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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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17일 

한국 좌파의 무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지난해 4월(2003년) 이라크 전쟁은 북한 김정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김정일이 2002년 12월 20일 아침 노무현에게 대통령 당선 선물로 영변의 핵인봉을 뗀 데는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첫째는, 노무현이 선거 공약으로 한 말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미국을 말리겠다"는 말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는데, 노무현의 꼼수는 김정일의 꼼수에 그대로 말려드는 것이었다. 미국이 북핵 해결 방안을 제안하자마자 노무현이 한 말은 북핵 위기는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테니 미국은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김정일의 또 하나의 노림수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는 동안 핵무기 공갈로 미국을 위협하여 한미동맹 해체를 받아낸 다음 남조선 해방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재자 김정일의 예상과는 달리 독재자 후세인의 군대는 전혀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며, 이라크 국민들이 후세인 동생을 무너뜨림으로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이라크 전쟁을 후세인 편에서 생각해 보자. 후세인이 이라크의 패배를 내다볼 수 있었을까? 아니다. 후세인 편에서는 내다보지 못하였다. 그는 이라크 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라크는 고대 세계를 정복했던 바빌로니아 제국의 후예이다. 그리고 수백 년 전만 해도 회교도의 사라센 제국이 전 유럽을 정복하지 않았던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장비는 탱크 이상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며,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 가능한 무기는 이미 이라크도 모두 보유하고 있을 만큼 이라크 군도 현대화되어 있다. 사막의 환경과 기후도 이라크 편이요, 이라크 군에게는 용맹이 있다. 병력 수도 미군에 비해 두 배 이상 월등하다.

   그래서 후세인의 작전에서는 미군은 이라크 사막의 수렁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김정일 역시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기대하며, 그 기회에 핵무기 개발 위협으로 미국을 압박하여 북미 불가침 조약과 한미 동맹 해체를 얻어낸 다음 한반도를 적화 통일시키려 했다. 그런데, 김정일을 겁먹게 할 만큼 이라크 군대는 싱겁게 패배하였다. 이라크 군의 패인이 무엇이었던가? 역사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라크 군은 모더니즘 문명에 패하였다. 만일 근대 이전의 상황에서 이라크 군과 미군이 싸웠다면 분명 이라크 군이 승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수준의 현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 여론 때문에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종류는 제한되어 있으며, 사막과 기후는 이라크 군 편이었는데 왜 이라크 군이 패배하였는가? 그것은 문명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라크 군도 석유 달러로 무기를 현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작전이 수행되어야 함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이라크 군에 결여되어 있었다. 말 타고 전쟁하던 시대의 전술이라면 이라크가 더 발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기가 현대화된 시대에는 전쟁 전략의 패러다임도 달라진다. 미국은 현대화 무기에 걸맞은 작전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이라크는 무기만 현대화되어 있었지 작전은 여전히 구식이었다. 우리는 그 예를 1975년 월남의 패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3년 미군은 월남에서 철수하면서 최첨단 무기들을 월남에 제공하였다. 그러나 월남은 그 무기들을 전혀 사용해 보지 못하고 패망하였다. 당시 월맹의 호지명은 5년 후 김일성이 한국에서 광주사태를 일으켜 한국을 패망시키려던 작전과 동일한 작전으로 월남 중부지방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그것이 민주화를 위한 민중봉기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김일성이 광주사태 때 그렇게 하려했던 것처럼 시민군으로 위장한 월맹 공산군이 수도 사이공까지 진격하였을 때 월남군의 현대 무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처럼 문명은 전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라크와 월남이 분명 장비 면에서도 군사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아직 모더니즘 패러다임이 아니었다. 후세인은 용기와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만큼 주관적 판단에 빠졌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미군의 전략에 그는 패배하였다. 1975년 월맹의 호지명이 중부 지방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민주화 운동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던 수법, 즉 5년 후 김일성이 광주사태 때 이용하려던 그 수법이 모더니즘 패러다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현대 지성인들은 그 소문의 출처를 물으며, 그 출처는 신빙성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1975년의 월남인들에게 그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노략질하려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속았다. 미국이 공산군을 방어할 최첨단 무기를 그 손에 들려주었는데도 공산군의 유언비어 전술에 나라를 빼앗겼다.

   1975년 4대 군사강대국이었으며, 미군과 거의 동일 수준의 최첨단 장비를 보유했던 월남군은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고 월맹공산군에, 군화조차 신지 못한 거지 군대에 패배하였다. 그런데, 불과 3만 명의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한다. 비록 그 수는 적더라도 주한미군이 있는 한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북한은 전 인민에 군사동원령을 내릴 수 있는 나라이다. 전 세계에 흩어진 미군 병력을 모두 합해도 북한군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나 오로지 전쟁 준비에만 매달리는 북한도 미국의 위력에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의 위력은 모더니즘 문명의 위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제국과 중국 제국이 그들보다 한발 앞서 서구 근대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군에 패배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모더니즘 문명이 항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에 모더니즘 문명권이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국주의가 싹텄다. 그들은 문명국이 미개국을 식민지로 삼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논리가 아프리카와 동남아와 중남미는 물론 중국 영토의 일부까지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게 하였다.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한데 이어, 1945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 세계 식민지 민족들을 해방시켰으며, 유럽과 일본이 미국의 요구에 응하였다. 그런데 1975년부터 과거의 식민지였던 제3세계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독립시킨 나라들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난 것은 아이러니 하다.

