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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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4월 30일 

반미가 진보라는 논리의 허구: 경제학적 관점

   1990년대에 민주노총이 등장하게 한 발판은 1970~80년대에 도시산업선교회가 마련하였는데, 당시 도산(倒産)이 침투한 기업은 파산(破産)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도시산업선교회는 파업 열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 민노당이 생기고, 민노당이 국회 원내에 진입한 후에야 도시산업선교회 지도자 임영진 목사가 때늦게 철이 들어 운동권도 "근대화 세력이 추진한 경제 개발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1987년의 민주화 운동가들 중에 그래도 티끌 만한 양심은 있는 이들은 열우당과 노사모의 사기극에 대해서 한마디씩의 말을 한다. 국회에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권을 부여한 것은 1987년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을 "의회 폭거"니 "의회 쿠데타"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1987년에 민주쟁취 국민운동대변인이었던 임영진 목사도 4월 30일자(2004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탄핵 소추가 쿠데타라고 하는 표현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좌파가 "이념과 조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임을 꼬집었다. 그리고 임목사는 과거에는 자기가 좌경으로 몰리더니 지금은 수구로 몰리고 있음을 한탄하였다.

   과거에 좌파 운동권의 중심에 있다가 지금은 임영진 목사처럼 애국 우익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것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패러다임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것도 독립운동이나 일본의 패망 때문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발상의 전환 혹은 패러다임 전이 덕택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노사모나 열우당이나 민노당처럼 후진적 집단들이 진보주의를 표방하는데, 서구에서도 19세기 말에 한때 진보주의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본래 사회진화론의 한 갈래인 진보사상은 다시 제국주의를 발전시켰다. 그 논리란 우수 민족이 열등 민족을 보호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 제국주의를 베껴온 것이 한국 정복의 시작이었다. (그러면, 누가 친일파인가? 바로 노사모나 열우당이나 민노당처럼 구시대의 악습인 진보주의를 두둔하는 자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은 국제사회에서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하였다. 화란, 프랑스 등 전 유럽국가가 히틀러의 나치군의 군화에 짓밟혔으며, 영국 도시들에 날마다 독일 전투기 폭탄 투하가 있었다. 히틀러는 그가 아리안족이라고 부르는 독일인이 가장 우량 민족이므로 전유럽은 독일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제3제국 논리를 주장했다. 전혀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을 줄로만 여겨졌던 미국마저 일본 전투기들로부터 진주만 폭격을 당하였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때 인류의 문명에 환멸을 느낀 국제사회는 그 문제점이 제국주의에 있었음을 보고, 제국주의를 폐기처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제국주의를 폐기처분하려는 실행 의지는 2차대전 이전의 식민지 국가들을 독립시키는 것으로 표현되었으며, 그때 역사의 휴지통 속에 버려진 것이 19세기의 낡은 진보주의였다. (그런데, 노사모나 열우당이나 민노당처럼 이런 구시대의 퇴폐적 사상인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집단들이 지금 한국에 있다.)

   한국을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독립군이 아니라, 국제사회 패러다임의 전이였다. 1941년에 조직된 상해임정의 독립군은 단 한차례도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 팔로군 소속 조선의용군이 몇 번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군의 중국 침략에 대항하였던 것이지, 우리 민족 독립운동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2차대전 후 반성한 국제사회가 스스로 과거의 식민지국가들을 독립시키면서 강제로 주권을 빼앗긴 모든 민족들의 주권을 회복시켜 주기로 카이로, 얄타, 포츠담 회담에서 약속했기 때문에 그 국제사회의 약속에 의거하여 미국이 조선총독부를 해산시키고 우리 민족이 주권을 되찾았다.

   그런데, 약소민족들이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독립한지 30년 지나서 새로운 문제가 뚜렷하게 등장하였다. 몇 해전 영국 여왕이 아프리카 국가들을 순방했을 때 대영제국 식민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국민들이 많이 있었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영국 시민권도 있었으며, 생활 수준과 교육수준도 높았는데, 지금은 부족들간의 전쟁 위협만 있을 뿐 독립국으로서의 실속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두드러진 불만은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정치적인 독립으로 생긴 빈자리를 경제적 종속이 채웠다고 말한다.

   신생독립국들의 산업구조의 특징은 농업국이었다. 그들은 커피나 설탕이나 목재 등 1차산업 생산품을 수출하였다. 그러나 전자제품 등 공산품을 수입하여야 했는데, 아무리 원자재를 많이 수출해도 고가의 가공품 수입 때문에 무역 수지는 만성 적자였다. 따라서 강대국은 흑자를 남기는 교역을 점점 더 부자 나라가 되는데, 약소국은 만성 적자에 시달려 점점 더 가난한 나라로 전락되는 악순환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선진국과 후진국이 국제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공평한 게임임을 불평하였다. 이들은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의 경제 자립 대책을 세워놓지 않고 독립시킨 것은 무의미하였으며, 정치적 식민정책이 경제적 식민정책으로 바뀌었을 뿐 사실상 진정한 독립이 실현된 것은 없다고 불평하였다.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심에 미국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였다. 미국은 2차대전 이전의 식민지 국가들을 독립시켜 주고 나서 "미 제국주의"라는 오명을 별명으로 얻었다.

