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토론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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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4월 3일

자기 자유와 인권을 도둑질하는 한국인들

   탄핵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분들도 각자 사람 나름일 것이다. 뭔가 자기 정치적 주장을 가진 이에서 시작하여 남이 가니깐 따라간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쿠데타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뒤에서 선동하는 정치 단체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제도 자체가 비민주적이거나 쿠데타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사실이다. 만일 노무현이 절대 군주이면 노무현을 탄핵하는 것은 반역이다. 그러나 노무현을 탄핵하는 것이 반역으로 여겨지는 국가는 결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무엇이 왕정이나 독재국가와 민주주의 국가의 차이인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민주주의 정치의 특징이다. 따라서, 국회가 탄핵 소추안 가결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무엇이 민주주의 체제인가? 그것은 정치 이익 집단들과 경제 이익 집단들의 욕심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 국가를 이끌게 가게 하려는 합리적인 장치이다. 민주주의는 정치 이익 집단들과 경제 이익 집단들의 편견이 작용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에서 발전한 정치 시스템이다. 그리고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도 민주주의 정치에서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는 하나의 장치이다.

   자, 행정부 수장으로서의 대통령이 독주하였을 때 국회는 탄핵 소추안을 가결한다. 여기서, 탄핵 소추안을 가결이란 일차적으로 경고이다. 왜냐하면, 국회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여도 그 안이 헌법재판소를 통과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를 통과할 확률이 아주 낮게 장치를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이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선거법을 위반하였음을 선관위가 인정하였을 때 국회는 국법 준수를 요구하는 경고 메시지를 대통령에게 보낼 책무가 있다. 국회의 이런 책무를 부인하는 자들은 국회의 본연의 의무가 입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만일, 법치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가 입법부의 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를 대한민국 국가 체제로서 선택한 이상 그 체제를 거리정치로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 국회가 입법부의 책무 중 하나로서 탄핵 소추안 가결한다 하더라도 가결에 참여한 국회의원이 심판받는 장치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헌법재판소의 엄격한 심사이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는 국회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9인 중 6인의 찬성을 요하는 제도는 사실상 소추안 통과가 지극히 어렵게 하는 장치이다. 그 다음에 국민의 심판이 있다.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국회의원과 정당은 끝짱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국민들이 잠잠히 지켜보다가 총선에서 국회의원들을 심판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상호 견제 장치이다. 그리고, 탄핵 정국은 민주주의의 상호 견제 장치에 내맡길 일이지 결코 어중이 떠중이 이익 집단들이 끼어뜨는 거리 정치에 내맡길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국회가 탄핵 소추를 가결하였을 때 그것이 탄핵의 완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도 두 번 탄핵 소추가 가결된 일이 있다. 1970년대 초 워터게이트 때는 닉슨이 상대방 후보를 도청한 사실이 있다. 도청 자체는 탄핵 사유가 아니지만 문제는 닉슨이 도청을 안했다고 시치미를 떼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민은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 하원은 탄핵 소추를 가결하였다. 또 한번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1998년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 사원 르윈스키와 불미스러운 관계를 가졌을 때였다. 한국에서는 은밀한 애무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미국인들은 이것을 부인을 배신한 행위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클린턴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직하지 못함에 미국 국민은 분노하였으며, 미 하원을 클린턴 대통령 탄핵 소추를 가결하였다.

   그러나 탄핵 소추가 가결되었다는 것은 탄핵의 완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직은 탄핵 정국을 대통령의 도덕성으로 마무리할 기회가 남아있다. 닉슨 대통령은 하원에서 탄핵 소추가 가결되자 상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깨끗이 물러나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즉, 닉슨은 스스로 깨끗이 물러나는 도덕성으로 탄핵 정국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다른 방법의 도덕성으로 탄핵 정국을 헤쳐나왔다. 하원에서 탄핵 소추가 가결되자 클린턴이 노사모를 동원하여 촛불시위를 하게 하였는가? 아니다! 그는 눈물로 국민 앞에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면 미 상원은 탄핵안을 아슬아슬하게 부결시키는 수순을 거쳐 탄핵안이 무효가 되게 한다.

   따라서, 국회가 탄핵 소추를 가결하였을 때 그것은 결코 탄핵이 완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탄핵 정국을 도덕적으로 헤쳐나올 기회를 주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에는 법리와 도덕률이 함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지도자의 첫번째 요건은 도덕성이다.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의 힘은 도덕성은 최우선시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거꾸로 이해하는 노무현의 말하는 정치 개혁은 도덕률을 짓밟는다. 도덕이 없이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아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도덕률을 짓밟는다.

   클린턴이 탄핵 정국을 어떻게 헤쳐나왔는가? 노사모가 선동하는 거리 정치로 헤쳐나왔는가? 아니다. 자기는 무죄라는 법리 논쟁으로 헤쳐 나왔는가? 아니다. 그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눈물로 국민 앞에 사죄하였다. 물론, 미국 국민은 클린턴이 바람둥이인 것 안다. 그리고 그의 바람둥이 버릇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대통령이 스스로 자기 죄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눈물로 사죄할 때 국민이 용서해 주는 수밖에 별 도리가 있는가? 그리고, 클린턴은 용서를 구함으로 승리하였다. 노무현도 헌재가 그를 소환하였을 때 도덕적 지도력을 보여 줄 기회였다. 노무현이 앞으로는 국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자동적으로 탄핵 사유는 약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국왕은 헌재의 소환에 응할 수 없다는 논리로 나온다. 그리고 그런 노무현의 모습이 국민의 눈에는 노사모 홍위병의 힘과 거리 정치로 탄핵 정국을 헤쳐나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노무현의 무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그러면, 왜 민주주의에서는 삼권 분립이 필요한가? 왕정에서는 왕이 국법을 어기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노무현을 왕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이 국법을 어기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왕정국가인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국법을 어길 때에 그 정권은 정통성을 상실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법치가 무너지면 서지 못한다. 여기서 절대 왕권 대신 사회의 기강을 유지하는 것이 법치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법을 어긴다는 것은 누구나 국법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래서 법치가 무너지게 되며, 법치가 무너지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의 와해를 의미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취임할 때 국법 준수 선서를 하며, 대통령이 국법을 어겼을 때 국회는 탄핵 소추안을 가결할 책무가 있다. 이것이 삼권분립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탄핵 소추안이 타당한 탄핵 사유인지 심의할 책무가 있다. 이것이 삼권분립이다. 이렇게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가 서로 보완하며 견제하는 묘를 유지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리이다. 그래서, 법치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국민은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권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노무현은 국왕이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노무현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왕국이요, 따라서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가결하는 것은 스스로 자유를 도적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는 삼권 분립의 정치이며, 삼권 분립 정치는 국민에게 인권과 자유를 보장해 주기 위한 체제이다. 어느 국가에서는 국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록 국민은 노예화되기 마련이다. 국왕을 탄핵하는 것은 반역이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국민은 왕이 자기 멋대로 노예로 부리거나 죽일 수 있는 나라이다. 국왕을 탄핵하는 것은 반역이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백성은 천민과 상놈의 위치로 전락한다. 그 누구도 그런 왕정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노무현은 국왕이며,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가 가결한 것은 반역 행위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스스로 족쇄를 채우며,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자유를 도둑질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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