   후진국 운동권이 주장하는 경제 이론을 흔히 world system theory 라고 부른다. 혹자는 이 이론을 식민지 종속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2차 대전 이전의 정치적 식민지가 2차 대전 이후에는 경제 식민지로 바뀌었다고 불평한다. 현재의 세계 경제 구도에서는 후진국은 값싼 원자재를 수출하고 값비싼 공산품을 수입하는 순환이 영구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후진국에서는 서구에서 2백년에 걸쳐 발달한 산업혁명이 불가능하므로 부국과 빈국의 격차는 날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치적 독립이 식민지 시절의 경제적 종속을 바꾼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심에 미국이 있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그 공격의 표적을 미국으로 삼는다. 즉, 미국이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독립시켜준 국가들이 반미 국가가 되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좌파 운동권은 바로 이런 후진국의 정치, 경제 논리를 수입해 왔다. 학계에서는 이들의 경제 논리를 비주류 경제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김대중, 김근태, 리영희, 문익환, 홍근수, 유시민 등 한국의 좌파 운동권이 누구이던가? 그들은 한국의 산업혁명과 조국 근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하던 자들이다. 386세대 좌파 중에는 서구 유학파들도 꽤 된다. 그들이 가서 정론을 배웠는가? 아니다. 그들은 세뇌된 운동권 시절의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가서 한국 상황에 대한 엉터리 설을 내세우고 학위를 받아온다. 그래서 서구 유학 후에도 그들의 생각이 향상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후진국 운동권 주장의 신봉자들이 된다.

   무지한 한국의 좌파 운동권들 귀에 한국은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동남아 후진국이 아니라고,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원자재는 없다고, 한국은 대미 교역에서 연 100억 달러의 흑자국이라고, 해방 후 20년 간 미국이 한국 재정의 90%를 지원해 주었다고, 후진국에서 불가능한 산업혁명이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일어났다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소귀에 경 읽기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본 후진국 운동권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미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다고 우긴다. 이토록 한국의 좌파 운동권은 무지하며, 이들은 그들의 무지가 진보라고 한술 더 뜬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이 OECD 에 가입한 후부터 한국은 후진국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좌파 운동권이 제3세계 후진국 운동권 논리를 신봉할 때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지난 30년 간 후진국들은 국제 사회에서 선진국들에게 후진국들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가장 좋은 해결법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한국인들처럼 열심히 일해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는 일하기 싫으니 선진국에서 부국과 빈국의 격차 문제를 해결하라고 시위하였다. 1945년 이전의 군사 전쟁이 없어진 곳에 1945년 이후의 경제 전쟁이 생긴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국제 시장에는 무한 수출 경쟁이 있다. 그러면 후진국의 불리한 입장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 대안의 하나로 세계 각국이 관세를 철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리고 제3세계 후진국 운동권 논리를 신봉해 온 한국 운동권이 이런 기류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경제에 좋은가? 한국 경제 성장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베푸는 관세 특혜도 큰 몫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미국 관세 특혜를 없애버릴 때 한국 수출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한국 좌파 운동권은 생각하는가? 한국에 왜 IMF 환난이 찾아왔는가? 자칭 민중화 운동권 경제관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미친 영향 때문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열내며 비판하던 김영삼 문민정부는 신자유주의의 무역 자유화를 너무 서둘러 도입하는 것이 당시 한국 상황에 적합한지에 대하여는 전혀 논의가 없이 경솔하게 정책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값싼 외국 농산물로부터 한국 농촌을 보호한다며 막대한 국가 재원을 농업 개량에 집중시키다가 결국 쌀 생산량도 늘리지 못하고 수출 경쟁력만 약화시킨 채 IMF 환난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 좌파 운동권의 문제는 산업혁명에 대한 그들의 반대이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산업혁명을 우회적으로 반대하기 위해 친일파청산법을 제정하여 그를 친일파로 몰아 척결하려고 한다. 즉, 김근태와 유시민, 리영희, 홍근수 등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은 1960년 대 초의 농업국으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래서 좌파 정권에는 기술 산업 발전에 대한 정책이 없다. 아직 우리나라에 아무 기술이 없던 시대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빠르게 신속하게 미국의 최첨단 기술을 이전하여 제철, 철강, 전자, 조선, 전자, 자동차, 중화학공업 등의 산업을 육성하셨으나 운동권 정권에는 그런 산업 전략 개념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간의 무역 장벽을 없애자는 기류에 편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적절한가? 우리나라가 좀 더 미국의 관세 특혜를 누리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킬 기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도대체 지금 한국에 경쟁 있는 품목이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지금은 실로 한국 좌파 운동권의 배은망덕하고도 무모한 반미주의가 세계 무역 자유화를 앞당길 때 한국 경제에 끼칠 영향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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