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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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한국 경제의 쌍곡선

   오늘(2003년 4월 2일) 미국 상무부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57.37%의 높은 상계관세 부과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상 하이닉스반도체의 수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조치를 미국이 취하기까지에는 세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각국이 자국의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 경제 논리이다. 이 환경론적 요소는 우리가 힘을 쓸 수가 없다. 둘째, 한미 동맹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치 논리가 미국의 경제 논리를 억제하며 한국에 관세 특혜를 주어왔는데 한국의 좌익 정치인들과 좌익 시민단체들의 반미 운동이 미국 내 반한 감정을 일으켰다. 셋째, 앞의 두 요인이 국외적 요인이라면 보다 중요한 국내적 요인이 있었다. 즉, 김대중 선생의 대중경제로 대표되는 좌익 경제 논리가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 반영되었을 때 누적되어온 국내적 문제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좌익 경제 논리의 모순이 우리나라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게 하는 까닭을 역대 대통령의 통치 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해 본다.

   흔히 IMF 환란 책임을 재벌에 돌리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은 한국 경제 환난의 주범은 좌익 경제 논리였다. 사실 1997년 말에 한국 경제는 튼튼했는데 잠시 유동성 위기가 생겼을 뿐이었다. 그 유동성 위기의 결정적 요인은 당시 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선생이 기아자동차의 파업 장기화를 부추기면서 한국 정부의 경제를 불신하게 된 외국 투자가들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해 갔기 때문에 생긴 유동성 위기였다. 분명히 IMF 환란은 금융 위기로 출발했다. 김영삼 정권은 6개였던 종금사 수를 30개로 늘여 환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하였으며, 김대중 선생은 기아자동차의 파업을 장기화시키면서까지 노동법 개정을 반대하였기에 양김씨의 합작품으로 이런 금융 위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IMF는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구조 조정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IMF가 한국 기업의 구조 조정을 요구하니깐 1997년 말의 외환 위기가 재벌 때문에 생긴 줄로 아는 이들이 있는데, 실은 좌익 경제 논리 때문에 생긴 것이다.

   구조 조정의 본 목적은 실업자 양산이 아니라 실업 문제 해결에 있었다. 구조 조정의 골자가 무엇인가? 한국 기업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라는 것이다. 구조 조정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수익을 남기는 기업이 되라는 것이다. 김영상 대통령 때 기업들이 외적으로 커졌는데 오히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되어 있었다. 왜 기업들이 외적으로 커졌었는가? 김영상 대통령 때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사활을 내수 시장의 경쟁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생산 전문화, 전두환 대통령 때 수출 업종 전문화를 이루던 재벌들이 김영삼 대통령 때는 내수 시정을 겨낭하며 이 사업 저 사업에 확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김영삼 대통령 경제 정책의 목적과 결과는 정반대였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다소 의도적으로 수출 자금 억제하였다. 그는 재벌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출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오히려 국내에서 내수 시장 확보를 위해 계열사를 확장해나갔다. 개발 경제 30년간 엄청난 외화를 벌여들이며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재벌이 수익은 내지 못하면서 덩치만 커진 것은 김영삼 대통령 때였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재벌의 문제를 정확히 보아야 한다. 표면상의 문제는 계열사 확장이지만 그 근본 원인은 수출 경쟁력 저하였다. 수출 경쟁력이 없어진 기업은 기업의 사활을 내수 시장 확보에 걸게된다.

   그러면, 왜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1990년대 후반부터 현저하게 떨어졌을까? 두가지 원인이 있었다. 1994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외국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수출 시장 환경의 외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좌익 운동권의 논리 때문에 생긴 내적 요인을 다루려고 한다. 왜 재벌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었으며, 한국 기업이 수익을 못내는 기업이 되었을까? 어째서 김대중 대통령 때 천문학적 공적 자금들을 현대 등 여러 기업에 쏟아부었는데도 오히려 기업들이 쓸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좌익 운동권 논리가 한국 경제에 야기시킨 세가지 모순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출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과 가격이다. 물론 마케팅 노하우도 중요하다. 그러나 만일 기술이 형편 없이 떨어진다든가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면 마케팅 노하우는 별 의미가 없다. 좋은 제품을 싸게 팔아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경제는 기술 발전은 정지되어 있는데 가격은 올라가는 모순이 두드러졌다. 좌익 경제 논리는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력 향상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그들이 말하는 분배 평등은 파업을 일으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요, 노동 임금을 터무니없이 인상하여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시장의 현실은 냉엄하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 존속할 수 있으나 국제 시장에서 외국 상품보다 비싸게 팔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수출 대신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혈투를 벌이는 상황이 전개된다.

   인구 오백만에 대부분의 국민이 농사군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수출 가격 경쟁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수출이 막힌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러나 인구 사천 오백 만명의 오늘의 한국에서는 수출 없는 나라 경제를 생각할 수 없으며, 따라서 가격 경쟁력은 민족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일례를 들어 보자. 김영삼 대통령은 IMF 사태가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역사 바로잡기 한답시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국제 사회애는 기술 경쟁이 있었으며,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임금은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다.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섬유로 시작하여 수출 산업이 날로 축소되었으며, 수출을 해도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1997년 말에 외환위기가 닥치자 IMF는 기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구조 조정을 요구하였으며, 야당 총재 시절 노동 운동을 일으켰던 김대중 선생은 대통령이 되자 마자 자기 손으로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는 구조 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것은 많은 이들에게 노동 운동의 결과 일자리를 잃게 됨을 의미하였다. 즉, 노동 운동의 결과 초래된 나라 경제의 위기의 희생자들이 되는 것은 고스란히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몫이 되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서민이 잘살게 해주겠다던 김대중 선생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가장 두드러졌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일자리가 생기고 생활 수준이 날로 높아가던 서민들이 양김씨의 합작품인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부터 일자리를 잃고 생활이 어려워졌다.

