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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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20일 

노무현의 수도 이전은 수도권 방어 의지의 결여인가?

이인제 의원의 옥중서신 "푸른 물결에 띄우는 편지(10)"은 이렇게 시작된다:

A형! 수도이전 문제가 시끄러워질 것 같지 않은가요. 어제 발표된 네군데 후보지를 보니 바로 내고향 논산시 상월면(내 출생지 연산면과 붙어 있다)과 아내의 고향인 공주시 계룡면(바로 출생지이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분도 되고 기대도 큽니다. 그런데 마치 가마솥의 물이 끓기 시작하듯 이 문제로 국론이 달아오르니 걱정이 커지는군요. 이 정권이 지난 대선 때 공약을 했고, 총선 때도 한껏 이용했으니 속된 표현으로 "죽어도 고!"하는 모양입니다.

선거가 국가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국가가 선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김대중이 그 거두인 사이비 민주운동가들의 문제는 그 순서를 뒤바꾼다는 사실이다. 충청도 표를 얻기 위해 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었던 노무현이 국가의 장래야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고 단지 총선용 공약 이행을 위해 졸속 수도 이전을 하려고 한다면 바로 그것이 선거를 위한 정치이다. 이인제 의원의 다음 글도 노무현 정권이 지금 정도(正道)를 벗어나 있음을 이렇게 지적한다:

...그 정치적 의무를 다하는 정도(正道)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우선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수도이전의 타당성에 관한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야 되겠지요. 또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건설비용의 규모에 관하여도 과학적 접근을 통해 해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국민적 합의 없이 부지를 확정하고 절차를 진행시키다 중도에서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불행은 누가 감당해야 합니까.

이 정권은 3년 남짓이면 끝나는데, 수도이전은 최소 십 수년이 걸리는 사업입니다. 중도에서 중단이라도 되는 날이면, 해당지역은 정신적·경제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고, 국가적으로도 수습할 수 없는 혼란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정권은 정도를 밟지 않고 국민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려 합니다. A형, 그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노무현이 자기 멋대로 일을 벌려 놓으면 그 다음 역대 정부들은 만사를 제쳐 두고 수도 이전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여기 브라질 수도이전 실폐 사례가 주는 교훈이 있다. 1960년부터 시작된 브라질의 신수도 브라질리아 건설은 물류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추진하다가 나라 경제가 주저앉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당시 브라질 경제는 아주 건실하였기 때문에 수도 이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었으나, 실제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갔다. 그리고 물류 조건이 나빴기 때문에 인구 이동 효과는 없었으며, 수도의 기능을 할 만한 경제 중심지도 되지 못하였다. 당시 일던 브라질 경제 붐을 수도 이전이 가로막았으며, 그 이후로 브라질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었다. 경제 구조가 튼튼하였을 때의 수도 이전도 이렇게 한 나라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오늘의 한국 경제 상황에서는 이것은 한층 더 신중을 요하는 문제일 것이다.

1980년대의 브라질 경제가 수렁에 빠지게 하였을 만큼 실패한 1960년대의 브라질의 천도에는 두 가지 분명한 목표나마 있었다. 즉,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 건설과 수도를 국가 중심지로 옮긴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옛 수도가 한쪽 해안에 위치해 타지방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노무현에게는 그런 목표조차 없다. 단지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한 수도 이전이라면 그 비용이 너무나 엄청나다. 차라리 지방 경제를 발전시키면 해결될 일을 노무현은 무모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노무현의 천도 계획은 경제적 비용 못지 않게 국방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수도권을 경비해 주던 주한미군을 후방으로 철수시키거나 영구 철수시키는 노무현 정권이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하려 할 때 그것은 북한의 남침시 수도권 방어 의지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도권 방어 의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를 우리는 2차 대전 중 러시아인들의 결사적 수도권 사수에서 찾아본다.

레닌그라드 구백 일의 포위라는 민족적 경험이 있다. 구백 일이나 독일군에게 포위 당해 굶주리면서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은 시민 정신이 레닌그라드를 지켰고, 모스크바 방파제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독일의 단기전 전략에 장기전으로 버팀으로서 최후의 전승국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구백 일의 포위에서의 레닌그라드 시민 정신의 승리는 히틀러의 세계 정복을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데서, 그리고 위기의 때에 그들의 미술 문화재를 최우선적으로 지켰다는 데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이다.

때는 천하 무적을 자랑하며 승승 장구하는 독일 나치군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전 유럽을 제패하던 1941년 여름이었다. 그때 가히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을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히틀러는 결정적인 두 가지 전략상의 큰 실수를 한다. 그 첫번째 실수는 1940년 여름에 히틀러가 영국을 동맹국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는 오판을 한 나머지 영국 공격의 최적 시기에 늦장을 부렸던 것이고, 그 두번째 실수는 1941년 여름에 너무 서둘러 러시아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해 6월 히틀러는 러시아의 스탈린과 맺었던 불가침 조약을 깨고 기습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때 그의 장성들은 겨울 전투복을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히틀러는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라며 막무가내였다.

