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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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23일 

가시면류관을 쓰신 메시아와 한국 예수 전태일

   1970년대는 농업국이요 후진국이었던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찬란한 시대였다. 그러나 조국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의 반대편에는 전태일이 있었다.

   1969년 12월 19일 박정희 대통령께 보낸 편지에서 전태일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의류 제품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 된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 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으로서 의류 전문 계통으로선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것으로 종업원은 2만여 명이 됩니다. >>

   그리고 그 편지에서 전태일은 박정희 대통령께 이렇게 요구한다.

   <<1일 14시간의 작업 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12시간으로 1개월 특(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

   노동운동 전문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한 업체 임금 인상 요구까지 대통령에게 직접하는 편지를 받으면 황당해할 것이다. 그 다음 해인 1970년 가을에는 노동청에 작업장 시설을 근로기준법에 맞게 개선해 달라는 진정서를 냈던 전태일은 두 달이 넘도록 개선되지 않자, 11월 13일에 3개 재단사 친목회 회원 10여 명과 함께 시장 앞에서의 농성을 계획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쓴 플랭카드를 경찰에게 빼앗기자, 평화시장 앞길에서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하였다.

   전태일의 분신 자살이 1970년대 한국 사회에 가져다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혹자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사건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동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사건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태일의 분신 자살과 더불어 산업혁명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시위 물결이 노동계와 운동권 학생들의 연대 투쟁으로 일기 시작했다. 전태일 분신 3일 후인 11월 16일 오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생 4백여 명이 집회를 열고 박 정권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학교 시위에 이어 교회 시위가 이어졌다. 1970년 11월 22일 새문안교회 대학생부 학생 80여 명은 전태일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와 그 공모자인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는 금식기도회를 가졌다.

   당시 새문안교회 대학부 회장이었던 서경석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 건물 바깥에 "참여와 호소의 금식기도회"란 제목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광화문 거리를 향해 스피커를 들이대고 전태일 분신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시민들의 각성을 호소하는 방송도 했다. 이 사건 후, 새문안교회 대학생회는 진보기독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처럼 이 사건을 계기로 운동권 성향의 학생들이 노동현장에 취업 형식으로 뛰어들어 노동자들과 생활을 같이 하면서 노동자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마도 전태일 분신사건 이후 한국 교계가 범한 가장 어처구니없는 과오가 있다면 전태일이 한국 예수라고 주장하는 민중신학자들의 등장일 것이다. 1세대 민중신학자들이 공통으로 "민중신학의 시작"이라고 일컫는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은 바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투쟁"이다. 안병무, 서남동, 현영학, 문동환 등의 민중신학자들은 "고난의 담지자"와 "자기초월"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결합시켜 "민중이 역사의주체", "민중이 구원의 주체"라고 선언한다. 이처럼 민중신학이란 기층대중의 "자기초월적사건"(대표적인 예로 전태일 열사 분신투쟁)에 주목하면서, 이 "사건"이 "메시아적사건"이라고주장하는 사건의신학이다.

   1세대 민중신학자들은 전태일 열사 분신투쟁을 "한국의 예수 사건"이라 선언한다. 그들은 "민중역사 주체론"과 "민중 메시아론"을 말한다. 그들은 고난받는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민중운동이 이루어질 때 "메시아는 민중에게 현존한다"는 위험한 주장을 한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민중신학을 창시한 안병무는 "세상을 통해서 얻어맞고 죽어 가는 민중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온다"는 허튼 소리를 한다.

   2세대 민중신학은 주로,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적 세계관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한국 좌익이 후진국 운동권 논리를 활발하게 수입하는 현상이 이때 나타났던바, 제3세계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협력 관계 등을 흉내내었다. 그 결과 강원돈 같은 이들은 유물론 신학(物의 신학)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공산주의 사상의 뿌리인 유물론적 세계관과 기독교 신앙의 혼합주의였다. 문익환, 한상렬, 홍근수 등 민중신학 계열의 목회자들이 친공산주의 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 배후에는 이런 유물론적 세계관이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의 엉터리 주장에 현혹된 이들도 많았으니 그 한 예를 우리는 조민영님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영화를 보고쓴 감상문에서 찾아본다: "이 영화가...예수님의 십자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죽은 전태일의 분신이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고...." "아름다운 청년"이란 책을 읽은 이미진 님은 서평에 " 전태일은 분신을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적었다.

