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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2월 21일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한국 경제

   196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경제학 박사 수의 증가이다. 그러면 국가의 경제 모델이 경제학 박사 수에 비례하여 상승 곡선을 그리며 발전하여야 할텐데 오히려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제학 박사 구경하기가 아주 어려웠을 1960년대의 한국 경제 모델은 중국이 배워갔으며, 세계 경제학계에서 개발도상국을 위한 최고의 경제 이론으로 채택하였던 데 비해 40년이 지난 오늘날의 경제 모델은 상고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면, 실력 있는 경제학 박사의 수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경제 모델은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나라 경제는 정치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전두환 대통령 정부의 경제 총리는 아주 유능했는데, 김영삼 정부의 경제 총리는 무능했다는 비교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하나 더하기 하나는 누가 계산하여도 둘이라는 동일한 답이 나오는 것은 이 사람 수학이나 저 사람 수학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총리나 저 총리가 배운 경제학 원리는 동일하며 보편적이다. 그러나 경제 정책에 가서는 천양지차를 이룬다. 이것은 경제는 정치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는 통치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경제 정책의 관점에서 지난 40년간 한국 대통령들은 저마다 다른 통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 경제도 대통령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갔다.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엔지니어 모델이었으며, 전두환 대통령의 모델은 용병술의 모델이었으며, 현 대통령의 모델은 노무현씨는 상고 모델이다.

   아직 경제학 박사가 없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 발전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허허벌판과 천막공장밖에 없었던 시절에 어떻게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되고, 정유, 화학, 제철 등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의 과학 기술이 단시일내에 한국에 이전되었는가?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엔지니어였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은 정책적으로 조선인에게 과학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조선인에게 대학 기회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분야는 문학일 뿐이었다. 일제 시대 때 문학도는 많았어도 과학도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해방직후 일본 기술자들이 떠난 후에 산업시설이 무용지물이 되고 한국 경제가 몹시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명계남이 자기 할아버지는 친일파가 아니었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훗날 한국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학은 배울 수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 과학의 진수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포병장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병장교는 종합 엔지니어이다. 대포를 발사하여 폭탄을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수학, 지리학, 측량학을 배워야 하며, 물리학과 화학도 배워야 한다. 포병장교로서 그는 엔지니어였으며, 훗날 대통령이 되어 그는 그 지식으로 한국 과학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이전의 한국 정치인들은 한국은 영구 농업국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5.16 군사혁명은 과학기술의 혁명이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국민에게 수출 산업국이 되는 비전을 심어 주었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한국에 무상원조를 시작한지 이십 년만에 중단될 예정이었다. 한국 정부 예산의 80%를 차지하는 미국 무상원조가 중단될 예정인데도 윤보선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당시 80불 미만이던 한국 GNP가 10불 미만으로 떨어짐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것이 당시 박정희 소장과 애국 군인들이 5.16 군사혁명을 일으킨 동기였다.

   한국에 과학자가 무수히 많은 요즘에도 산업기술을 발전시키기가 극히 어려운데, 당시 농업국이었으며, 수출 실적은 커녕 수출 경험도 전무하였던 한국이 선진국과 겨루는 산업 수출국이 된다는 것은 당시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에게 준 비전을 정확히 성취하였다는 점이 공약만 마구 남발하는 노무현씨와 크게 달랐다. 대통령이기 전에 포병 장교로서의 엔지니어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언제나 달성 목표를 정확히 계산하였다. 한치 앞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양김씨는 우리나라에 경부 고속도로 지을 돈이 어디 있느냐며 갖은 방해를 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군 월남 파병을 댓가로 생기는 달러 수입이 경부 고속도로 완공 비용과 맞아떨어짐을 정확하게 계산해 놓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미련한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는 군사독재라며 깍아내리고, 양김씨의 통치는 민주화운동이라며 격상시킨다. 그러나 군부 출신 대통?민간인 출신에 비해 탁월한 점은 전략적 사고이다. 지금 중국이 박정희 대통령의 엔지니어식 리더십을 모방하여 공학도 출신들로 국가 지도자를 삼는데, 박 대통령은 전략적 사고를 겸하고 있었다. 역시 전략적 사고를 갖춘 전두환 대통령 통치 스타일은 뛰어난 용병술이었다.

   엔지니어로서 박정희 대통령은 새로 설립되는 산업시설 하나하나에 대해 계속 연구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산업 시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그대신 용병술이 있었다. 그는 누가 전문가이며, 어느 분야에 적합한 인재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임명한 전문가에게 명확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어, 김재익, 이헌재 등의 경제 전문가들은 마음껏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도록 힘껏 밀어 주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 정권들의 통치 스타일은 지극히 반민주적이었다.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에게는 전략 개념이 없었다. 그는 전문가의 보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시켰다. 그런데 그의 경제 정책은 모두 실패하였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하였던 국책사업들도 모두 실패하였다. 막대한 국고 예산을 쏟아붓는 농촌 지원 사업은 농가가 빚더미 위에, 그리고 중소기업 지원 사업은 중소기업이 부도나게 하였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그에게는 목표 달성을 위한 치밀한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지시는 하지만 그 지시를 수행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명확치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딱 한번 경제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한 1996년의 노동법 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김대중이 온갖 수단으로 방해하여 통과를 막았기 때문에 1997년에 외환위기가 몰아닥쳤다.

