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교회 황효식 목사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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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7월 3일 

우리 시대의 초상(肖像) 김승옥과 진중권

혼돈에 기초한 논리의 토대에서 진리가 가장 아름다운 미학임을 깨닫게 되기를

   1 나는 지금도 김승옥의 단편「서울-1964년 겨울」을 읽고 났을 때의 그 서릿발같은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편의 시(詩)였다. 우울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김승옥의 단편집을 손에 들고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서 혼자 소주를 마시며 김승옥의 글에 취해 웃다가 울다가... 청승을 떨곤 했다. 화가 구본웅이 이상(李想)의「날개」를 읽고 "궐작"이라고 감탄했던가? 김승옥의 그것도 궐작이었다!! 이어령이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라고 쓴 서평이 썩 마음에 들었다.

   소설가 신경숙이 작가 수업을 할 때, 김승옥의 글을 노트에 한자 한자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숙은 가장 지혜롭고 검소한 방법으로 소설작법을 터득한 것이다.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정도로 존재론적인 절망에 빠져 방황하던 시절, 김승옥의 소설은 까뮈, 또스또옙스키와 더불어 나에게는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최인훈, 이청준, 이문열, 김성동, 이외수... 등이 있었지만 김승옥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김승옥이 20대에 절필을 하고 빈둥거리고 있을 때, 그의 재능을 너무 아까워하던 이어령이 김승옥을 호텔에 감금하고 거의 반강제로 글을 쓰게 하여 단편을 하나 썼는데 그게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서울의 달빛 0장」이다. 문학사상사에서 이상(李想)의 문학적 성과를 기념하여 가장 큰 상금을 내걸고 만든 이상문학상은 그 당시 모든 소설가들에게 하나의 꿈이었다. 과연 누가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될 것인가? 초미(焦眉)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걸 김승옥이 낼름 집어 간 것이다. 오랜만에 툭, 하나 던진 게 그대로 홀인원이 되었다. 수상자가 김승옥으로 결정되었을 때, 나처럼 기뻐한 사람이 또 있을까?

   김승옥이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그것을 누구보다 기뻐했으면서도 내 마음 한켠에 계속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청준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김승옥이 불성실한 작품 활동을 할 때, 이청준은 왕성한 소걸음으로 깊이 있는 문제작들은 꾸준히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청준 덕분에 그 당시 한국문단이 풍요로움을 누렸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이청준을 제쳐놓고 어쩌다 오랜만에 문단에 면상을 디민 김승옥이 상을 낼름 가로챈다는 것은 왠지 부도덕(?)하다는 느낌마져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승옥의 수상작「서울의 달빛 0장」이 워낙 군계일학이었으므로 찜찜해하면서도 거기에 대하여 아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제2회 이상문학상은 당연히 이청준에게로 돌아갔다. 내가 이청준이었다면 나는 매우 씁쓸했을 것이다. 만년 조연으로 남아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살리에르가 모짤트의 재능을 시기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듯 말이다. 그래서일까. 김승옥이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이청준은 꿋꿋하게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 이유있는 반항이다. 하나님의 편애를 못 견뎌하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상상이다.

   김승옥이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예수를 만나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해괴망측한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형언키 어려운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내 삶의 기반에 씨줄과 날줄로 단단히 얽혀있던 김승옥의 페이소스가 아무 의미없는 아우성으로 흩어져 버렸고 나는 기진함과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나 내 의식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이 사건이 앞으로 내 인생에 큰 획을 긋는 하나의 상징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신호가 왔다. 김승옥의 글은 나에게 인생을 음미하고 농락하고 조롱하는 여유를 주었고, 그래서 술안주감으로는 단연 최고였지만, 내 실존의 저 밑바닥에서는 계속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후, 바둑을 유리알 유희로 삼으며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을 무더기로 죽이던 시절- 친구와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친구의 책장에 꽂힌 책 하나를 무심코 집어들었다. 이청준의「낮은데로 임하소서」란 책이었는데, 그 책은 이청준의 소설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읽지 않은 것이었다. 기독교 실명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 책이 읽고 싶어졌다. 숙취로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지만 그 책을 읽기 시작하자 온몸이 긴장을 하면서 책에 빨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오, 맙소사! 나는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다!!

