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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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3월 8일 

대구지하철 참사 때 미군이 솔선수범하여 구조작업하였다

   지난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초기에 미군이 먼저 달려와서 화재진압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군의 구조 소식이 초기 방송에만 잠깐 나오고는 그 다음부터는 전혀 안 나왔기에 여기 정리해 봅니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열차에서 큰불이 발생하자 미군들도 장비를 지원하고 구조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사태수습을 도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위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미군들은 박모씨를 비롯한 부상자 20여명을 극적으로 구조해 안타깝게 구조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대구시민들에게 많은 박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6월 13일 전방에서 인민군 장갑차 공격 저지 훈련 중 미군 장갑차 전용도로에서 두 여중생 참사 사고가 났을 때 즉시 화환을 보내며 조의를 표하고 여러차례 가족을 찾아와 위로하였던 한미연합사령관 라포트 대장이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는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최대한 지원하도록 지시하여 미19지원단 전투지원사령부에서 분진마스크 등 각종 장비를 지원했다.

   당시 시민들은 어떻게 대구 중앙로의 소방대와 저 멀리 있는 미군부대의 소방대가 동시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미군 소방대의 신속한 기동력에 크게 놀랐었다. 당시 미군 병사들은 한국 소방대원이 뛰어들어갈 엄두를 못내던 불길 속에 먼저 달려들어갔는데 그들에게는 우리 소방소에 없는 화학 장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소방서에는 없는 화학 장비와 화재 진압 장비 그리고 방화복등을 지원하였기에 우리 소방대원들도 처음 겪어보는 지하철 화재 현장에서 구조 작업이 가능했다.

   2월 19일자 중앙일보는 그날 동원되었던 미군 소방차량들은 K-2비행장 미 공군소방소 소속 차량들이었다고 보도한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미군 부대가 전방에만 있는 줄로 생각하지만 대구에도 K-2비행장이라 불리는 미 공군 비행장이 있다. 대구지하철 사고가 발생한 18일 오전 10시40분경에 K-2비행장의 로이드 폭스 소방서장이 대구시소방본부로부터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 수습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3대의 소방차량과 1대의 지휘차를 동원,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서 화재진압을 지휘했던 폭스 서장은 "화재진압 요청에 따라 소방차량을 긴급 출동시켰으나 현장에서 소방차량보다 구조팀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 했다. 사고 현장에는 이미 도착한 40여대의 대구소방본부 소방차량들이 있었다. 문제는 사고 현장의 구조상 그 어느 소방차량도 지하철로 내려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소방대원들이 아니라 구조대원들이었던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해 내고 싶어하던 폭스 서장은 그때 "출동 전에 필요한 사항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면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고 중앙일보 2월 19일자 기사는 밝힌다.

   미8군에는 예하부대인 19지원사령부가 있으며, 19지원사령부에는 13개 예하부대가 있어 한미 양국 군에 병참 지원을 하는바 그 중 일개 부대가 대구에도 있다. 대구 K-2비행장으로부터 대구지하철 참사 보고를 받은 한미연합사령관 라포트 대장은 즉시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를 최대한 지원하도록 지시하고 미19지원단 전투지원사령부에서 분진마스크, 화학 장비, 화재 진압 장비, 방화복 등을 각종 장비들을 사고현장에 보냈다. 그리고, 미군측으로부터 이런 장비 지원을 받고 나서야 비로서 우리 소방대는 구조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여러 신문 기사들과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날 어떻게 미군들도 화재 진압에 동참하였을 뿐만 아니라 솔선수범하여 구조작업에 나서게 되었는지 살펴 보자. 사고 직후 우리 구조대원들은 방독 마스크를 쓰고 구조에 나섰으나 유독성 연기가 워낙 강하게 뿜어져 나와 한동안 현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방독 마스크 쓰고서는 접근은 커녕 앞도 볼 수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알리 없는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 지휘소를 찾아 "수색작업이 왜 늦어지느냐"고 강하게 항의하며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때 쏜살같이 도착한 미군 병사들이 불타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한편 우리 구조대에 미 19지원단 전투지원사령부에서 보낸 분진 마스크 등 각종 장비를 전달했다. 이런 장비를 지원받은 후부터 우리 구조대원들도 사고 현장에 뛰어든다. 즉, 일반 화재와 다른 유독가스를 내는 이런 상황에서는 분진 마스크가 있어야 구조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분진 마스크와 화학 장비들이 우리 소방소에는 없었던 것이다 (중앙일보 2003-02-18 기사 참조). 이것은 미군 구조대의 신속한 기동력과 각종 장비 지원이 지하철 화재라는 특수 상황에서 구조 작업을 가능케 하였음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이 없으면 전쟁이 일어나도 인명 구조를 위한 이런 장비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희귀한 것이다. 어찌, 우리에게 없는 것이 그뿐인가? 지난 6월 13일 미2사단 44공병대는 유사시 한국군에 지원할 최첨단 장비들을 수송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병사 수보다 장비 차량 수가 더 많고 미군 병사들은 한국 지형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실전 훈련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훈련 중에는 미군 장갑차전용도로에 민간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사고의 모든 책임을 미군측에만 전가하고 반미시위하여 미군 철수시키면 한국군은 그런 장비 지원들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럼, 우리 국방비를 몇배로 증액해도 어림도 낼 수 없는 그런 장비들을 노사모가 어디서 마련해 오려구 미군 철수시키는가?

