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오디오 설교 김대령 에세이 황효식 칼럼 학술ㆍ생활 정보 추천 사이트

    2004년 5월 9일 

김일성의 박헌영 죽이기와 노무현 검찰의 표적 수사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시인 바이런의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제 정치생명의 목이 잘려 있었습니다. 잘린 목에서 흐르는 피를 구경하며 사람들이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정치인 이인제가 무참하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입니다. 저 프랑스 대혁명이나,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 중국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혁명의 적으로 지목되는 것 자체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한번 올가미가 씌워지면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지난 2월 27일(2004년) 이인제 의원이 국회에서 한 신상 발언의 서두이다. 무엇이 사실인가? 지난 16대 총선에서 원도 한도 없이 돈을 썼다던 노무현이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력을 잡은 후에 의회를 향하여 이런 말들을 마구 쏟아 놓았다: “잡초 같은 정치인이다”, “4급수는 목욕도 하면 안 된다”, “시민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인제 의원은 노통의 그 말을 이렇게 풀이한다. "한 마디로 의회주의를 위협하고 자기의 적대세력을 뿌리 뽑아 없애버리겠다는 살벌한 파시즘의 광기가 묻어나는 말들입니다."

   야당의 그 어느 정치인도 노무현처럼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은 일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16대 총선에서 원도 한도 없이 돈을 썼다던 노무현, 16대 대선 때는 돼지 저금통으로만 선거치루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고 뒤로는 100대 기업에서 수금하였던 노짱은 수사 대상이 아니고, 정치자금 문제에 관한 한 정말로 깨끗한 이인제 의원이 수사 대상일 때 노무현 검찰은 표적 수사의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인제 의원도 노무현 검찰이 반공 우국 정치인들에게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근거를 이렇게 제시한다.

   얼마 전 제1야당의 전 대표를 그 날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위해 정치검찰은 재벌회장의 팩스를 증거로 사용하였다. 만일 노무현 정치검찰의 시각에서는 노무현에게 주는 돈은 죄가 아니요, 야당 의원에게 주는 것만 죄라고 하자. 그렇다 해도 범죄 혐의는 자금을 준 자와 받은 자 양편에 있을 것이다. 돈을 준 자도 범죄 혐의자이다. 그런데, 범죄 혐의자가 검찰에 팩스를 보냈다면 이것은 노무현 정치검찰은 범죄 혐의자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렇듯, 어용검찰이 반공 우국 정치인들을 정치적으로 죽이기 위하여 범죄 혐의자와 내통하였을 때 우리는 이것을 의도적인 표적 수사라고 말한다.

   좌파 정권이 반공 우국 정치인들을 표적 수사의 대상으로 삼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정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고 이인제 의원은 말한다. 그는 이날의 국회신상발언을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끝맺었다: "그들이 제 정치생명을 살해했으나 저는 아직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저들과 싸울 때이며 싸워 이기는 것이 저의 신성한 의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신성한 의무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드리며 저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왜 노무현 정치검찰의 수사는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등 지금보다 훨씬 민주적이던 시절에는 결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왜 노무현 정치검찰의 수사는 여러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는가? 그것은 분명 독재적인 노무현의 정치검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공명정대하지 못한 검찰이 표적 수사를 한다는 것이다. 수사는 공평할 때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검찰이 범죄혐의자인 기업인과 내통하였을 때 이미 특정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전혀 범죄혐의가 없는 이인제 의원에게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그의 전 특보의 처와 장모까지 한밤중에 연행하여 밤새도록 허위진술을 강요하였을 때 이미 그 수사방법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제발 체포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회창씨는 노무현 정치검찰이 체포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상고 출신 노무현의 약삭빠른 손익 계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검찰이 불법 수사를 하는 동안 고위층 인사들과 경제인들이 잇달아 자살을 선택하였다. 아마 자살을 택하신 분들 모두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편파적인 수사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비록 그들 역시 아주 깨끗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가겠다"라고 말한 그들의 백지 유언장 한 구석에는 "사회 정의가 상실된 데 대한 환멸"이 적혀 있는지 모른다. 노무현은 개혁과 혁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개혁은 친공산주의 운동권은 사면해 주고 반공 우국 인사들은 감옥에 보내는 모순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경제를 파탄에 歡蔘?노무현이 산업전사들과 국가 건설의 공신들과 반공 우국 정치인들에게 올가미를 씌울 때 도대체 그 기준은 무엇인가?

