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오디오 설교 김대령 에세이 황효식 칼럼 학술ㆍ생활 정보 추천 사이트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법 정신을 모르는 엉터리 변호사인가?

   1950년 6월 25일 아침 부랴 부랴 출근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휴전선 너머로 대규모의 인민군들이 쳐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으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정부 각 부처에 연락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라 아무리 연락을 해도 아무도 출근을 안하였으니 연락이 될 리가 없었다. 삼팔선 전 지역에서 인민군이 소련제 탱크를 몰고 쳐내려오지만 국군에게는 소총 몇 자루만 있었을 뿐이니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하고 후퇴하였으며, 새벽에 자다 말고 갑자기 깨어 후퇴하는 병력들 때문에 너무 혼잡하여 편제를 정비할 겨를이 없이 밀리고 또 밀리고 있었다. 이렇게 시시각각 인민군 장갑 부대들이 서울 가까이로 진입하고 있었으나 서울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며, 미국 대사관은 가가호호 방문하여 정부 고관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으니 정말로 한심한 상황이었다. 1950년 6.25 동란은 이렇게 발발하였다.

   이 와중에서 예사 상황이 아님을 직감한 미국 대사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미국 트루만 대통령에게 북한 인민군의 침략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전쟁사에 유례 없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일요일에 그 보고를 받은 트루만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미국의 한국전 참전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지금의 이라크 전처럼 UN 안보리에 상정하기는 커녕 국회의 동의도 얻지 않고 대통령 독단적으로 한국전 참전 명령을 내렸다. 미국이 이렇게 신속히 참전하리라고는 실로 소련의 스탈린도 북한의 김일성도 꿈에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즉시 파병 결정을 내렸는데도 실제로 미군 병력이 한국전에 파병되는데는 근 일주일이 걸렸다.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는 전투 병력이 거의 없었기에 우선 행정 병력을 한국 전투에 투입시켰으나 이미 부산을 제외한 전국이 인민군 군화에 짓밟힌 뒤였다. 만일 하루만 더 늦게 미군이 파병되었어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건국 2년도 채 못되어서 그 막을 내릴 뻔 했던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부산까지 후퇴할 수 있었던 국군 잔여 병력이 미군과 한미 연합군을 편성하여 부산을 사수하는 배수진을 치고 낙동강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적군과 아군 양편에 사상 최대의 전사자를 낸 치열한 전투였다. 인민군으로서는 부산 함락이 적화 통일 달성의 순간이기에 총력을 기울인 대공세를 펼쳤고, 아군으로서는 부산마저 잃으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피난 정부가 있는 부산을 결사적으로 방어하였다. 그러나 삼면이 적군에 봉쇄당한 이 전투는 장기화할수록 아군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으며, 불과 석달도 채 못되어서 미군의 전사자와 실종자의 수가 십만 명을 넘었다. 이렇게 승산 없는 전투가 석달을 끌면서 한국 지형에 익숙치 못한 미군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도 크자 미국 전역에서는 오늘 이라크 전 반전 여론보다도 더 높은 반전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 시민들은 "한국에서 철수하라" "이제 우리의 아들들과 남편들을 우리에게 돌려보내라"고 외쳤다.

   국회의 동의도 얻지 않고 미국의 한국전 참전 명령을 내린 트루만 대통령으로서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하려던 그로서는 미국이 인명 소모전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한국전에 계속 참전한다는 것은 정치적 모험이었다. 마침내 트루만 행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하였다. 당시 미국의 대안은 중국의 쟝 개석 총통이 대만에 피난 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한국인 십만 명을 제주도로 피난시켜 대한민국 정부의 명맥을 잇게 하는 조건으로 북한과 정전 협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트루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이 자기 지시를 따라줄 줄로만 믿었다. 그러나 일본 오키나와 사령부의 맥아더 장군은 뜻밖의 대규모 병력 증강 요청을 해왔다. 9월 15일에 인천 월미도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일 밀물이 되는 월미도 해안 수심을 계산해 보니 도저히 작전이 불가능할 만큼 수심이 깊었다. 미국 국방부 사령탑에서는 이런 무모한 작전을 위해 병력 증파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막무가내였다.

