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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의 의의?

아래 글은 저희 까페 http://cafe.daum.net/futurekorealab 에서 2003/10/03에 "그런데 역사학도님 동학혁명의 의의는..."라는 제목의 질문에 단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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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동학혁명과 갑오경장은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답니다. 동학혁명은 자생적 공산주의였던데 비해, 갑오경장은 개화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1894년에 갑오경장이 일어니기 십년 전에 이미 갑신정변이 있었으며, 이런 정치적 개혁 운동들은 결국 개화 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개화 운동은 동학 혁명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동학혁명은 무조건 외세를 배척하였던 데 비해, 개화 운동은 서양의 선진 문명을 우리 스스로 받아들여 한국 토양에 맞게 받아들이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구한말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세계 정세를 꿰뚫어보는 위대한 선각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얄미운 일본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명치유신 후 일본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것은 어차피 서구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될 바에야 적극적으로 서양의 선진 문명을 빋아들여 일본 정신 문화의 토양에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미처 개화 운동의 꽃을 피우기 전에 일제의 침략을 받아야 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동학혁명이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를 우리나라에 끌어들인 것은 1894년의 동학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국제 사회에 우리나라는 스스로 독립국가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 나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동학혁명이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하는 주장하는 있다면 아마 그들은 민주주의의 뜻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한 방식입니다. 본래 국왕 제도는 왕통이 세습되고 왕이 평생토록 집권하였던 데 비해, 민주주의는 국민이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며, 그 임기도 제한하는 정치제도입니다.

  그러나 전봉준, 최제우 등 당시 신흥종교들이 교주들이 주동한 동학혁명은 전혀 그런 민주주의적 요소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동학혁명은 순수한 민중봉기도 아니라, 신흥종교 세력이 순수한 농민들을 꾀어 의식화한 봉기였습니다. 만일 동학혁명이 성공하여 국가를 전복시키고 이 교주들이 집권하였다면 아마 그들은 왕정보다 더 독재정치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1894년의 갑오경장은 개화운동의 일환이었지만 동학혁명 진압을 명분으로 군대를 우리나라에 보낸 일본이 이 개화운동을 명분으로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래 우리나라 선비들 사이에 개화 사상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동학혁명 진압을 명분으로 침략하기 시작한 일본은 우리나라의 개화 운동 지원을 명분으로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동학혁명 같은 민중봉기가 없었던 일본에서는 순조로이 개화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 누구입니까? 무사가 아니라 선비들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일본은 사무라이 무사들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일본은 일본어와 한문은 물론 영어, 화란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해독하여 서구 선진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비들이 주류가 되는 지식사회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에 발생한 농민의 동학혁명은 그런 일본의 지식 혁명과 거리가 멉니다. 일본이 지식 무장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 지식을 기초로 나날이 근대화되어가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동학혁명이 국력을 낭비시켰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든 이런 민중봉기는 선비들의 개화 운동을 짓밟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신흥종교가 주도하였으며, 하나의 자생 공산주의 형태로서의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의 개화운동은 그 공이 선비들의 손을 떠나 정치인들의 군사적 논리로 넘어갔습니다. 본래 개화 운동을 지지하시던 지도자는 명성황후로 알려진 민비였습니다. 그런데, 대원군은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갑오경장을 이용했고, 국수주의자 대원군은 일본에게 오히려 이용당하는 모순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오늘한 한국의 미련한 좌익은 과거의 동학혁명의 우를 또 다시 범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좌익이 말하는 민주화 운동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뜻도 모르면서 민주화를 말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좌익은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암적 존재로서 존재하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민주주의 파괴 세력의 거물이자 북괴의 간첩인 송두율을 민주화 운동가라고 선전해온 것도 실은 그런 모순들 중 하나입니다.

  미련한 좌익은 무조건 투쟁만 하는 것이 진보인양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개화는 지식의 무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 무장이 오늘날 미래 한국을 위한 우리의 과제랍니다. 우리나라는 동학혁명과 그 후의 일본의 침략 때문에 이제껏 제대로 선비들에 의한 개화 운동이 진행될 틈이 없었습니다. 일제 시대에 겉보기에 근대화가 진행된 것 같지만, 그것은 한국 문화의 토양에서 발전시킨 근대화가 아니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공산주의자들과 좌익이 민족의 개화를 방해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 민족의 정신 문명의 진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야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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