   이처럼 후진국들의 선진국들에 대한 경제적 불만이 후진국형 반미주의의 뿌리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이며, 세계를 먹여 살리는 나라이다. 미국은 10의 효용성을 100으로 늘리는 부의 창출로 외국을 돕는다. 경제적 효용성 증대의 개념을 하드디스크의 크기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하드디스크의 물리적 크기는 그대로 있지만 사이버 공간의 크기는 이미 만 배 이상으로 커졌으며, 계속 무한히 커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시장경제의 효용성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 도울 여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축복의 원천이 되는 청교도 비전을 실현한 국가이다. 그러나 후진국들의 농업국가적 세계관에서는 그것이 이해가 안 된다. 그들은 경제를 닫힌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편이 파이의 큰 편을 차지하면 다른 편 몫은 작은 것밖에 남지 않는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이런 논리의 시각에서는 미국은 후진국들을 착취하는 국가가 되며, 그래서 이런 논리가 선진국의 대표주자 미국에 대한 반미주의를 형성한다.

   지난 총선에 즈음하여 어용방송들은 청년들에게 "당신은 진보주의자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이것은 악랄한 질문이었다. 한국 진보정당의 특성은 반미주의인바, 이것은 미국의 진보주의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다. 따라서, "당신은 반미주의를 진보주의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면 그 응답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반미주의는 퇴폐적 생각일 뿐 결코 진보적 사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반미주의는 운동권의 무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후진국 운동권 논리를 마구 베껴온 것이 민중신학의 주요 골격을 형성하였으며, 임영진 목사가 모 교단의 지원을 받아 1972년에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71년 대선 때 김대중의 경제 공약은 사실상의 반미주의 선언이었다. 당시 박정희와 김대중 두 사람이 쓴 책을 보면 똑같이 서구 자본주의를 관찰하고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국민이 박정희와 김대중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민주주의 선택의 의미가 아니었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박정희는 서구 자본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여 한국 상황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며, 김대중은 자본주의 경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김대중은 시장경제를 평등의 공적으로 여겼으며, 기업인을 착취 세력으로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에 있는 미국을 공적으로 삼는 운동권 논리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의 1972년 10월 유신은 정치적 유신이 아니라 경제적 유신이었다. 그 본격적인 결실이 19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장기적 경제정책은 모두 유신체제 하에서 실현되었다. 중화학공업, 조선, 철강, 전자, 전기, 원자로 등 국가의 명운을 건 산업시설들이 모두 1970년대에 건설되었으며, 모두 성공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1960년 초의 한국은 농토밖에 없던 나라였는데, 서구에서 200년 걸리며, 후진국에서는 시작할 엄두도 못내는 선진국형 산업구조가 한국에서는 유신체제 하에서 불과 십년 만에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1960년대의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으신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가공산업에서 기술자립으로 도약시키려 취하셨던 것이 10월 유신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이 불가피하였던 것은 1971년 이후 이미 한국의 경제 발전을 적으로 삼는 세력이 나타나서 그 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어이없게도 이 어리석은 민족은 한국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동분 서주하셨는데, 사람 속이기 명수 김대중이 여러 사람을 그의 거짓 논리로 속여 운동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 발전의 호기를 놓치면 안되기에 김대중의 금권 선거와 부정선거 운동의 폭을 일시 제한시킨 것이 10월 유신이었다. 따라서 10월 유신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던 환경 제공자들은 김대중 등 당시 한국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던 무리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온갖 몹쓸 짓으로 괴롭히며 한국 경제 발전을 온갖 수단을 다해 방해하던 운동권의 선구자 중에 도시산업선교회 임영진 목사가 있었다. 임영진 목사는 인도와 필립핀의 좌파 운동권 논리의 영향을 받았었는데, 당시 인도와 필립핀 교계에는 문익환 목사의 원조라 부를 만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농민들이 지주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농민 편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노동자 임금을 지주가 정하였기에 달리 임금인상 요인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임영진 목사와 운동권이 보지 못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과 시장경제 정책 하에서 한국 상황은 동남아나 중남미 국가들과 전혀 달랐음을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었다. 동남아나 중남미 국가들에서처럼 지주가 농장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국가들의 문제점은 대지주들이 바로 정치 권력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산업화를 원하지 않는다. 산업화를 하려면 토지 개혁을 해야 되고 토지 개혁을 하는 것은, 자기네가 독차지하고 있는 토지 소유권을 이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선풍기조차 못키게 하였던 청렴결백한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후진국의 대지주이자 정치 권력자들과 혼동하였던 것은 커다란 과오였다. 그리고 산업화 시장경제 하에서 근로자의 임금은 경제성장에 비례한다. 도시산업선교회가 파업을 선동해야 할 이유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날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반미주의 논리도 한국에는 해당될 수 없다. 비록 양김씨 집권 이후 성장 동력의 엔진이 주춤거리기는 했으나 한국처럼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골고루 갖춘 나라는 유럽에도 몇 안 된다. 만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단 몇 년만 더 기회를 드렸어도 우리 민족에는 완전기술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저력도 있었다. 한국은 정치 권력자들이 대지주이며 그래서 산업화를 가로막는 그런 후진국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오를 수 있음을 증명하셨다. 다른 후진국들에는 얼마든지 수출할 수 있는 방대한 지하자원들이 있다. 한국에는 내다 팔 수 있는 원자재가 없기에 원자재를 싸게 팔고 가공품을 비싸게 수입하였다는 불평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원자재조차 없어 수입하는 나라 국민소득이 만불이나 되며, 또 대미 교역에서 항상 흑자를 내는 편은 한국이라는 사실이 분명할진대, 한국은 미국 관세 혜택을 받는 나라일진대, 미국의 무상원조와 대미교역 흑자가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할진대 한국이 마치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나라인양 반미주의를 주장할 근거는 무엇인가? 아프리카 사람들은 학교 시설을 위한 미국의 민간단체 지원 하나만 받아도 감사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좌익 운동권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인가? 아무리 후진국 운동권에서 이것저것 베껴왔다 하더라도 그들의 착시현상은 너무 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얼토당토않은 반미주의를 진보사상인양 선전하는 것은 더욱이나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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