   법 정신을 모르는 엉터리 변호사 노무현 당선자는 오늘 취임식에서 또 한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대화를 통한 해결"이란 말을 하였다. 얼핏 듣기에 노무현 당선자는 평화주의자요 미국 대통령은 전쟁주의자라는 어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말이 국민을 안심시키기는 커녕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 애매모호한 말이 지니고 있는 모순성 때문이다. 1991년 2월 어느날 일본 신주꾸 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승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다가 그만 달려오는 전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그때 일본 여론이 "왜 대화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쓸데 없는 행동을 하였느냐고 그를 비방하였던가?" 워싱턴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장군이 대규모 미군 해병의 병력 증파 요구를 끈질기게 하였을 때 과연 우리가 왜 맥아더 장군이 한반도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느냐고 비방할 수 있을까?

   당시 미국 국방성에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안이 승산이 있다고 믿는 장성은 아무도 없었다. 이 작전은 만일 인천항에 북한 경비병력이 있을 때에는 미군 해병이 인천항 앞바다에서 전멸을 당할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더욱이 국회의 동의도 얻지 않고 미군의 한국전 참전을 지시한 트루만 대통령으로서는 그의 정치적 생명의 희생을 각오하는 일대 모험이었다. 세상에, 미국 전역에서 반전 여론이 저렇게 거센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는 커녕 훨씬 더 많은 병력을 파병하다니! 그럼에도 미국 워싱턴 행정부는 맥아더 장군이 요청한 병력을 모두 파병하여 주었다. 때는 바야흐로 한국인의 생명을 구해내기 위해 행동이, 그리고 대한민국을 보호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한 때였다. 그리고 이 결단이 있었기에 우리는 인천상륙작전 열흘 만에 우리가 북한 인민군에게 석달간 빼았겼던, 그리고 한바트면 영영 빼앗길뻔하였던 우리의 영토 전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럴진대, 그때 누가 미국 대통령이 전쟁주의자라고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 대통령 취임사에서 노무현 당선자는 또 다시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내세웠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누군들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의 평화를 얻는 방법은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를 얻는 방법과 사뭇 다르다. 만일 당시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며 "김일성이 남침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정복하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니 미국은 저리 비켜 있으라"고 하였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뻔히 남침하는 것을 보면서도 김일성의 의도는 남침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김일성을 변호해 주었다면 그는 변호사 소리를 들었을는지는 모르나 나라를 구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무조건 강도를 변호해 주는 변호는 법 정신을 망각한 엉터리 변호이다. 가령 선량한 시민이 강도에게 약탈당하고 맞아죽게 되었는데도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경찰관이 진정한 평화주의자인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세계 도처에서 테러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이 만들어내는 핵무기는 언제 테러 무기로 사용될지 모름을 뻔히 알면서도 수수방관하는 것이 정말로 평화를 수호하는 국제 경찰관의 역할인가? 진정으로 평화를 수호하려는 노력은 행동으로 표현된다. 1950년 9월 미국에도 한반도 분쟁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제주도로 대한민국 피난 정부를 옮기고 십만 명의 한국 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을 김일성이 용인하는 조건으로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말뿐인 해결이 아니라, 행동으로, 즉 수십 만명의 미군 해병의 목숨을 건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한민국의 평화를 수호하려 했다. 그럴진대 우리를 위하여 그런 결단과 행동을 보인 미국을 어찌 우리가 전쟁주의자 국가로만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엉터리 변호사의 말장난이 힘을 쓸 수 있는 동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엉터리 변호사의 말장난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며칠 전 대구 한 전철의 조그만 플라스틱 병에 붙은 불길 사고는 엉뚱하게도 이웃 열차의 승객을 더 많이 죽였다. 그리고 그 참사의 문제는 방화범의 손에 들린 플라스틱 병에 안전 장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일은 지금 조그만 플라스틱 병 가지고 불장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핵무기 불장난의 문제는 그에게는 핵무기 개발 기술은 있어도 오발 발사를 막는 안전 장치 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사고 발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나라, 안전 장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이며, 북핵에 대한 미국의 정책 의도는 전쟁용으로도 대테러국가 수출용으로도 사용되지 못하게 하려는 안전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누누히 강조하는 것은 백해 무익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그댓가로 파격적인 경제 개발 지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미국이 핵개발 포기 댓가로 파격적인 경제 지원을 약속하는데도 북한이 들은 척도 안한다. 여기에 두가지 숨겨진 의도가 있으며, 한가지 공개된 의도가 있다. 두가지 숨겨진 의도는 핵무기 보유국이 됨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폭력 외교를 하려는 것이요, 이라크 같은 테러 지원 국가들과 핵무기 거래를 하려는 것이다. 그 핵무기들이 21세기의 인류를 그 어느 시대의 인류보다도 불행하게 하며 무수히 많은 인명이 살상되든 말든 김정일은 달러 벌이만 되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그의 공개된 의도이다. 그는 미국에 북미 블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을,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 동맹을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김정일의 벼랑끝 외교의 먹이는 "적화 통일"이다. 엉터리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 지원만 해 주면 김정일이 핵 야망을 포기할 것이라고 변호해 주지만 김정일은 이미 그의 먹이감은 "적화 통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전쟁도 억제시키고 김정일의 적화 통일의 야욕도 분쇄시키기 위해, 그리고 김정일이 손에 핵무기를 든 무서운 국제 깡패가 되기 전에 핵무기 완성을 저지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번번히 노무현 당선자의 말에 발목을 잡혔다. 노 당선자는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말로써 미국이 제시하는 해결책을 거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정일의 무료 변호사의 역할 외에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으면서 엉터리 변호사가 이렇게 미국의 발목을 거는 동안 더 늦기 전에 그의 핵무기 보유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시시각각으로 단축되어가고 있다. 과연 전쟁주의자 김정일을 변호해 주는 엉터리 변호사는 평화주의자인가?

