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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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2일 

대통령 통치 스타일과 거물급 인물들의 자살

   지난 4월 22일(2004년) 북한 신의주 부근 용천역에서 열차폭발사고가 난 지 한주쯤 지나서야 남한의 구호 장비 중 일부가 육로를 통하여 전달될 가능성이 비쳐지고 있다. 만일 성사된다면 지난해 8월 정몽헌 회장 추모식 이래 또 다시 남한의 트럭들이 북한 육로를 통해 방북하게 되는 것이다. 작년 8월 9일 정몽헌 회장 추모식 준비단이 11t 트럭 4대와 5t 트럭 1대 등 다섯 대의 트럭에 정회장의 대리석 추모비와 기단석 및 추모용품을 싣고 동해선 육로를 통해 방북했다. 비록 그때는 북한의 치부가 별로 드러나지 않고 경치가 아름다운 동해선 육로를 통한 방북이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물품을 가득 실은 남한 트럭들의 북한 방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큼 정씨 일가가 북한 경제에 큰 몫을 기여하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추모의 의미가 우엇이었든간에 사람들은 아직 그의 자살의 원인에 대해 궁금해 한다. 얼굴 높이 창문을 어떻게 뛰어넘어 투신할 수 있었을 것이며, 십여만 명을 거느리는 대기업 총수가 낙서하듯 쓴 유언장만 남기고 무책임하게 자살할 수 있었겠느냐를 묻는 시민들은 그의 자살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이었든 타살에 의한 것이었든 그것은 매우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초부터 유달리 자살 사건이 많았다. 서민들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으며, 고위 공직자들은 한강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그런데 인천의 손 여인이 14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였을 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하며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사람들은 세계적인 대기업 현대의 정몽헌 회장이 12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시 한번 이구 동성으로 탄식하였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김대중의 잘못된 경제 정책 때문에 카드빚에 몰린 소시민들이 자살하였다. 그러나 기업인과 공직자들로서는 출세의 최고봉에 올라왔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변변한 유서 한장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은 왜 나타난 것일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정몽헌 회장의 자살 이유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몽헌 회장은 이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통학 시내버스는 콩나물 버스였던 그의 보성고교 시절에도 그는 서민의 애환을 모르는 왕자였다. 졸업 후 연대 국문과에 진학하였던 정몽헌에게는 여느 학생들처럼 취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거부였던 그의 부친 정주영씨의 사업이 날로 확장되며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장래에 오로지 순풍만이 보장되어 있었던 정몽헌 도련님을 위해 사장자리가 예비되어 있었다. 마침내 귀공자 정몽헌씨가 현대그룹 회장이 되었을 때 그는 삼성 이건희 회장과 더불어 한국 재계의 쌍두마차가 되었다. 그런 그가 회장이 된지 2년만에 자살하였다. 대기업 총수가 이운규 사장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은 "대북사업 계속" 이 한마디 뿐이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그런데 현대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김대중의 측근 박지원은 이렇게 손해보는 장사를 하던 현대로부터 150억을 받아챙겼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했다는 뉴스는 있어도 아직 그가 자살했다는 증거는 없다. 12층 창문이 열려져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투신 자살을 단정할 수 없다. 독극물 검사 결과에 대한 발표도 아직 없었다. 따라서 타살이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정몽헌 회장은 북한 김정일과 남한 김대중이 아직 한국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던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만약 타살이었다면 정몽헌 회장 죽음은 김대중의 햇볕 정책 어두운 곳에 숨겨져 있는 미스테리이다.

   만일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자살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 비극은 김대중의 질못된 경제 논리와 관계가 있다. 정몽헌 회장이 12층에서 추락한 사실은 현대의 몰락의 상징이기도 하다. 박정희 시절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하던 현대가 김대중 집권기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경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주영씨가 북한에서 송아지 한마리 끌고 월남하였을 때 그는 국제 무역에 대한 견문이나 지식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때와 전두환 대통령 때는 사업의 전망이나 수출 시장의 현황을 정부가 철저히 조사한 후에 수출 기업을 장려하였으며, 장기 저리 외자 유치에서 통관 협정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지원을 정부가 해 주었다. 우리는 박정희 시절에는 언제 그렇게 유능한 경제 관료가 많았는지 놀라며, 김대중 정부에는 어째서 그토록 경제 두뇌가 없었는지 놀란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은 한국 경제 살리기 정책이었으며, 김대중의 경제 정??한국 경제 죽이기 정책이었다.