   역시 민중신학자들에게 속아 한때나마 민중신학을 지지해 주었었던 독일의 세계적 신학자 몰트만 박사는 한국 민중이 바로 메시야라는 안병무의 주장에는 구원론적 문제가 있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고난 당하는 종과 같이 민중이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면, 민중을 구원할 이는 누구인가? 민중이 그의 고난을 통하여 스스로를 구원한다면, 이 고난 자체를 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민중은 어떻게 투쟁할 수 있는가? 민중이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자 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누가 민중에게 질문한 일이 있는가?"

   구약성경 아가서 2장 1절에서 예수님은 샤론의 꽃에 비유되신다. 그리고 신약에서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이마에 쓰인 가시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상징한다. 우리말로 무궁화(Shrub Althea)라고 하는 샤론의 장미에 치유의 효험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치유의 능력이 있으시다.

   인간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TV 영화로 가시나무새가 꼽힐 것이다. 이것은 호주의 한 아름다운 여인과 카톨릭 신부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한 아픔을 그린 인간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The Passion 이란 영화에서 잘 표현되어 있듯이 가시면류관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상징한다. 신약에서 가시는 죽음의 쏘는 권세를 상징하는데,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의 권능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그리고, 가시면류관의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며 영생을 누린다. 바로 이것이 The Passion 이란 영화의 교훈이다.

   "가시면류관이 상징하는 것은 로마 병정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의 왕이란 조롱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로마 병정들의 그런 조롱까지도 실은 구약성경의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였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이처럼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는 고난당하는 종으로 묘사되어진다. 이것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왕과 다른 개념이다.

   메시아가 로마의 시이저와 같은 강한 임금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조롱받고 멸시받으며 채찍에 맞는 메시아의 모습으로 오신다. 그리고 그 예언의 성취를 우리는 골고다 언덕에서 가시면류관을 쓰신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본다. 즉, 동일한 가시면류관이 로마 병정들에게는 조롱의 상징이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하). 그리고 그 예언의 성취를 우리는 부활 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5장에 읽는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장 55~57절). 여기서 "쏘는"은 영어로 "thorny"이다. 즉, "쏘는"(thorny)은 "가시로 찔리는"의 뜻이다. 누가 가시에 찔리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가시면류관의 가시에 찔리시며 피 흘리셨다. 대속의 피를 흘리셨다. 가시에 찔리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대속의 피를 흘리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시에 찔리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망의 쏘는 권세, 즉 죽음의 가시 권세를 이기셨다. 어떻게 이기셨는가? 바로 피 흘리심으로 이기셨다. 어떤 피였던가? 무죄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였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어린양이셨다.

   죽음의 가시란 죄의 형벌을 말한다. 죄에는 죽음의 형벌이 있다. 죄의 형벌로 인간은 죽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신 피 흘리셔야 하며, 아무 죄없는 어린양이 대신 속죄의 피를 흘려야 한다. 바로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다. 가시에 찔리시며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주셨기에 다시는 사탄이 사망의 쏘는 권세로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합법적으로 의인이, 죄사함을 받은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완성시킨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을 쓰셨기에 메시아이시다. 면류관은 왕의 신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오로지 십자가 위에서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에도 불구하고 종교계 좌익사상인 민중신학은 동학사상의 인내천을 이사야 53장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하였다. 민중신학은 누구든 파업을 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민중신학자들은 분신 자살한 전태일이 한국 예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였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이든 공직자들의 한강 투하 자살이든 자살은 자살일 뿐이다. 전태일의 자살을 이용하는 좌익 무리들이 많았다고 해서 그가 한국 예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한국 청년 실업의 원인이 된 전태일의 자살이 설사 당시에 동료 노동자들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해도 그는 결코 메시야일 수 없다.

   성경은 십자가 위에서 가시면류괸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분명히 말한다. 오직 영적 진리에 눈뜬장님인 민중신학자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전태일이 한국 예수라고 주장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메시아이시다. 우리는 한국 종교계 좌익사상인 민중신학이 파업 선동을 위하여 성경을 자기네 맘대로 해석하였을 때 한국의 정치와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지난 30년간 보아 왔다. 종교계 좌익이 메시아 예언에 대한 성경 구절을 엉터리로 해석하고 전태일을 한국 예수라고 주장한 것이 1970년대의 산업혁명을 방해하였으며, 전투적 강성노조가 등장하여 서민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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