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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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5월 31일 

노무현의 장점과 전두환의 약점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

    한국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거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대체적으로 전교조, 한총련, 노사모 등의 좌익 집단의 문제도 민주주의를 거꾸로 이해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는 비민주화, 퇴보적 민주화, 혹은 친공산주의 민주화이다. 어째서 한국에는 이런 별종 집단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거꾸로 이해하는 민주주의와 관계가 있다.

   만일 한국 대통령사에서 네 분만 비교한다면 보다 민주적인 두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요, 보다 독재적인 두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이 단순 명료한 사실을 그들은 왜 그렇게도 모르는 것일까? 사실, 군부 출신=독재자의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의 군부 출신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여기서 독재와 인권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공산주의 국가 월맹과 대치하고 있던 월남이 빨갱이들에 대한 인권에 너그러웠을 때 그것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패망의 원인이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미국 민주주의를 대적하는 집단과 싸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마찬가지로 아직 건국 시기의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들에게 무한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 행동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본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영국, 화란, 스웨덴 등 유럽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에는 여왕 혹은 국왕이 있으며, 아시아에서도 일본에는 여전히 왕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왜 왕이 있는가? 그것은 본래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목표라기보다 수단이기 때문이다. 본래 민주주의의 목표는 올바른 정책(right policy)이다.

   사실 왕정(王政)은 왕정 대로의 장점이 있다. 세종대왕 같은 군주를 모실 때는 왕정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왕들이 다 세종대왕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능한 왕도 있고, 사리 사욕을 쫓는 왕도 있고, 정책 판단을 그르게 하는 왕도 있다. 그래서 군주의 그릇된 정책을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하였던 것이 민주주의 발달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주적인 두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요, 가장 독재적인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다. 적어도 올바른 정책의 기준에서는 이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올바른 정책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목적은 그 체제 자체가 아니라 올바른 정책이기 때문이다. 결코 민주주의의 목적은 경제가 무너지고 안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의 국정 운영 리더십의 특징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문가의 의견을 끝까지 귀를 기울여 경청하신 다음 최선의 정책을 분명하게 판단하여 주셨다. 전두환 대통령은 늘 전문가에게 수업을 받으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였으며, 신중히 판단하여 일단 정책이 채택되면 그 전문가가 마음껏 밀고 나가도록 힘을 실어주셨다. 이렇듯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은 정책을 입안하는 방법에 있어서 아주 이상적으로 민주적인 대통령들이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지극히 비민주적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문가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말을 하는 분이었다. 전문가들의 보고할 기회를 별로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에 대한 답변도 주지 않고 보고 시간이 끝나기가 일수였기에 각 부처 관료들은 당황하였다 한다. 부하의 잘못의 책임을 자기가 지는 전두환 대통령과 달리 자기 잘못의 책임을 부하에게 뒤집어씌우는 김영삼 대통령이었기에 장관과 실무자 교체도 잦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휼륭한 점이 많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정책 입안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그의 리더십은 아주 독재적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그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독재자 성품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경제를 잘 모르면서 경제 정책 지시를 하였다. 그것도 한국 경제 구조를 들쑤셔 놓았기에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처럼 그냥 손대지 말고 놔두기만 했어도 발전할 경제를 IMF 사태로 끌고 갔다.

   김대중 대통령의 독재는 한층 더 심했다. 그래도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만 망가뜨렸지 다른 것은 망가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교육 정책이니 의약 분업이니 닥치는 대로 대란을 몰고 왔으며, 특히 안보의 위기를 몰고 왔다. 적장에게 8억불 혹은 그 이상의 외화를 비밀송금한 그는 지독한 독재자였다. 그는 의회정치마저 부정하였다. 6.15공동선언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었다는데서 위헌이었다. 그는 국회의 의결조차 하지 않고 그런 매국적인 행동을 한 전형적인 독재자였다.

   사실, 김대중의 인간성은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기가 아는 것이 많다고 말했는데, 문제는 그의 이런 독선이 그를 더욱 독재로 몰고갔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문가 혹은 실무자들에게 보고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전문가가 보고하는 시간은 김대중의 박학 다식함을 들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엉터리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였다. 자기 맘대로 국내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여 그 외화를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송금하였다.

   우리는 김대중이 의도적으로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송금하였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정책 판단이 크게 그릇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국부 유출과 매국의 혐의가 있으며, 이런 것들은 비민주적인 요소이다. 삼권 분립 원칙을 무시하고 입법 및 사법기관이 전혀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였기에 그는 더욱 비민주적인 대통령, 독재적 통치자였다.

   그런즉,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이 네 분의 대통령 중 누구의 정책 결정 방법이 더 민주적이며, 누구의 정책 채택 스타일이 더욱 독재적인가? 민주주의의 목적은 올바른 정책(right policy)이다. 우리나라처럼 북한의 남침 위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시장경험도 없었던 나라에서는 올바른 정책은 국가의 존속과 민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특히 좌파가 민주주의를 거꾸로 이해하고 말하여 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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