   군 복무를 해 본 사람은 미군이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는 지를 안다. 전방에서는 지금도 지뢰 사고 등 여러 사고가 일어난다. 그럴 때 인근 미군 부대에 도움을 요청하면 한국군에서는 장성이나 탈 수 있는 헬기로 아주 신속하게 후송하여 생명을 구하는 모습들을 본다. 그리고, 군대에서 의무 병과에 근무하던 장병들은 군대 의약품이 사회의 의약품보다 훨씬 좋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미제 약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사시 사병들에게 지급될 비상 전투 식량도 비상 의약품도 모두 값비싼 미제이다. 이런 병참 지원까지 합하면 주한미군이 있음으로 우리가 얻는 자산 가치는 무려 일천 백억불이라고 한다. 미국인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내는 세금은 일년에 36억불이지만, 너무 고가라 한국군으로서는 구입할 수 없는 장비며, 탄약 등 군수용품이며, 병참 장비 등을 한미 양군이 공유하기에 누리는 자산 가치는 그렇게 큰 것이다. 홍위병 노사모가 주한미군 철수시킨 다음에 무슨 수로 어디서 그 비용을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노사모는 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있는가?

   우리가 조금만 눈여겨 보면 미군 병사들 중에는 천사들처럼 착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양로원의 할머니들을 어머니로 모시고 매주 찾아가는 미군들, 고아들을 보살피는 미군들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안하는가?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상원의원이 된 신채호씨도 지난 6월 두 여중생 사고낸 부대에서 거지 소년이었는데 한 미군 장교가 입양하여 그렇게 휼륭하게 키웠던 것이다.

   지난 2월 28일에도 대한적십자사가 주최한 '사랑의 헌혈 캠페인'에 주한미군 장병들이 100 명이 넘게 참여하여 서울역 헌혈의 집에서 헌혈하였다. 사실, 두 여중생 사고 직전에 한국인이 두 미군 장교를 칼로 찔러 죽인 사고가 있었다. (반미 촛불 시위 열풍 때 미군 장교를 칼로 찌를 사건 말고 여중생 사고 전에 한국인이 미국인들에 범한 살인 사건이 있었다.) 그때 한국 정부는 미군 유족에 대해 사과의 말 한마디는 커녕 단 일원의 보상도 없었다. 그 범죄 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고 미군측도 한마디의 유감 표시조차 할 수 없었다. 짐작컨대, 피해자인 미군측은 행여 그 한국인이 범한 그 사고가 한미 우정에 악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여 숨소리도 내지 못하였던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 여중생 사고 당일 허버드 주한미대사가 조의를 표한자마자 주한미군 전 장성이 직접 찾아가 조의를 표하거나 화환을 보내는 신속한 행동을 보였으며, 효선이와 미선이 유족에게 4억원의 보상금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거액의 위로금까지 지불하며, 파월 국방장관과 주한미국대사와 전 미군 장성들이 즉시 조의를 표하고, 화환을 보내며, 혹은 직접 찾아가 무릎을 끓고 조의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얼마나 요구했던가? 여중생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미군 장성 중에 두 여중생에게 조의를 표하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 정치인 중에 누가 조의하러 갔었던가? 그리고 한국인이 두 미군 장교를 살해한 사고에 대해서는 미군측은 재판권 요구는 커녕 단 한 푼의 보상조차 요구할 수 없었던 데 비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인민군 장갑차 방어 훈련장에서 일어난 두 여중생 사고에 대해 미군측은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파 불평등을 얼마나 크게 외쳤던가? 그러나, 물어보자. 무엇이 불평등하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이런 몰상식한 반미 감정에도 불구하고 미군들은 계속 고아들을 돌보며 헌혈하며 여러 선행을 행해 오고 있었다. 지난 연말이면 반미 시위가 극에 달해 있던 때이다. 그때 한 미군병사가 희귀혈액 가진 한국인 신생아 생명을 구한 소식을 2003년 1월 7일자 KBS 박재홍 기자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전투기 항법장치의 안전점검 등을 담당하던 조나단 전트 병장과 대니엘 크레인 일병에게 희귀혈액이 급히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달 28일. 전주의 한 종합병원 소아과에서 RH마이너스 AB형의 혈액을 수소문하자 이를 접한 군위관은 장병들을 상대로 지원자를 찾아나섰습니다. 그러나 3000여 명의 부대원 가운데 이 혈액형을 지닌 사람은 4명이 전부였고 전트 병장과 크레인 일병을 제외한 2명은 본국에 출장 나간 상태였습니다. 신생아에게 마지막 희망이던 전트 병장 등은 신생아에 대한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뒤 헌혈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때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트 병장(군산 미군기지 정비단)은 "연락받고 전주로 갔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굉장히 흥분되고 기뻤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정략적으로 효순이와 미선이의 이름을 팔기로 악명 높은 범대위가 파주의 미군 전용장갑차도로에서 훈련 중 당한 과실 사고에 대해 처벌을 그토록 요구한다면 범대위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사고 조금 전에 한국인이 미군 장교를 칼로 살해한 사고에 대하여 범대위는 유족에게 단 일달러라도 보상하라!