   김영삼 대통령의 선임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 사람이었는데, 만일 경제정책에 관한한 김영삼 대통령이 보통 사람 노릇만 하였어도 그는 대단한 성공을 하였을 것이다. 자전거는 처음 달리기 시작할 때가 힘들지 일단 가속이 붙으면 저절로 달린다. 이미 전두환 대통령 때 한국 경제는 가속이 붙었으므로 김영삼 대통령은 차라리 노태우처럼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여기 저기 휘저어 놓느 그의 독재적 통치 스타일이 마침내 IMF 환난을 당할 만큼 한국 경제의 체질을 약화시켰 놓았다.

   국민의정부 김대중의 통치 스타일은 어떠하였던가. IMF 환난으로 한국 사회가 고통당하던 1997년 겨울 그는 목포에서 장사한 경험이 있다는 경력을 내세워 경제 대통령이란 이미지로 표심을 잡았다. 어디 그의 장사 경력이 그뿐이겠는가? 그는 공천 장사였다. 그리고 그의 경제 정책은 장사로 시작해서 장사로 끝났다. 그는 빅딜(Big Deal)을 하였는데, 그것은 장사군의 언어이다. 그는 우리 민족이 땀흘려 이룩해 놓은 산업시설과 기업을 부지런히 해외에 매각하였다. 그는 김정일과 한번 악수하는 사진 찍는 값으로 5억불을 김정일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그 사진으로 세계를 속여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사실 그 돈이면 민족기업 대우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며, 전세계 자동차 생산 공장이 있었던 대우 기업 하나만으로도 국민 GNP 이만 불은 금방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족기업들을 부지런히 해외에 매각하는 것이 김대중의 경제 정책이었으며, 수출 전략이 없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현대 등 많은 대기업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였다.

   노무현씨의 통치 스타일은 상업 고등학교 수준이다. 물론 상업고등학교 교육에 좋은 점이 많다. 그리고 노무현씨가 상고시절부터 회계 장부 뒤지기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남의 회사 회계 장부 뒤지기로 시작한 그의 대통령 임기가 회계 장부 뒤지기만 하다가 끝날 것이라면 그것은 문제이다. 참여정부는 출범초부터 SC기업의 회계 장부를 뒤지다가 경제 위기를 초래할뻔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국력을 남의 당 회계장부 뒤지는데 낭비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위한 정확한 청사진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도, 노무현씨는 남의 회사, 남의 당 회계장부 뒤지기만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상고 출신다운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에게 경제 발전을 위한 청사진이 있느냐이다.

   지금의 열우당이 누구인가? 민주당 시절 국민 앞에서는 돼지저금통으로 선거치룬다고 하고 뒤로는 100대 기업에 선거자금을 요청하였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열우당은 국민을 속였기 때문에 깨끗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나라당보다 한푼 적게 받았기 때문에 정치 보복을 하자는 것인가? 물론 노무현씨의 열우당이 기업들로부터 한나라당보다 한푼 적게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열우당은 깨끗함을 의미하는가? 결코 아니다.

   열우당(노무현씨 당)의 공약은 자기네가 집권하면 재벌 해체시키고, 사회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집권하면 너희 기업을 죽일 것을 약속할테니 선거자금을 내놓아라 하였다. 이것은 안정과 자유 시장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약속하였던 한나라당과 대조적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기업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기업들에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가 막대한 외화를 벌어오는 활력을 주었다. 그런데 양김씨 통치 스타일 하에서 대기업들이 맥을 못추고 쓰러져갔다. 20년이 넘게 대통령 통치 스타일과 한국 경제의 관계를 관찰해 온 기업인들로서는 어느 정당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킬 정당인가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판단을 신뢰한다.

   그렇다! 노무현씨가 한나라당 장부를 뒤질 때 우리가 궁굼해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가 상고 출신답게 남의 회사, 남의 당 회계 장부 뒤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상고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회계 장부 뒤지며 정치 보복이나 하는 것이 개혁인가? 아니다. 애국 기업인은 한국 경제를 살릴 후보가 누구인 줄 알았을 것이며, 바로 이점이 중요하다. 한국 경제를 위해서는 반국가적 한총련 열표의 목소리보다 한표의 애국 기업인의 목소리가 더 값질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애국 기업인이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만일 그런 정당한 선택에 대하여 노무현씨가 보복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노무현씨는 오년 내내 남의 당, 남의 회사 장부만 뒤지며 청와대에 앉아 있을 것인가? 상고 출신답게 회계 장부만 뒤지고 있으면 나라가 발전하는가? 아니다.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진정으로 지도자에게서 기대하여야 하는 것은 그 비전이다. 그런데, 지금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이 박 대통령을 닮아 비전과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나갔다. 그런데, 혹 국민의 학력 수준이 그때보다 한참 높아졌음에도 지금은 오히려 노 대통령을 닮아가며 남의 회계 장부나 뒤지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아닌가. 왜 우리는 애국 기업인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좋은 정당, 좋은 후보를 선택하기를 원했던 그 절박한 상황에 대하여는 생각해 보지 않는가. 만일 노무현씨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모른다면 국민이라도 알고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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