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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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7월 15일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위상과 박정희 대통령

   요즘 한국 신세대 일부 청년들은 미국에 대한 질투심을 애국심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 한국이 대등한 일등 국가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사사건건 트집잡고 미국을 괘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신세대 청소년의 심리를 이용한 노무현 후보는 "반미면 어떠냐?"라는 말을 하여 청년들의 표를 모아 당선되었다. 반미촛불시위가 그의 당선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신세대 청년들이 미국과 한국을 대등한 일등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면, 그리고 축구 경기에서 미국과 비기면 미국과 한국이 대등한 일등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물론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당당하여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가? 그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의 우리나라는 외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였다. 간혹 우리나라를 아는 외국인은 한국전쟁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전쟁 고아들의 나라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88 서울올림픽 때 그들은 한강의 기적을, 놀라웁게 발전한 한국이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주최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 점에서 집권초부터 7년 앞을 내다보고 88 올림픽을 준비한 전두환 대통령의 산견지명은 참으로 탁월하였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십년 전에 외국의 지식인들은 박정희 대통을 보고 이미 한국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였다. 일류대 출신만 모인 곳에서는 삼류대 출신은 어깨가 움츠려든다. 외국인들이 모두 한국을 후진국으로 여기던 때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인 어깨가 움츠려들었다. 그저 한국을 일본 식민지가 아닌 독립국가로 대우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졌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미 외국의 지식인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한국의 위상을 높여 주었다.

   요즘 신세대 청년들은 미국 록음악을 표절한 "오 필승 코리아"를 몇번 크게 부르면 미국과 한국은 대등한 일등 국가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인 1943년의 카이로 회담과 1945년의 얄타회담 때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국 독립 약속을 받아내려 하였을 때 중국 쟝개석 총통이 반대하면 안되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이 모택동의 공산당 군대에 입대하여 중국 국민당의 정부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승만, 김구 등이 그 지도자인 상해임정을 아는 쟝개석 총통은 루즈벨트의 제안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거하기 두달 전인 1945년의 얄타 회담 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한국 독립 약속을 깔끔히 마무리하려 하였으나 소련 스탈린의 반대가 있으면 안되었다. 스탈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우리 민족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결국 삼팔선을 긋는 타협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줄기찬 외교적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4.19 혁명에 대해서 사람들은 부분적으로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해방 후 그때까지 미국은 한국 국가 재정의 90%를 지원하였다 (70%는 무상 지원이었으며 20%는 주한미군에 납품하는 회사들이 벌어들인 달러도 한국 재정의 오분의 일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해방 후 15년 동안 미국이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한국 국민 삼천만 명을 먹여 살렸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그렇게 하여야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미 외교였을 것이다. 그러나 1960년은 한국 국민도 이승만을 버렸고 미국도 한국을 버리려 했던 해였다. 이미 미국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자립할 가망성이 없는 나라로 판단하고 미국도 영구적으로 한국 국가 재정의 70%를 무상지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민족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서 5.16혁명은 필연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미국을 감동시켰다. 미국인에게는 위대한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 무상 지원을 삭감했을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계획 지원 요청도 거부하였다. 한국 재정의 70%를 차지하던 미국의 무상지원이 삭감되니 한국 경제가 부도 직전에 처해있음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독일에서 외자를 끌어들여 꾸준히 경제 개발 계획을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 미국 정치인들을 마침내 감동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학자 중에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계획이 성공하리라고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여기서 잠시 아르헨티나와 한국을 비교해 보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을 때 아르헨티나는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이었다. 그러나 강성노조 편을 들어주는 페론 대통령 이후 경제가 침몰하고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서민들의 경제가 어려워질 수록 분배의 평등만 강조하는 좌익 문민정부가 집권의 기회를 장악한다. 성장 없는 분배를 강조할 수록 경제는 더 망가진다. 1990년대의 좌익 문민정부는 외채를 갚는다며 아르헨티나 기업들을 해외에 매각하였다. 그러나 기업을 팔고 받은 외화를 좌익 정치인들은 외채를 갚는데 사용하지 않고 착복하여 거부가 되었다. 그리고 모라토리움을 선언해 국가 부도를 낸 것이 세계 6위의 경제 대국이 최빈국으로 굴러떨어져가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런 아르헨티나도 천연자원의 여건이 한국보다 훨씬 좋다. 아르헨티나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전세계에 수출할 농산물이 무진장 있다. 한국은 어떤가. 1960년 당시 농업국이던 한국이 곡물을 해외에 수출하기는 커녕 미국의 원조를 받거나 엄청난 곡물을 수입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였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의 빈국들도 아프리카의 빈국들도 모두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이다. 인도네시아는 가만히 않아 있어도 전세계에 수출할 목재가 무진장한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은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시장경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발전한 예가 없었기에 외국 경제학자들은 한국은 가망이 없는 나라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모든 여건이 갖추어진 서구에서도 200년 걸려야 발전시킬 수 있는 중화학공업을 불과 십년 만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5,000년 동안 농사만 짓고 살던 우리나라가 공업국으로 발돋음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대의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좌익은 세월이 흐르면 농업국이 자동적으로 공업국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지만, 외국 학자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음을 말한다. 1960년대의 농업국이 1970년대에 세계적 수준의 산업수출국으로 발돋음하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 좌익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외국 학자들의 눈에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외국인이 한국의 잠재력을 다시 보았으며,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갔던 것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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