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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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7일 

전두환 대통령의 판단은 옳았다

   며칠 전(2003년 10월 2일)에 감정 평가액이 이천 만원도 안되는 전두환 대통령의 살림살이들을 노무현 정권의 서울지검이 전부 경매에 붙인 일이 있었다. 그 중에는 진도개 두 마리도 포함되었었다 하니 엉터리 변호사 노무현 씨 정권의 법 개념의 야비함을 짐작케 한다. 전직 대통령의 재산을 경매에 붙이는 것은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인가? 더구나 일국의 대통령이 경제를 발전시킨 것을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어느 나라 법이란 말인가?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정연주 등 민주화 운동 사기군으로 출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이 사기군들은 목소리가 크다. 우리는 목소리가 큰 사기군들이 1988년에 어떤 짓을 하였는지를 기억한다.

   1988년이 어떤 해였던가? 온 국민의 희열과 감격 속에 '88서울올림픽이 대성공을 거둔 해였다. '88서울올림픽 대성곧이 무엇을 의미하였던가? 그것은 한국 경제 성장의 엔진이 마련되었음을, 한국 브랜드의 값이 치솟아올랐음을 의미하였다. 모스크바 올림픽에 실패한 러시아가 붕괴의 가도를 달리고 있던 바로 그 때 '88서울올림픽에 성공한 한국의 국력은 전세계로 쭉쭉 힘있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88서울올림픽 대성공은 한국이 이제는 경제 살림 문제는 해결하였음을, 그리고 이후의 대통령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경제는 잘 굴러가게 되어 있음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수십 년 앞은 내다본 전두환 대통령께서 정보 산업 발전의 기반을 튼튼하게 마련해 두셨기에 더욱 사실이었다.

   그런데, 엉터리 민주화 세력은 참으로 이상한 짓을 했다. 그들은 '88서울올림픽을 구상하고 추진하여 성공시킨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는 것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씨의 민주화 운동은 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에 명패를 던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 1987년에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옥살이 시키고 그가 받았던 정치 자금 전액에 대한 추징금을 물었을 때 이것은 법의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 처사였다. 정치자금으로 따지면 아마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가 분명 더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김영삼 대통령은 그 후 일년도 채 안되어 외환 위기를 자초하여 우리나라가 IMF 시대를 맞이하게 하였으며, 김대중은 민족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여 마련한 외화 수억원을 국민 몰래 적장에게 갖다 바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왜 이 양김씨가 받았던 정치자금들에는 추징금을 매기지 아니하는가? 사이비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렇게 법의 형평성을 어기는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받았던 정치 자금과 양김씨가 받았던 정치 자금은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김영삼 대통령이 받았던 정치자금을 그 아들 김현철씨가 착복했던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받았던 정치 자금은 그 아들은 커녕 본인도 만져 본 적이 없는 정치 자금이었다. 우리는 대통령에 당선된 것 외에는 평생 아무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김대중이 정치 자금으로 치부하여 아방궁 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4부자의 감정 재산만 백억 가까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그 살림살이를 다 내놓아도 그 감정 평가액이 이천 만원도 채 안된다는 사실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면, 무엇이 양김씨가 받었던 정치 자금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받았던 정치 자금의 차이였던가? 양김씨는 그 젇치 자금을 사사로이 사용하였던 데 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 자금은 공금으로 관리되었으며, 후임자에게 넘겨진 정치 자금이었다. 정치 자금을 받은 사실이 있다. 그러나, 공금으로 관리되었었기에 그는 만져본 일도 없는 정치 자금이었다. 심지어 떡값으로 전달된 정치 자금마저 그는 공금으로 관리되게 하였으며, 나라를 발전시키는 기금으로 사용하였다.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는 양김씨처럼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하였다. 그러면, 청렴한 대통령의 정치 자금에 추징금을 물고, 김대중처럼 정치자금을 분명히 개인 용도로 전용한 이에게는 물리지 않는 것이 민주화 운동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러면, 왜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치 자금이 전달되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그 전후 사정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본 고장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정치 자금은 있으며, 그 액수는 한국과 비교도 안 되게 많다. 이것은 많은 미국인들은 정치 자금 후원을 애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록 정치 자금은 많이 들어온다. 경제를 발전시킨데 대한 감사의 표시와 민주주의는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일이 전두환 대통령 대에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전두환 전 대톨령은 자신은 경제를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는 김재익 같은 경제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매일 새벽 자택으로 초청하여 경제학 이론을 사사받았다. 그리고, 그는 물가 안정, 수출 전략, 정보 산업 개발 등 핵심 이론을 명심하고, 김재익 경제 수석과 오명 장관 같은 경제 관료들의 정책에 힘을 실어 주었다. 정치학에서는 이처럼 경제 정책을 경제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그 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독재라고 말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양김씨처럼 경제 전문가의 의견을 묵살하는 정치야말로 정치학적 시각에서는 독재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두환 대통령의 선견지명과 탁월하신 판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당시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기에게 7년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오늘날 경제 정책이 벌써부터 좌충 우돌하는 노무현 정권이 5년은 국민을 불안케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에게 그 7년은 꼭 필요한 기간이었던 듯하다. 만일 그의 임기가 4년이었다면, 그리고 '88서울 올림픽을 2,3년 앞두고 대선이 치루어졌더라면 한바트면 우리는 경제 발전의 호기를 영영 놓칠뻔 하였다.

   전두한, 비록 그는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분명한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였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그때처럼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적국을 휴전선 너머 지척에 두고 아직 건국 초창기에 있었던 때에 그것은 더욱 사실이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88서울올림픽이 대성공으로 끝나자마자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보내고, 9년 후에 감옥에 보내더니, 이제는 살림살이마저 경매에 붙이는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한다. 간첩 송두율이 민주화 운동가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제 이처럼 법의 형평성을 어기는 것이 어째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인지 설명하라.

김대령 목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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