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교회 황효식 목사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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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7일 

황장엽- 배신자인가, 의인인가?

황장엽씨는 우리 시대의 라합이다

   「서프」의 고정 필진중의 한 사람인 김동렬은 "황장엽과 송두율은 조폭의 의리도 없는 자들이다. 물론 따지자면 황장엽이 더 악질이다. 그러나 둘의 차이는 오십보백보다. 둘은 공통적으로 인간에 대한 죄를 저지른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원조격인 황장엽이 훨씬 더 나쁜 놈이라고 비난을 하였다. 나는 송두율에 대하여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는 자신의 잘라빠진 학문 타령이나 하며 진짜 정의를 배신한 인간이므로.

   「문제는 황장엽씨다. 김동렬의 말처럼 황장엽씨가 조폭의 의리조차도 없는 악질 배신자인가? 「서프」의 필진들이나 독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황장엽씨를 조직사회의 배신자로 몰아가는 분위기다.「서프」의 대문에 올라온 또 다른 글에는 "황장엽은 북한체제에서 가장 잘먹고 잘살았던 사람이고, 북한체제를 배신하고 남한에 와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북체제를 타도하는 것 이외에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북화해정책 하에서는 황장엽 같은 인물은 두 번 다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라고 자못 비분강개하고 있다.

   「조폭체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북한의 통치집단에서 볼 때, 황장엽씨는 분명 배신자이다. 그러나 수백만명이 굶어 죽어가는 북한사회의 참상과 북한통치집단의 기만과 허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귀순한 것을 배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하여 불의와 거짓을 폭로한 것이 배신인가?

   「김동렬은 배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김동렬의 말대로 황장엽씨가 조직을 배신한 악질 배신자라면 사교집단이나 조폭세계에 몸담았다가 거기에 회의를 느끼고 빠져나온 사람들도 모두 배신자들인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세계의 거짓과 불의와 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거기에 등을 돌리고 돌아선 행위가 배신인가? 천만에. 그건 배신이 아니다. 배신이 아니라 용기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배신은 선을 배신하는 것이지 악을 배신하는 게 아니다.

   「성경은 이 세상 임금이 사단이라고 증거한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사단을 섬긴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임금 사단에게 등을 돌리고 예수를 선택한 배신자들이다. 김동렬의 논리대로라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가장 악질적인 배신자들인 셈이다. 실제로 사단은 자신을 배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시무시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기억할 만한 배신자가 두 사람 나온다. 「아히도벨」과「가롯유다」이다. 아히도벨은 주군 다윗을 배신했고 가롯유다는 스승 예수를 배신했다. 그리고 둘 다 자신들의 배신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진짜 배신이냐? 다윗과 같은 성군을 배신하는 것이 배신이다. 예수와 같은 참스승을 배신하는 것이 배신이다. 김정일이나 문선명같은 인간을 배신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인 것이다.

   「김동렬은 황장엽씨가 먼저 겨레를 배신했고, 다음 자기가 섬기던 주군을 배신한 악질이라고 침을 뱉는다. 북한사회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겨레에 대한 배신인가? 북한통치집단의 기만과 허위를 고발하는 게 주군에 대한 배신인가? 오늘날 소위 진보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선과 악의 기준이 없다. 진정한 의미의 도덕성은 실종되었다. 그들의 사고에서 도덕은 이미 지식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면서 그것이 바로 열린 마음이며 진보적인 사고라고 주장한다.

   「김동렬의 논리대로라면 성경에 나오는 기생 라합은 가장 악질적인 배신자이다. 라합은 가나안 여인이면서도 가나안 민족이 이스라엘에게 멸족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가나안 민족들의 입장에서 볼 때, 라합은 틀림없이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이다. 그러나 성경은 라합의 행위를 매우 용기있고 의로운 행위로 높이 평가한다. 배신이냐, 용기냐, 의 기준은 나라와 민족이 아니다. 진리와 정의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옳은가? 진리와 정의 편에 서야한다. 진리와 정의는 나라와 민족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상당한 논란과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문제다. 민족이나 민중을 신화화하고 우상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성경의 윤리기준이 매우 불합리하게 보일 것이다. 그들에게 라합은 천인공노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라합을 긍정하는 성경의 윤리기준이 그들에게는 몹시 혐오스러울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다. 하나님이 옳은가, 인간이 옳은가?

   「"내재적 방법론"이라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선과 악을 희석하면서 북한체제를 합리화시키는 송두율 같은 인간을 황장엽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윤리적인 넌센스이다. 송두율은 배신자 축에도 못 든다. 그저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비열한 회색분자일 뿐이다. 그러나 황장엽씨는 악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고 악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정면으로 고발하였다. 북한의 통치집단에서 볼 때, 황장엽씨는 악질 반동분자다. 그러나 성경적인 입장에서 볼 때, 황장엽씨는 정의와 진실의 편에 선 용기있는 의인이다. 황장엽씨는 우리 시대의 라합이다.

   (*  시온교회 황효식 목사님 칼럼은 인터넷신문 뉴스파워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황효식 목사님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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