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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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과실 사건에 대한 “범대위" 주장의 허구성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지 지방도로에서 발생한 한 윤화 사고로 두 명의 십대 여학생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로 겉잡을 수 없게 확산되더니 마침내 남한의 이 반미 정서는 개방 정책과 핵무기 개발을 저울질하던 북한의 김정일에게 핵위협 강경책을 택하게 하는 빌미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2002년 12월 28일 현재 시점에서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다가오는 전쟁 위기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그 숱한 윤화 사고 중에서 두 여중생 사건이 한·미 양국에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확산시켜 민족의 최대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일까? 사태가 이렇게까지 전개된 데에는 “범대위”의 근거 없는 주장과 무리한 요구의 책임이 크다.

  그날 6월 13일 아침 10시 지뢰제거용 장갑차에 의한 윤화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지 지방도로는 북한 인민군의 남침시 인민군 기갑 사단의 수도권 진입로이므로 미2사단 44공병대(캠프하우즈)가 수도권 방위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 부대는 대민 봉사를 많이 하는 부대로도 정평이 있다. 이 부대 하우스보이였다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1992년에 미국 상원의원이 된 신호범(愼昊範: 영어 이름 Paul Shin) 씨를 그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거지 소년으로 이 부대에서 식사하던 그가 청소년기에 구두 닦는 일을 하던 중 하루는 엉엉 울었다. 그때 한 장교가 뒤에서 포근하게 감싸더니 “얘야! 나하고 미국 갈래! 내가 너를 아들 삼으마” 속삭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켜 동양인 최초의 미국 상원이 되게 하였다. 그럼 이토록 한국인과 두터운 우호를 가진 이 부대가 어째서 오늘날 그토록 한국에서 질타를 받는 것일까? 또 북한 인민군의 남침시 인민군 기갑 사단의 수도권 진입로를 방어하는 훈련을 실시하는 이 부대 지휘관의 처벌을 범대위가 지금껏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요구하여야 할 이유가 참으로 있는 것인지도 의아하다.

  사실 “범대위”가 주장하는 사고 정황은 실제와는 크게 다름이 드러난다. 지방선거일이라 임시 공휴일인 그 날 친구 생일 파티에 가다가 화를 당한 두 여중생 이름은 심미선과 신효순이며 당시 나이 14세로 조양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유사시 한국군에 지원할 최첨단 기계화 장비 수송 훈련을 하던 미2사단 44공병대 입장에서는 오전 10시이면 학생들도 모두 학교에서 수업 중이라 안심하고 장비 수송 훈련을 할 수 있으리고 생각했었을 터이요, 수송 훈련을 하는 장갑차와 궤도차들을 보고도 두 여중생은 모처럼 공휴일에 나들이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군측에서는 가장 안전하리라 여겼던 시간에, 그리고 두 여중생들은 모처럼의 나들이에 마냥 흥겨웠던 때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 사고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그러면 어째서 그 두 여중생이 장갑차들로부터 안전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걸었을까 궁금하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언덕과 밭을 배경으로 평상시 평화로워 보이는 이 도로는 교통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고갯길을 돌자마자 언덕이 나타나며 좁은 양방향 단선 차로에 갓길이 없고, 사람이 차도로 다녀야 하며, 유사시 피할 공간이 없다. 찻길 바로 옆이 경사져서 비킬 틈도 없는 그런 열악한 도로이다. 그리고 이런 열악한 도로 환경만 보고 여중생 과실 사고 발생 후 좌익 시민단체들이 미군측에 훈련 중지를 요청하였다. 그렇지만, 6.25 전쟁 때 그러하였듯이 이 도로는 북한 인민군 장갑차들이 휴전선을 넘을 때 서울로 진격하는 길목이므로 수도 방위 전략상 요충지이다. 강한 국방력을 위해서 국군도 미군도 이런 도로들에서 행군 작전을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북한 인민군 장갑차 부대의 진격에 대비하는 훈련을 안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방어 임무에 성실한 미군 용사들의 입장이기도 하였다.