   한국 경제를 골병들게 한 김대중이 추진했던 햇볕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북한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양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박정희 시절 이래로 한국과 미국이 발전시켜 온 경제 파트너 관계와 김대중이 저지른 한국과 북한의 경제 파트너 관계는 그 정책의 방향이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혁명과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본 미국은 관세 특혜로 미국 시장을 우리나라에 열어주며, 기술과 시장 경제 노하우를 이전해 줌으로써 한국 경제의 자립을 도왔다. 그런데, 미국의 무상지원도 더 큰 지원이 신용자산의 지원이었다. 한미 동맹도 신용자산이었으며, 미국은 한국 브랜드가 국제 사회에서 신용을 얻도록 도왔다. 즉, 한국이 수출 능력을 가진 나라로 성장하는 일에 한국과 미국의 호흡이 맞았다.

   그런데, 시장경제 파괴를 정책의 목적으로 삼았던 김대중이었기에 그의 대북 정책에서의 남북한의 경제 파트너 관계는 북한을 신용 불량 국가로 추락시키고 있다. 김대중은 무조건 퍼주겠다고 하였으며, 김정일은 무조건 퍼달라고 하였기에 두 독재자는 장단이 맞았다. 그리고 노사모와 열우당과 민노당 등 어리석은 좌파는 이런 김대중은 무조건 퍼주기가 북한 경제를 돕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조건 퍼주기는 북한을 신용 불량 국가로 추락시키는 독약이다. 김대중은 그의 정부가 북한에 퍼주는 외화로 김정일이 핵무기 개발을 하며 남침용 전투기들을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퍼주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든 무엇을 하든 자꾸 퍼주면 북한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이 김대중과 그의 추종자들의 논리였다. 그러나 만일 개성 공단을 우리 돈으로 지어주는 프로젝트 하나를 위해서도 10억불씩이나 김대중 뒷주머니에 꽂아주어야 한다면 그 어느 나라가 북한과 거래를 하고 싶어하겠는가? 더욱이그렇게 퍼준 외화로 김정일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남침용으로도 쓰며 국제 테러범들에게도 팔아넘기려 하기에 북한의 신용도는 더욱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김대중의 친공산주의와 김정일의 주체사상의 귀결이었던가? 그것은 용천 참사를 김정일이 국제 앵벌이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자 않으며, 그것은 김대중의 미련한 경제 정책 탓이기도 하다. 무조건 퍼주기식 거래는 남북한 사이에만 통용될 뿐이다. 북한의 이런 거래 방법으로 그 어느 나라에 수출할 수 있겠는가? 결국 북한은 마약과 무기 밀거래 외에는 아무것도 수출할 능력이 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로 북한 경제를 돕고 싶으면 김정일에게 신용자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김대중의 잘못된 경제관에 찌들려 있는 좌파 운동권은 김대중에게 핵무기 개발 자금을 계속 퍼주어야 한다고만 우기고 있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수익 없는 대북사업이 현대같은 대기업을 무너뜨리고 정몽헌 회장의 자살을 초래하였다. 그럼에도 그 비극의 무언의 쓴 교훈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좌파가 남북한 공멸을 재촉하고 있으며, 또 그 어리석음이 진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면, 김대중의 미련한 경제 정책과 정몽헌 회장의 자살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1971년 대선 때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제시했던 경제 정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만큼 극과 극이었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은 서구 자본주의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의 경제 정책의 특색은 서구에서 200년 걸린 산업혁명을 한국에서 10년만에 달성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서구 자본주의 부정에서 출발하였다. 김대중은 자본가가 있어서도 기업인의 존재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빅정희의 자본주의가 독특한 자본주의였듯이 김대중의 공산주의 역시 독특하였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론을 반박하던 김대중은 "대중경제에 있어서, 경제발전의 추진세력은 자본가가 아니라 대중이다. 대중경제가 육성하여야 할 것은 자본가가 아니라 오직 경영자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당시 국민들은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 마르크스주의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래서 친공산주의자가 민주화 운동가 명함을 들고 다니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김대중의 관점에서 기업의 주인은 대중이다. 기업 주인은 김대중이요, 김대중이 멋대로 쏟아부은 공적자금을 갚아나가야 할 책임은 국민 대중이다. 김대중에게 기업가란 단지 서무 행정을 맡아보는 자일 뿐이다. 처음부터 김대중의 목표는 기업 해체였으며, 자기가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할 때 사실상 그 기업은 해체되어 있는 것이다.