무적의 철갑 부대를 앞세운 독일군 대병력이 파죽지세로 모스크바 어구까지 진군하자 러시아는 풍전 등화의 위기에 처하였으며, 스탈린의 크렘린 궁에서는 단 두가지 방도밖에 없는 듯하였다. 하나는 폴란드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항복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수도 모스크바를 버리고 피난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강한 외적의 침입이 스탈린에게는 오히려 내부의 정치 위기를 해소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당시 러시아의 국내 상황은 어떠하였던가?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 동안 무려 이천 만 명의 러시아인이 희생되었다. 자신의 어제의 혁명 동지들과 신복들에게 모두 반란죄를 뒤집어 씌워 차례로 처형하는 이 의심 많은 권력자의 테러 통치에 국민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스탈린의 병적 숙청에 불안감마저 느낀 러시아인들의 반정부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바로 이때 독일군의 침공으로 모스크바가 함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탈린은 피난 가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구국 전선의 선봉에 서면서 러시아인의 애국심에 호소한다. 이래서 러시아인들은 스탈린은 밉되 먼저 나라부터 구해야겠기에 손에 무기를 들고 전선으로 모였다.

모스크바를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러시아 붉은 군대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독일군 사령부는 모스크바를 고립시키기 위해 그해 9월 8일에 러시아 옛수도요, 모스크바 관문인 레닌그라드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어 공격한다. 독일군은 남쪽과 서쪽에서, 그리고 독일의 연합군인 핀란드 군은 북쪽에서 협공하여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포위하였으며, 이리하여 세계 제2차대전사에서 길이 기억되는 900일의 포위가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의 도시들은 동서 건축 양식의 조화로 유명한데, 그 중 특히 걸출한 곳이 구소련 시절의 지명이 레닌그라드(Leningrad)였던 뻬쩨르부르크(St. Petersburg)이다. 뻬쩨르부르크는 동서 건축미의 조화도 뛰어날 뿐더러 고전미와 현대미 역시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한 예술 세계인 것 같은 데다 도시 속에 유럽 풍의 고궁과 아름다은 자연 경관이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는 도시이다. 더구나 그 화려함과 동서 고금의 값진 미술품 소장의 규모에 있어 세계 최대인 예레미따지 박물관도 이 도시에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러시아의 애수의 역사가 서려 있다.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 동안 이미 많은 시민을 잃었던 이 도시에 장장 구백 일의 포위와 그에 얽힌 서민들의 갖가지 사연이, 그리고 장렬한 시민 정신의 승리의 일기가 있다.

기습을 감행한 독일의 철갑 부대가 시시 각각 레닌그라드를 향해 좁혀 오고 있었을 때 아직 단 한번 시베리아 행 열차를 운행할 기회가 있었다. 피난 열차를 운행할 단한번의 기회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열차에 사람이 타지 않았다. 그들은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이었다. 그들은 먼저 그 열차에 예레미따지 박물관의 미술품을 실어 독일군의 군화가 미치지 못할 안전한 곳에 보냈다. 그리고 장정은 물론이요 여인을 포함한 전 시민이 총동원되어 밤샘을 하며 도시 외곽에 대전차 방어 요새를 구축하였다. 제 아무리 독일군의 철갑 부대라 하더라도 비 오면 땅이 진흙 바다요 금방 겨울이 와 탱크가 빙설 위에서 얼어붙는 러시아의 천연 환경이 레닌그라드 시민의 편을 들어주는 데는 별 수가 없었다.

만약 이처럼 러시아인들에게 수도 및 수도권 방어를 위한 결사 항전이 없었더라면 분명 러시아는 독일군 탱크 앞에 무너졌을 것이다. 스탈린은 비록 독재자였지만 모스크바를 버리고 임시 수도로 옮기자는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모스크바를 지켰기에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 만일 당시 러시아가 모스크바를 버리고 임시수도로 옮겼다면 그것은 러시아인의 패배를 의미하였으며 국민의 사기가 꺾인 러시아는 독일에 점령당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스탈린과 정반대의 방향에서 노무현이 독재자적 고집을 부리고 있다. 노무현이 수도를 충청도로 옮기려 하는 것은 만약 수도이전 도중에 북한군이 남침하면 노무현에게는 수도권 방어 이유가 줄어듦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을 때 주한미군을 전방에서 철수시키고, 주한미군 일부병력을 영구 철수시키고, 북한군의 남침 통로 공사를 해주고, 온 국력을 불필요한 수도 이전에 소모케 하려는 노무현의 속셈은 무엇인가? 왜 노무현은 하필 북한이 적화통일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을 때 수도 이전을 하려 하는가? 그리고 유사시 그에게는 수도권 결사 방어 의지가 있는 것인지 국민은 궁금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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