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좌파와 우파의 경제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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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4월 23일 

박정희의 산업혁명과 노무현의 시민혁명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산업혁명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서구 민주주의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서양 현대 문명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18세기 산업혁명 때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농업국들이었다. 그래서 산업혁명 이전의 서양은 동양보다 앞선 문명이 별로 없었다. 몽고의 영웅 징기스칸이 언제 서양 여러나라들을 정복하는 몽고제국을 건설하였던가? 서양의 산업혁명 이전이다. 몽고가 언제 러시아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던가? 서양의 산업혁명 이후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유럽은 농업사회였으며, 자급자족 농업사회에서는 봉건제 정치가 발전한다. 당시 사회는 영주와 농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사람의 신분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농노의 집안에서 태어나면 일평생 그 일만 하여야 했으며,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였다. 한국에서도 농업경제 시대의 조선왕조에서 상놈의 신분은 대대로 이어졌으며, 신분 상승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과 마차가지 이치였다. 그리고 봉건제 유럽에서는 왕권이 강화되었다. 평민을 노예처럼 부리던 영주는 왕에게 충성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서양의 왕정 국가들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정치가 발전하게 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은 농촌의 인구를 도시로 이동시켰으며, 새로운 직업, 새로운 신분을 창출하였다. 자급자족 경제가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사업가들과 자본가들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누구든지 열심히 일을 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으며, 경제력의 중심이 농업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동하자 봉건제는 몰락하였으며, 봉건사회의 몰락과 산업사회 등장의 필연은 왕정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이었다.

   사실, 서구 산업화 혁명은 종교혁명과 더불어 왔다. 종교혁명 이전에는 서양에서 부자는 부도덕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성 프란시스처럼 모든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거지처럼 청빈하게 사는 사람이 성자로 존경받았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은 근면의 가치관을 일깨워주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 이후 부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열렸다. 이제 부자는 근면한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근면 정신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켰는가? 아니다. 5.16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군사혁명의 시작이 아니라,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 5.16은 있었다. 그러나 5.16 후에 국가원수가 바뀐 사실이 없다. 4.19 쿠데타때처럼 물리력으로 정권을 바꾼 사실이 없다. 단지, 무능한 장면 내각이 유능한 국가재건최고회의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나마 국가재건최고회의도 1961년 7월부터 1963년 8월까지 단 2년간 지속되었을 뿐이며,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던 선되셨다. 분명, 5.16은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

   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라면 한국의 산업혁명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세계 최빈국 한국을 선진국 문턱에까지 상승시켰던 한강의 기적은 5.16과 더불어 시작되어 30년간 지속되었다. 한강의 기적 30년 직후 집권하였던 김영삼 대통령에게 산업화 개념이 있었던가? 아니다. 전혀 없었다. 단지, 여전히 그의 경제관은 농업경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그는 수출 자금과 기술투자를 목조이고 농업개발사업에 수십 조 억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에 농가 수입이 급증하였던 것과 달리 그가 쏟아부은 천문학적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농가는 부채더미에 앉게 되었다.

   김대중에게 산업화 개념이 있었던가? 아니다. 전혀 없었다. 물론, 김대중도 이루어놓은 것은 있다. 한국을 르또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카지노를 전국 곳곳에 세웠다.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었던가? 금강산 관광사업이라는 것을 만들어 현대를 막대한 정부지원을 받고도 쓰러지게 하였으며, 김정일에게 신예 전투기 구입 등에 사용하여 우리나라를 공격할 전쟁준비 자금을 송금케 하였다. 그 외에 또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한국의 귀중한 산업공장들을 해외에 매각하여, 그 귀중한 외화를 김정일에게 비밀송금하였다.

