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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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26일 

시대를 거꾸로가는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관

   외국 사람이 보면 요즘 한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이다.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 그 좁은 국토에서 경제 이론이 정말 복잡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요즘 와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관이 외국 언론의 큰 화제거리로 등장하였을까?

   사실, 경제 이론은 기업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두가지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기업인은 열심히 일하고 민족의 부를 창출하여 사회에 환원시키는 자로 본다. 예를 들면,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미국인의 경제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하나의 경제관은 자본주는 노동자의 부마저 착취하는 악덕한 자이므로 농민과 노동자는 투쟁하고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 분배의 평등을 누리자는 경제관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과거 구소련과 중국의 경제관인데, 이 경제 이론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본 것이 러시아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토로이카, 즉 서구식 개방 정책이었다. 중국의 등소평 이후 장쩌민이 공산당 헌장을 수정하면서까지 재빨리 서구식 개방 정책을 도입하여 빠른 속도로 중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북한 김정일도 이제는 서구식 개방 정책이 유일한 희망인 것을 안다. 단지, 신의주에 특구를 신설하려 해도 중국이 방해를 놓기 때문에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 노당선자의 경제관은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이전의 우리나라는 이병철 씨 같은 몇몇 수입상들을 제외하고는 아주 분배가 평등한 사회였다. 문제는 다같이 가난한 분배 평등이었다. 1945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당시 신생국으로서 대한민국은 국가 재정 100%를 미국에서 무상 원조받고 있었는데 밑빠진 독에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다 하여 원조를 중단하려 하였음에도 당시 정권에서 아무런 경제 개혁을 하려 하지 않으므로 시대의 선각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군사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의 대한민국 경제는 수입형 경제였다. 당시에도 구멍가게들은 많았다. 그 시대는 이병철씨 같은 수입상들이 돈을 버는 시대요 동네의 구멍가게들은 전혀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아무리 미국에서 원조를 하여 주어도 그 달러로 다시 수입을 하여야 하였으며,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의 의지가 없는 나라로 비쳐졌기에 미국은 한국에서 손을 떼려 하였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여 우리나라의 수입형 경제 구조를 수출형 자립 경제 구조로 바꾸었다. 오늘날 김대중 대통령이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매도하여 내친 김우중 씨가 박정희 시대에는 산업 전사로서, 수출의 역군으로서 장려받았다. 재벌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발전시킨 산업화 구조였다. 그는 수입상이 발붙일 자리가 없게 하는 대신 수출상에게는 지원하여 주었다. "자본 걱정은 하지 말라" "수출 프로젝트만 가져오라"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 기업인들을 독려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김우중 씨 같은 이들이 수출 산업 프로젝트만 가져오면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지 외국에서 가장 저리로 제공되는 차관을 들여와 수출 산업 정책을 지원하였다.

   이 정책은 전두환 정권 시절에 한층 더 발전한다. 즉, 전세계의 시장 정보를 정부가 입수하고 분석한 다음 어느 지역에는 우리나라의 어떤 제품이 경쟁력이 있을 것이니 동일 지역에서 한국 기업끼리 경쟁하지 말고 국제 시장의 지역별로 전략적 전문화하여라가 당시 정경 유착의 모델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이 전략적 종합 경제 구상에 따르는 기업을 지원하여 주었다. 그 결과는 단시일 내에 한국 산업이 국제 사회에서 고도의 경쟁력을 가지는 대성공이었으며, 한국수출 산업이 대호황을 누리는 시절이 왔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 철학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족 기업을 일으키는 산업 전사들은 부를 창출하여 사회에 환원시키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당시 수재민이 발생하였을 때 기업인들이 내었던 막대한 성금에서도 그 한 예가 보여질 것이다.

   만일 후대 정권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통치자의 역량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시키는 방법을 한층 더 발전시켰더라면 우리나라의 경제 모델은 정말로 다른 나라가 배우고 싶어하는 좋은 경제 모델이었다. 당시 중국도 우리 경제 모델을 배우가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김영상 대통령 대부터 우리 경제는 거꾸로가는 경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경제 정책은 "잘 사는 놈들 혼내 주자"였다. 장려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기업인이 나쁜 사람으로 비쳐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런 경제관은 1980년대에 노동자 인권 운동을 하던 이들이 후진국에서 운동권 경제 이론을 수입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후진국 운동권 경제 이론을 따른다면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착취하는 자이기 때문에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분배의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분배가 평등한 사회들 중에 북한과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있다. 문제는 다같이 못산다는 것이다. 수출을 못하고 수입만 하여야 하는 경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진국 운동권 경제 이론에 바탕을 둔 투쟁은 언제나 문제를 고착화시켰다. 중남미의 예를 들더라도 기득권자와 농민의 격차를 오히려 영구화,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가진 자를 나쁜 자,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경제는 발전하지 못하며 모두가 더욱 가난해질 뿐이라는 것을 이미 세계 여러나라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구태여 다시 우리나라에서 다시 시험해 볼 필요가 없다.

   1980년 대 운동권이 후진국 운동권 경제 이론을 수입해 온 이유는 노동자에게 불만을 품게 하여야 투쟁 선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론의 거짓말은 엄청나다.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 기업을 일으키고 전두환 대통령이 수출 시장을 연 후 한국 사람의 생활 수준은 훨씬 높아졌다. 더 이상 미국으로부터 무상 원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국민의 GNP는 급상승하였으며, 고용 기회는 무수히 창출되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때 이미 성장에서 분배로 나아가는 경제 마스터 플랜이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 인권 운동가들은 이 점을 숨겼다는 데에 그 이론의 엄청난 모순과 거짓이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이상한 현상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등장하여 한국 경제를 혼란시킨 이 비주류 경제 이론이 최근에는 2030 세대 혁명과 더불어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가 한국에서 시험하려고 하는 경제 이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정희 시대 이전에 분배의 평등이 있었다--모두가 가난한 분배의 평등이. 그리고 이제 다시 모두 못사는 분배의 평등을 이루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후진국 경제 이론이 대한민국을 점령하였다.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미국 경제의 장점은 항상 기업인에게 창의적 사업 의욕을 돋구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분배가 불평등한 사회이지만 아무도 기업인을 부도덕하다고 매도하지 않는다. 미국 사회에서 기업인은 부를 창출하여 사회에 환원시키는 자들이다. 누가 미국의 기업인을 못 가진 자의 것을 착취하는 자라고 하던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꿈을 품고 있는 사회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발전 속도가 빠르며 한국뿐 아니라 여러나라의 기술 산업은 여전히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

   기업인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부정적, 소극적 경제 이론이 성공한 예는 없다. 우리에게 단 두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다시 통치자가 국민에게 꿈을 주어 기업인을 수출 산업의 역군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업인을 악덕 자본가로 매도하여 다시 박정희 시대 이전의 구멍가게 경제로 되돌아갈 것인가? 우리는 다시 꿈을 가지는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기업 윤리처럼 우리나라 실업계에도 사회 환원을 실천하는 기업 윤리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라고 미국처럼 민족 기업을 갖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며, 한국 사람들이라고 미국 기업인들처럼 사회 환원 윤리를 갖지 못할 이유가 그 무엇이란 말인가? 성경을 읽으며, 미국의 청교도 정신을 되새긴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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