   김승옥은 두 손을 벽에 붙이고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간증을 앞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문인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김승옥 매니아가 모인 집회장소는 여학생들의 모임처럼 설레인 분위기였다. 김승옥의 간증은 매우 신비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이었다. 김승옥이 모처럼 큰 결심을 하고 동아일보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하필이면 5.18 광주사태가 터진다. 김승옥은 광적인 분노에 사로 잡혀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후, 김승옥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뀌어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40일 금식기도, 인도 선교사로의 소명...

   나는 김승옥의 간증을 들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척 가까이서 체험하는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억지로 데리고 간 친구에게 "야, 어땠냐?" 하고 물어 보았다. 부모님이 장로, 권사인데도 교회를 안 나가는 친구였는데 나는 녀석이 김승옥의 간증을 들으며 나와 똑같은 감동을 느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야, 근데 무슨 구라빨이 저렇게 세냐?"

   2 신앙 초창기에 로이드 죤스, 짐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를 만나면서 나는 신앙적으로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그리고 알리스터 맥그라스, 달라스 윌라드, 유진 피터슨, 오스 기네스, 도날드 블러쉬, 레슬리 뉴비긴... 등이 내 신학적인 틀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또「칼 바르트」와「C S 루이스」라는 스승을 만나게 된다. 헤겔의 전문가인 쉐퍼는 계몽주의를 통과한 기독교 세계관의 흐름을 명쾌하게 설명하였고, 실존주의 철학에 오염된 신정통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쉐퍼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거룩한 분노는 내 안에 그대로 축적되었다.

   나는 신학적인 좌파들과 이념적인 좌파(특히 공산주의)들을 몹시 싫어했으며, 진보 논리에 의하여 정통 기독교의 원칙들이 도전 당하는 것에 분노했다. 그러나 나의 분노는 자칫 십자군처럼 고무되어 정치적인 극우와 맥을 같이 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필립 얀시는 칼빈을 비난할 정도로 기독교의 파시즘을 엄청나게 경계했는데 보수주의 신앙의 풍토에서 자란 기독교인들은 필립 얀시와 브렌던 매닝의 책들을 읽음으로서 신앙적인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정권을 유지하던 군사독재가 무너진 뒤,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면서 진보 진영의 본격적인 각개격파가 마치 터진 봇물처럼 한국의 주류사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등장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진보의 논객들은 그 동안 억눌린 것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이 게걸스럽게 글을 써댔는데 그들의 논조가 너무 거침이 없어서 보수 진영에서 볼 때는 죄다 빨갛게 보일 정도였다.

   일치된 견해는 아니지만 진보의 논객들 중에서 보수진영을 긴장시키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아마도 진중권일 것이다. 진중권은 월간 조선 편집장 조갑제의 책「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를 패러디한「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써내면서 본격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극우 파시스트 연구' 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에서 진중권은 보수 논객들의 논리를 그들의 논리로 해체한다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했다. 책 내용에 대한 찬반(贊反)을 떠나서 탄탄한 학문적 배경에서 우러나오는 탁월한 글 솜씨가 일단 독자를 압도한다.

   내가 진중권에게 조금 놀란 것은 그의 극우에 대한 혐오감이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있다는 점이다. 진중권은 조갑제뿐만 아니라 주사파도 극우로 분류한다. 양쪽 다 수구 꼴통들이라는 것이다. 진중권은 민노당 인터넷 게시판에서‘주사파' 와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데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신천지였다. 진중권은 주사파의 민족주의적인 경직성과 윤리부재, 그리고 미적인 촌스러움과 후진 인간성을 열거하며 비난하면서 주사파가 옹호하는 북한은 인민들을 인질로 잡고 행패를 부리는 가장 극악한 파쇼체제라고 혀를 내두른다. 나는 진중권의 이러한 솔직함과 대담성,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존재 미학적인 삶의 양식을 스스로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며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한총련이나 전교조의 반미구호에 늘 등장하는 윤금이씨, 그리고 미선이와 효순이에 대한 진중권의 입장도 매우 명쾌하고 단호하다. 그것들은 반미(反美)할 건덕지가 전혀 없는 단순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꼴통들이 그걸 어거지로 물고 늘어져서 반미를 위한 시청각 자료로 써먹는다는 것이다. 윤금이씨나 미선이 효순이가 만약 자신들의 친딸이거나 누이라면 그 참혹한 사체 사진을 버젓이 구경거리로 길거리에 내어 걸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저들은 도데체 무슨 권리로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냐고 분노를 터뜨린다. 얼핏 좌충우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진중권은 영악하게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이다.