   따라서, 만일 한국에 제2공화국에 머물러 있었거나, 박정희 대신 양김씨가 집권하였다면 민주주의가 이 땅에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농업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예는 없다. 세계지도를 놓고 펼쳐 보라. 그 어느나라에서도 농업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례는 없다. 쿠바 등 독재국가들이 중남미에 수두룩한데 한결같이 그 특징은 농업경제 머물러있다는 사실이다. 어째서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 혁명이 유럽에서 일어날 수 없었는가? 그것은 산업화 사회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신분이 상승하고 경제력도 누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공산주의를 원하겠는가?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혁명에 성공하면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준다는 반쪽 거짓말로 농민을 선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겠다는 약속은 정확하게 지키면서, 농민에게 그 토지를 분배한다는 약속은 지킨 적이 없기에 그들의 약속은 반쪽 거짓말이었다. 여하간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공산주의가 맥을 추지 못한다.

   1990년에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가 어째서 스스로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는가? 그것은 늦게라도 산업혁명을 하던가 아니면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나라로 전락할 것인가의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스스로 공산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정치를 시작하였으며,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는 부르조아 혁명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우주선을 발사할 능력이 있는 나라에서 바늘 사기 어려운 모순이 생겼다. 그러기에, 서구형 산업혁명을 늦게라도 시작해야 했으며, 그것은 공산주의가 사라짐을 의미하였다.

   북한 김정일의 갈등이 무엇인가? 경제를 살리려면 러시아처럼 산업혁명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처럼 산업혁명을 시작한다는 것은 공산주의를 스스로 무너뜨려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김일성-김정일 왕조의 몰락을 초래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 토론에서 이회창 후보가 옳았고 노무현 후보 말이 틀렸음이 바로 이 대목이다. 노무현은 북한 공산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대북 경제지원을 말하지만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김정일은 중국을 기웃거리지만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아니다. 중국은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북한을 이용하기 위해 북한이 간신히 연명하도록 지원하지만 북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방해한다.

   1950년대에 한국 정부는 남로당 잔존세력 및 빨치산과 유격대 등의 빨갱이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여야 했다. 그러나, 5.16 이후 산업혁명이 시작됨과 더불어 빨갱이들의 반란도 수그러들었다. 이제 누구든 열심히 일하면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천막공장 수준의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하면서 무수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누구에게는 중산층으로 신분 상승하는 기회가 열렸다. 무엇이 차이였던가? 사회 신분이 지주와 빈농으로 나뉘어 있는 농업사회는 공산주의 혁명에 취약하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혁명을 추진하시면서 빨갱이들이 설자리는 없어지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은 시민혁명을 일으키려 한다. 노무현의 사전 불법선거운동도 지난해부터 노사모에 시민혁명을 선동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노무현이 노사모와 명계남 부정선거운동단 시민혁명을 주문할 때 그 숨겨진 꼼수는 반칙선거운동 선동이었다. 권투시합의 예를 들어보자, 일대 일의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선수 측 노사모들이 각목을 들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상대 선수를 헐뜯고 몰매를 가하면 정정당당한 승부가 되겠는가? 본래 민주주의 선거란 정책 대결이다. 그리고 노사모와 명계남 부정선거운동단이 날뛰는 부정선거운동의 과오는 승부가 정책이 아니라 선동에서 가름 난다는 모순이다.

   그러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혁명과 노무현의 시민혁명의 단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혁명의 주체는 누구였던가? 국민이었다. 노무현의 시민혁명의 주체는 누구인가? 친노 세력이다. 노무현은 시민혁명을 노빠들, 즉 친노 세력더러 일으키라고 한다. 국민이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달리, 노무현의 꼼수는 국민을 친노 세력과 반노 세력으로 갈라놓아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러면, 서구의 산업혁명을 연구하셨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노무현은 어떤 모델에서 시민혁명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을까?

   똑같이 농부의 자녀 출신이되, 박정희는 한국, 일본, 만주, 미국, 독일 등의 여러나라 경제를 깊이 연구하고 산업혁명이 민족의 살길임을 발견하셨던 데 비해, 노무현은 여전히 농업경제 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의 장인도 놀고 먹으면서 근면한 사람 것 빼앗아 살자는 남로당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이편저편으로 갈라놓고 죽창으로 학살하였다. 그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남로당식의 혁명관이 경제주권을 상실하게 하였기에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친일파였다.