   만일 이회창 후보는 한나라당의 정치자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검찰의 궁색한 변명이 진실이라면 똑같은 원칙이 자민련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당 의원들이 받은 수천만 원대의 돈은 떡값이라 문제가 안 된다고 하던 검찰이 야당에 대한 표적 수사를 위해서는 그 말을 뒤집는다 하더라도 이 이인제 의원 전 특보의 문제 가지고 이인제 의원에게 올가미를 뒤집어씌워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검찰의 강제구인을 거부하며 지난 3일(2004년 5월)부터 충남 논산 지구당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농성에 들어간 이인제 자민련 의원은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진출두하지는 않겠다”며 “(법정에서) 저의 무죄가 입증이 되면 검찰은 이제 책임을 져야 되고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6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검찰이 나를 조사도 해보지 않고 미리 사실무근의 혐의내용을 공표해 정치적으로 다 학살해 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이제 와서 내 이야기가 왜 필요하다는 것인가”라며 “법원에 기소하면 거기서 진실을 놓고 검찰과 싸울 것이고, 제가 무죄면 검찰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되고 제가 유죄면 제가 감옥에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끝내 자진 출두를 하지 않을 것이냐는 물음에 “수사의 기본 상황도 어기고 저를 정치적으로 아주 목을 잘라 놓는 일에 나섰던 검찰에 가서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느냐”며 “나는 그런 검찰에 내 발로 협력할 수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정치검찰의 이인제 의원 표적 수사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들은 그 수법이 김일성이 박헌영을 수사한 수법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박헌영은 일제시대 때부터 조선공산당 지도자였으며,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몇 해 동안 남로당 지도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었다. 1949년 3월에도 김일성과 더불어 모스크바 국제 공산당대회에 참석하였던 박헌영이 한국전쟁을 김일성과 공모하였을 때 아마 그의 목적은 북한군의 힘을 빌려 남한 정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었으리라. 박헌영의 남로당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을 무렵 김일성과 회동하여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만들고 정권을 잡았으나 전국은 남로당 손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럼 남쪽까지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만들 방법은 없습니까?"

   "내가 그걸 말하려고 수령 동지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승만 일당은 한 방이면 날아 갑니다. 스타린 동지와 상의해 주시지요."

   "네 알겠습네다. 박헌영 동지."

   6.25 동란은 이렇게 하여 발발하게 된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며 열흘만에 부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정복한다. 인민군의 남침 일주일만에 주일미군이 참전하였으나 러시아제 탱크 부대를 소총으로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낙동강 전선 전투 석달 만에 십만 명의 병력을 잃은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하고 부산 피난 정부가 제주도에서 대한민국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주는 조건으로 북한과 종전 협상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그런 결정에 반대하던 맥아더 장군의 9.15 인천상륙작전이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훗날 두 여중생 사고 부대였던) 미2사단 공병대가 한강철교를 복구하여 서울을 수복하였다.

   노무현의 장인 권오석씨가 그 한 예이듯이 한국전 발발 이래 3개월 동안 죽창으로 한국인들을 학살하였던 남로당 간부들은 후퇴하는 북한군 병력을 따라 월북하였다. 월북한 박헌영을 김일성은 다시 한번 이용한다. 그때만 해도 김일성은 아직 공산주의 국가들 세계에서는 무명 인물이었으며, 박헌영의 이름이 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박헌영을 중국의 모택동에게 보내어 참전 요청을 한다. 그리고 박헌영의 중국 외교가 성공하여 중공군 참전을 얻어낸 다음은 무엇인가? 남한에서도 좌파가 정권을 잡기 위하여 김종필씨를 이용한 다음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지니깐 근래에 그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올가미 씌우기 원조는 김일성이었다. 김일성이 자기보다 실력이 월등한 박헌영을 2인자 자리에 앉혀 주었는가? 아니다. 그는 친미주의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죽였다.