   자, 김대중과 김정일이 어떤 밀거래를 하였는지 살펴보자. 대북비밀송금 사실이 탄로나자 북한측은 그것은 현대가 개성 일대의 토지를 50년간 사용하?이용권을 지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 정몽헌 회장에게 이천 만평이라는 광대한 북한 땅을 사용할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그는 자살하였다. 도대체 50년간이나 이천 만평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가 단 하루도 그 땅을 사용해 보지 못하고 자살하여야 했을 이유는 무엇이던가? 그리고, 50년 이용할 권한을 가진 자가 죽었을 때 그 이용권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여기에 김대중과 김정일 두 공산주의자 사이의 거래의 문제점이 있다. 도대체 김정일이 누구이관대 해금강남단으로부터 원산에 이르는 약 100㎞의 해안지대 전체 부동산에 대한 계약 당사자란 말인가? 그리고, 김대중은 누구기에 아무 계약서 없이 현대를 대신해서 현대 돈으로 그런 계약을 한다는 말인가?

   김대중이 현대를 대신해서 그런 엄청난 부동산 계약을 맺어주었으니 정몽헌 회장이 감사할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측근 박지원은 부동산 중개료 수수료로 현대로부터 150억씩이나 받아챙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몽헌 회장은 자기가 땅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자살하였다. 해금강남단으로부터 원산에 이르는 약 100㎞의 해안지대 전체 토지를 50년간 사용할 권한을 가졌다는 것이 기쁨이라기보다 고통이었다. 그것은 그가 타살이든 자살이든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고통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 기업인은 정체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북 사업을 사양한 대우는 김대중의 미움을 샀으며, 김대중 말을 잘 들은 현대는 김대중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에게 미움을 받은 귀여움을 받든 김대중과 관계 맺은 기업은 해체되었다. 김대중이 한국에 있는 대우자동차는 해외에 매각하더라도 동구 여러나라들에서 막 완공된 대우자동차 공장들은 매각하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동구의 대우자동차 공장들만으로도 한국은 순식간에 GNP 이만 불 시대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제멋대로 국내와 해외의 대우자동차 공장들을 해외에 매각하였다. 이와 정반대로 현대에는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퍼부어주었다. 현대는 다른 기업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 그래서 북한 땅 이천 만 평 50년 이용권도 거저 들어온 셈이다. 그럼에도 그 행운을 누리는 순간 정몽헌 회장은 자살하였다. 즉, 김정일이 북한 토지 실주인 노릇을 하듯이 김대중이 현대의 실주인 노릇을 하는 동안 정몽헌 회장은 기업인으로서의 정체성 위기를 당하였다.

   기업인에게도 정체성은 중요하다. 전세계의 산업전망을 계속 연구하셨던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씨를 불러 조선 사업을 시작하라고 했다. 정주영씨가 돈도 없고 기술도 자신도 없어서 그 일만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자, 차관도입 지급보증을 정부가 서주고 대통령과 김학렬 총리가 밀어준다는데 그것도 못하느냐 하면서 외국으로 내쫓았다. 그러면 어떻게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정주영씨가 백사장 사진 한장과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 한장 가지고 영국은행에서 차관을 빌려 세계적인 조선회사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에게 기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주영씨는 나라가 자기에게 맡긴 일을 최선을 다하였기에 허허벌판 위에다 조선회사와 중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 쾌거를 이루어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적인 통치에서는 이처럼 정치가와 경제인의 정체성이 각각 분명하였다. 그런데, 김대중의 독재정치 하에서는 정치가가 기업의 실소유주 역할을 하였으며, 김대중 정부로부터 온갖 특혜를 받아 누리던 정몽헌 회장은 투신 자살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기업인의 정체성 상실과 더불어 재계의 황제의 위상이 추락하였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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