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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좌익 경제관의 근본적인 문제점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 개발 계획을 하시기 전에 한국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일원만 줘!"였다. 그 당시 국민학교나 유치원에 입학하기 직전의 어린아이들은 정말 심심했으며, 유일한 낙은 용돈 1원을 타서 이웃가게에 가서 눈깔사탕이라고도 부르던 마늘사탕 두 개를 사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네 가게는 훗날 수퍼마켓이라 불리던 구멍가게들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식품점 역할을 하던 이 동네 가게에는 두 가지 품목밖에 없었다. 즉. 1원에 두 개 짜리 마늘사탕과 5원짜리 카스테라 빵이 전부였다. 아마 첫 서양식 제과였을 카스테라 빵은 정말 맛있었지만 5원은 너무 비싸서 서민 가정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림에 떡이었다. 그래서 그때 어린이들은 "일원만 줘!" 하고 울었다.

   근데, 그때 그 어린이가 모르던 사실이 있었다. 아이는 울기만 하면 엄마 주머니에서 1원이 샘솟듯 솟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씩 용돈 안 주는 엄마를 야속해 하며 보채며 울었다. 그러나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녀 용돈 마련이 어려웠을는지도 모른다. 미국이 국가 재정의 70%를 지원하는데도 서민의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1원의 용돈을 주기 어려웠던 것이 당시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었다. 국민 GNP 75불 미만이 무엇을 의미하던가? 그것은 보통 가정에서는 월 5불 가지고 생활해야 함을 의미하였다. 그 당시 어머니들은 억척스럽게 절약하셨지만 한 가정에서 월 5불이면 기본 식비도 빠듯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1원의 용돈도 결코 적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오늘날의 재활산업으로서 그 당시에는 고물상이 성업하였었다. 이 고물상은 국민학교 연령대의 어린이들에게는 아르바이트의 기회를 제공했었는데, 동네 공터에서 하루종일 녹슨 깡통이나 녹슨 못 등을 수집하면 한 바께쓰(지금의 표준어로 양동이)의 분량이 되었으며, 고물상 주인에게 갖다 주면 1원을 주었다. 그리고 당시 어린이들은 그 일을 아주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온 종일 땀 흘려 일한 후에 1원을 벌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이 그 당시 중소도시의 우리의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소도시의 서민 가정에서도 집집마다 훗날 가정부라 불리던 식모들이 있었다. 당시 농촌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식모가 되는 것이 도회지로 진출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듯하다. 여하간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농업국이었기에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었으며, 서민들의 생계 수단은 마땅치 않았다. 일원, 그것은 서민의 가정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런 상황에서 출발하여 열심히 일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 개발 계획을 시작하시던 1960년 대 중반은 해방후 근 이십년간 국고의 70%를 무상 지원하던 미국이 무상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렇다면 경제가 더욱 어려워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크게 발전하여 GNP 200불, 1000불, 5,000불, 만 불 시대로 급상승하였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외화벌이 구조의 창출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 개발 계획을 시작하시기 전 우리나라에는 외화 낭비 구조만 있었고, 외화 벌이 구조가 없었다. 그 당시 거부가 되는 비결이 무엇이었던가? 수입상을 하여 열 배의 폭리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거부들이란 이병철씨 같은 수입상이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은 수입상의 재산을 몰수하신 다음 수출 산업에 종사하는 조건으로 돌려 주셨다. 이것이 우리나라 재벌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민족 기업으로서의 재벌을 일으키는 논리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외화벌이 구조의 창출이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구멍가게도 많았고, 천막집 까베기 공장이라는 식품산업 시설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구멍가게들은 국제 경쟁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현명한 지휘관은 전쟁터에 정예군을 내보낸다. 그 원리는 경제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출 정예군이 없는 한국 경제는 수입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벌 혹은 민족 기업이라는 외화벌이 구조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한 가정에서도 가장과 학생간에 소득 격차는 있다. 그러나 가정의 역할이 무엇인가? 그것은 생업에 종사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물론 가장의 수입이 제일 많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소득 격차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가장의 소득의 혜택은 가족에게 골고루 돌아가기 때문이다. 수출 기업이 이와 같다. 기업주의 소득이 제일 많다. 그러나 기업주는 몇 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월급을 주는 책임을 떠맡는다. 한 식구 책임지기도 힘든데, 몇 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누구인들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한 수출 기업이 살아날 때 그 혜택은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에 민주노총이 등장한 이래 수많은 파업으로 임금 인상이 있었다. 해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했으니 이제 서민 소득이 늘어났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민주노총이 생기기 전에는 GNP가 75불에서 만 불로 120 배 성장하였다. 그러나 GNP 민주노총이 생긴 이래로 GNP는 만불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은 서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시 외화 벌이 구조로서의 민족 기업이 있을 때 한국의 국제 경쟁력은 향상되고 자연적으로 그 혜택은 전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좌익 경제 이론의 문제는 이런 외화벌이 구조의 부정이다. 그들은 기업을 없애고 구멍가게 시절로 돌아가면 소득 격차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눈먼 경제 이론의 문제는 온 국민을 절대 빈곤으로 몰고간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는 우리보다 소득 격차는 적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절대 빈곤이다. 어리석은 한국 좌익은 그것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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