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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4월 24일 

박정희의 건설정신과 노무현의 파괴정신

   어제(2004년 4월 22일) 북한 신의주 부근 용천역에서 열차폭발사고가 나자마자 미 국무성 대변인은 만일 북한이 원한다면 미국은 즉시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미국 UN본부에서는 북한 대표가 뛰다시피 빨리 걸으면서 "국제 사회는 어서 와서 북한을 도와주세요! 북한은 지금 대재난을 당하였습니다. 북한은 국제 사회의 긴급 구호가 필요합니다( We need help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for the emergency relief)" 하고 외쳤다. 이것은 실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폐쇄적인 국가 북한은 북한이 실상이 해외에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데, 미국의 구조 지원 제의를 황급히 받아들였으며, 미국도 북한 대표의 호소를 들은 즉시, 의료 지원, 천막 등 생필품 지원, 구조 작업 등을 할 구호기관들을 북한으로 출발시켰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는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다는 말인가? 열우당의 친북정책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친북정당 민노당은 왜 남의 일처럼 팔짱만 끼고 있는가? 이라크 문제로 여념이 없는 미국도 오늘 아침 북한에 여러 구호 단체들을 보냈다. 그런데, 한국의 친북 단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동포이기에 감싸야 한다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지원하고 옹호하던 친북 단체들이 북한 동포들을 대재난으로부터 구조하여야 할 때에는 모른척 한다는 말인가? 친북 정부임을 내세워 노무현 정부가 UN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때도 기권표를 던진 것도 모순이거니와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서둘러 구호 단체들을 북한에 보내고 있을 때 우리 정부만 무관심한 체 딴청을 팔고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러면, 북한 사회의 실상이 외국에 공개되기를 꺼리는 북한이 그들의 나라꼴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구호 단체들의 입국을 환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철도가 끊겼기 때문이다. 철도 하나가 끊긴 것이 왜 그토록 대단한 문제인가? 그것은 북한으로서는 중국과 북한을 잇는 교역로가 끊긴 것은 생명선이 끊긴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이 파괴의 참상이다. 철로 하나가 끊어져도 당장 북한 경제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다. 아무리 반미주의의 기세가 강한 북한, 거리마다 미제국주의자들을 처단하자는 포스터가 나붙어 있는 북한이라 하더라도 철로 하나가 끊기자 이렇게 맥을 못 추고 미국과 국제사회 구호단체들의 입국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런데, 정치에도 건설정신과 파괴정신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의 정치철학간에 대조되는 점이다. 노무현은 2003년 12월 19일에 그의 당선 1주년 행사에 참여하여 "시민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번 나서 달라"며 노사모에 17대 총선을 겨냥한 불법선거운동을 독려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상 가장 공명선거였던 1963년 10월 대선후 박정희 대통령께서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신 때가 정확하게 40년 전인 2003년 12월 17일이었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께서 품으셨던 정치 철학이 1964년 새해 달력에 그의 친필로 밝혀져 있었다. 당시 달력은 요즘 달력에 비하면 아주 촌스러웠다. 그러나 그 글의 내용은 심오하였다; "민족은 생명체와 같아서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

   민족은 생명체와 같아서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집권 초기의 박정희의 이 통치 철학은 1979년 10월 16일 김재규에 시해당하시기까지 16년 간 지속되었다. 무릇 모든 생명체는 자양분을 먹고산다. 꽃도 물을 먹고산다. 그러면 민족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꿈을 먹고산다. 이것이 진정한 항일운동 세대의 증언이었다. 박정희는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이 광복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광복의 꿈이 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우리 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일본이 주권을 강탈할 수 있었어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는 광복의 꿈을 훔쳐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박정희가 "민족은 생명체와 같아서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고 말하였을 때 이것은 그의 민족사관은 건설과 발전의 역사임을 입증한다. 중요한 것은 일제시대도 우리 민족이 광복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강인하고 끈질긴 민족이라는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시련이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꺽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건설과 발전의 역사의 시각에서 보는 항일운동은 노무현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항일 운동을 본다. 노무현이 2003년 12월 19일에 "시민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친일청산법으로 친일파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의 시민 혁명은 건설이 아니라 파괴의 혁명이라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자, 역사에 무지한 노무현이 100년전인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친일파 척결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어른들을 친일파로 매도하기 위하여 친일파청산법을 개정하려 한다. 아마 노무현의 잣대에서는 친일파 소리를 면할 수 있는 이들은 일제 시대 때 중국공산당 팔로군 소속 조선인 부대와 러시아 붉은군대 소속 조선인 부대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명암은 있다. 일제시대 조선인은 세금을 이중으로 내어야 했다. 총독부에도 세금을 내고 독립군 군자금도 내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진정한 항일운동을 하였던 상해임정은 거의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 팔로군 소속 조선인 부대와 러시아 붉은군대 소속 조선인 부대가 독립군 군자금을 독차지하였다는 얘기였다. 만일 그들 좌익 단체들이 독립군 군자금을 조금만 상해임정과 나누었어도 상해임정 인사들이 끼니를 그렇게 자주 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좌익 단체들의 문제는 해방 후에도 신탁통치 찬성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몇 점으로 독립국가가 되었을까? 60점이었다. 비록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였어도 대한민국 건국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해방 정국 때 스탈린 지령을 받은 좌익단체들이 신탁통치 찬성 시위를 하였던 까닭이다. 노통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좌익 단체들은 해방 정국 때는 신탁통치 찬성 시위를 하였던 사대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인은 아직 독립국가를 지탱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강대국 신탁통치를 받아야 한다면 전국적인 시위를 선동하였다. 다행히 이승만씨를 비롯한 애국 우익이 신탁통치를 반대하였기에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우리 민족이 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다.

