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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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6일 

레이건 대통령의 반공주의와 김대중의 친공산주의

   선거를 위한 정치인가? 정치를 위한 선거인가? 정치를 위한 선거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선거에 국력 대부분을 낭비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어서 선거는 국사(國事)를, 나라 일을 위해서 있었다. 이것은 국정 운영의 목표가 사전 불법선거운동이라고 여기는 노무현의 관점과 대조적인 것이다. 1972년의 유신헌법--그것은 대선 절차를 당시 한국 상황에 알맞게 간소화하여 경제적 건국기에는 국력을 선거에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추억 중에 그의 선거운동에 대한 추억은 없다. 아직 문맹률이 높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공화당의 상징으로 황소마크가 기호번호 옆에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 의미는 황소처럼 일하는 정당이란 뜻이었으며, 정말로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은 황소처럼 일하였다. 김대중이나 노무현과는 대조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이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시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국민이 김대중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은 그의 전국적 유세이다. 차분하고, 과학적이고 면밀하게 정책을 연구하여 국민에게 제시하시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대중 선동가 김대중은 바람 일으키기를 좋아하였다. 거짓말쟁이 정치인의 원로 김대중은 허황한 거짓말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해방정국 때 여운형씨 밑에서 공산주의밖에 배운 것이 없었던 김대중은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줄로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 운동하였다.

   1971년 대선 때 김대중이 하는 꼴을 보고 그가 장차 어떤 일을 저지를 인물임을 내다보신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은 옳았다. 김대중이 정치 전면에 나선 이후에, 특히 그가 집권한 후에 한국은 선거운동으로 시끄러운 나라가 되었다. 6월 5일(2004년) 재보궐선거에서 선동적 선거운동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열우당이 참패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집권을 선거운동에 남용할 것이다. 배꼽이 배보다 큰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김대중은 정치가 선거운동을 위해 존재하는 줄로 착각하는 이상한 풍토를 만들었다. 그러나 국력의 대부분을 과열 선거운동에 소모하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선거 승리를 위해 한미 동맹을 팔아넘긴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김대중 추종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노무현의 집권이 민주주의의 완성이었다. 김영삼씨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민자당을 물려받고 대통령 후보로 추천받았으며, 김대중은 집권하기 위해 5.16군사혁명 인사 김종필씨와 손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3공화국이나, 5,6공 인사들의 후원 없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노빠들은 자랑하였다. 그러나, 노무현이 집권하자마자 한국 민주주의는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은 어인 일인가. 이미 미국에서는 한국은 공산화 전 단계에 있는 나라이며, 스스로 적화통일의 길을 걸어도 미국은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나라로 여기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있으며, 철수하기 시작한 것도 노무현 정권이 북한 공산주의와 한 배를 타기로 선택하였다는 견해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은 2002년 대선 기간 중에 노무현의 불법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반미촛불시위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지원하였으며, 노무현은 반미촛불시위에서 반미 친북한 선언을 하였기에 미국인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였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선거 승리를 위해 한미 동맹을 받아넘겼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한미 동맹을 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팔아 넘겼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석방이라는 무리수를 쓰면서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은 한미동맹은 무너뜨리기는 쉬어도 한번 무너뜨리면 다시 회복시키기는 어렵다. 민주주의 선거의 목적은 올바른 지도자를 모시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선거를 목적으로 하였기에 한미동맹까지 팔아넘기는 반민족적 과오를 저질렀다.

   냉전 종식에 앞장섰던 미국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2004년 6월 5일 오후 2시께 93세를 일기로 임종하였다. 1994년에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대국민 고별사에서 "나를 위해 걱정하지 말고 미국의 앞날을 위해 걱정하라"고 말하여 석별의 정을 나눈 후 10년 만에 마침내 그는 영영 미국인 곁을 떠났다. 그는 한국에서 광주사태가 일어난 직후에 당선되어 그 이듬해 3월 3일에 한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신 전두환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하였기에 한국 운동권은 레이건 대통령을 몹시 비난해 왔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레이건은 루즈벨트와 같은 경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레이건의 경제 정책은 대실패작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러시아 등 구공산권을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앞세대의 어른들이 양김씨가 아닌 박정희 대통령을 국가 지도자로 선택하였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보다도 안보였다. 당시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정책과 김대중의 경제관 중 어느 편이 옳은지 잘 몰랐다. 그것은 한 세대가 직접 겪어보고 다음 세대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어른들도 분명한 판단의 기준을 가질 수가 있었다. 만약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연방제 통일안을 주장하는 김대중에게 안보 문제를 내맡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당시 어른들은 박정희를 지지하였다. 안보도 망치고 경제도 무너뜨린 김대중에 비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안보도 경제도 튼튼하게 하셨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3월7일 전국 지방 장관, 시장, 군수, 구청창 대회 유시에서 하신 말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한다: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

   아마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이유 중 하나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북한의 남침용 도로들을 자꾸만 건설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이 스스로 국방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 미국도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으시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은 도둑이 들어올 길을 친절하게 만들어주었다. 김대중은 관광객들의 금강산 입산료로 한국 정부가 제공한 수십 억 달러로 김정일이 남침용 전투기들을 구입하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계속 남침용 도로 개통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인들이 자기네 아들들을 한국 최전방에서 근무하게 하는 것은 대단한 우정이다. 그런데, 김대중은 북한군 남침통로를 자꾸 열어주어 미군 병사들의 위험 부담을 증가시켰다. 앞으로 미군이 철수한 자리에 한국 군인들이 근무하여야 한다. 그러나 북한군 남침 통로가 열려있는 곳에서 자기 아들이 근무할 때 한국인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런데, 이토록 미련한 김대중의 안보 정책과 달리 레이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처럼 안보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았기에 미국인들은 그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혹자는 레이건 대통령도 러시아와의 냉전 시대를 종식시켰고 김대중의 햇볕정책도 냉전시대를 종식시키자는 것이었으니 레이건과 김대중의 정책은 비슷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가지가 달랐다. 안보의 울타리를 없애버리던 김대중과 달리 레이건 대통령은 안보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친공산주의 논리와 달리 레이건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김대중은 북한 김정일 체제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하였으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인정하여 주고 통일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미국의 이데올로기 대결과 정반대이다. 미국인은 군사적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이데올로기 대결을 러시아인들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논리 대결에서의 승리로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다.

