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탄핵 정국 바로보기 위한 명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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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3월 17일 

노무현 셈법의 경제학적 범죄

    ..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을 단지 그의 사전 불법 선거운동이 탄핵 사유냐 아니냐의 문제인 줄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이 있다. 만일 단지 그뿐이라면 노사모가 저렇게까지 탄핵 반대 촛불시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노사모는 인기 연예인 팬클럽과 다르다. 노사모는 같은 경제관을 가진 사람들이 노무현을 대표로 내세운 정치 집단이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근현대 한국인의 경제관은 박헌영의 경제관과 박정희의 경제관 양대 산맥으로 갈라진다.

    해방 정국에서 남로당 지도자였던 박헌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북한 공산주의가 러시아 공산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하였던데 비해 남한의 공산주의는 본래 경제관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아직 우리 민족에 민주주의 지도자가 없었던 일제 시대에 그는 가장 추종자가 많았던 사상가였다. 역사가들은 박헌영을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공산주의 철학자로 보고 싶어한다. 따라서 비록 그가 조선공산당(후에 남로당이라고 불림) 지도자였지만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만 단정짓는 것에 역사학도는 신중을 기하고 싶어할 것이다.

    박헌영의 공산주의 철학은 당시 우리 민족의 경제 구조와 관련이 있었다. 훗날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중산층이 등장한다. 그러나, 구한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경제 구조는 지주와 소작농으로 구성된 농업국이었다. 즉, 땅을 가진 자와 땅이 없는 자로 양분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주의 땅을 몰수하여 서민에게 나누어준다는 공산주의 선전은 일제 시대에 그 확산 속도가 빨랐다.

    박헌영의 관점에서는 해방 정국 이후의 우리나라 경제 모델은 공산주의 경제였다. 그리고 만일 해방 후 3년간의 미군 군정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김일성이 이끄는 러시아 소속 조선인 군대와 중국 팔로군 소속 조선인 군대와 상해임정의 광복군과 박헌영의 공산당 조직간의 정권 다툼을 위한 내전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만일 그 내전을 피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상해임정은 국내 기반이 없었으므로 남한에는 박헌영을 초대 주석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건설되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수출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 가능성을 찾았던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관과 대조적인 것이 박헌영의 경제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관은 샘물 경제관이요, 박헌영의 경제관은 항아리물 경제관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가 경제 재화가 샘솟게 하는 샘물 경제이다. 그러나 박헌영에게는 국가 경쟁력 발전을 통한 수출 개념이 없었다. 그는 단지 항아리에 담긴 물을 퍼서 똑같이 나누자고 제안할 뿐이었다. 항아리물을 전부 소비한 후의 경제 대책에는 그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항아리물 경제관을 우리는 좌익 경제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만일 박헌영이 집권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건설되었다면 지금껏 우리 민족이 생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만일 남한에 공산주의 국가가 건설되었으면 남한은 영영 농업국으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데, 재래식 농법으로는 500만명분 이상의 식량 생산을 하지 못하며, 지금도 우리의 식량자급자족율은 30% 미만이다. 더구나 미국이 한국 정부 예산의 80%를 20년간 무상지원했었는데도, 우리나라 GNP가 고작 80불 미만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출이 전혀 없고 석유까지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 경제는 도저히 지탱될 수 없었다. 만일 공산당이 집권했다면 4분의 3 이상의 국민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통계학적 결론이 난다.

    만일 박헌영은 우리가 빨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학자풍이었다면 남로당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항아리물 경제관에서는 계급 투쟁의 세계관이 나온다. 모두가 똑같이 소유하자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항아리물 경제관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항아리물 경제관에서는 경제의 효용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없기 때문에 사회를 계급 투쟁으로 몰고 가며 사람의 희망을 좀먹는다. 샘물 경제관에서는 누구에게나 꿈이 열려있다. 소 한 마리 끌고 남하한 정주영씨가 미8군에서 건설 용역을 따내 세계적 현대 기업을 따내었으며,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조중훈씨는 미8군에서 한진버스 용역을 따내 대한항공 등을 거느린 세계적 물류 사업가로 성장하였다. 김우중씨 역시 무일푼에서 출발하여 수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세계적 기업가가 되었다.

