자원은 없었다. 그리고, 국고에는 1억불도 안되는 외화 보유고가 있었을 뿐이며, 그나마 매년 1억불씩 미국의 무상 원조가 삭감되고 있던 때이므로 경제 대위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는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는 1억불도 안되는 외화를 쪼개고 쪼개어 수많은 수출 산업을 육성하였다. 이에 비해 김정일은 서방 은행에서 맘껏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면 그 돈을 어디다 쓰려 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비밀송금 해 준 달러만 5억불이 넘으며, 금강산 사업을 명목으로 송금해 준 외화가 그 몇배이다. 그 돈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였는가?

  무엇이 펑양의 경제 몰락과 한강의 기적의 차이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에는 성장의 전략이 있었다. 그런데 좌익의 경제 논리에는 이런 성장 전략의 개념이 없다. 그들은 항상 이 사실을 숨긴다. 그들은 재벌을 해체시키면 당장 노동자들이 잘 살게 되는 양 서민을 기만한다. 그리고 아무런 성장 대책이 없는 정권은 서열 파괴만 일삼는다, 이들이 지금 그들의 계급 투쟁 이론에 따른 사회주의 혁명을 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국가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대중 경제 정책의 한 유산으로 한반도를 동남아 물류 유통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다시 말해, 앉아서 외국인 투자만 기다리겠다는 것인데 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다. 실로, 지금은 더 이상 좌익 운동권의 거짓된 경제 논리에 현혹되지 않고자 하는 대결단의 때이다.

  이렇듯, 1970년대 이후 한국적 경제 이론의 양대 산맥 중 하나를 형성해온 대중 경제 이론과 그 맥을 같이하는 좌익 운동권의 경제 논리의 두가지 거짓말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시금 친북 좌파가 활개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학적 환경보다도 일차적인 요인은 종교적 문제이다. 북한에는 종교가 있으면서도 없다. 3.1절 행사 때 방문한 북한의 종교인들은 정치적 선전을 하다가 돌아갔다. 우리는 그들을 종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종교는 북한에서 거의 사라졌다. 구 소련에도 있던 종교, 중국에도 있는 지하교회들이 북한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러나 북한에 종교가 있다. 북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수령이 숭배의 대상이다. 북한에서는 수령 숭배가 종교이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살 수 없음을 공산주의 역사는 증명했다.

  그래서 북한 사회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 김일성은 주체 사상이라는 새로운 종교 사상을 만들었다. 사람에게는 종교적 욕구가 필요하다. 이 사실을 아는 로마 제국은 절대로 피지배국의 종교를 탄압하지 않았다. 물론, 로마 제국 말기에 네로 황제 같은 핍박자들이 있었으나 본래 로마의 법은 피지배국 종교에 관대하였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을 때에도 홀로 예수를 변호했던 이도 로마 총독 빌라도였다. 그런데, 김일성의 종교 탄압 방법은 숭배의 대상을 신(神)이 아닌 수령으로 바꾼 것이었다. 즉, 그는 거짓 숭배 대상으로 인민들의 종교적 욕구도 채우며 체제 유지도 하는 일석 이조를 노렸던 것이다. 그리고 북한 수령 숭배 종교가 남한에도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친북 좌파라고 부른다. 북한 수령 숭배 종교의 교리는 거짓된 민족주의인바 실로 지금은 우리가 이런 거짓 종교로부터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민족 대결단의 때이다.

  그리고, 이것은 종려주일에 즈음하여 우리에게 종교적 결단을 상기시킨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온유와 인내와 평강의 상징을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오늘 우리 민족의 결단을 요구하신다. 지금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실 것을 요구하신다. 북한 수령 숭배 사상에 탐닉한 좌익의 어릭석음을 일깨워주는 일화가 있다. 옛날 어떤 당나귀는 자기 양 옆에 싫컨 먹을 건초더미가 있었건만 이쪽 것을 먹을까 저쪽 것을 먹을까 망설아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를 우유부단함의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한총련의 문제가 이 어리석은 당나귀의 문제와 같다. 참 종교, 바른 사상, 좋은 양식을 얻을 기회가 얼마나 많은 시대인가. 그러나 어리석게도 한총련 대학생들은 김정일 숭배 사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다.

   바로, 이점이 해방 정국의 좌익과 우익 대립과 오늘의 대립 양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오늘날 자통협, 한총련, 전교조 등의 친북 좌파 단체들이 남로당 후예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만일 박헌영씨가 다시 살아 돌아와서 이들의 북한 수령 숭배 사상을 본다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해방 정국의 좌익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좌익이었다면 오늘의 좌익은 우리 민족에 핵무기를 겨냥하는 김정일을 숭배하는 무리들로 이루어진 좌익이다. 어찌하여 21세기 한국 사회에 김정일을 숭배하는 퇴보 집단이 생기는가? 그것은 사람은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신다. 이 결정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온유와 사랑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서 영접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천국 시민권의 소유자기 될 것인가 아닌가의 결정이 있을 뿐이다. 물질은 필요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채워주신다. 그러나 황금 만능주의는 악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름답게 지으셨다. 그러나 미모 지상주의는 나쁘다. 즐거움은 신(神)의 선물이나 쾌락주의는 나쁜 것이다. 악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런 것들은 부패이며, 부패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친북 좌파가 득세하여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누구를 가리켜 우익이라고 하는지는 모호하나 분명한 사실은 애국 시민은 친북 좌파의 사회주의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제2의 4.19를 즈음하여 맞이하는 종려주일은 우리 민족에 영적 가치관 회복 운동의 필요성을 도전한다.

산업전사들을 양성하신 박정희 대통령
부산 한독기계공고를 순시하시는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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