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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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4월 29일 

가난의 문제에 대한 박정희와 운동권의 시각차

   "사람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이 질문에 대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의 운명은 신들의 장난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 신화가 발전하였다. 인간의 고통의 책임은 신들에게 있다고 믿었던 그리스인들과 달리 불제자들은 고통의 책임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간아! 견물생심(見物生心)이 백팔번뇌(百八煩惱)를 일으키는구나. 마음의 평정을 원하는 자여! 속세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버려라"고 말한다. 절이 깊은 산 속에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고통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마음 속의 죄의 문제이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지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생수가 솟아나며, 황무지가 변하여 옥토가 될 것을 희망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는 사회는 발전한다.

   이렇듯,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며, 기독교인은 고통의 문제에 대한 책임 전가를 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고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른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서구 민주주의의 바탕에 있는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하여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 민주화 운동가들이 말하는 개혁은 제도의 개혁이다. 그러나 청교도 정신에 바탕은 둔 미국 민주주의는 도덕과 윤리에 호소한다. 도덕성에 대한 법적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도덕률의 잣대가 미국 민주주의를 움직인다.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열심히 벌어 다른 사람을 위해 쓴다는 록펠러 정신이 오늘날도 미국 재계를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 한국인의 민속에서는 고통의 책임을 어디에 두는가? 예로부터 우리 민속에 풍수지리설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설은 가문의 길흉(吉凶)이 명당 자리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풍수지리설은 모순은 1910년의 한일합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에서 금방 드러난다. 경복궁과 한반도가 명당자리가 아니었기에 우리민족이 그런 극치를 당하였는가? 풍수지리설은 일차적으로 책임전가의 세계관이다. 우리가 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는가? 유교 문명을 버리기 아까워했던 조선인들과 달리 버릴 것이 없던 미개 민족 일본인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서구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설만큼 우리 민족은 먼저 개화된 일본에 뒤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책임전가의 구습을 버리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열우당이 꾸미고 있는 친일청산법의 근본적 문제점도 바로 그런 책임전가의 논리에 있다.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에서도 책임전가가 가능한가? 그런데 한국 좌파 운동권의 경제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임전가의 논리이다. 어째서 노무현에게 한국 경제를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는가? 그것은 그는 자본가를 서민의 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자본가를 서민의 적으로 보는 것이 서민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으며,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경제관을 가진 노무현씨가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노사모란 부익부 빈익빈 논리를 주장하는 무리들의 정치클럽이며, 부자 때문에 서민이 못산다는 운동권 논리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경제학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런 억지 논리가 생겼다.

   일단 196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시장경제가 한국에서 정착되기 시작한 후에는 극단적 부익부 빈익빈의 순환은 불가능하다. 좌파 운동권은 후진국 운동권의 비주류 경제 이론을 베껴왔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한다. 그들은 중남미와 동남아의 몇몇 농업국과 산업화된 한국의 시장경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우를 범한다. 농업국에서는 1%의 대지주가 99%의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농업경제의 특성은 자본 투자가 필요 없으며, 대지주가 노동력을 얼마든지 착취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과 시장경제를 발전시킨 한국은 농업국 시대를 벗어난 나라이므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시장경제에서 성장과 분배는 양 수레바퀴이다. 즉, 성장과 분배는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정비례한다. 만일 우리가 선택한 것이 공산주의가 아니라 시장경제라면 분배는 성장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소련은 미국보다 땅도 넓고 지하자원도 많고 과학과 공업기술 수준도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미국과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러시아가 공산주의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시장경제에는 경제적 효용의 증대가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땅 동일한 자원을 가지고도 시장경제를 하면 온 국민이 고소득의 혜택을 누린다. 그리고 1%의 자본가가 99%의 재산을 차지하는 일이 시장경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누가 99%의 재산을 차지하는 그 순간 파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1%밖에 차지?못하는 빈익빈 현상은 소비자가 사라짐을 의미하며, 고객 없는 기업은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금방 무너진다.

