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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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의 꽃 예수와 무궁화 그리고 한국인의 애국심

   한국인은 정서가 강한 민족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어느 민족에나 있지만 특히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강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소년 시절에 대해서 누님인 在熙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왕복 40리였습니다. 마을에는 시계가 하나도 없어 어머니는 동쪽에서 밝은 별이 두 개째 떠오를 때에 맞추어 아침을 짓기 시작하여 정희가 등교시간을 놓치지 않게 했습니다. 정희는 등교 때는 짚신을 한 켤레 더 차고 갔어요. 그것은 돌아올 때 신는 것이지요. 정희는 어둑할 때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내가 마중을 나가 기다리면 저 끝에 죄끄만한 아이가 촐랑촐랑 걸어오는 거예요.』

   한국 어머니들은 사랑이 있었기에 용기가 있었다. 지난 5월 31일 서울대 시간강사가 자살하였을 때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딸아이의 교육비 걱정이 그 주요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들에게는 아무리 가난해도 자녀들을 진학부터 시키고 보는 용기가 있다. 누가 여자를 연약하다고 말했던가. 모성애에는 용기가 있으며, 이 용기는 미래를 개척하는 힘이었다. 사랑은 힘의 원동력이다. 재산이 없으면 품팔이를 해서라도 자녀 교육을 시켜 천하명필 한석봉을 키우던 어머니의 미담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래서 모정이 깃든 고향 산천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심정은 남북한 사람이 한결같다.

   2002년 한일월드컵 중 외국인의 큰 구경거리는 한국인의 응원 모습이었다. 경기에 이기고 지는 팀이 있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어느 팀이 이기고 지고는 미국에서는 전혀 뉴스거리도 안된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자국 선수들이 출전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른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의 열정적인 응원 모습은 미국에서 톱뉴스거리가 되었다. 애국심의 수천만 명의 국민을 하나로 묶은 그런 장엄한 정서의 센세이션은 미국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다. 영국의 다이애너비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하직했을 때 실로 슬픈 감정의 센세이션이 있었다. 그러나 축구공의 움직임에 따라 희비의 감정이 교차하고 온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만큼 희열이 폭발하는 장면은 실로 새로운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1950년 9월 하순에 한국인이 불렀던 "신라의 달 밤"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구슬픈 노래였으리라.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군에 징병되던 이 나라의 청년들이 한국 전쟁 때 인민군에게 끌려가면 인민군이 되었고, 국군의 징집을 받으면 국군 장병이 되었다. 남한 청년으로서 미쳐 피난을 못갔거나 피난가다 인민군에 징발된 청년들이 다시 국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들의 희비의 감정의 교차가 어떠하였겠는가. 조국의 품에 다시 안겼으나 반가우나 인민군 포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얼마나 억울하였겠는가. 그들을 구제하는 방법으로 당시 유행가였던 "신라의 달 밤"을 포로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은 북한군에 의용군으로 징집당한 이가 분명하므로 즉석에서 석방하였다.

   그러나 두 여중생 추모 시위는 한국인의 감정이 왜곡되게 표출된 한국인의 추악하고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만일 추모식 때 꼭 미국 성조기를 찢으려면 미군 훈련이 사전 예고된 장소와 시간대에는 민간인 접근이 금지된다는 사실도 말하여야 한다. 만일 한국군이 파병된 나라에서 한국군 훈련이 사전 예고된 장소와 시간대에는 민간인 접근이 금지된다는 소파 규정을 그 나라 국민들이 어긴다면 한국군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미국 시민이 연 35억달러의 세금을 내어 파병된 주한미군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대신 해서 전방을 미군들이 지켜 준다. 단, 미군 훈련이 사전 예고된 장소와 시간대에는 민간인 접근이 금지된다는 소파 규정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런 대규모 훈련은 기껏 일년에 한 두 차례 있는 것이고, 미군 훈련이 실시되는 시간에만 교통 규칙을 잘 지켜주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의 경우 훈련 중 교통 안전을 위한 소파 규정을 어긴 쪽은 분명히 한국인임에도 미국에 소파 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실로 뻔뻔스러운 한국인의 모습이다.

