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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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로 읽는 미국인의 애국심과 한국인의 애국심

요즘 아시아에 진출하는 한국 연예인들을 통해 한국 문화가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한류라고 한다. 그러나 한류의 주종을 이루는 한국 가요는 실은 미국 대중가요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만일 음악으로 국민성을 판단한다면 러시아의 음악은 장엄한데 비해 미국 음악은 경쾌하다. 심지어 본래 아프리카 음악이며 흑인의 애환이 담긴 록 음악이나 힙합 음악도 한국 신세대 청년들에게는 매우 경쾌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는 한국인들은 러시아 음악도 몹시 좋아한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한 장엄하면서도 애수가 깃들어진 러시아 음악이 세계적인 음악이요 한국인의 전통적 음악 감성과 코드가 맞는 음악이다. 그런데, 미국의 고전 음악이 교회 음악이듯이 러시아의 음악은 정교회 음악에서 발전하였다. 러시아에 그리스 정교회라는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인 때는 당나라를 통해 경교라는 이름에 신라에 정교회가 전래된 때와 비슷하며, 이제 갓 천년을 넘었다.

  그런데 신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신라 미술에 그리스 양식만 남긴 채 사라졌으나 같은 시기에 러시아에 전래된 기독교는 러시아의 국교가 되었다. 그리고 어떤 민족의 시련 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지켰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는 지바고의 연인 라라가 몽고로 떠남에 따라 생이별하는 장면이 그 애수의 선율의 클라이막스이다. 그런데, 몽고가 러시아 통치를 받게 된 데 이어 1945년 9월부터 한반도 일부가 러시아 장교 김일성을 내세운 스탈린 통치 하에 들어갔다는 것은 러시아인의 역사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루스(Rus)라는 종족으로 불려지던 러시아인들이 한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자 마자 몽고의 침략을 받아 근 백년간 몽고인의 지배를 받았다. 한국 사람이 러시아에 가면 전혀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느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러시아인들은 벡인이면서 오랫 동안 몽고인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몽고인의 지배는 가혹했으나 러시아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20세기에는 1917년 공산주의 혁명 이래 70년간 공산주의 정권의 통치를 받았으나 러시아인은 그 신앙을 지켰다.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교회 문을 폐쇄하였으나, 공산당 간부들도 죽고 나면 수도원 묘지에 묻힐 만큼 러시아 문화는 공산주의 시절에도 기독교 문화였다. 이처럼 러시아는 기독교의 뿌리가 깊은 나라이기에 무신론 사상에 입각한 공산당 정권이 오래 유지될 수 없었다.

  근자에 미국의 대중음악은 한국은 물론 러시아 같은 구공산권과 베트남 같은 현 공산주의 국가의 젊은이들 사회에서도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대중가요를 빨리 받아들여 소화시킨 나라이다. 이미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미8군에 출입하는 연예인들을 통해 록음악이 처음 소개된지 40년만에 미국의 대중 음악 쟝르는 한국 신세대 대중음악 쟝르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미국풍의 팝뮤직이면서도 아시아인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한국 가수들의 노래가 때마침 미국 대중 음악에 개방된 아시아 청년층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행하는 팝뮤직이 미국 본토인들에게는 생소한 경우가 많다. 늘 다양한 음악 쟝르가 동시에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어느 한 쟝르가 갑자기 나타나 유행하는 일이 없다. 미국은 음악 쟝르도 사람들의 기호도 가지 각색이다. 그리고 음악 감상에 관한 한 미국인은 한국인보다 훨씬 보편적이다. 역시 미국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는 인구가 가장 많으며, 미국인의 콘서트는 클래식 연주이며, 클래식 음악회가 있는 날이면 평소에는 청바지차림이던 청년들도 정장하고 참석한다. 이것은 한국 청년 연예인들의 현란하고 요란스러운 차림과는 전혀 다른 음악 감상의 세계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클래식 음악 인구와 팝뮤직 팬을 한데로 묶는 애창곡이 있으니 바로 "God Bless America"이다. God Bless America, my home, sweet home 이 노래는 미국의 청소년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부르는 경쾌한 노래이다. 춤을 덩실 덩실 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이 노래는 청소년들과 할머니들이 함께 눈물을 글썽이면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이 노래를 자주 부른다. 국가 경축일에도 부르며, 9.11 테러가 남긴 폐허 위에서 재건을 다짐하는 주먹을 불끈쥘 때도 이 노래를 부른다. 그 리듬이 경쾌하고 발랄하면서도 씩씩한 이 노래를 미국인은 현충일에도, 독립 기념일에도 함께 부르며 그들의 단합된 애국심을 재확인한다.

