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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8월 2일 

바둑이 한국 좌익에게 가르쳐 주는 경제관 한수

   경제관은 크게 성서적 경제관, 경제학적 경제관 및 마르크스주의 경제관으로 나누인다. 성서적 경제관에서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마르크스주의 경제관에서 토지의 주인은 사람이기에 성서적 경제관과 마르크스주의 경제관은 정반대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실생활에 적용되는 경제관, 즉 경제학적 경제관에는 한국 좌익이 바둑으로분터 한 수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성서적 경제관에서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언제나 영적 가치관이 물질적 가치관에 우선한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잃으면 그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나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그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가? 그런데 부자는 천국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재산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오히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한다. 경제학도의 시각에서는 기독교인이 영적 보화를 물질적 보화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명의 바탕에 성서적 경제관이 있는 나라와 민족이 선진국이요 잘 산다. 미국이 경제 선진국이며 미국에서도 유대인이 경제권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축복으로 땅이 복을 받는다는 말은 경제의 효용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좌익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경제의 적은 이기심이다. 그런데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사회에서는 이기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기독교 복음이 있는 나라에서 경제의 효용이 높아진다. 후진국의 문제는 자본주의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하면 더욱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표시로서 십일조를 봉헌하는 나라 사람들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에는 수학적 계산을 뛰어넘는 기적이 있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

   그러나 경제학적 경제관이라는 또 하나의 경제관이 있다. 물론 기독교인에게도 경제학적 경제관은 필요하다. 땅의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사실이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토지의 청지기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땅을 잘 관리하기 위하여, 즉 경제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하여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 경제학적 지식은 신자와 불신자가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경제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즉, 좋은 경제 정책으로 나라 살림이 부강해지기도 하고 나쁜 경제 정책으로 나라 살림이 가난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둔한 좌익은 나쁜 경제 정책, 즉 온 국민을 절대 빈곤으로 몰고가는 경제 정책을 채택하자고 주장한다.

   경제학의 제1범칙은 완전한 경제 정책은 이 세상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 발전의 양수레이되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경제 정책은 불가능하다. 단지 경제 여건과 주변 상황에 따라 어느 편을 좀 더 중요시하냐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샘물의 물은 여러 사람에게 분배할 수 있다. 그러나 물통의 물은 분배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샘물 경제를 발전시켰는데, 미련한 좌익은 물통 경제론만 고집한다.

   비록 성서적은 아니지만 바둑이 미련한 한국 좌익에게 가르쳐 주는 경제관 한 수는 이것이다. 바둑을 잘 두는 비결은 과욕을 버리는 것이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과욕을 버리는 사람은 고수에게 당하기 마련이다. 바둑에서 땅 넓히기와 대마 잡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정석은 없다. 바둑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따라서 상대에 따라 땅 넓히기와 대마 잡기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안전하게 집짓기만 하면 공격에 약하다. 공격만 하면 집짓기에 약하다. 그래서 고수는 이 둘 중 어느편이 계가에 유리하냐를 판단하지만 하수는 이 둘을 동시에 노리다가 진다.

   그런데 한국 좌익은 이 하수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경제 정책이 가능하다는 듯이 떠든다. 그러나 분배의 평등을 요구한답시며 파업 선동하여 임금 인상을 시킬 때 주변 환경이 금방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임금 상승은 가격 상승을 의미하며 한국 상품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만큼 중국에 시장을 빼았기고, 한번 빼앗긴 수출 시장은 되찾을 길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샘물 경제를 발전시키셨는데도 먹통 좌익은 이렇게 물통 경제를 하자고 고집한다. 그래서 한국 좌익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경제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경제 제1법칙을 배워야 한다. 아마 미련한 좌익도 집짓기와 대마 잡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정석은 없다는 사실을 바둑에서 한 수 배운다면 좀 더 올바른 경제학적 경제관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번째로,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경제관이 있다. 이 경제관에서는 토지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하니 더 부자로 살 것 같지만 이런 경제관을 가진 나라들은 절대 빈곤을 면치 못하였다. 북한의 예를 들면 토지가 인민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북한의 토지의 주인은 오직 김정일 한 명일 뿐이다. 심지어 일제 시대 때도 조선인 토지의 소유권은 분명하였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공산당이 토지를 몰수하여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물론적 경제관을 가진 나라에서는 땅의 효용이 떨어져 땅값이 휴지값이다.

   공산주의라고도 불리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경제관은 분배의 평등을 강조하기에 리영희 교수 같은 좌익이 이런 경제관을 추종한다. 아마 자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는 그의 선입견이 더욱 그를 마르크스주의에 빠지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유물론은 사람을 더욱 이기주의에 빠지게 한다.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기독교 문명권과는 달리 오히려 중국 같은 공산주의 사회가 개방하였을 때 부정 부패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유물론적 경제관은 샘물 경제관과 달리 성장 원동력이 없는 경제관이기에 온 국민을 절대 빈곤으로 몰고간다. 분배 평등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좌익의 약속은 언제나 거짓말이다. 그리고 개혁을 외치는 좌익알수록 언제나 더욱 부정 부패에 연루되어 있다. 아마도 한국 좌익은 집짓기와 대마 잡기를 동시에 노리면 악수를 두기 쉽고 악수를 두면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다는 바둑의 교훈으로부터 경제관 한 수를 배워야 할 것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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