    항아리물 경제관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혹은 좌익 이데올로기는 강제로 평등 사회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정주영, 조중훈, 김우중씨 같은 서민들이 세계적 기업가가 되는 길을 막는다. 항아리물 경제관은 사람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간다. 항아리물 경제론자들은 서민 편에 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항아리물 경제론이 한 국가를 지배하면 국가 경쟁력은 날로 퇴보하고 사람들은 사회를 계급 투쟁 세계관으로 바라보게 된다. 본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는 짝을 이루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민주화 운동권 정부 하에서 한 시대의 산업전사들이 기득권자들로 심지어 착취자들로 매도된다. 샘물 경제 시대에는 자발적인 나눔이 있었는데, 항아리물 경제 구조에서는 가진 자는 향락에 낭비하고, 서민은 더욱 소외되는 모순이 생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는 경상도 한 농촌의 농부였다. 그 역시 남로당 간부였으나 그것은 어떤 이데올로기였다기보다 경제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오석씨도 남로당원이 되기 전에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박헌영씨가 한 시대의 한국의 사상가였으며, 권오석씨도 본래 선량한 농부였다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기와 한 동네에서 자라났으며 친하게 지내던 동네 사람 9명을 비공개 인민재판하여 즉석에서 죽창으로 사형에 처하는 일을 하게 하였을까? 무엇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의 문제인가? 열심히 일해 그 열매를 거두었을 때 기득권자로 몰려 처형 대상이 되며, 사람들은 자기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으로 부를 차지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만일 권오석씨가 전향하면 새 삶을 살게 할 기회를 주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였는데도 그는 거절하고 스스로 16간의 옥살이를 선택하였다가 옥중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가 민주주의로 전향하기를 거절하였기에 그의 딸 권양숙씨(현 영부인)는 동네에서 빨갱이 딸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다. 그러면,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끝까지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공산주의를 위해 살며 공산주의를 위해 죽는 자가 되게 하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는 자기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로 전향한 황장엽씨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권오석씨가 옥중에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두가지 사실이 있었다.

    첫째로, 권오석씨는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이 김일성에 의해 사형당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듯하다. 1950년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사흘 만에 서울이 수복되고 북한군 보급로가 끊기자 박헌영과 남로당 간부들은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한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권오석씨처럼 경상도 지역에 있던 남로당 간부들은 미쳐 북한으로 도주하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북한으로 도주하였던 남로당 간부들은 모두 김일성에게 사형당하였다.

    사실, 해방 정국 때 김일성과 박헌영은 서로 친분이 두터웠으며, 삼팔선이 가로막혀 있음에도 러시아 혹은 북한에서 자주 회동을 가졌었다. 그리고 1950년 봄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회동하여 요즘 한총련이 김정일과 주고 받는 대화와 비슷한 내용의 대화를 한다. 다음은 주한미군 철수의 기미가 보일 무렵 남과 북의 두 공산당 지도자가 주고 받은 어록의 일부이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만들고 정권을 잡았으나 전국은 남로당 손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럼 남쪽까지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만들 방법은 없습니까?'

    '내가 그걸 말하려고 수령 동지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승만 일당은 한 방이면 날아 갑니다. 스타린 동지와 상의해 주시지요.'

    '네 알겠습네다. 박헌영 동지.'

    이렇듯 한국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이용하였다가, 1950년 10월에 중공군의 지원 요청을 위해 다시 이용하였던 김일성은 한국전이 끝나갈 무렵 박헌영을 사형에 처한다.

    1952년 12월 15일, 김일성은 노동당 제 5차 전원회의에서 핵폭탄과 같은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종파분자들은 당과 정권기관에 파고들기 위해 과거의 혁명생활에서 깨끗지 못한 것을 서로 엄폐해 주며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분자들을 묵과할 수 없다! 종파주의 잔재를 그냥 남겨둔다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들과 우리의 형제적 당들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의 마지막 길은 적의 정탐배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에 우리 당은 심심한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1953년 2월 박헌영은 연금당했다. 동시에 이승엽, 조일명, 임화, 박승원, 이강국, 이원조 등 남로당의 지도부들이 검거되어 7월 30일 기소되었다. 8월 3일 공판이 시작되었고, 8월 6일 남로당 빨갱이들이 싹쓸이 사형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공산주의 이론의 대가요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던 박헌영이었다.

    그러나 박헌영이 이년 동안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미제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거부하자 김일성은 고문실에서 박헌영을 빨개 벗기고 여러마리의 세퍼트를 풀어 박헌영을 물어뜯게 했다. 그제서야 엉터리 자백 요구에 응한 박헌영은 1955년 12월 15일 초췌한 표정으로 빨갱이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9년부터 체포될 때까지 미국의 간첩으로 있었다….' 그리고 12월 17일 그는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만일 김일성이 한국 전쟁 때 월북한 남로당 간부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였다는 사실을 권오석씨가 알았더라면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충성심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권오석씨가 모르고 있었던 또 한가지 사실은 민주주의 경제의 우월성이었다.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할 바로 그 무렵에 그는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박헌영과 권오석의 항아리물 경제관은 한국의 운동권 경제관이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수십 년간 품어온 경제관이었다. 시장 경제의 장점은 경제 효용성의 증대이다. 그러나 운동권의 계급 투쟁 세계관에서는 시장 경제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운동권 혹은 좌익 경제관의 특징은 국가 경쟁력에 대한 무관심이다. 외화벌이에 무관심한 운동권의 경제 정책은 외화벌이하는 기업들의 재산을 강압적으로 빼앗기에 치중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샘물 경제관의 오랜 비판자였던 노무현씨가 나라 경제를 위해 외화벌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야 깨달은 듯하다.