   지난 6월 13일 주한미군은 두 여중생을 위해 추모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훈련 중 교통 안전을 위한 소파 규정을 어긴 책임을 전혀 묻지 않고 민사상의 전적인 책임을 졌으며, 4억달러의 보상금도 지불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는 우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리 그 때가 한일월드컵 기간 중이었다 하더라도 그 날 그 자리에서 민간인의 미군 훈련장 접근을 통제하지 않은 것은 담담 공무원의 직무 유기요, 가장 기본적인 교통 안전 수칙조차 두 여중생에게 일러주지 않은 주변의 인물들 역시 이 과실 사고에 전혀 책임이 없지 않다. 어째서 서해 교전에서 조국을 지키다 희생된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는 아무런 추모도 하지 않는가. 삼만 팔천 명의 미군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대신 피를 흘렸으며, 수 만명이 미군이 북한에 포로로 잡혀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미국의 은혜를 악으로 갚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도 한국인의 감정이 그다지 아름답게 표출된 모습이 아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난 5월 15일로 예정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준비를 위해 방미중이었던 고위인사에게 백악관 라이스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아이들 이름을 아시는가요?" 그 고위인사는 "미선이와 효순이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2002년 6월 29일 서해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이름도 아시는가요?" "모릅니다." "몇 명이 전사하고, 몇 명이 부상을 당했죠?" "모릅니다." "당신들,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온 거 맞습니까?" 이 얼마나 한국인의 편파적인 국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에피소드인가? 아니, 이것은 한국 국민 모두가 편파적인 국민성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두 여중생 추모 대회의 배후에는 김정일 똘마니 노릇을 하는 주체 사상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는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다정다감한 민족이리라. 그러나 북한 주민과 미국인의 세계관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주체 사상은 남을 적과 투쟁 대상으로 만드는 사상이다. 나와 남을 우리편과 적으로 가르고 남을 투쟁 대상으로 여기는 주체 사상은 늘 누군가를 증오하라고 말한다. 북한 사회는 반미 정서를 선동하는 표어들로 가득하며 북한 동포들은 미국을 증오하기 위해 존재한다. 미국의 식량 원조로 살아가는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반미주의와 주체 사상을 외치며 혼자 잘났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북한이 최고인가? 그렇지 않다.

   나와 남을 우리편과 적으로 가르고 남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주체 사상과 달리 미국의 청교도 사상은 나와 남을 나눔 공동체로 여기고 남을 이웃으로, 공동체의 벗으로 만들어 간다. 북핵 위기의 정치적 본질은 안보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두 다른 세계관의 대립이 있다. 손님 식사 대접을 위해 쓰이는 칼도 강도의 손에 들리면 남을 해치는 흉기로 변한다. 강도에게 흉기는 생계 유지를 위한 도구이다. 남을 모두 적으로 여기는 주체 사상을 신봉하는 국가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 핵무기 필요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미국이 아무리 나눔 공동체로 초청하며 대담한 경제 지원을 약속해도 북한 김정일은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며 반미 투쟁을 선동한다. 그러나 김정일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여전히 계속된다. 투쟁이 국가 존재의 이유인 북한과 달리 나눔이 국가 존재의 이유인 미국의 곳간은 늘 열려 있으며, 북한 같은 후진국 원조를 위한 미국인의 인심은 언제나 후하다.

   주체사상은 국수적 민족주의이기 때문에 참 민족주의가 아니다. 남을 증오하는 미움은 자기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살의 동기도 극단적인 이기심에서 온다. 사업이 실패할 때 자살 동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말로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자살하지 아니하고 재기한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 극단적인 이기심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불행의 원인이 된다. 북한의 주체 사상은 다른 나라를 모두 적으로 삼기에 민족주의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민족주의가 될 수 없다. 그들은 툭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위협을 한다. 그러나 남한 동포에게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것이 민족주의인가? 아니다. 그들의 국수적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 생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모두 왕따시키는 주체 사상의 결과는 모두로부터 왕따되는 것이다. 공산주의 경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이 입증되었듯이, 주체 사상은 외교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국수주의자들이 아닌 진정한 애국자들이, 김구,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애국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나라 사랑이 바다처럼 넓은 만큼 위대하였다. 동해물처럼 넓고 백두산처럼 높은 나라 사랑이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들의 기상이었기에 우리나라의 꽃은 무궁화이다. 이 애국심이 풍전 등화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했으며, 역경의 세월 속에서 자유를 꽃피우고 국력을 발전시켰다.

   한국인의 애국심이 담긴 한국의 국화 무궁화는 또한 성경과 한국인을 연결시키는 꽃이기도 하다. 무궁화의 영어명은 '샤론에 피는 장미'라는 뜻의 Rose of Sharon이다. 찬송가 89장은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로 시작하며, 그 후렴은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이다. 구약성경 아가서 2장 1절에 예수님이 샤론의 꽃으로 비유되어 있는 바 이 찬송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샤론 평원에 피어난 꽃으로 노래한다. 이 샤론의 꽃은 그 모습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향기는 모든 질병과 고통을 치료하는 약이 되고 낙심한 자에게는 소망과 힘이 된다. 그래서 영어에서 '샤론에 피는 장미'라는 뜻의 무궁화의 학명은 Althea rosea 곧 약용 장미라는 뜻이다. 또 그래서 이 찬송가에서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샤론의 꽃이 피어나 그 치유의 향기가 넘쳐나기를 간구하고 있다.

