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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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회 복음과 무신론 공산주의의 묘한 접선

  영혼 구원을 그 선교적 사명으로 하는 기독교와 영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양립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처럼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에서 공산주의는 맥을 추지 못하며, 세계 어느 곳에서든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나라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독교 탄압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기독교의 일부가 북한의 대남 적화 기지로 이용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즉, 문익환, 한상렬, 홍근수 등과 같은 사이비 목사들이 북한 김정일 정권의 노릇을 해오고 있다. 문익환은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 우리나라에 침투할 기회를 넓게 열었으며, 한상렬과 홍근수 등의 여중생범대위라는 사기 단체를 만들어 북한 김정일 정권 옹호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처럼 한국 기독교와 북한 김정일 공산정권은 이상한 궁합을 가지고 있다.

   문익환, 한상렬, 홍근수 등 기독교 내의 일부 사이비 목사들은 공산주의의 유물론 사상을 옹호한다는 데서 반기독교적인 활동을, 그리고 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행해왔다는데서 반국가적인 이적 행위를 일삼아 왔다. 교회 밖에서는 저들이 한국 교계의 지도자인 줄로만 알기에 이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를 한 통속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좌익의 지도자로 떠오른 이런 사이비 목사들은 기독교 내의 극단적인 예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한국 기독교 내에 좌익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시점에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한국 기독교 내에 공산주의가 침투해 있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한국 기독교 내 좌익은 빨갱이들이 하는 수법과 같은 수법으로 노동 운동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기독교는 사랑의 나눔 공동체요, 공산주의는 빼앗음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사회이다. 기독교는 사랑에 호소하며 공산주의는 투쟁에 호소한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빼앗기 위한 투쟁 이론을 계급 투쟁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계급 투쟁 이론을 어디에 쓰는가? 공산화 첫 단계인 근로자 선동에 쓴다. 공산주의 국가 내에서의 파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공산화시키려는 나라 근로자들에게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파업을 선동한다. 그런데 공장 근로자들의 파업 선동으로 공산주의 세력의 침투를 돕는 일을 한국 기독교가 행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일부 신학생들이 예언자적 사명을 떠들며 강의실을 떠나 공장으로 몰려가 파업 선동을 하던 때가 1980년대 중반이었다. 이렇게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되었으며, 1968년부터 시작된 도시산업선교회와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은 마침내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라는 못된 사생아를 낳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 경제 망치기에 앞장서는 민주노총의 모순은 노동자의 인권이 가장 없는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 출신들로 구성된 민주노동당은 친북 좌익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이슈는 별도로 하더라도 과연 경제에 무지한 신학생들이 파업 선동에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즁소기업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린 파업 열풍이 남긴 상처는 무었이었던가? 그것은 중국에 추월당한 한국 제조업이 무너지게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것이, 그리고 그 결과 십 오 년 후의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게 만드는 것이 예언자적 사명일까?

   경제학적 논리에서 볼 때 경제에 문외한인 신학생들이 파업 선동에 나서야 했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면 그들이 말하는 예언자적 사명이라는 것이 과연 기독교적인가? 아니다. 그들이 정의(正義:justice)를 외치기 때문에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정의를 외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정책을 무조건 방해하는 것을 정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최선의 정책을 버리고 최악의 정책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경제에 문외한이기에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신학생들이 오십 년 백 년 앞을 내다보고 입안된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이 경우 1980년대 중반의 신학생들이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동하였을 때 그것은 예언자적 행동이 아니었다.

   설사, 그들이 정의가 무엇인지 알았다 하더라도 좌익의 문제는 언제나 사랑의 결여이다. 갈은 신학교 학우이면서 훗날 누구는 우익이 되고 누구는 좌익이 된다. 본래 기독교는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 없는 정의만을 외치는 자들을 좌익이라고 부른다. 물론 우리는 정의를 외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의를 외쳐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망각하지 않는다. 사랑 없는 정의--그것은 좌익 정치 운동일 수는 있어도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사랑 없는 정의--그것은 공산주의자들도 외치지 아니하는가. 그러나 공산주의가 말하는 정의의 문제는 사랑이 없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기독교내 좌익이 자기네는 순수하게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고 생각하는 줄을 안다. 그러나 사랑 없는 정의는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과격한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퇴보를 진보라고 부르는 한국 기독교 내의 좌익은 본래 동남아 후진국의 영향을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등 한국 기독교는 1950년대 말부터 공장 전도를 시작하면서 그 명칭을 도시산업전도‚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1968년 어느 날 그 행동이 급격하게 변하였다. 즉, 그해에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uncil in Asia)가 도시산업전도(Urban Industry Evangelism)를 도시산업선교(Urban Industry Mission)로 명칭 변경을 하자마자 대한예수교장로회도 즉시 명칭 변경을 하였다. 물론, 당시 한국 교계 지도자들이 좌익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무조건 동남아 교계에서 모방해왔을 때 그것은 도시산업선교라는 큰 문제의 시작이었다.

   당시 인도나 필립핀 등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은 상황이 달랐다. 필립핀 마르코스 대통령과 한국 박정희 대통령의 차이는 마르코스 대통령은 필립핀 경제를 무너뜨리면서 엄청난 부정 축재를 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을 가난한 나라에서 부강한 나라로 발전시키면서 당신은 청빈한 생활을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인도와 필립핀 교계 지도자들 중에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1968년 7월 스웨덴 웁살라에서 개최된 W.C.C. 대회는 기독교에 정치적 활동을 허용하였다. 그 단서는 영혼 구원이 사회 참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웁살라 대회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일부 동남아 목사들에게 정치 활동의 명분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과 상황이 다름에도 딩시 교계 지도자들이 동남아에서 도시산업선교를 스입해 온 것은 몰지각한 처사로 보여진다. 선교의 의미를 운동권 활동으로 왜곡한 도시산업선교는 기독교의 사랑을 상실하였으며 영혼 구원에는 무괂심한 운동권으로 전락하였던 까닭이다.

   기독교는 본래 우익도 좌익도 아니지만 이미 교계 내에 한상렬과 홍근수 등으로 대표되는 좌익 진영이 등장한 이상 우익 진영이 존재할 필요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사랑의 본분을 저버리고 정의를 외치는 좌익의 모순을 우리가 손가락질하기는 쉽지만 우익 역시 때로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산주의에 물든 좌익과 투쟁하려는 것은 본래 순수한 애국적 동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정의 편에 서서 싸운다. 그러나 그것은 좌익과 닮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좌익은 그들 편이 아닌 자를 죽이기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편이 아닌 자들을 살려내며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싸운다. 저들은 사랑 없는 정의를 말하나 우리는 사랑이 있는 정의를 말한다. 좌익은 거짓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우익은 진정한 정의를 위해 헌신한다.


박정희 대통령
공장 근로자를 산업 전사로서 바라보시던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서민에게도 삶의 보람이 있었다.
공장 직공에게는 산업 전사로서 일하는 보람이, 군인에게는 조국에 헌신하는 보람이 있었다.
좌익은 투쟁을 위해 존재하라고 선동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음으로 애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