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2004년 시사칼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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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된 안보논리

   2002년 16대 대선 기간 중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서로 상반된 정책을 내놓았다. 이회창 후보 안보 정책의 핵심은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전쟁 억제력이었다. 반면 노무현은 전쟁 억지력은 필요없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김정일 형님에게 아양떨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국제 깡패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어주며 아양떨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노무현의 논리에서는 한미동맹의 필요성이 부정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진다. 노무현은 반미 친북하면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미국과 북한이 충돌하면 미국을 말리고 북한 편을 들겠다고 하였다.

   미국은 이런 반미 공약을 한 노무현을 선택한 한국 국민에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노무현의 논리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거나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도 한국 방어의 책임을 더 이상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 이상 한국인의 자유 수호를 위해 피 흘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무현이 청와대로 복귀하자마자 미국이 주한미군 4,000명을 차출하여 이라크로 보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2004년 5월 17일).

   그리고 국제 강도 김정일의 강도질을 막으려면 우리의 혈맹이자 국제 경찰인 미국을 말려야 한다는 노무현 후보의 위험한 논리가 마침내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한 저명한 우익 논객이 탄식하듯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이제 한국 안보는 한국인이 지켜야 한다. 미국인이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신 피 흘려줄 의지를 가지고 있는 한 김정일은 남침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자기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리는 것은 한국인의 몫이라고 여긴다. 이렇듯 김정일의 남침 가능성은 높아지고, 우리의 국방은 훨씬 더 고된 일이 되었다.

   노무현은 아주 신속하게 우리나라를 전쟁 위기로 몰아오고 말았다. 그러면, 그 무엇이 노무현의 잘못된 안보정책이 대세가 되게 하였는가? 그것은 잘못된 통일정책에 기인한다. 전교조가 통일교육을 한다. 공산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의 통일이 과연 가능한가? 그러나 전교조는 그런 질문을 안한다. 전교조 교사들은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김정일 장군을 숭배하면 두 다른 체제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들은 우리의 민주주의 이념과 자유와 인권을 포기하고 김정일의 노예가 되면 북한과 통일된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노무현처럼 반미 친(親)북한-공산주의 노선을 선택하여 북한 김일성-김정일 왕조에 아부하는 것이 과연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길인가? 과연 전교조 교사들처럼 통일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민주주의 이념과 자유와 인권을 포기하자고 킢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전쟁을 예방하는가? 아니다. 우리의 쓰라린 민족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반미 친(親)북한-공산주의 노선에 관한 한 박헌영은 노무현의 대선배였다. 그리고 김일성이 박헌영을 사형에 처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는 김일성이 아니라 남한 출신 박헌영이었다.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을 정도로 박헌영의 남로당은 지독한 반미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흡수되자는 통일정책에 있어서도 박헌영은 전교조의 대선배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바로 그 박헌영의 통일정책을 김일성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일어났다.

   1949년 박헌영의 남로당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한 후에 김일성과 회동하여 이런 밀담을 주고받았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만들고 정권을 잡았으나 전국은 남로당 손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럼 남쪽까지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만들 방법은 없습니까?"

   "내가 그걸 말하려고 수령 동지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승만 일당은 한 방이면 날아 갑니다. 스타린 동지와 상의해 주시지요."

   "네 알겠습네다. 박헌영 동지."

   이처럼, 한국 전쟁 발발 직전에도 지금의 전교조와 범대위와 노사모처럼 통일 목표를 강하게 내세우는 무리들이 있었다. 오늘날 남한의 주사파와 친김정일 세력처럼 그때도 통일을 위해서라면 자유 민주주의는 포기하고 북한의 지배를 받겠다는 얼빠진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국적은 대한민국 국민이었으되 현실성 없는 통일관에 있어서는 빨갱이였던 무리들이었다.

   만일 노무현의 논리대로라면 남로당의 후예, 즉 친김일성-김정일 왕조 세력이 남한에서 크면 클수록 전쟁 위험이 감소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한의 친김일성-김정일 세력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오히려 남로당 세력이 강하였기 때문에 김일성이 군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남조선 해방 전쟁을 일으키면 남한에서도 남로당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어 일거에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국 전쟁 때 미국의 참전 결정은 실로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북한군이 삼팔선을 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것은 우발적 소규모 교전이 아니라는 판단을 빠르게 하고 일본에 국제전화를 걸어 아직 자고 있는 맥아더 원수를 깨웠다. 맥아더 장군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우리가 뭐라고 하였소.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우리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당신들 마음대로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전쟁 났으니 빨리 책임지시오"라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답변한다. "각하, 잘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즉시 미국의 참전을 건의하는 보고 전문을 트루먼 대통령께 올리겠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참전하고 싶지만 트루먼 대통령께서 참전 결정을 내리실 지 장담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의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고 답변한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과 극동 황제 맥아더는 사이가 안 좋지만 어찌된 일인지 맥아더의 참전 건의 보고를 받은 트루먼은 미 의회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조차도 생략하고 그 즉시 미국의 한국전 참전 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전쟁이 일어날 때 미국이 그때처럼 속시원하게 참전 결정을 해 줄 것인가? 그것을 기대하기에는 미국과 주한미군은 반미 촛불시위족에게 너무도 시달렸다. 여기서 국민이 노사모와 한총련 등 반미 촛불시위족에게 궁금히 여기는 점은 이것이다. 김정일이 남침할 경우, 노사모는 전쟁 반대 촛불 시위를 할 것인가?

