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교회 황효식 목사님 시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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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22일 

다시 맞는 6.25 , 그날을 상기하며

철저한 안보의식 가져야

북한에서 13년동안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라는 일본사람이 김정일의 식탁내용을 일부 공개하였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2001년 3월 26일~30일)

3월 26일: 감자쌀라드, 야자상어날개탕, 물고기목이버섯술찜, 염소고기샤슬리크, 자라함찜, 게장즙서란화볶음, 백미밥, 콩나물국, 배추볶음, 풋고추장, 홍차. 3월 27일: 다랑어도로, 쏘가리, 깡빠치, 뱀장어카비아, 네기도로, 도비꼬새우뎀뿌라, 이나리, 나메꼬버섯된장국.3월 29일: 왕새우회, 남새생채, 대군상어날개홍쏘, 불고기철판볶음, 비둘기간장찜, 카레밥, 풍과참나무버섯찜, 맑은국, 홍차.3월 30일: 돌버섯생채, 죽생상어날개탕, 쏘가리찜, 참깨닭구이, 라플레트치즈구이, 백미밥, 떡국, 도라지볶음, 가지파볶음, 홍차.

후지모토는 1994년, 북한에 엄청난 식량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김정일의 식탁에는 이런 산해진미가 20~30가지씩 올라갔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이 쥐를 잡아먹고, 나무뿌리를 캐먹고, 그나마도 없어서 굶어죽어 갈 때, 김정일은 황제처럼 사치스런 식도락을 즐겼던 것이다.

전제 군주들이었던 조선시대의 왕들도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면, 스스로 육식을 삼가고 금욕생활을 하며 백성의 어버이로서 하늘에 용서를 빌었다. 그런데 인민의 어버이라는  북한의 독재자는 인민들이 수십만명씩, 수백만명씩 굶어 죽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측근족벌들과 어울려 주지육림으로 배를 불리던 파렴치한 인간임이 드러났다. 이런 자를 '식견있는 지도자' 라 칭하면서 함께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국가 안보 소홀하면 6.25 는 다시 온다     ©뉴스파워

눈뜨고 불 수 없는 북한의 참상과 김정일의 반인류적 범죄를 온 세계에 폭로하여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고 북한 동포들을 구출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 수십명을 강제수용소, 또는 사지(死地)로 보내는 독한 결심을 하고 북한을 탈출한 노(老)철학자 황장엽씨는 김대중 정권 내내 조롱 속에 갇힌 새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탈출을 감행한 사람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곳이 과연 민주국가인가. 황장엽씨의 자유를 제한했던 자들에게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탈북자 동지회의 회보인「민족통일」에 실린 글에서 황장엽씨는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일 정권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의 정책이 달라졌는가?" "아니다." "통치체제가 변하였는가?" "아니다." "수령절대주의가 약화되었는가?" "아니다, 더 강화되었다." "그러면 중태에 빠졌던 김정일 정권이 어떻게 되살아나게 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첫째로 외부로부터의 수혈이 효능을 발휘한 탓이며, 둘째로 김정일 정권이 총칼로 북한 인민들의 피와 눈물을 무자비하게 쥐어 짜낸 결과이다."

황장엽씨가 말하는 외부로부터의 수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러 경로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경로는 현재 특검팀이 조사중인 김대중 정권의 대북 송금이다. 김정일이 김대중씨에게 "나를 만나려면 10억불을 내 놓으라" 고 큰소리를 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북한의 선전기구인 한민전은 1999년 하반기부터 김대중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1999년, 일본 문예춘추 12월 호에 김대중씨를 압박하는 김정일의 육성녹음이 소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우리 아버지 수령으로부터 사랑과 배려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다" 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 남조선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과거에 수령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으라는 것이다.