   김용옥과 강준만은 한 때, 진보진영을 이끄는 대표 논객들이었지만, 지금은 진중권에게 혹독하게 비판을 당하고 있다. 진중권은 김용옥의 서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학부과정의 철학개론 수준이며, 그의 전공인 동양철학도 그리 변변치 않다고 폄하한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강준만에게는 호남 민심의 눈치를 보느냐고 지식인의 양심을 저버렸다면서 그럴려면 차라리「전라민국」을 건설하라고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비난을 거리낌없이 한다.

   거기에 매료된 것일까? 조선일보의 이한우는 자신을 비난한 진중권에게 호감을 느끼고 철학도라는 동지애를 구실삼아 술도 마시고 책도 교환하면서 개인적인 교분을 텄다. 서프의 고정논객인 김동렬은 그게 못마땅했는지 진중권이 낮에는 안티조선을 외치다가 밤에는 조선일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진중권을 일제 때의 춘원의 변절에 비유하면서 "그래서 먹물들은 안 된다!" 고 분노를 터뜨린다. 일과성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진보 진영의 사분오열과 지리멸렬이 예고되는 장면이다.

   진중권을 비롯하여 진보 진영은 머지않아 지리멸렬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진보 논객들이 구사하는 논리의 지적인 토대가 진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혼돈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철학이나 학문, 예술은 돌고 도는 유행이며 혼돈이다. 혼돈에서는 무제한적으로 텍스트가 생산된다. 왜냐하면 선과 악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텍스트나 움켜쥐고 손을 들면 누구의 말처럼 모세도 되고 엘리야도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 학문에는 항상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이다. 아직까지는 진중권의 시대이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진중권도 머지않아 '그 때 그 사람' 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진중권은 아직도 마르크스가 옳다고 보는 사회주의자로서 객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사회-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컨센서스로 기존의 모든 시스템이 바뀌어진 사회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공동체들에서 그런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그 지도자가 극우보다 훨씬 더 지독한 파시스트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성이 부여하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조건에서 타락한 존재가 인간임을 간과하고 진중권이 계속 마르크스의 이론을 고집한다면 보수의 논리로 보수 논객들을 조롱한 것과 똑같은 식으로 자신이 파놓은 오류의 함정에 스스로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진중권의 진보논리는 정치나 이념문제에서보다도 동성애와 같이 미묘한 문제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경과 철학에서 이끌어낸다. 성경이 동성애를 가증한 죄로 여긴다는 것과 칸트가 동성애를 저주하다시피 정죄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것은 객관적인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중권은 갑자기 180도 돌변하여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주장하면서 편견을 가졌으면 제 머리 속을 뜯어 고쳐야지, 왜 남의 몸을 뜯어고치려 드느냐, 고 맹비난을 퍼부어 댄다. 아니, 그럴 요량이면 무엇 때문에 성경과 칸트를 언급했는가?

   동성애에 대한 성경과 칸트의 견해를 제시한 뒤에 일언지하에 그것을 깔아 뭉개버리는 이유가 도데체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자신의 주장이 하나님이나 칸트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 그런가? 여기서 진중권은 자신이 파놓은 논리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진중권의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칸트의 철학을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하나님의 말씀도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진중권이 이렇게 주장했으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노라고 말이다.

   이렇듯 진중권이 구사하는 논리의 지적인 토대는 진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혼돈에 기초한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그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열한 마르크스 주의자였던 쟉크 엘룰이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는 마르크스의 결론에 회의를 느끼고 마르크스와 결별하였던 것과 똑같은 그 날이 진중권에게도 올 것이라고 본다. 진중권이「발터 벤야민」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것이 바로 그 좋은 증거가 아닌가 싶다.

   많은 소설가가 있지만, 김승옥의 위치가 독특하였던 것과 같이 진중권은 우리 시대의 독특한 인물이다. 나는 김승옥에게 맡았던 천재 특유의 향기를 그에게서 맡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위대한 미학이라는 깨달음을 얻게되는 날, 그래서 천국 복음의 진리 앞에 그의 모든 세계관이 허물어지는 날, 그는 제대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빈다.

   (*  시온교회 황효식 목사님 칼럼은 인터넷신문 뉴스파워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황효식 목사님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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