   1952년 12월 15일, 김일성은 노동당 제 5차 전원회의에서 핵폭탄과 같은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종파분자들은 당과 정권기관에 파고들기 위해 과거의 혁명생활에서 깨끗지 못한 것을 서로 엄폐해 주며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분자들을 묵과할 수 없다! 종파주의 잔재를 그냥 남겨둔다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들과 우리의 형제적 당들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의 마지막 길은 적의 정탐배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에 우리 당은 심심한 주의를 뭏??않을 수 없다!" 1953년 2월 박헌영은 연금당했다. 동시에 이승엽, 조일명, 임화, 박승원, 이강국, 이원조 등 남로당의 지도부들이 검거되어 7월 30일 기소되었다. 8월 3일 공판이 시작되었고, 8월 6일 남로당 간부들이 싹쓸이 사형되었다. 오히려 남한 이승만 정부에는 감히 남로당 지도부를 건드릴 힘이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공산당 지도부가 남한 공산당 지도부를 사형에 처하였으며, 마침내 박헌영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박헌영이 이년 동안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미제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거부하자 김일성은 고문실에서 박헌영을 빨개 벗기고 여러 마리의 세퍼트를 풀어 물어뜯게 했다. 그제야 허위자백 요구에 응한 박헌영은 1955년 12월 15일 초췌한 표정으로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9년부터 체포될 때까지 미국의 간첩으로 있었다…." 그리고 12월 17일 그는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이렇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수법은 좌파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민족성과도 관련이 있다. 몇몇 뛰어난 학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교의 치명적인 단점은 과학 인재에 대한 멸시였다. 어쩌다 과학 인재가 등장하여도 중인 이상으로 신분이 향상되면 이상한 명분론의 잣대로 올가미를 씌워 사형시켰다. 그래서 개화가 늦은 것이, 즉 일본보다 늦게 근대의 객관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것이 망국의 요인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객관성을 상실한 좌익의 재판을 인민재판이라고 부른다. 즉, 인민재판이란 주관주의에 의거한 재판이다. 그런데, 이런 인민재판의 습성은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예로써, 518 광주사태가 왜 일어났는가? 바로 1980년대 봄의 김대중 홍일병들이던 운동권의 주관주의 때문이 아니던가? 전혀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일이 없었음에도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려 5월 15일 십만 명의 시위대에 서울역 회군을 선동한 것이 5월 18일 광주사태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그리고, 서울발 유언비어를 정말로 믿은 광주의 좌파 혁명가가 폭동을 선동하면서 덧붙인 광주발 유언비어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사태 진압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적인 사실은 5월 18일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4시반까지 폭도들이 광주 파출서들을 화염병으로 파괴하자 전남도지사와 광주시장의 요청으로 광주 사람 정웅 장군이 오후 4시 30분에 광주 향토사 소속 공수부대에 진압 작전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관주의는 전혀 그 진압 작전과 관계가 없는 특정인의 인격 학살을 목적으로 유언비어들을 조작해 낸다. 자, 광주발 유언비어를 전국 대학가에 확대하여 퍼뜨린 것은 서울의 운동권이었다. 그리고 당시 서울의 운동권들 중심에 이해찬과 유시민과 심재철 등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광주사태 진압 명령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내렸다는

   유언비어들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있느냐고 물으면 된다. 그리고, 만일 김대중의 홍위병들이 아무런 객관적 증거 없이 그런 소문들을 대자보로 제작하여 전국 대학가에 뿌렸던 거라면 좌파 정권은 운동권 시절부터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해찬의 교육 대란이 그 예이듯이 좌파 정권의 정책들이 하나같이 대실패작으로 끝난 것도 결국 우연이 아니다.