  미국과 북한의 차이는 그들의 음악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북한은 음악의 자유가 없는 사회이다. 북한 정권은 음악을 예술로 이해하기보다 공산당 선전 매체로 이용된다. 대부분의 북한의 노래들은 공산당 혁명 주제곡들이며, 북한의 음악에는 침략군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음악 중에는 남한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다. (그들은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해방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 노래에는 주체 사상이 담겨있는바, 주체 사상은 수령 숭배 사상이요, 그러기에 북한의 가요들은 김일성 주석, 김정일 장군을 찬양한다. 그러나 미국의 노래는 God Bless America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아메리카의 다른 말은 미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라는 뜻이다.

  "God Bless America"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이 세 단어에 미국의 건국 철학과 미국의 민주주의 철학과 미국인의 경건한 신앙이 담겨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God Bless America" 사상에서 출발한다. 김정일 똘마니들이 "민주화 운동"을 지껄일 때 우리가 주의할 것은 북한도 자기네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국호 조선인민공화국이나 중국의 영어 국호에는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이 들어있다. 즉, 그들도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민주주의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미국은 최고의 통치권이 하나님께 있는 나라요, 북한은 최고의 통치권이 수령에게 있는 나라이다.

  북한은 무신론주의 사회이다. 왜 국호가 인민공화국인 나라에 인권이 없는가? 주체사상에는 종교적 주체와 정치적 주체가 있다. 그들은 사람의 운명은 사람 스스로 짊어지자고 말하지만 인민의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주체사상은 수령을 우상으로 숭배할 것을 인민에게 강요한다는 점에서 신앙의 자유를 말살하는 사상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정치적 주체는 나와 남을 우리편과 적으로 가르자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국인이 아니거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들이 적이요, 수령 숭배 사상에 순응치 못하는 자들이 반동이다. 그러나 남을 모두 왕따시키고 적으로 삼는 주체사상에 의거한 외교는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자초할 뿐이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람의 자유를 하나님이 보장해 주신다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인권 헌장에는 수령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 않겠다는 단서가 없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성경을 믿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미국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심부름군이다. 그러기에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는 성경에 손을 얹고 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한 심부름군이 되기를 헌신하는 취임 예배로 시작된다. 이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 사상은 대단히 성서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구별되어야 한다.

  본래 국가에 시련이 있을 때 부르던 "God Bless America"는 창세기 12장 2절 말씀에 의거한다. 나이 70이 되도록 아들 하나 없는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 멀리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되는 비전을 주시면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셨다 (2절). 그리고 3절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기독교 신앙을 가진 국가의 비전이다. 주체사상은 남을 왕따시키고 우리끼리만 잘 살자고 말한다. 주체사상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시오니즘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다. 하나님은 세계 모든 나라를 섬기는 민족이 되도록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국수적 민족주의를 우리는 시오니즘이라고 부른다.