  장갑차를 처음 보는 사람 같으면 차라리 친구 생일축하잔치에 좀 늦게 가더라도 장갑차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잠시 언덕이나 밭으로 피해 있고 싶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여중생은 이미 장갑차 다니는 길가를 걷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 별로 당황하지 않았던 듯하다. 당시 그녀들은 귀에 이어링을 끼고 있었으며 시끄러운 장갑차 소리를 안 들으려는 듯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걷고 있었다고 목격자는 전한다. 그래서 바로 언덕 위 건너편 도로에 탱크가 오는 것은 보았으나, 등 뒤편 굽어진 언덕길로 장갑차의 행렬이 연이어 오는지는 몰랐으며, 달리는 장갑차 소리조차 못들었던 듯하다. 그리고 사고 일분 전 그녀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 장갑차는 아무 사고를 내지 않았었기에 더욱 방심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경호원이 지키는 영국의 다이애너 황태자비도 비운의 사고를 면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이 두 여중생도 들뜬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며 친구 생일 잔치집에 가던 바로 그곳에서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그러나 두 여중생의 처한 죽음에 애절한 슬픔을 느끼는 우리는 “범대위"가 사고를 낸 마크 워커 병장을 살인마로 부르며 고의 살인으로 단정짓는 것은 지나친 억측임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국군에 없는 지뢰제거용 장갑차 운전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에 파병되어서 한국군에 없는 기계화 장비로 무장하고 북한 인민군의 그 어떤 공격에도 대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미군 병사들이 대한민국의 평화의 수호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그는 그날 6월 13일 오전 10시 20분에 도로폭이 3m 40Cm인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지 지방도로를 폭이 3m 67Cm로 더 넓은 장갑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굽이치는 도로 맞은편에서 갑자기 달려오는 차량을 발견한 그는 그의 장갑차가 도로폭보다 넓기에 그의 장갑차를 우측 갓길로 비켜 주어야 했다. 그리고 장갑차 운전병은 우측을 볼 수 없었으나 우측에 있던 두 여학생을 치고 말았다. 우측을 끼고 도는 언덕이 전방 시야를 제한하였으며 우회 도로 지점에서 관제병이 그 여중생울 뒤늦게 발견하였으나 무전기가 고장나 있었다. 그러나 설사 무전기에 이상이 없었다 하더라도 맞은편에서 다른 차량이 갑자기 나타나 달려오는 상황에서 도로폭보다 넓은 그의 장갑차가 갓길로 피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발생하였을 수 있었기에 그 상황은 사람의 힘으로는 사고를 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사고 직후 미2사단 44공병대는 즉시 훈련을 중지하고 장례 절차와 보상을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대사가 즉각적으로 두 여학생에게 조의를 표하러 왔으며, 한미합동조사단을 소집하고, 별도의 위로금 외에 8억원의 보상을 유가족에게 약속하는 한편 44공병대 전장병도 성금을 모았다. 그럼에도 이틀 후에 자주통일협회라는 수상한 단체와 민주노동당 그리고 반미 좌익계 단체들끼리 속칭 “범대위”를 구성하면서 이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표류한다. 한 예로 당시 유가족과 미군측의 대화록을 보면 “범대위”는 미군측과 유가족의 합의에 부정적인 간섭을 하였음이 감지된다. 말하자면, 유가족과 미군측의 합의에는 불리하고 “범대위”의 정략적 이용에는 유리한 간섭이 있었다. 그 결과 유가족은 순보상금 4억원만 지불받았으며, 44공병대 장병들이 별도로 5만불을 모금하여 위로비 및 추모비 건립 성금으로 전달하였다.

  “범대위”가 고인이 된 두 여중생의 이름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은 소파 규정을 개정하라는 그들의 요구에서 더욱 증폭된다. 여기서 잠시 소파를 설명하면 재판 관할권에 관한 한·미주둔군 지위 협정(SOFA)은 공무 수행중이냐 아니냐로 관할권을 결정한다. 미군의 사생활 법죄 사범은 물론 대한민국 법정으로 이양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엄연히 군 작전 훈련이라는 공무 수행중 일어난 윤화 사건이므로 응당 1차 재판권이 미군 군사법정에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법무부가 발표한대로 공무 수행중 범죄에 대하여 군대 파견국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외에도 독일, 일본 등 84개국과 SOFA를 맺고 있지만 공무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준 사례는 없다. 대한민국 국군도 1960년대에 월남에 맹호와 청룡 두 부대를 파병하였을 때 동일한 권리를 행사하였으며 금년 2002년 2월 키르키즈 공화국에 의료지원단을 파병하면서 체결한 한·키르키즈 SOFA에는 한국군인의 공무 중 범죄는 사생활 범죄까지 한국군이 관할권을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럴진대, “범대위”는 그들이 주장하는 SOFA 불평등이 무엇인지 설명하라!

  근자에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이유 중 하나로 얼마전 범대위 대표들이 전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 정문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호령하였던 사실이 있다. 만일 이들이 지난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동두천 캠프 케이시 미8군 군사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두 미군 병사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린 데 대한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하는 것이라면 여기 잠시 그 군사 재판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미검찰측은 한·미합동조사 후 사고 원인을 "차량 내부 통신 장비의 통신 장애"와 “선탑자의 뒤늦은 피해자 발견”으로 결론 내렸고 두 미군 병사를 미 군형법에 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미 검찰 측은 통신 장비의 고장을 사전에 알아내지 못한 과실에 의한 사고로 법정 처벌을 주장하였다. 한편 변호인 측은 운전병이 장갑차 우편의 두 여중생을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사고 위험 요소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며 무죄를 요청하였다. 결국 배심원들은 워커 병장과 니노 병장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고 이와 함께 재판은 종료되었다. 이것이 미국의 배심원 제도이다.

  미 검찰의 구형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이 변호인 측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러 차례 한·미 합동 조사 후에도 검찰이 과실 치사를 입증할 증인이나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고 기록이 두 병사의 진급에 영향을 줄뿐더러 그간의 시위로 인해 두 병사는 정신적 시련도 몹시 겪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범대위”가 미국 대통령에게 두 병사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면 적어도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첫째, 두 병사에게 살인 혐의를 입증할 증인이나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편파적 감정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바라본다면 사실 이 두 병사들도 수도권 방어 훈련을 위해 지뢰제거용 장갑차를 운전하는 어려운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니 고의 살인을 입증할 증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둘째, 배심원 투표로 재판이 종료되는 미국의 사법 제도를 “범대위”가 바꾸어야 미검찰의 상소가 가능하다. 그러나 “범대위”가 아무리 촛불 시위로 압력을 넣으며 요청한다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의 사법 제도를 바꿀 권한은 없다. 그럴진대, 만일 남한의 민심 교란이 그 숨은 의도가 아니라면 온 국민이 단합하여 북한의 핵을 막아야 할 이 때에 “범대위”는 촛불 시위 선동을 중지하라!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사고 당시 인민군 기갑부대의 수도권 진입로 방어 훈련 작전 중이었던 미2사단 44공병대 장병들이 6월 18일 오후 8시에 고 심미선, 신효순 양을 위해 촛불추모행사를 하며 성금을 모으고 있다.

운동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을 때 먼저 달려와 조문한 미군 장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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