한민전은 또 비슷한 시기에 북한 김병식 부주석이 1971년 김대중씨에게 20만 달러를 주었다는 편지를 공개했다. “선생과 처음으로 상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텔레비젼 화면에서 선생의 모습을 볼 때마다 1971년 가을, 일본 도꾜 플라쟈 호텔에서 서로 뜨겁게 포옹하던 때가 생생히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는 물론 약소하였습니다. 선생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20만 달라 밖에 보탬 해 드리지 못한 것 지금도 괴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생을 오늘의 성공에로 이르도록 돕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보람을 찾습니다" 이것도 뭔가를 노린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이듬해, 2000년 봄에 김대중씨는 부랴부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국민들 몰래 김정일에게 5억불을 갖다 바친 뒤, 그해 6월에 남북 정상회담을 갖게 되었다. 김정일은 넉넉한 돈을 받아 챙겼고, 여유를 부리며 공황에 마중 나왔고, 그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남자답고 예의바른 지도자라는 호평까지 얻게 되었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김정일은 그 어떤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오죽하면 김정일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막상 두 사람의 첫 공식 만남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정일은 자리에 앉자마자 김대중씨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아침 남조선 텔레비전을 보니까 대학에서 인공기를 걸었다고 검사가 학생들을 구속하겠다고 하는데 지금 여기서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분위기에선 회담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환대를 받으신 걸로 만족하시고 푹 쉬신 다음에 돌아가시지요. 대통령께서도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셨잖습니까?" 원, 세상에... 이게 국가간의 정상회담에서 있을 수 있는 말인가? 김대중씨를 압박하여 5억불을 받아먹은 뒤에 나온 참으로 불측한 발언이었다. 이런 막말은 세계 어느 정상회담에서도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면, 만약 김일성 대학교에 태극기를 올린 북한 학생들이 있었다면 김정일은 그 학생들을 가만두었겠는가? 필시 현장에서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사고는 그렇게 학습되고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움직이는 것은 헌법이 아니다. 북한사람들이 달달 외우고 있는 북한판 10계명이다. 김일성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규정한 것이 유일사상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인데, 이 10대 원칙이 10계명처럼 북한사람들과 북한체제의 행동규범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 10대 원칙이야말로 북한인민들에게는 무조건 따라야 할 신탁(神託)이며 절대적인 교리인 것이다.

이 10대 원칙의 1장 1조는 "유일사상 확립사업은 대(代)를 이어 계속해야 한다" 고 규정되어있다. 여기에 권력세습의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10대 원칙의 대부분은 김일성의 교시를 하나님 말씀처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집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제의 말은 비판대상이 될 수 있지만 김일성의 말은 비판은 커녕, 토론의 대상도 안 된다. 왜냐하면 김일성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제도화된 신(神)이며 김정일은 그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사고는 바로 그렇게 신의 아들로서 학습되고 고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인민들이 죄다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북한의 인민 군대는 오로지 김정일을 위해 존재한다. 즉 김정일의 사병(私兵)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군은 국가와 국민들을 지키는 군대이지만 북한군은 당의 머리가 되시는 김정일을 지키는 사병(私兵)인 것이다. 1995년 이후, 김정일은 평양시민과 군인들한테만 식량을 배급해 주었다. 그것이 소위 선군(先軍)정책인데 인민들은 다 굶어죽어도 좋지만 자신의 정권을 지켜주는 군인들만은 먹여 살리겠다는 말이다. 북한군이 인민의 군대가 아니라 김정일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그 한 사람의 말에 복종하는 사병 집단임이 이로써 증명된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십계명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유일 사상 10대 원칙과 수령절대주의가 붕괴되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의 주적(主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북한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니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낭만적이긴 하지만 참으로 한심하고 덜 떨어진 생각인 것이다. 

엊그제 시청 앞에서 반공과 반핵, 반김정일을 외치며 인공기를 불태우려던 군중들은 경찰의 강한 제지를 받고 한동안 실갱이를 벌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미 촛불 시위를 벌이던 군중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는 것은 모른 체하고, 반공을 외치는 군중들이 인공기를 불태우는 것을 막는다? 이게 정말 대한민국의 경찰이란 말인가? 동맹국의 국기는 불타게 내버려두고 적국의 국기를 불태우지 못하게 막는 것이 이 나라의 경찰이란 말인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이제는 애국 집단이 일어서야 한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안일하고 소극적이었다. 6.25를 경험한 나이든 분들만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개탄하며 억울해하고 있다. 그분들만이 안타깝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분들을 보수꼴통 또라이라고 놀리고 있다. 그분들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았으면 지금 이 나라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 나라의 자유와 풍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분들의 피땀어린 희생 덕분이다. 만약, 6.25 전쟁에서 우리가 패했다면 이 땅 방방곡곡에는 5만여개의 교회대신 그 숫자만큼의 김일성 동상이 세워졌을 것이다.

오, 하나님! 누룩처럼 번지는 공산주의 사상으로부터 이 나라의 자유와 풍요를 지켜주소서! 이것이 만약 교회의 부패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면, 우리 모두가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게 하소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시온교회 황효식 목사님 칼럼은 인터넷신문 뉴스파워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황효식 목사님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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