  정치적 왕따 심리는 북한의 주체사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도 있다.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면서도 시오니즘에 빠진 그들이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복음은 다른 민족을 섬기라고 말하나 유다의 시오니즘은 그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비록 육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모인 미국의 청교도 정신에서는 세계 만국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는 사명감이 살아있다. 주체사상은 폐쇄적 집단 이기주의이다. 그러나 기독교 사랑은 남을 위하여, 다른 나라를 위하여 펼쳐져 있다. 반미 감정으로 찌든 북한에 여전히 미국인들은 쌀과 의약품을 들고 찾아간다. 본래는 농경사회의 한국 사람이 유목민족인 서구인보다 더 착하였겠지만 어떤 사상이 그 사회를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사람들의 행동도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미국 청교도의 비전을 이룬 또 하나의 성경구절은 이사야 60장 1절 말씀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세상에는 주는 자와 빼앗는 자가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 등장한 유괴범들과 인질 납치범들은 신체적 약자의 재산을 강탈하려는 자들이다. 그러나 사랑은 베푸는 것이요,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계 만방에 빛을 발하는 사명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푸는 자의 사명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집단적 이기주의가 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방인으로 여기던 민족이, 미국이 오히려 그 사명을 받아들인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미국은 완전한 기독교 국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러나 성서적 교훈을 가장 잘 실천하는 나라이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투명성은 전혀 문제거리가 아니다. 미국은 기독교 윤리가 살아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미국은 소득의 격차가 크면서도 빈부의 격차를 별로 못 느끼는 나라이다. 미국인은 계속 부(富)를 사회에 환원한다. 정부가 상속세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려 해도 오히려 백만장자, 억만장자들이 반대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리고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위해 복의 근원이 되는 사명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좌익 논객 리영희 교수가 미국이 강대국임을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미국이 강대국이니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리영희 교수가 모르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그 힘으로 약소국들을 섬기는 나라요, 중국은 그 힘으로 약소국들을 삼켜버리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God Bless America"는 미국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요 애국심의 원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지역 커뮤니티 및 국제 커뮤니티와 공유하려는 미국인의 기업 윤리는 미국의 힘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체사상에서는 참다운 애국심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애국은 김정일 수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애국심의 귀감은 무엇인가? 한총련 대학생들은 주체사상을 애국심의 귀감으로 삼으려 하지만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국수적 민족주의의 추악한 모습이다. 붉은악마 민족주의 역시 흉칙한 국수적 민족주의이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정의가 실종된 나라에서 번영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나라에 비록 가난해도 울타리가 필요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극단적 국수주의의 본질은 지방색이요, 지방색의 본질은 지나친 이기심이요, 윤리가 실종된 이기심은 범죄이다.

  미국의 비지니스는 결코 자선사업이 아니다. 비록 비지니스의 수익을 자선사업에 기증할지언정 미국의 비지니스는 너와 나 공동의 번영을 추구한다. 한국 좌익이 무엇이라 불평하든 이것은 깨끗한 비지니스이다. 오히려 너는 손해 보고 나만 이익 보자는 한국 좌익의 비지니스 논리가 한국 경제를 멍둘게 하는 것이다. God Bless America를 노래하는 자는 God Bless You 라고 인사하는 자요, God Bless You 라고 인사하는 자는 아무리 가난해도 남을 위하여 뭔가 할 일을 찾는 자이다. 애국은 주체사상처럼 다른 나라를 원수로 여기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애국은 축복을 공유하는 봉사 정신에서 출발한다.

  From the mountains, to the prairies ,
  To the oceans, white with foam
  God bless America 라고 노래하는 미국인의 애국심은 미국의 울타리를 넘어 시원하게 오대양 육대주로 뻗혀있다. 애국심의 울타리가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독특한 애국심이 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인격은 샤론의 수선화로 비유되며, '샤론에 피는 장미'라는 뜻의 Rose of Sharon을 우리말로 옮기면 무궁화이다. 샤론의 향기는 모든 질병과 고통을 치료하는 약이 되고 낙심한 자에게는 소망과 힘이 된다. 이처럼 무궁화의 뿌리, 껍질, 꽃들은 속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씌였다. 주사파는 미국과 싸우자고 달겨든다. 남한 좌익은 남남 분열을 일으키자고 달겨든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애국심은 국수수의나 파벌주의가 아니라 분열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샤론에 피는 꽃은, 무궁화는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치유의 향기가 있다. 오늘의 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소외된 자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럼에도 다른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사랑의 향기를 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치유 운동의 시작이다.

   "예수 사랑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찬송가 89장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후렴)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
2003년 6월 21일 오후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에서
15만여명의 참석자들이 한국전 참전국들의 국기와 태극기, 성조기의 입장행사를 하고 있다.
이 입장 행사에는 한국인의 애국심이 국수주의의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상징성이 있다.

(사진 출처: 이종호 기자)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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