   정말로 평화를 수호하는 자들은 때로 행동으로 희생 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이 이수현 씨가 2001년 2월 어느날 신주꾸역에서 보여주었던 행동이었으며, 1951년 흥남에서 1.4 후퇴 작전이 진행될 때 단 한 명의 민간인이라도 더 후송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장전호 빙판에서 삼천 명의 미군 병사들이 발에 동상을 입으며 십이 만명의 중공군을 막아싸웠다. 그곳은 법 정신을 모르는 엉터리 변호사의 말장난이 힘을 쓸 수 있는 동네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미국의 보훈병원에는 그때 상이군인이 된 용사들이 평생을 병상에 누워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 미국이 이제 다시 북핵의 인질이 된 우리나라를 구해 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하는데 그들을 전쟁주의자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우리는 진실한 친구의 선의는 무시하고 우리를 치는 강도의 입장만 변호해 주는 변호를 법 정신에 의거한 변호라고 생각치 않는다.

   무릇 법에는 처벌 조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법 정신은 범죄 예방을 통한 치안 유지이다. 만일 인간 사회가 물리적 힘에 의한 약육 강식의 사회라면, 주먹이 큰 깡패가 지배하는 사회라면 우리의 삶의 질은 떨어질 것이며, 행복지수는 낮아질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제는 힘센 부족이 약한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침범하여 살륙하였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유럽인들이 유지해 주는 치안의 필요를 느낄 만큼 아프리카의 후진성의 문제도 종족간의 끊임 없는 살육이었다. 1910년에 일본이 무력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약탈했던 것이 그 한 예이듯이 20세기에도 강대국이 약소국을 치는 얼마나 무수한 전쟁이 있었던가? 1945년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에도 1950년 남한에 잠시 힘의 공백이 생기니깐 북한 인민군이 쳐들어와 학살극을 벌였으며, 같은 남한 사람들끼리도 남로당 당원들이 너무도 많은 동네 사람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광복절에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같이 눈물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던 사람들끼리 동족 상잔의 비극을 치루었다.

