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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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5일 

두 상고 출신 대통령의 대북 정책

   한국에 박정희 향수가 있듯이 영국에는 대처 향수가 있다. 아무리 좌파가 독재라고 부르더라도 "대처리즘"은 영국병을 고친 강력한 리더십의 상징이다. 유럽의 첫 여성 총리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마거릿 대처(Thatcher·78)의 집권 25주년을 맞아 영국이 또 한 번 그녀에 대한 평가로 술렁이고 있다. 오늘(2004년 5월 4일)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기념 만찬을 시작으로 각종 행사들이 일주일간 계속된다. 그녀의 시대가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전환점이었기에,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조차 대처리즘은 1970년대 후반 ‘쓴 약’이 필요했을 때 ‘요긴했던 근대화 조치’였다고 말한다. 좌파들은 그녀의 ‘노조탄압’과 ‘친기업주의’를 비난했지만 오늘날 각국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 공공복지 축소 추세는 대처리즘의 유산이다.

   근대화의 기수였던 영국에서도 다시 한번 근대화 조치가 필요했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상기하는 바가 크다. 도올 김용옥이 아무리 유학(儒學)을 극찬하더라도 유교는 조국 근대화의 발목을 붙잡았었다. 중국과 한국은 유교가 융성한 만큼 개화에 일본보다 뒤졌다. 그것은 비록 율곡 등 몇몇 뛰어난 유학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본래 유학이 주관주의에 의거한 사유체계라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도올의 독선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도올의 결론은 언제나 자기 생각이 최고라는 것이며, 객관적인 평에 그는 반발한다. 만일 한국 문명의 시계를 백년 전으로 뒤돌려놓아 유교가 지배하는 사회로 되돌아간다면 여전히 한국인들은 서구 문명에 개화(開化)하는 것을 명분이 없다고 반대할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 시각에서는 한국이 후진국이었음에도 유교적 주관주의 시각에서는 서구의 현대 문명이 야만으로 비쳐졌기 때문이었다.

   유교에서 충효 사상은 우리가 기리어야 한다. 그러나 유교적 관념론이 옹고집 명분 논쟁으로 치닫는 것이 병폐이다. 이라크 파병을 국제적으로 약속해 놓고도 명분이 있느니 없느니 따지면서 철회를 주장하는 한국인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에게 여전히 옹고집 구습이 남아 있음을 본다. 한국인은 우수 민족이면서도 바로 이런 옹고집 구습 때문에 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항상 일본의 뒷발꿈치를 따라다녀야 하는 나라로 전락해 버렸다. 그리고 불필요한 독선과 자만과 옹고집이 조국 근대화의 걸림돌이었다.

   요즘 한국 신세대는 친김정일 세력을 진보라 부르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북한이 어느 나라인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나라이다. 러시아와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모두 시장 경제에 개방하고, 중국마저 그 개방의 물결에 합류하였음에도 지금 북한은 개방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남아있다. 국제사회는 북한도 개방하면 막대한 경제 원조를 해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러나, 여태껏 북한은 개방을 거부해 왔으며,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북한 정권의 폐쇄성을 지지하는 자들이 자기네가 진보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할 때 그들은 진보라는 단어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개방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 공산주의는 유교와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누가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는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론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었다. 1963년 10월 대한민국 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던 선거에서 당선되신 이래 박정희 대통령의 16년의 집권은 우리 민족 5천년 사에서 유일하게 근대화가 실현되었던 시기이다. 21세기에도 여태껏 19세기에서 한발자국도 진보하지 못한 민족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 통치 16년 기간 동안에 근대화가 실현되었으며, 전두환 대통령의 7년 집권으로 "88 서울올림픽을 치를 때까지 그 발전의 행보는 계속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은 국력이 세계로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하였으나, 애석하게도 90년대에 양김씨가 집권한 이래 한국이 뒷걸음질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조국 근대화를 온갖 수단을 써서 방해하는 자들이 스스로 진보세력이라고 자칭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아직도 유교적 관념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왜 조국 근대화를 방해하였는가? 그것은 근대화는 합리적, 객관적 사유체계가 관념론적, 주관주의적 사유체계보다 우위에 놓이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유교적 관념론의 입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유교의 충효사상은 기리어야 한다. 다만, 관념론과 독선으로 변질된 요소들은 경계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 민족의 발전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구한말 한국 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세계 제일인양 착각하던 독선이 있었으며,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자기네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 줄로 여기고 있으며, 남한 좌파는 그런 퇴폐적 옹고집으로 조국 근대화를 방해하여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 혁명을 일으켰을 때 사람들은 경제계의 반발이 가장 컸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입상 거부들의 재산 몰수 혹은 환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조국 근대화와 산업혁명의 선봉에 섰던 이들은 경제인들이었다. 그들은 합리적인 기업 경영으로 조국이 근대화되고 국가 산업이 발전되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구한말에 그러했던 것처럼 관념론적, 주관주의적 사고 구조를 가진 이들이 온갖 수단을 다해 조국 근대화와 산업혁명을 방해하였다. 한때, 조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던 이들 중에서도 퇴폐적 수구 세력이 이제 그것을 진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국어 낱말의 뜻을 모른다 해도 조국의 발전에 저항하며, 진보를 가로막는 것을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심한 모순이다.