   지하철 구조 작업이 끝나고 200여명이 사망하였으며 그 이상의 부상자를 낸 것이 발표되자 주한미군은 PX, 카미서리와 기타 영내 시설에 모금 창구를 설치하였으며, 한반도 전체에 있는 미군 교회에서도 특별 헌금을 하였다. 어찌 우리가 잊겠는가? 우리 민족이 6.25전화를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때도 전 미국 교회가 한국 돕기 특별 헌금에 동참했었던 일을... 미8군 민사 부처장 도나 보컬 소령은 "비극적인 참화의 사상자를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려는 뜻에서 모금 활동을 벌인다"고 하며, "희생자를 돕기 위해 성의를 표시하고자 수표를 보내실 분은 수취인을 대구 구제기금 지역은행 계좌번호 3689225876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알림을 공고하였다. 이렇듯 미군은 숨어서 모금하고 송금하기에 신문에 광고되는 한국인의 성금과 달리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http://seoul.usembassy.gov/wwwh9500.html ). 두 여중생 사고 때도 공식적으로 지불한 4억원의 보상금과 별도로 얹어준 위로금 외에도 주한미군은 여러 차례 성금을 모금하여 효순이와 미선이 유가족에게 전했다. 미군 사병들 봉급이면 사회의 일반 한국인들보다 적을 것이다. 그러나 미8군 당국이 지불하는 것 외에 사병들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여러 차례 성금을 모아 효순이와 미선이 유가족에게 전한 정성은 우리가 그 이제 그 마음이라도 받아 주어야 한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주한미군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엄청난 지원을 한다. 한국 언론은 지하철 참사 때 미군이 엄청난 무료 장비 지원을 해 준 데 대하여는 관심조차 갖기에 인색한 것일까? 이것은 지난 발레스타인 날 몇몇 한국인 네티즌이 쵸코렛 몇 봉지 들고 미군 부대 방문하였을 때 모 영자 신문이 대서 특필하며 인터뷰까지 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사를 표시하는 미국인의 예의 수준이 숱한 인명 구조와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모른체 하는 우리 예의 수준보다 높아 보인다.

   그리고 익명으로 송금하기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주한미군 장병들 모두가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성금 모금에 참여하였다는 그 정성이 고맙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에서 근무할 때 잦은 헌혈로 혈맹의 우정을 표시하는 미군 장병들은 이번에도 다투어 헌혈에 나섰다.

   지난 2월 28일 대한적십자사는 실로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혈액 재고분이 적어도 7일분은 있어야 되지만 요즘은 이틀치밖에 없는데다 대구 지하철 참사까지 겹쳐 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 12시에 낮 12시에 올들어 거의 텅텅 비다시피한 헌혈의 집이 모처럼 사랑의 열기로 가득찼다. 사랑의 불씨를 지핀 손님은 다름아닌 주한미군들입니다. 만성적인 혈액 부족 사태가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까지 겹쳐 더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점심도 거르고 달려온 것이다. 한국 사람 생명 구하는 일이라면 제 몸 돌볼 줄 모르고 달겨붙는 것이 반세기 전 6.25 동란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미군 애들의 정신이다.

   여기 이 날 하루에도 백 명이 넘게 우르르 헌혈하러 몰려온 미군 병사들 중에서 두 명과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한다:

   마틴 세이온 상사의 말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고생하는 분들을 헌혈로라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습니다." "헌혈을 위해 까다로운 국내 심사를 거쳐야 되지만, 꺼져가는 생명을 건지고 특히 한미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배고픔도 잊었습니다." 트리스하 하스 상병도 "제 헌혈이 한미 관계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기자에게 대답하였다 (http://dailynews.yahoo.co.kr/headlines/so/20030228/yn/yn2003022821386.html ).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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