   시장경제란 생산자와 소비자가 경제 성장의 혜택을 자연스럽게 나누어 가지는 경제 모델을 말한다. 자본가라고 보통 사람보다 백 배, 천 배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에서 자본은 투자 자본을 말한다. 그리고, 투자가 있어야 고용이 있다. 고용이 있어야 소득 분배가 있고, 소득 분배가 있어야 소비자의 지출이 있고, 소비자의 지출이 있어야 생산자는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순환이 잘 되어야 경제가 건강하다. 미국도 이런 순환 중 하나가, 즉 투자가 고장났던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대공황의 늪에 빠져 있었으며, 그런 순환이 없던 러시아는 1990년에 경제의 몰락과 더불어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었다.

   만일 자본가와 노동자가 서로 적대 관계에 있다면 미국에서 자본이 무너졌을 때 노동자들은 호황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무너지니깐 노동자들의 가정은 끼니를 이어가기 무척 어렵게 되고 미국이 국가적 위기를 당하였다. 즉, 자본가와 노동자는 한 배를 탄 것이다. 그리고, 자본이 살아나는 만큼 노동자의 월급 봉투는 두터워지며, 노동자의 월급 봉투가 두터워지는 만큼 자본이 살아난다. 이렇듯 성장과 분배는 양 수레바퀴이기에 시장경제에서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은 전혀 불가능하다. 다만 일시적으로 빈부 격차가 조금 벌어지는 것은 GNP 이 만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한 성장의 관문이며, 성장 후에 분배는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그리고 오히려 고소득 시대에 분배의 평등이 안정성 있게 실현된다. 이것이 시장경제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김영삼 대통령 이래로 자본가를 적으로 삼아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잘 사는 놈들 혼내주겠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기업을 해체시키겠다"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그들이 자본가 때문에 서민이 못산다고 생각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출발하면 자본가는 착취세력이라는 논리로 빠져든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가 서민을 착취하여 서민이 못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한국 경제를 병들게 하는 원인 제공은 그런 운동권 논리에 있다. 자본을 부정할 때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투자는 위축될 때 일자리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병의 원인은 여기에 있음에도, 더욱더 병을 키우는 운동권 논리가 열우당이 거대 야당이 되게 하고 민노당을 국회 원내에 진입시켰다.

   그러면 기업주 때문에 노동자가 못산다고 주장했던 노무현과 달리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기업인을 서민 경제의 동반자로 삼으셨는지 몇 가지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대한민국 사상 가장 민주적인 선거였던 1963년 10월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를 물리치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는 오징어 수출 외에는 전혀 수출이 없었으며, 그나마 일제시대부터 중국 동북부에 거래처가 있었던 것으로서 수출이라고 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적었다. 사실상 수출은 전혀 없었으며 수입은 엄청나게 많았다. 당시 미국은 마샬플랜으로 전 유럽 국가들에 지원하던 것보다 더 많은 무상지원을 한국에 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것을 모두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하는데 써버렸다.