   미소 양국의 냉전의 긴장이 그 절정에 달하였던 1986년 봄에 러시아의 고르바초프가 미국 측에 내놓은 평화협상안이 미국의 정가와 언론계에 소요를 일으켰었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다가 한 편이 갑자기 줄을 놓으면 다른 한 편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시 핵무기에 관한 한 미국을 세 배나 능가하던 군사 초강대국 러시아, 전세계를 적화 통일시킬 때까지 만족할 줄 모르는 팽창주의자 러시아 제국이 평화협상안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무엇으로 그를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의 타임지 표지 기사 제목 “진실인가 아니면 북극곰의 속임수인가?” 가 반영하였듯이 미국의 정가와 언론계에 신중론이 우세하였다. 침공할 때 선전 포고 대신 평화 협정을 맺어 상대국을 방심시키는 것은 히틀러의 상투 수법이 아니던가? 도대체 갑자기 평화 제스추어를 쓰는 북극곰의 본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데탕트 제의는 진심이었다.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막강한 힘을 가진 소련의 통치자였던 고르바초프는 남들이 보지 못한 사실을, 러시아의 공산주의 경제가 벼랑끝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서구의 경제는 날로 그 생산성이 증대되는데 러시아의 경제는 날로 그 생산성이 낙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1986년 방미 후 그 사실을 재확인한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토로이카, 즉 개방 정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김정일은 고르바초프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한때나마 속았던 미국이 김정일도 제2의 고르바초프이기를 기대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로 김정일은 제2의 고르바초프가 아님이 입증되었다. 고르바초프는 핵무기를 버리고 개방하자고 하였다. 김정일은 개방을 못하더라도 핵무기는 보유하겠다고 고집 부린다.

   미국인들이 위대한 레이건을 회고할 때 1986년의 미소정상회담을 회고한다. 사실, 미국과 러시아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은 처음에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번거로운 예전이 생략되고 고르바초프의 전용 승용차가 백악관으로 안내를 받았으며 레이건이 백악관 현관 밖에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런데 명배우 출신인 레이건이지만 아직 경계심을 풀 수 없었는지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러시아 중절모를 쓴 고르바초프가 승용차에서 내려 넉살 좋은 미소를 띄우며 먼저 레이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레이건이 씩 웃으며 악수에 응했다. 그는 곧 고르바초프에 친근감을 느끼며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며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에서 상당히 해방시켰던 저 역사적 미소 정상 회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00년 6월 15일에 김대중과 김정일도 악수하였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가? 김대중과 김정일의 악수는 그 사진 모델료로 김대중이 8억불을 비밀송금하고 받아낸 가짜였다.

   김대중 정권은 2000년 6월 15일의 가짜 약속 후에 이데올로기 대립을 없앴으나,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미국인들에게는 데탕트가 이데올로기의 논리적 대결의 시작이었다. 고르바쵸프의 방미 이후 당시 최신 통신 수단은 미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의 영상 토론을 위해 사용되었다. 미국 민주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 중 어느 이데올로기가 옳은가에 대한 토론이 양국 국민들 사이에 진행되었다. 미국 여성들과 러시아 여성들 사이에 토론이 진행되던 때의 일이다. 똑똑한 러시아 여성이 러시아 공산주의 사회의 장점들을 자랑하였다. 그러자, 한 미국 여성이 그런데 표정을 보니 왜 러시아 여성들은 한결같이 우울하고 불행해 보이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 어느 러시아 여성도 답변하지 못했다. 같은 백인 여성들이지만 그 차이는 시각적으로 분명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인들 스스로 서구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순간적으로 붕괴하였다.

   왜, 정치권 일각에서 민주화 운동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에 빠른 속도로 한미동맹이 와해되며,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있는가? 그것은 친공산주의 논리 때문이다. 미련한 이들은 친공산주의 정책을 통해서 북한도 우리편으로 만들면 북한도 미국도 우리편이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이 공산주의 국가 편에 설 때 스스로 미국 반공주의의 적이 된다. 아니, 한국인 스스로 반미주의자들이 되고 만다. 한국인은 빨갱이 사상에 빠진 만큼 반미주의자들이 되기 마련이다. 전교조는 학생들에게 세계가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린 공산주의를 주워오는 것이 진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과연 미국이란 우방과 더불어 자유 민주주의를 버리고 북한 공산주의 멍에에 메이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과연 제2의 한국전쟁이 다시 일어날 환경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여기에 우리가 노무현의 엉터리 자주국방론에 속지말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진정한 자주 국방의 길을 배워야 할 이유가 있다: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철저히 해놓고, 그 안에서 비로소 건설이나 생산도 있을 수 있다. 이 도둑을 누가 막느냐?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1차적으로 막아야 한다. 도둑의 힘이 너무 강대할 때는 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이것이 국방의 기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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