   미2사단이 전방에서 북한군의 장갑차 저지 훈련을 할 때 미군 훈련장의 훈련 시간을 알리는 사전 예고를 주민들에게 해 줄 것을 김대중 정부에 공문으로 보냈다. 소파 규정에 따라 행정부는 미군 장갑차 훈련장의 훈련 시간을 그 지역 주민에게 사전 예고하도록 되어있다. 분명 그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쪽은 김대중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미 오래 전에 주한미군은 두 여중생 가족에 4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낸 촛불시위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김정일에게는 통할 것인가?

   전세계에서 되풀이되는 좌익의 역사가 무엇이던가? 그것은 정권을 잡기 위해 이용하였던 자들을 숙청 대상 리스트 첫줄에 올려놓는 것이다. 김대중이 김종필 총재와 이인제 의원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을 때 어떤 약속이 있었다. 김종필 총재에게는 집권 후반기에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다는, 그리고 이인제 의원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한다는 약속이 있었다. 좌익 세력이 그 약속을 지켰는가? 아니다. 실컷 이용한 다음 지금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숙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한이 좌향화할수록 전쟁광 김정일은 군침을 흘린다. 남한의 남로당을 보고 김일성이 전쟁 도발욕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범대위, 전교조, 노사모, 정치권의 친북 좌파 세력 등을 보며 김정일은 군침을 흘린다. 즉, 친김정일 논리는 전쟁 위기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조시킨다. 그리고, 김정일이 남조선 해방 운동을 일으킬 때 노사모는 전쟁 반대 촛불 시위를 할 것인가? 아니다. 주한미군 철수를 위해 김정일에게 이용가치가 많았던 촛불시위족은 아마도 김정일의 학살 대상 리스트 첫줄에 있을 것이다.

   친미 문화 반미 촛불시위족이 누구이던가? 그들은 무한 자유를 요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무한 자유를 요구할 권리로, 심지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게까지 정치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자유로 여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무한 자유를 요구하는 자들이야말로 김정일의 가혹한 전제정치에 가장 적응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반미 친북한 공산주의 촛불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그런 시위를 한 자들이야말로 북한 공산당 지배 체제 하에서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무한 자유를 요구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기 족쇄에 얌전히 채여있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잔혹하게 학살할 뿐이다. 그는 제대로 된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인구의 70%를 학살해도 좋다고 말하였다.

   노무현은 강도의 공격을 막는 방법은 경찰을 말리고 강도에게 아양떠는 것이라는 논리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런 논리가 마침내 주한미군 철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강도 편을 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증언해 준다. 강도 편에 기어 들어가 민족 통일하자는 주장의 원조는 박헌영의 남로당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때 김일성에게 아주 이용가치가 높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운명은 무엇이었던가?

   1952년 12월 15일, 김일성은 노동당 제 5차 전원회의에서 핵폭탄과 같은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종파분자들은 당과 정권기관에 파고들기 위해 과거의 혁명생활에서 깨끗지 못한 것을 서로 엄폐해 주며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분자들을 묵과할 수 없다! 종파주의 잔재를 그냥 남겨둔다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들과 우리의 형제적 당들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의 마지막 길은 적의 정탐배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에 우리 당은 심심한 주의를 하지않을 수 없다!" 1953년 2월 박헌영은 연금당했다. 동시에 이승엽, 조일명, 임화, 박승원, 이강국, 이원조 등 남로당의 지도부들이 검거되어 7월 30일 기소되었다. 8월 3일 공판이 시작되었고, 8월 6일 남로당 간부들이 싹쓸이 사형되었다. 오히려 남한 이승만 정부에는 감히 남로당 지도부를 건드릴 힘이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공산당 지도부가 남한 공산당 지도부를 사형에 처하였으며, 마침내 박헌영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박헌영이 이년 동안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미제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거부하자 김일성은 고문실에서 박헌영을 빨개 벗기고 여러 마리의 세퍼트를 풀어 물어뜯게 했다. 그제야 허위자백 요구에 응한 박헌영은 1955년 12월 15일 초췌한 표정으로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9년부터 체포될 때까지 미국의 간첩으로 있었다…." 그리고 12월 17일 그는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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