   2002년의 6월 13일의 두 여중생 장갑차 사고 역시 김대중 좌파 정권의 직무 태만에 그 원인이 있지 않았던가! 사실, 한국군 장갑차 압사 사고는 비일 비재하였으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반세기 동안 없었던 미군 장갑차 사고가 왜 김대중 정권 하에서 일어났는가? 경기도 파주에는 미군 훈련장으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평시에 민간이 이용이 허용되는 도로들이 있다. 그런데, 미군은 일년에 한두 차례 훈련이 있을 때 반드시 한국 정부 관련 부처에 미군 훈련 사전 예고 요청을 한다. 즉, 훈련이 사전 예고된 지역에서는 장갑차가 통행하는 시간대에 민간인 접근이 통제된다. 그런데, 기강이 해이해진 김대중 정부는 미군의 요청을 받고도 광적면 훈련 지역 주민들에게 사전 예고를 해주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렇게 사전 예고의 간단한 직무마저 태만하여 사고 발생에 책임이 있는 김대중 정권은 그 사고를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이용하기 위하여 법대위를 지원하면서 반미촛불시위를 불법선거운동에 이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사고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차들이 달리는 도로에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 사고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장갑차 훈련 시간대에는 민간인이 훈련장을 도로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진대, 사고 책임은 분명히 한국인들 편에도 있건만 범대위는 운전병 마크 병장과 관제병을 살인마로 모는 인격 학살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억지 주관주의를 미국은 객관적 해명으로 당해낼 수 없었다. 그것이 한국의 승리인가? 아니다. 그런 야만적인 억지로 이기는 것은 스스로 열등 민족임을 세계에 드러내는 것이다.

   문인이자 "김일성과 박헌영" 연구가인 송우 씨는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된 박헌영 씨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그러면 민족을 피비린내 나는 살륙장(殺戮場)으로 내 몬 박헌영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던가. 공산주의자들은 거짓과 뒤짚어씌우기의 선수들이다. 박헌영은 미제국주의자의 스파이로 암약하였다는 거짓 반역죄(反逆罪)를 뒤짚어 쓰고 황천지객이 되었다. 박헌영은 통일 조국이라는 꾀를 내었으나, 결국은 민족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죽을 꾀를 내었던 것이다. 그것도 총살(銃殺)! 말이다.

   남로당 간부들이 모두 처형되었을 때 중국공산당 출신, 이른바 연안파는 밥그릇 경쟁 대상이 줄어들었음을 흐뭇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북한산 토종 빨갱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안파도 모두 처형당했다. 무정(포병사령과)과 방호산(6사단장) 등 연안파 장군들을 차례로 제거한 뒤 1956년 유명한 "8월종파사건"을 통해 김두봉(최고인민회의 위원장), 최창익(부수상) 등 연안파 거물을 쫓아냈다. 그러나 김일성 자신은 북한산 토종 빨갱이였던가? 아니다! 그 역시 소련파였다. 그렇다면, 소련파는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 천만에! 소련파도 하나 하나 차례로 정치범수용소와 아오지 탄광에 보냈다. 이런 방법으로 1956년에 그는 허가이(조직담당 비서)등 소련파와 몇몇 빨치산 장군들을 숙청하였던 것이다.

   노무현씨 장인 권오석씨는 공산주의를 포기하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한국 정부의 여러 차례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가 김일성이 어떤 표적 수사로 박헌영에게 미국 스파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사형하였는지 알았더라면 그는 아마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대한민국 시민이 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사위 노무현이 정치적으로 표적 수사를 이용하고 있다.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였다. 노무현의 정치검찰이 이인제 의원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김일성은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실에서 박헌영을 빨개 벗기고 여러 마리의 세퍼트를 풀어 물어뜯게 했다. 노무현 정치검찰은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언론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인격 학살을 하였다.

   노무현의 어용검찰이 표적 수사를 할 때에 생기는 문제는 객관성을 상실한 주관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정의의 파수군이 되어야 할 검찰이 권력자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때 공권력이 독재를 위한 도구로 악용되며 정의가 짓밟힌다. 편파 수사에 대한 무언의 항의로 자살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인제 의원은 법정의 객관성에 호소하여 진위를 가리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는 6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법원에 기소하면 거기서 진실을 놓고 검찰과 싸울 것이고, 제가 무죄면 검찰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되고 제가 유죄면 제가 감옥에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렇다. 이처럼 노무현 정치검찰의 표적 수사가 객관성을 상실하였을 때는 법정의 객관성에 호소하는 것이 이 땅에서 정의를 지키기 위한 대안일 것이다.

역사학도    
www.study21.org    

황효식 목사 칼럼 김대령 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