   광주사태 배후에 문성근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대중이 1980년 5월 22일 전국적 민중윤綬?일으켜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 하야시키고 집권하려 하였던 것이, 사전 발각으로 좌절되자 윤상원이 대신 일으킨 것이 5.18광주사태였다. 그런데, 김대중의 쿠데타를 지원하던 문익환 목사는 1884년의 동학혁명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문익환은 산업혁명 시대와 농업경제 시대를 혼동하는 우를 범하였다. 노무현이 말하는 시민혁명의 원조 역시 동학혁명이었다.

   무엇이 동학혁명이었던가? 그것은 농민들의 반란이었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없는 사회의 서민은 농민이기에, 그리고 신분상승의 소망이 달리 보이지 않던 정황에서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그런 반란이었다. 무엇을 요구하였는가?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산업혁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외국과의 외교와 교역을 중단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민족주의적 시민혁명이었는가? 그러나 그 결과는 외국군대들을 한국에 끌어들여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하였다. 즉, 을사보호조약의 원인 제공은 동학혁명이 하였다. 경제 주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치안력마저 일본 군대의 손에 넘어간 다음에는 누가 조정 대신이라 하더라도 을사보호조약에 도장을 찍지 않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의 시민혁명의 또 다른 모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노무현이 가장 존경하다는 모택동이 1960년대 중반에 중국에서 일으킨 문화혁명이었다. 부정선거운동단 단장 명계남이 노사모더러 홍위병이 되라고 말할 때 바로 모택동 홍위병들의 본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당시 모택동은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인민을 노무현처럼 이편저편으로 갈라놓은다음 모택동 편이 아닌 자들이 청소년들로 구성된 홍위병들이 죽이게 하였다. 왜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일으켰는가? 그것은 중국의 산업혁명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모택동은 농민혁명으로 중국공산당 혁명을 일으키고 1949년에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런데, 1966년에 당시 국가주석 유소기가 이끄는 지도부는 자본주의 경제를 중국이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즉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을 본받아한다는 보고가 채택하였다. 그런데, 중국의 산업혁명은 모택동의 몰락을 의미하였다. 그는 산업혁명의 시작은 공산당의 정체성 상실을 의미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산업혁명 견제 혁명으로서 문화혁명을 일으켜 무수한 학자들을 죽였으며, 그것이 중국의 현대화를 20년 지연시켰다.

   그런데, 노무현이 그의 시민혁명 모델로 삼는 동학혁명과 문화혁명 모두 그 시대 배경은 농경사회이다. 여전히, 농경사회의 사고방식에 머물러있는 사람은 계급 투쟁을 말한다. 민노당과 열우당 등 오늘날 한국의 퇴보적 진보세력이 말하는 계급투쟁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19세기 농경사회 때의 공산주의 이론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19세기 농경시대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이 21세기 한국을 이끌겠다고 정치 지도자로 나선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이 국민을 속이고 친일청산법이란 미명으로 친일청산법을 제정하며 개정하려 할 때 그의 꼼수는 박정희 대통령을 척결하려 하는 것이다.

   무엇이 친일이었던가. 놀고 먹으면서 근면한 사람의 것 빼앗아 살자는 게으름과 나태를 그 근본으로 하는 남로당 정신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썩어빠진 남로당 정신을 가진 사람들, 부지런히 일하려는 희망을 갉아먹으려는 자들 때문에 경제주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그럴진대, 근면 정신을 적으로 삼는 시민혁명이야말로 친일파인 것이다. 박정희가 누구인가? 산업혁명과 조국의 근대화로 친일파로 청산하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근면 정신을 비웃는다는 의미에서의 친일파 거두 노무현이 꼼수로 박정희 대통령을 척결하려고 할 때에 그는 산업혁명의 주역과 산업혁명 세대를 척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번 뒤쳐진 나라는 영세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왜 노무현은 모르는가. 만일 세계 각국이 발전하고 있을 때 노무현은 모택동처럼 산업혁명을 부정하는 것이 노무현의 의도라면 이것은 분명 노통이 탄핵되어야 할 사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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