   퇴보가 진보라고 우기는 무리들이 간판 스타로 내세우는 두 인물이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하였을 때 공사장에 드러누워 방해하던 경력으로, 노무현은 전두환 대통령 얼굴에 명패를 던져 청문회 스타라는 일명을 얻은 경력으로 유명 인물이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상고 출신이다. 김대중에게 산업혁명은 없다. 그는 단지 한국을 로또 공화국으로 만들고, 카지노를 곳곳에 지었으며, 김정일에게 핵무기 개발 자금을 비밀 지원하였을 뿐이다. 그런, 그가 5년 집권 기간에 박사학위를 9개나 수여받고 그것도 부족해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그의 정말 학력은 목포 상고 졸업이며, 노무현의 학력도 부산상고 졸업이다. 두 상고 출신이 조국 근대화 방해의 선봉에 섰으며, 그들은 그것을 개혁이라고 불렀다.

   두 상고 출신이 조국 근대화를 방해하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 둘은 서민이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서민 편을 들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집권하면서부터 서민들이 외국에 채무를 지게 되었으며, 그 빚이 지금 현재 개인 당 350만원으로 사상 최고에 달하였다. 아직은 한국에 산업혁명이 좀 더 진행되어야 하며, 조국 근대화가 더 진행되어야 할 때 그들은 조국 근대화의 선구자들을 수구세력으로 매도하고, 퇴출시켰으며, 산업혁명과 근대화에 역행하는 좌파 인물들이 국가 요직을 점령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지금 두 상고 출신이 경제 파탄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분명한 것은 산업혁명과 조국 근대화를 위한 청사진을 분명하게 국민 앞에 제시하셨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두 상고 출신 대통령은 국민 앞에 아무런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한다. 한 상고 출신은 철의 실크로드 대박을 떠벌리더니 그 후 아무 소식이 없고 , 또 한 상고 출신은 해상 물류의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들겠다고 말하자마자 부산항에 물류 대란을 일으켰다. 두 상고 출신 대통령의 경제 정책의 문제는 청사진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청사진이 없다는 것은 계획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계획 없는 발전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무계획이 진보라는 엉터리 논리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러면 두 상고 출신 대통령에게는 왜 경제 정책 청사진이 없는 것일까? 그 둘은 기업 해체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을 뿐 경제 정책 청사진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언제, 어떤 방법으로 섬유, 중화학공업, 조선, 철강, 제철, 전자, 자동차, 전기, 중공업 단지를 조성하고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IT산업도 전두환 대통령이 20년 앞을 내다보고 기술 투자를 한 것일 뿐이며, 두 상고 출신 대통령이 이루어 놓은 일은 공장 해외 매각과 폐쇄뿐이다. 국민이 두 상고 출신에게 한국 경제를 내맡겼을 때 걸었던 기대가 아무리 컸든 간에 이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상업고등학교 지식과 경제학의 차이가 무엇인가? 상고 교과목과 경제학의 차이는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영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좌파가 후진국 운동권에서 수입해 온 비주류 경제학을 제외한다면 경제학은 사회과학이다. 경제학의 주된 관심사는 국가 경제이며, 상업의 주된 관심사는 개인이나 업체의 장사이다. 그리고 이 둘은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 경제학은 자원과 재화는 샘물과 같아서 사용할수록 효용성이 증대한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상업은 웅덩이에 고인 물은 먼저 퍼 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경제와 장사는 그 철학이 다르다. 경제학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경제 파트너로 여기지만, 상업 논리의 관점은 좀 다르다. 경제학은 투자를 중요시하지만 상고 출신의 관심사는 흥정이다.

