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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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26일 

친일청산 주장하는 열우당 흑백논리의 모순

   쿠바를 탈출하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의 작품 배경인 멕시코 만에서 난파한 피난선이 이틀 동안 표류하다 미국의 1999년 추수감사절( 11월 25일)에 구조된 소년이 있었다. 바로 여섯 살 난 엘리안 곤살레스이다. 만일 이데올로기만 놓고 따진다면 이 난민 소년의 정치적 망명은 대 중남미 미국 이데올로기 외교의 큰 호재이다. 그러나 부자지간의 정이 이데올로기에 우선할 것이므로 아이를 쿠바로 송환하자는 인도주의적 여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것이 미국에서는 한국의 노통 탄핵 찬반 토론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 4월 22일에 웃지 못할 희대의 사건이 있었다. 물총 하나도 갖지 않은 천진무구한 어린이 하나 탈환하는데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병력이 해머로 출입문을 부수고 최루가스를 살포하면서까지 진입하여 그 철없는 아이에게 기관단총을 들이댄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의 정치적 망명 절차를 밟으려던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송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미국 마이애미에서 아이를 보호하던 친척들과 이웃 주민들이 불복하므로 무력으로 공권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이 법치주의를 숭상하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중무장 병력의 작전의 대상이 물총 하나 가지지 않은 여섯 살 난 소년이고 보니 해도 너무하다싶어 미국 여론이 다시 들 끊었다.

   당시 미국은 엘리안 소년의 보호권 문제를 놓고 행정부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에서 국론이 양분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미 연합감리교‘사회분과위’에서는 엘리안군의 송환을 돕기위해 소송 비용을 모금하고 있는 반면 동교단 학술단체 ‘종교와 민주 문제 연구소’에서는"독재 정권을 피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탈출한 엘리안군을 다시 쿠바로 보낸다는 것은 엘리안군의 인권을 더욱 무시하는 처사"요 결과적으로 독재자 카스트로만 도울 뿐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이 엘리안 소년은 아버지 없는 미국과 미국의 미래의 약속이 없는 아버지 나라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애정의 문화는 혈육지간의 정을 끊지 말라고 말한다. 이데올로기의 문화는 미국의 교육과 자유를 택하라고 한다. 소년은 갈림길에 서있으며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단 한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선택의 결정의 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의 때였다. 그런데 소년의 나이 이제 겨우 여섯이었기에 친척들이, 지역 주민들이, 사회 단체와 종교 단체들이, 미국과 쿠바가 서로 자기네가 그 결정을 하겠다며 서로 아이를 끌어당기느라 야단들이었다.

   그때 엘리안 소년이 어디에 있었는가? 미국에 속해 있었는가? 아니면 쿠바에 속해 있었는가? 지금 2004년에 한국에서 친일청산법을 제정하려는 열우당의 흑백논리에 따르면 엘리안 소년은 친미주의자 혹은 그 반대로 반미주의자로 매도된다. 열우당의 흑백논리는 엘리안이 미국과 쿠바의 중간 지대에, 경계선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사실을 보지 못하며, 그들의 논리는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친다. 미래지향적인 박정희 대통령과 과거지향적인 열우당이 민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은 생명체와 같아서 꿈이 있는 민족은 번창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한국 민족은 열등 민족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가 볼 때 한국인은 희망의 미래와 가난한 현재 사이에 있었다. 민족의 역사는 진행형이다. 일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해방과 독립의 희망을 바라보았다. 조국이 가난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영구적 가난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한국은 가난과 풍요의 경계선에 있었으나, 풍요와 희망을 향하여 항해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과거지향적인 열우당의 비뚤어진 사관에서는 모두가 친일파로 매도된다.