   이병철씨의 삼성이 우리나라 외화벌이 효자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부터였던가? 바로 5.16군사혁명 때부터가 아니던가? 대한민국이 건국되던 1948년에 이병철씨가 삼성물산공사를 세웠다. 그러나, 오징어를 조금 수출한 것 외에는 완전 수입전문 수입상이었다. 처음에는 면포 수입으로 시작하여 곧 수입 품목이 100 여 품목으로 넘었으며, 수입은 국내에서 10배의 폭리를 남기는 장사였다. 당시 한국의 거부란 수입상을 말하였으며, 수출은 전혀 없었고, 이에 실망한 미국은 마침내 무상원조 중단 통보를 한국 정부에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5.16혁명이 일어났으며,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수입상 거부들에게 부정축재재산을 국가에 자진 헌납할 것을 권하였다. 자, 만일 그것이 명동 메트로 호텔에서 수입상 경제인들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전부였다면 그것은 박정희 역시 부자 때문에 빈민이 생긴다는 논리를 인정하였던 셈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지금 부유세 등 여러 법안으로 민노당에서 하려고 하는 일들을 박정희가 일거에 해치웠다는 말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병철씨와 정주영씨 같은 기업인들이 박정희를 그토록 열렬하게 존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며칠 후 수입상 거부들과 최고회의 의장간에 다시 있었던 면담 내용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날 대화에서 박정희는 기업인들이 수입을 중단하고 제조업 혹은 수출 산업에 투자하면 재산 몰수나 환수는 없을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박정희의 이 대안에 적극 동의한 기업인들은 그렇게만 해준다?기업인들 스스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공장들을 지워 국가에 보답하겠다고 간청하였다. 곧,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투자 명령"이라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수입상 거부들에게서 부정축재라는 오명을 풀어주었으며, 약속대로 기업인들은 다투어 공장을 짓기 시작하였다. 즉, 박정희는 경제의 패러다임을 수입에서 수출로, 농업에서 산업으로 바꾸었으며 이 새 패러다임에서는 기업인이 서민의 적이 아니라, 서민 경제의 동반자가 되었던 것이다.

   전세계시장을 끊임없이 조사하시던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과 전자 산업 전망이 밝은 것을 내다보시고 현대의 정주영씨를 불러 조선 사업을 시작하라고 했다. 정주영이 돈도 없고 기술도 자신도 없어서 그 일만은 못하겠다고 버티자, 차관도입 지급보증을 정부가 서주고 대통령과 김학렬 총리가 밀어준다는데 그것도 못하느냐 하면서 외국으로 내쫓았다. 그래서 정주영이 영국은행에 가서 조선 사업을 할 차관 요청을 하니 담당자가 어이가 없었다. 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 프로젝트 한 장 없이 달랑 백사장 사진 한 장 내밀고 여기다 조선 공장 설립하게 차관을 지원해 달라는 것 아닌가? 조선 사업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라 동양인이 차관 요청을 하니 영국은행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점잖게 거절하기 위해 정주영씨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네 조선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느냐?" 그 순간 정주영씨는 순발적으로 주머니에서 5백 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북선 그림을 보면서 한국은 세계 최초로 잠수함을 생산한 나라라고 하였다. 그 거북선 그림을 본 영국은행은 O.K. 하였으며 한국의 세계적인 조선사업과 현대중공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삼성의 이병철씨를 부른 박정희 대통령은 전자와 자동차 중 하나 택일하라. 언제까지 설탕장사만 할 것이냐고 다그치셨다. 기술 문제 때문에 엄두를 못 내던 이병철씨는 박정희 대통령에 떼밀려 전자산업을 시작했고 정부는 삼성이 일본 굴지의 전자회사들과 기술 제휴하여 콘서트 공장을 차리도록 도왔다. 이렇게 해서 삼성전자그룹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여 외화벌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렇게 하여 구멍가게 혹은 천막공장 규모의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업들이 되었다. 그러면, 빈부 격차가 더 심해졌는가? 아니다. 박정희가 기업인들을 서민 경제의 동반자로 끌어들이기 전에 거부와 빈민층으로 양분되어 있던 한국 사회에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심지어 산업과 관계가 없는 농가 수입까지 올랐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적으로 그 혜택이 온 국민에게 고루 미치게 되어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함께 발전한다. 따라서 만일 누가 민주화운동가를 자처하면서 시장경제를 부정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박정희 대통령이 건강한 시장경제를 발전시켰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자본주의가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김씨와 노무현처럼 서민의 가난의 책임을 기업인들에게 전가하는 시각에서 출발하면 올바른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같은 기업인을 박정희 대통령은 애국 기업인이 될 수 있는 자로, 서민 경제의 동반자로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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