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토론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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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3월 29일

역사학적 시각에서 푸는 노통의 추가탄핵사유

   일제 시대를 전후로 한국인의 국가관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1900년대의 한국인은 왕손이 끊어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로 알았다. 1950년대의 한국인은 대통령 재임 기간이 8년이 넘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로 알았다. 한 시대의 한국인은 왕은 평생 집권하며, 왕권은 대대손손 계승되어야만 나라가 유지된다고 생각하였다. 또 한 시대의 한국인은 국가의 지도자 집권이 8년을 넘기는 것은 독재라고 여겼다.

   그러나 역사학도는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보지 않는다. 만약 이승만이란 인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건설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이들이 없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아는 국가는 조선 왕조 같은 왕정 국가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통치와 공산주의 국가가 전부였다. 일제 시대 때 몇 안 되는 조선인 지식인들이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사상은 공산주의였으며, 박헌영이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다행히, 미국 명문대 프린스턴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상해 임정에서 활동하였던 이승만씨가 귀국하였다. 그리고, 이승만 이 한 사람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있다면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런데, 만일 노사모를 거느린 어느 정권이 일평생 항일 운동을 하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 척결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부정하는 일일 것이다.

   이승만이란 인물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건국되었을 가능성도 지극히 희박하였지만, 이승만 대통령 없이 대한민국이 보전될 수도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노무현의 반미 친북한 공산주의와 다른 예를 본다. 만일 한국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 아니었던들 미국이 20년간 한국 재정의 70%를 무상 지원하여 주었겠는가? 그리고, 만일 이승만 대통령의 발빠른 대미 외교가 없었다면 과연 미국이 한국전쟁 때 참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며 우리나라를 지켜주었겠는가?

   무식한 좌익은 미국이 자기네 국익을 위하여 참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자, 미군 병력수와 한국군 병력수는 비슷하다. 5만명이 넘는 병력이 전사하였으며, 삼십 만 명이 넘는 미군이 팔다리를 잃거나 중환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무엇을 얻었다는 말인가? 미국이 한국전에서 잃은 가장 큰 것은 냉전 시대의 도래였다. 아직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맺고 있었으며, 아직 러시아는 미국의 연합국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1950년 7월에 한국전에 참전하고 중국이 10월에 참전하므로 냉전 시대가 도래하며, 미국이 한국전 참전으로 잃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핑퐁 외교로 되찾는데는 무려 30년이나 걸렸다.

   노무현이 3.1절 기념사(2004년 3월 1일)에서 그는"이제 용산기지 이전이 결정되었다. 몇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 우리 서울시민들에게 반환될 것이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돌아온다"고 말하였을 때 그는 뭔가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 그 용산기지 그것은 1910년에 일본군이, 그리고 1950년 6월 28일에 다시 북한군이 점령하였던 기지였다. 북한군이 용산기지를 점령하였던 기지였다.

   북한군이 용산기지를 점령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였는가? 그것은 공산 치하의 서울 시민들이 전쟁 부역에 끌려나가거나 학살되어야 했음을, 그리고 청소년들이 의용군으로 북한 괴뢰군에 징집당하였음을 의미하였다. 그해 9월 28일 미군과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여 용산기지에서 북한군을 몰아내기까지 서울이 90일간 적군의 손아귀에 있었으며,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군화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시민들의 자유를 짓밟았었다. 왜, 대한민국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는가? 다시는 용산기지가 북한군에 점령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1945년 9월에 입국한 미군이 용산기지에서 일본군 사령부를 해체시켰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였던가. 그것은 조선총독부에서 일장기가 내려짐을, 그리고 비로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하였다. 비록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이 미국에 항복하였으나, 일본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일본 총독부에 세금을 바치고 있었다. 일본이 한반도는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버티는 이상 한국인은 아직 해방을 실감할 수도, 일본군에 대항할 수도 없었다.

   여기 합법적 침략의 문제가 있었다. 일본은 한일합방 문서에 의거하여 한반도에 대한 주권은 자기네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영토권 주장에 맞설 정부가 없었다. 쉽게 말하면 땅 문서도 일? 그리고 땅 문서를 무력으로 합법화할 공권력도 일본이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만일 국제사회에서 한일합방 문서의 합법성을 인정하여 주면 우리는 영영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가 없음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국제 사회가 우리 민족을 대신하여 일본의 한일합방 문서를 폐지시켜 주어야만 우리 민족이 주권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바로, 그 일은 1945년 9월에 미군이 우리를 대신하여 해주었다. 미군이 용산기지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조선총독부의 일장기를 내렸을 때 태극기가 펄럭였으며, 한일합방 문서는 폐지되었다. 이제 일본인은 자기네 나라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후 한국 정부의 수립을 위해 3년간 미군군정이 실시되었다. 무식한 좌익은 이것이 침략이라고 말한다. 침략은 약탈 행위가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당시 상황은 미군이 조금만 더 늦게 입국하였으면 한국인은 모두 굶어죽을 상황이었다. 반미 공산주의자들도 미국이 제공한 식량 원조 덕택에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럴진대, 수천 만명분의 식량 원조를 제공한 나라를 침략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미국은 베풀기만 하였을 뿐, 우리나라에서 가져 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1950년 6월 28일 용산기지를 점령한 북한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8월 15일까지는 적화통일을 완수하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부산만 남고 다 빼앗겼을 때 부산에서는 여전히 일상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부산을 지키기 위한 낙동강 전투에서 미군은 스스로 총알받이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미군 희생자의 수가 십만 명에 이르렀을 때 미국 워싱턴 행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방침을 내렸다. 당시 워싱턴이 내놓으려던 휴전안은 한국인 십만 명을 제주도로 이주시켜 대한민국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북한이 동의하는 조건으로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 맥아더 장군이 워싱턴 행정부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 준비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증원을 요청하였다. 9월 15일 밀물 때의 월미도 앞바다 수심은 너무 깊어 건너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적군이 매복해 있을 때는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미군이 전멸할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맥아더 장군 자신도 성공할 확률은 오천분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을 구하기 위해 그 오천분의 일의 확률에 거는 모험을 하였다. 주력 부대가 낙동강 전선에 몰려있던 북한군은 허를 찔리고,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자 북한군은 용산기지에서 철수하여 북한으로 후퇴하였다.