   김대중이 기업을 비판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기업 육성과 김대중의 벤처 지원은 그 철학이 다르다. 김대중의 벤처 지원은 국고만 낭비했을 뿐 성공하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고가 텅 비어 있었던 시절에 세계적 수준의 민족 기업들을 육성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 두 철학이 크게 다름에 유의하여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혁명과 조국 근대화의 비전에 기업인들을 끌어들이셨다. 황무지에서 개척하는 자의 수고는 크지만 그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기에 동참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김대중은 나라 돈을 마구 퍼주면서도 벤처 육성에 실패하였다. 김대중은 장사에 성공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벤처 기업가의 정신이 개인과 업체를 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상고 수준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 관리들은 자기네한테 로비하는 업체에 퍼부어 주었기에 그나마 몹시 비효율적이었다,

   이처럼 경제 정책에는 실패하였거나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두 상고 출신 대통령의 한결같은 특징은 대북 정책에 대한 집착이다. 그런데, 이 두 상고 출신은 북한 동포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김정일과의 어떤 흥정을 위해 대북 정책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이 북한 동포들을 사랑해서 햇볕 정책을 실시하였는가? 아니다. 김정일은 지난 4월19~21일(2004년) 중국 방문시 중국의 신형 전투기를 구입하겠다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홍콩 상보(商報)가 29일 보도했다. 김정일이 구입하려던 젠10A 전투기는 미국이 대만에 판매한 F16 전투기에 상당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경제 사정이 그토록 나쁘며 식량조차 부족한 북한에 남침용 전투기를 구입할 외화는 있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 그리고 이것이 햇볕정책의 결과라는 말인가?

   사실 김정일 입장에서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한 상고 출신의 흥정일 뿐이었다. 김대중이 햇볕정책을 처음 발표하였을 때 북한 언론들은 "상고 출신이 경제도 모르면서 아는척하더니 조그마한 선물 보내고 햇볕정책 생색내려 한다"면서 조소하였다. 그럼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이 신속히 진행되었다. 그것은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을 탐냈고, 김대중은 노벨상을 탐냈을 때 김정일이 김대중과 사진 찍는 모델료로 5억불(혹은 8억불 이상)을 김대중에게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대중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김정일은 그 사진 모델료는 제값을 받은 것이라고 여긴다. 김대중도 자기 흥정에 만족해했다. 문제는 김대중이 5억불에 평화를 산 것이 아니라, 팔았다는 사실이다.

   Little 김대중으로 알려진 노무현 역시 어떤 흥정을 위해 대북 정책에 집착한다. 그가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는가? 아니다. 그는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UN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을 방해하였다. 그러면 노무현이 원하는 흥정은 무엇인가? 노무현은 통일 대업을 이룬 대통령으로 알려지기를 원하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경제에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통일에 집착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김정일 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북한에서는 유일한 탈출구가 적화통일이다. 공산주의의 본성이 팽창주의이고, 김정일 체제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기에 그들의 목표는 적화통일이다.

   “평양은 영하 17도에 바람이 몹시 불어 체감 온도는 엄청나게 매서운 추위를 느끼게 했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가 2박3일간의 평양방문 일정을 마치고 2003년 1월 29일 서울에 돌아온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한 말이다. 임 특사가 비단 평양의 날씨만으로 그 같은 추위를 느꼈을까? 2000년 6월 13일 열렬히 환호하는 환영 인파가 순안공항에서 평양시까지 연도에 늘어섰던 때에 비하면 이번에는 쌀쌀맞게까지 느껴지는 문전 박대였다. 그가 기안하여 추구하였던 햇볕정책의 결과로 오히려 차갑게 냉각된 남북한 관계가 그의 속 마음까지 춥게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그가 들고 간 선물 보따리에는 노무현 당선자가 보낸 선물 약속 패키지가 두둑이 있었으나, 김정일은 열어보지도 않고 임특사를 쫓아버렸다. 그리고 그 의미는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니므로 끼여들지 알라였다. 노무현은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테니 미국은 나서지 말라고 하였다. 김정일은 한반도의 주권은 북한에 있으니 한국은 외교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김정일에게 이처럼 모욕을 당하면서도 노무현이 계속 김정일에게 굽실거리며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안에 따라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고 출신 대통령 노무현이 이 흥정에서 얻어내려 하는 것은 통일 대업을 이루어낸 대통령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은 적화통일의 전 단계이며, 적화통일 후에는 남한의 시장경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으며, 민주주의가 사라진 땅에는 강요된 김정일 숭배주의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통일만 된다면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중요하지 않은 듯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보안법 철폐 등의 수순을 거친 합법적 공산화이든 북한의 핵무기에 굴복하는 무력적 적화통일이든 남한마저 공산화되면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서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가 조국의 안보에 관계된 정책에 관한 한 상고 출신 대통령들의 흥정 논리를 무조건 따라서는 아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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