   평화가 필요하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의 평화가 위협받았을 때 대화로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변호사는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평화는 변호사의 감상주의로만 보장되지 않는다. 비록 어떤 욕을 먹던 검사의 역할도 필요하다. 즉, 치안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실정법에는 처벌 조항이 있으되 법 정신은 공동체의 치안 유지를 통한 평화 보장이다. 한 국가 내에 치안 유지가 필요하듯이 국제 사회에도 치안 유지가 필요하다. 만일 눈뜬 소경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세계 도처에서 잔혹하게 사람들을 죽일 생화학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또 우리는 김정일의 북핵 또한 생산되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더구나 테러범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기에 지금은 김정일을 위한 변호사의 역할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당선자는 3월 3일자 뉴스위크 지 인터뷰에서 “정권 안보와 정상적인 대우, 경제적 지원 등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우리가 제공해 주면 그들은 기꺼이 핵 야망을 포기할 것”이라고 또 다시 김정일을 변호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그럼 얼마나 더 퍼주어야 하는가?"

   김정일에게 속는 것도 한두번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우 같은 우량 수출 기업을 살릴 수 있었던 금싸라기 외화를 무려 5억달러씩이나 국민 몰래 김정일 뒷주머니에 꽂아 주고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으로 15억 달러의 막대한 지원을 해 주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평화가 아니라 우리를 공격할 전투 장비의 현대화였다. 핵 프로그램 포기 약속 댓가로 막대한 경수로 및 지원 자금을 받고도 핵무기 개발을 해왔으며, 우리 민족의 사랑의 나눔을 핵무기 공포로 보답하는 그런 국제 사기범을 변호해 주는 변호는 명 엉터리 변호일지 모른다. 그러나 강도의 손에 핵무기를 드는 것은 정당화되고 강도의 손에서 핵무기를 빼앗으려는 경찰의 노력은 전쟁주의로 매도되는 그런 변호가 과연 법 정신을 아는 변호인지 대한민국 국민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한다. 미국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제한 조준 사격할 수도 있는 의사를 비추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이 남한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미군 병력을 생명의 담보로서 북한에 배치시켜 놓았다. 이를 인계 철선이라고 한다. 북한군 탱크들이 휴전선 철선을 넘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런다 미군 병사들의 인간띠로 형성된 인계 철선을 넘지는 못한다. 전방의 미군에 대한 공격은 미국 본토 미군 60만 병력의 자동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반도 전쟁 억제를 위한 미국의 강력한 실천 의지이다. 그럴진대 미국 정부와 김정일 정권 중 어느 편이 정말로 전쟁주의자들인가? 그리고 군복무 기간 감축이라는 감언 이설로 표를 얻어 당선된 자와 세계 평화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는 자 중 어느 편이 참으로 평화주의자인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래 보았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미국은 북한이 넘지 못할 위험한 선을 넘으면 응징할 수도 있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북한의 전쟁 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유를 수호하여 주기 위한 고도의 외교적 언어이지 결코 응징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법에 처벌 조항이 있는 것은 범죄자의 범죄 의도를 억제시킴을 통한 범죄 예방에 있는 것이지 결코 처벌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오늘 대한민국 국민은 김정일 무료 변호사역을 자처한 엉터리 변호사에게 이러한 법 정신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만일 안다면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미국의 고도의 외교적 노력마저 무력화시키는 엉터리 변호는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황효식 목사 칼럼 김대령 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