   바로 이것이 대중경제(DJnomics)의 자업 자득이었다. 1971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선생이 발표한 이래 대중경제는 한국 노동운동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1997년 12월 대통령 취임 후 DJnomics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노동법 개정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했다. 이미 커질대로 커져 공권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성 노조가 있으니 외국인의 설비 투자가 없다. 그리고 공적 자금을 지원하면 경제 대통령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해보고 보니 물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이미 한국 상품이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상태에서 이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많은 노동 임금을 지불하니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의 자금난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노동 운동으로 가격 경쟁력 약화의 원인 제공자였던 김대중 대통령도 끝내 해결하지 못하였을 만큼 가격 경쟁력 회복은 이제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1971년 대선 홍보용으로 발간한 그의 책 김대중씨의 대중경제"에서 "대중경제에 있어서, 경제발전의 추진세력은 자본가가 아니라 대중이다"라고 말함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에 대한 그의 반대를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김대중 선생 추종자들과 좌익 운동권이 박정희 대통령은 서민 경제에 무관심했다는 식으로 비판할 때 그들은 큰 오류를 범한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던 박정희 대통령이 서민을 외면할 리 있었겠는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늘 朴대통령의 측근에 있었던 金씨는 상공부장관에서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이런 당부의 말을 들었다. 『金日成이...'70년대를 무력적화통일의 시기로 잡고 자꾸 도발해 오고 있으니 바짝 정신 차려야겠다...자작농이 많아지고 농민이 잘 살면 공산화되지 않는다. 도시근로자가 잘 살게 돼 중산층화 되어도 안심이다. 도시근로자의 기능이 높아져 소득이 많아지는 식으로 유도해야 한다』(월간조선 9101).

   이처럼 서민을 위하여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려던 의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대중 선생이나 대등 소이하였던 것이 관찰된다. 그럼에도 두 대통령의 경제 철학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기업주는 나라 경제를 발전시킬 파트너였던 데 비해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처음부터 기업주의 개념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술과 자본과 노력을 투자한 자의 사유 재산 소유권을 인정하였던 데 비해 김대중 선생에게 기업은 대중의 소유이다. 얼핏 듣기에 김대중 선생은 서민 편에 있는 것 같으나 이 점에서 그의 경제 논리는 좌익 논리이다. 그리고 좌익 경제 논리의 모순은 혜택이 아니라 피해만 서민 몫이 된다. 수익을 내지 못해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에 백조원이 훨씬 넘는 공적 자금을 투입했으나 소유 권한이 불분명한 이 자금 대부분이 증발되어 회수 불능이라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정책의 실패였다.

   사실 하이닉스에 미국 상무부가 상계 관세를 부과한 문제는 어제오늘 갑자기 불거져나온 문제가 아니라, 김대중 선생 집권 초의 빅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빅딜은 종래의 기업 합병과는 개념이 다른 사상 유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그의 빅딜의 문제는 관치인지 자율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의 운영권을 무리하게 은행 채권단에 넘긴 것도 사유 재산의 개념을 부정하는 그의 좌익 경제 논리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기술과 자본과 노력을 투자한 자의 사유 재산 소유권을 인정하셨던 박정희 대통령은 자녀에게 남겨줄 재산이 아무 것도 없었던 데 비해 기업주의 사유재산 소유권을 부정하려 하였든 김대중 대통령은 그 저택만도 200억원대의 아방궁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난 40년간의 한국 경제 발달사에는 쌍곡선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는 한국 국가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중단될 무렵에 시작되었다. 그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했는가? 만일 그 시대 상황에서 사유 재산 몰수밖에 모르는 좌익의 논리를 따랐다면 수출이 전혀 없었던 우리나라는 다시 구한말 때처럼 채무국이 되고 나라 주권도 지키기 어려웠을 뻔하였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기술 개발을 통한 수출 산업 육성으로 한국 경제를 18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급성장시키셨다. 그러나 양김씨의 집권 이후 좌익 경제 논리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연서 기술 발전은 정지시켜 놓고 노조 투쟁으로 임금을 인상시키고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 모순에 빠져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정책 실패의 치명적인 원인은 기술 발전은 정지되어 있는 채 제품 생산 가격만 급등하였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공적 자금만 투입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기업은 노동자와 대중의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왜 증발된 백억조가 넘는 공적 자금을 노동자와 서민이 갚아야 하는가? 이것이 좌익 경제 논리의 한계이다. 노조 임금 투쟁의 결과는 구조 조정으로 인한 실업이요, 노조 투쟁으로 얻어낸 임금 인상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 즉 증발된 공적 자금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성장 대책 없이 분배의 평등만을 강조하는 좌익 경제 논리는 결코 서민을 위한 경제 이론이 아니다. 성장과 분배를 경제 발전의 양수레로 보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관이 옳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 소득의 격차의 관문이 있다. 이 관문을 잠시 인내하는 민족은 선진국 백성이 된다. 그러나 잠시 참지 못하고 깽판부리는 좌익 경제 이론 때문에 후진국으로 도태한 나라들을 우리는 보았다. 우리 앞에 두 길이 있다. 이제 한국인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민족에 비전을 주시던 박정희 대통령

1963년에 남북한의 두 지도자가 경제 정책 대결을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18년만에 남한의 경제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으나.
훨씬 앞서 출발하였던 북한의 경제는 날로 퇴보하였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mission-theolog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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