   무궁화의 뿌리, 껍질, 꽃들이 위경련, 복통, 설사 등에 좋은 약으로 쓰였던 것처럼 치유의 향기가 있는 샤론의 꽃에는 열매를 맺는 힘이 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성령의 열매"를 19절의 "육체의 일"과 대조시킨다. 왜 육체의 일이요, 왜 성령의 열매인가? "일"은 공장을, "열매"는 정원을 연상시킨다. 목재든 철강이든 공장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죽은 것들과 생명이 없는 것들이다. 이처럼 육체의 일은 죽음의 영역에서 작동할 뿐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죽어 있는 물질을 재료로 삼는다.

   집짓는 일을 예로 들어보자. 건축은 우리의 생활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산에 뿌리를 박고 우뚝 서서 울창한 가지와 잎을 펼치며 싹을 내는 나무는 건축자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건축자에게 필요한 것은 죽은 나무일 뿐이다. 이처럼 육체의 모든 일은 죽음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인간의 일은 부수는 일이요, 부서지는 일이다. 산에서 벌목을 한 나무를 이리 저리 토막을 내어 재목으로 쓴다. 그러나 사람이 집을 다 지었다고 말하며 기뻐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자연은 그 집을 부수는 일--부패시키고 소멸시키는 일을 한다. 그것이 육체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것은 언젠가는 다 없어지는 것들이다.

   꽃--꽃은 인간의 일이 끝나는 곳이요,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꽃에는 생명이 있으며, 꽃의 생명에는 강한 번식력이 있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 그 주변을 꽃동산으로 만드는 번식력이 있다. 그러기에 꽃의 생명은 수백, 수천년, 아니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그러기에 한국의 꽃은 무궁화이다.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대가의 솜씨로 화폭에 꽃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꼭 생화처럼 보이는 조화를 만들 수 있다 할지라도, 꽃그림이나 조화에서는 샤론의 꽃처럼 향긋한 냄새가 나지 않으며 나비와 벌들이 모이지 않는다. 사람은 도저히 꽃의 생명을 창조해내지 못한다. 꽃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기에 무궁화의 영원한 생명을 노래하는 우리나라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바로 앞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있다.

   이처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의 영혼에 새 생명을 주시는 일이요, 또 그 생명이 자라서 결실을 맺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라는 말을 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이며, 이 사랑의 열매에 나머지 여덟 가지 열매가 다 들어 있다. 사랑의 기쁨, 사랑이 가져오는 화해, 사랑의 인내, 사랑에서 우러나는 친절, 사랑의 행동인 선과 충성, 사랑의 특질인 온유와 절제--이 모두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어지게 하시는 사랑의 열매들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체 사상에는 이런 사랑의 열매가 없기에 거짓된 민족주의이다. 요즘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 공조의 숨은 개념은 타민족에 대한 증오이다. 주체 사상은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는 커녕 북핵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사상이다. 오로지 김정일 수령에 대한 충성만을 강요하는 주체 사상에는 사랑이 없다. 북한의 친구 관계는 언제 밀고하여 정치수용소에 보낼지 모르는 감시자의 관계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주의와 유물론에서 나온 주체 사상에서는 꽃의 열매가 없다. 꽃--꽃은 인간의 일이 끝나는 곳이요,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꽃의 생명은 무궁하며, 한국의 꽃은 무궁화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영구히 지속된다. 그러나 북한의 주체사상은 북핵으로 죽음과 파괴의 일을 하려고 한다.

   북한의 주체사상의 사상 교육이 무엇인가? 증오심을 키우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 심리전이 무엇인가? 증오심을 키우는 것이다. 북한의 북핵 위기 도발 뒤에 감춘 무기가 무엇인가? 증오심이다. 왜 빨갱이가 무서운가? 본래 인정이 많고 선량한 한국인을 동족 상잔의 싸움터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족과 민족을 이간하며 남한에서 남남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한일월드컵 때 분출된 국민 에너지를 도둑질하여 이데올로기 분쟁을 일으켰다. 한국의 감성은 우수하나 당파 싸움은 언제나 한국인의 약점이다. 우리는 미움이라는 공격 무기의 방어 무기는 미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끼리 다투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기에 분열된 국론의 치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샤론의 꽃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성령은 능력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며, 사랑의 열매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성경에서 샤론의 꽃이 예수님이시듯이, 영어에서 샤론의 꽃은 무궁화이며, 그 무궁화 꽃에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 민족의 분열의 상처 치유를 위해 필요하다.

   "예수 사랑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찬송가 89장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후렴)

한국의 백색 무궁화 꽃
한서라는 이름의 백색 무궁화 꽃
무궁화의 학명으로 Althea rosea라고 하는데, Althea는 그리스 말로 '치료하다'라는 뜻이다.
무궁화의 영어명은 Shrub Althea 또는 '샤론에 피는 장미'라는 뜻의 Rose of Sharon이다.

김대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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