   아마 기간 시설에도 우리가 낙제점을 겨우 면했기에 신탁통치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45년의 한반도 문명시계를 1910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하자. 전기도 없고, 발전소도 없고, 항만도 없고, 철도도 없고, 공장도 도로도 없고, 학교도 없고, 공공건물도 없고, 근대 국가 행정을 위한 아무런 경험도 없고, 은행도 없고 시장도 없고, 공중화장실조차 없었던 구한말로 문명의 시계를 되돌려놓았다면 신탁통치를 면하는 것이 가능하였을까? 일제 36년간에도 해방과 독립의 꿈을 가진 민족이 철도와 발전소, 항만과 도로를 건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광복의 때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립국가를 지탱할 만한 실력을 준비하였기에 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군대 소속 조선인 부대는 이런 건설에 참여한 바 없다. 그럴진대, 만일 친일파를 가리는 노무현식 잣대에는 건설을 부정하는 위험이 있다.

   노무현 통치는 파괴로 그 서막을 열었다. 노무현이 청와대 주인이 되자마자 서열 파괴가 유행어가 되었다. 서열파괴란 본래 공산주의자들의 계급투쟁 논리였다. 해방정국 때 신탁통치 찬성 시위를 하던 남로당은 서열 파괴의 혁명을 하려 하였다. 그리고, 그 극단적인 예는 머슴이 자기 주인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거나 때리고 재산을 빼앗은 다음 주인을 종 취급하는 서열 파괴였다. 그런 잔혹한 서열 파괴의 무리 중에는 노무현의 장인 권오성씨도 있었는데, 그들은 서열 파괴를 혁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이 말하는 시민혁명이란 파괴를 말한다. 노무현은 그의 파괴 공작을 위해 국가 건설의 주역들을 친일파로 매도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처럼 노무현 정치는 미래지향적이 아니라, 과거지향적이며, 노무현 정치는 국가정통성 파괴의 정치이다. 노무현이 국민에게 제시하는 국가미래상은 없다. 만일 있다면 시민혁명이란 이미지 조작으로 위장한 파괴이다.

   그러나 과거를 거슬러올라가며 파괴거리를 찾는 노무현의 국정운영 스타일과는 박정희 대통령의 눈과 손가락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보신 대한민국의 역사는 건설의 역사였다. 1963년 12월 대통령 취임 당시 어디선가에서 "민족은 생명체와 같아서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고 말씀하셨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로부터 꼭 5년 후인 1968년 12월 5일에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하게 하셨는데, 그 헌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민족 증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이처럼 건설의 역사의 시각은 정권의 정통성을 상해임정과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에서 찾는다. 문제는 이승만 정권이 얼마나 완전하였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기의 초대 정권이 건설의 방향으로 열려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승만 정권이 경제 자립을 이루지 못하였다면, 그럼에도 민족의 시련기에 정치주권을 회복하며 지켜낸 정권이다. 그래서 그 건국 정신을 박정희는 계승하였다. 그러나, 파괴자의 시각에서 노무현은 평생 항일운동하신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로 매도하여 척결하려 한다. 이처럼 위험한 사관을 지닌 노무현이 국민을 기만하며 꼼수로 친일청산법을 개정하려 할 때 그 목표는 무엇인가? 김정일 입장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은 적화통일에 걸림돌이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끙끙이 속으로 노무현은 대한민국 정통성마자 파괴시키는 무리를 범하려 하는 것인가?

   파괴정신에 집착하는 노무현의 시각에서는 모든 것이 파괴와 해체와 와해의 대상이다. 노무현이 말하는 개혁은 파괴요, 노무현이 말하는 시민혁명은 해체와 와해이다. 자기가 당수로 있는 정당을 일년 만에 와해시키는 솜씨를 가진 자에게 수도 이전을 맡기는 것은 서울 해체를 주문하는 것과 같다.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서열 파괴, 보안법 철폐, 재벌 해체, 야당 와해 공작, 기업들의 해외 이전, 청산, 척결 등 노무현 정책의 파괴와 해체와 와해 목록은 참으로 길기만 하다. 그러나, 철부지처럼 다 부스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한국인이 1인당 외국에 진 빚이 350만원을 넘었다. 국내 4대그룹의 외국인 지분이 최근 60%를 넘었는데, 노무현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 외국 자본도 철수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붕괴를 의미하며, 현재 우리경제의 성장에대한 수출기여율이 98.2%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것은 한국의 경제 주권마저 위협하는 경제 파탄을 자초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은 생명체와 같아서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고 말하셨을 때 그것이 서민을 위해서는 무엇을 의미하였던가? 노무현의 서열파괴적 시민혁명은 서민들을 밥그릇 싸움판으로 몰아놓는다. 그 정책은 열심히 일한 개미의 것을 빼앗아 놀고 먹는 베짱이에게 주는데 있다. 그런데 그런 정책의 약점은 국민에게서 열심히 일할 희망을 도적질한다는 것이다. 놀고 먹으면서 부유세 거두면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곧 더 이상 부유세를 거둘 곳이 없게 하는 경제파탄도 문제이지만, 그런 빼앗기 식의 국정운영은 냉랭한 사회가 되게 한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서민에게 "명랑하고 따듯한 협동정신으로" "국가 건설에" 참여할 희망을 주셨다. 이런 건설의 통치 철학이 이끄는 사회에서는 가진 자는 투자로 못 가진 자는 근면으로 명랑하고 따듯한 협동을 하기 때문에 다같이 잘 사는 나라가 되며 국력이 발전한다. 아직 한국에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시장 경험도 없었던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은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는 진리를 증명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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