   그리고, 미군과 국군이 용산기지를 되찾았을 때 그것은 중앙청에서 인공기가 내려지고 다시 태극기가 휘날렸음을 의미하였다. 그때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되찾은 자유였던가? 그것은 다시는 영영 되찾지 못할뻔하였던 자유였다. 1975년 4월 15일 월남의 수도 사이공이 월맹군에 함락되었을 때 미군이 다시 왔던가? 아니다. 월남 국민 900만명이 공산군에 학살되는 것을 보면서도 미군은 다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월남전을 위한 맥아더 장군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적화통일 전야에 극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민족이 용산기자에서 북한군을 몰아내고 내고 자주와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50년 9월 28일 아군의 서울 수복 이래 평양 정부는 용산기지에 다시 북한군은 주둔시킬 날을 학수고대하여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3월 1일 기념사에서 노무현이 "이제 용산기지 이전이 결정되었다. 몇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 우리 서울시민들에게 반환될 것이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돌아온다"고 말하였을 때 그것이 워싱턴에는 미군은 용산기지에서 빠리 철수하라는 말로 들렸듯이 평양에는 노무현이 북한군을 용산기지로 초청하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만일, 미군의 9.28 서울 수복이 없었다면, 그리고 여전히 용산기지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다면 공산 치하 세계 최빈국에서 우리의 삶의 질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민 동맹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였다. 미국이 더 이상 골치아픈 한반도 문제에 끌려들어가지 않으려 하였을 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 포로를 석방하는 강수를 써가면서까지 미국으로부터 한미동맹을 받아내었다. 무엇이 한미동맹이었던가?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방을 미국이 책임져 주는 것이었다.

   한미 동맹 없는 한강의 기적이 가능하였을까? 아니다. 지금의 경제력으로도 우리나라는 탄약을 비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군 탄약 지원은 미군이 해주고 있다. 그것은 한미 동맹이 없었더라면 국가 자원이 모두 국방비에 사용되어도 부족하였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 동맹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석유 수입조차 하지 못한다. 해적이 많은 바다에서 미군 해군이 한국 유조선을 보호해 주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 민족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미 동맹이다.

   한미 동맹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국제 무대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견고한 한 어느 나라도 한국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국인에 대한 공격은 곧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큰소리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대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뒤에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미 동맹이 해체된 후에는 설사 적화통일을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고아신세로 떨어진다. 동경대지진 때 무수히 많은 한국인이 일본인들에게 학살당하였었다. 그것이 고아 민족의 신세이다. 노무현의 눈에는 그렇게 한국이 다시 국제사회에서 고아 신세로 되돌아가는 것이 자주요 독립으로 여겨진다는 말인가.

   대통령 임기가 8년에서 조금만 더 초과하면 독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도 한글 제정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십 년, 삼십 년 후를 내다보아야 하는 경제정책에서는 민주주의가 오히려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다. 불과 십년 만에 세계 5위권으로 발전한 한국의 중화학공업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체제 시절이었다. 미국에서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영국에서는 대처 수상의, 그리고 싱가폴에서는 리 수상의 장기 집권이 있었기에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 이렇듯, 현명한 국민은 노무현같은 독재자는 견제하고,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이제 용산기지 이전이 결정되었다. 몇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 우리 서울시민들에게 반환될 것이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돌아온다"고 말하였을 때 아마 김정일은 깜짝 놀라서 이런 말을 하였을지 모른다. "아니, 저 사람 한국 대통령 맞아? 저건 내가 조작해 낸 억지논리인데, 왜 한국 대통령이 내가 할 말을 나 대신 해 주는 거야?" 그리고, 김정일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노무현의 그 발언이 용산기지의 미군 주둔을 위해 일년에 30억불 이상의 세금을 60년간 내온 미국 시민들 편에서는 여간 섭섭하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비록 3월 12일에 가결된 탄핵소추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노무현의 3.1절 기념사야말로 노통이 탄핵되어야만 하는 사유라고 헌변이 명시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있는 것이다. 3월 11일에 작성된 "대통령 탄핵소추에 관한 추가탄핵사유"는 그 법리 진술을 다음과 같이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 3. 1. 3·1절 제85주년 기념사에서 용산주한미군기지의 이전과 관련하여 "간섭과 침략의 상징이던 주한미군기지가 우리국민의 손에 돌아온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침략군으로 간주한 것으로 조약당사자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법률을 준수해야 할 직무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에 관한 헌법 제65조에서 규정하는 법률에는 외국과의 조약도 포함되므로 노무현대통령의 법률위반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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