   친일청산법을 추진하는 열우당은 일제 시대 때 근면하였던 사람들을 친일파로 매도하려는 듯하다. 그런데, 그 모순은 해방 후 북한에서의 친일파 청산 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 시대 때도 열심히 일하고 사업하여 재산을 좀 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남보다 일본총독부에 내는 세금이 많았기에 친일파들이었던가? 아니다. 일제 시대 때도 조선의 엄청난 재화가 독립군자금으로 송금되었다. 독립군자금을 누가 내었는가? 바로 열심히 일하고 사업하여 재산을 좀 모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였으며 일본 상인들과 경쟁하여 사업가가 되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선총독부에 납부하는 세금이 많았다. 그러면 그들은 친일파였는가? 아니다. 그들에게 해방과 독립의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비밀이 있었다. 그들은 독립군 군자금을 송금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선의의 비밀송금이었다. 독립군 군자금을 후원한다는 사실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는 그 시간 그들은 생명의 위협과 더불어 모?것을 잃어버려야 했다. 그럼에도 독립군자금 송금은 끈질기게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애국심도 애국심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 시대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그리던 조국 광복을 맞이하자마자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먼저 북한에서의 친일청산의 예를 들어보자. 동네 부랑배 청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붉은 완장을 차고 나타나서 그들을 도끼로 쳐죽이고 재산을 몰수하였다. 놀음으로 가산 탕진한 사람들은 제 세상을 만났으며, 근면하게 일하던 사람들은 친일파로 매도되었다. 재산이 있다는 것은 일본총독부 납세자였다는 증거요 그러기에 친일파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친일파 낙인이 찍히면 도끼로 쳐죽이고 재산을 몰수하였다. 다행히 남한에서는 미군이 치안을 유지하여 주었으나, 북한에서는 러시아군이 이런 살인극을 방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오히려 공산당 당원이 되어 출세하는 길이었다.

   열우당식의 이런 흑백논리와 북한의 이런 친일파청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들은 일제 치하에서 비밀리에 독립군자금 송금하였던 이들의 애국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 고문을 당하며, 처벌받으며,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애국 운동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독립군자금 중 대부분을 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빨치산 부대가 갈취하기는 하였으나, 상해임정에도 도달한 독립운동 자금이 상해임정의 명맥을 유지시켜 우리 민족의 해방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후원자들이 해방되자마자 동포의 도끼에 맞아 죽었다. 심지어 일본 총독부도 그런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독립군자금을 송금하다 발각되면 재판을 받고 몇 년 옥살이를 하게 될지언정 도끼로 쳐죽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해방 후에 그들은 우리 동포의 손에 처참하게 맞아 죽었다.

   둘째,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친일파 청산을 하였을 때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였다. 지금 북한은 미국의 식량 원조 없이는 인민 대부분이 굶어죽어야 하는 나라이다. 만일 그토록 깨끗하게 친일파 청산을 하였다면 보다 잘 사는 사회가 되었어야 옳지 않은가? 아니다. 근면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친일파로 매도하여 처단하였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식량을 구걸하는 나라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사업가의 두뇌를 가진 사람들을 친일파로 매도하여 처단하였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한이 오늘날 가장 국제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게 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그것은 그들은 멕시코만의 엘리안 소년은 미국과 쿠바의 경계 지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제시대 부호들 중 다수는 시대 환경이 강요하는 수동적 친일과 민족 해방을 위한 자발적인 독립운동의 경계지점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근면 정신과 사업 두뇌를 친일파로 매도하여 척결하였다.

   그러나, 독립군자금을 후원하였던 일제 시대의 부호들에게도 전혀 과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막대한 독립군자금 후원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대에 독립군은 없었다. 독립군을 자처하던 자들은 중국공산당 팔로군 소속 조선의용군이었거나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였다. 그들이 만주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몇 차례 소규모 교전을 벌인 적은 있으나,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한 적은 사실상 거의 없다. 해방 후 그들은 러시아군의 앞잡이가 되어 북한을 공산화시켰으며, 그들의 친일 청산의 희생자들은 바로 그들에게 막대한 군자금을 후원하였던 자들이었다. 어쩌면, 일제시대 때 일본인과 경쟁하며 근면하게 살았던 분들이 독립운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정체가 빨갱이였던 자들이 내밀었던 독립군 명함에 속는 것뿐이었다는 사실에 민족적 비극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하간, 우리는 멕시코 만에서 강제 송환과 미국 망명의 갈림길에 있었던 엘리안 소년은 친미와 반미의 경계지점에 있었음을 보지 못하는 열우당의 흑백논리, 근면 정신과 숨은 애국까지 친일로 매도하는 친일청산논리를 거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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