    그러면 어째서 서민 편에 서겠다던 노무현 정권의 계급정서 앞에서 한국 경제는 급살을 맞은 듯이 주저앉기 시작했고,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어 생계가 조여들기 시작하며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났을까?

    노무현씨가 서민 편에 서겠다고 말하였을 때 여기에 편가름의 논리가, 계급 투쟁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만일 대통령이 사회를 양편으로 나누고 어느 한편에 서겠다고 하면 다른 한편은 대통령의 적이 된다. 한 국가에서 대통령의 적이 된다는 것은 국민의 적, 국가의 적이 됨을 의미한다. 노무현씨가 서민으로 여기지 않는 자들은 기득권으로 매도되어 개혁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노무현의 법지식을 이용한 개혁의 칼날은 합법적인 사유재산 몰수의 전주곡이다.

    개혁 논리의 문제점은 경제 효용성의 증대에 대한 무관심이다. 노무현씨 셈법에서 잘 사는 자의 것을 합법적으로 빼앗아 서민에게 주는 것이 서민 편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민의 꿈을 빼앗는 것이다. 노무현식 셈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누가 열심히 일하여 잘살게 되는 꿈을 품을 수 있겠는가? 열심히 일하여 성공의 정상에 오른 순간부터 개혁의 대상이 되어 빼앗긴다면 누가 자기 재산을 내어 투자를 하겠는가? 결국, 산업시설 투자는 없어지고 투기성 투자에만 자금이 몰리며, 일자리의 창출이 없어진다.

    만일 노무현씨가 국민을 친노와 반노로 갈라놓고 자기 편이 아닌 자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을 때 그의 정치적 셈법은 누구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복식 회계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김영삼 정권 때 갑자기 달라진 수출 여건에서 기업이 자구책을 구하여야 했던 환경이 있었다. 이 문제를 점진적으로 조용히 개선하지 아니하고, 불법으로 몰아 신문에 대서특필 실리게 하면 기업인은 도덕적으로 사회에서 매장된다. 이렇게 사업 의욕을 꺽어놓고 어떻게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정 운영을 정치자금 수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도 애국 기업인에 잔인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김우중씨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수출 아이디어를 짜내는데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애국적 의도에서 정치자금을 낼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에 너무 경솔하게 불법자금 딱지를 붙여 놓으면 기업인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매장되며, 국민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사업은 자신의 시간과 인생을 바쳐야 하는 것인데, 사업 성공이 곧 도덕적으로 사회에서 매장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누가 산업시설과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싶어하겠는가?

    대통령이 기업인에게서 투자 의욕을 도둑질하면 그 누가 경제부총리가 된다 해도 멍든 경제를 치유하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운동권의 항아리물 경제관에 젖어있던 노무현씨는 고인 물이 썩지 않게 부패방지법을 만드는 것이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흐르는 샘물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썩는 법이 없다. 그러기에 개혁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경제 전략이다.

    노무현의 셈법에서는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은 요리저리 합리화시키면서도 야당의 정치 자금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다. 이인제 의원 측근이 받은 2억의 정치자금 가지고 이 의원의 정치 생명을 사형에 처하려던 그가 자신의 불법선거운동에 사용된 100억원이 넘는 불법자금은 무죄라는 노무현식 셈법을 내민다.

    한국 국민은 대통령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경향이 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으니깐 어느 대통령이나 경제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에 IMF 환난을 당하였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 IMF 환난을 졸업하였는가? 아니다. IMF를 빨리 벗어나려고 단기외채를 끌어왔는데 올해 11월부터 단기외채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에 노사모는 노무현의 셈법으로 아무데나 개혁의 칼날을 휘둘러 경제 파탄이 심화되게 하는 이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불법선거운동을 하였다. 물론 노무현 셈법에서는 자기가 받은 정치자금은 깨끗하고 야당이 받은 것만 불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와 북한 공산주의가 하나라는 이상한 셈법, 국민이 친노 국민과 반노 국민으로 나뉘어 있다고 보는 셈법, 그리고 자기 편이 아닌 자만 개혁이 대상이라는 셈법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경제계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한국 근현대사는 항아리물 경제관으로 대표되는 박헌영의 경제관,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의 경제관, 운동권의 경제관은 민족의 경제적 생존권을 위한 대안이 되지 못함을 실증하였다. 한국 경제는 샘물 경제관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관이 적용될 때 가장 크게 발전하였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양김씨 이후 계속 거꾸로가는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노무현 대에 와서는 해방정국에서 남로당이 생각하였던 수준의 경제 모델을 적용하러 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땀 흘려 열심히 일하여 그 열매를 정정당당하게 거둔 자는 기득권으로, 부도덕한 자로 몰아세우는 정치에서는 투자는 날로 위축되고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어날 수 있는 경제는 내려앉을 수도 있다. 만일 노무현 셈법에서는 그가 받은 불법정치자금은 깨끗하고 야당이 받은 정치 자금만 불법이라면, 그럼에도 구조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노무현 셈법은 경제학적 범죄이다. 이것은 지금은 경제는 우리 민족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문제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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