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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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15일 

자기 목숨 내던져 두 한국인 여중생의 생명을 구한 미국인 이야기

   박사요 어학에 천재였던 한 미국인이 바다에 빠진 두 여중생을 구해내고 돌아가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1885년에 인천에 첫발을 디디신 아펜셀러 선교사님이 그해에 설립하신 배재학당은 인쇄부를 설치하여 독립신문,그리스도신문, 매일신문 등을 발행하고 학생들에게 인쇄교육을 실시하는 등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12세기 고려시대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으되, 한글 인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아펜셀러 선교사님이 1885년에 배재학당을 설립하시면서부터입니다. 세종대왕이 1447년에 동으로 한글활자를 만들어 인쇄한 『월인 천강지곡』 이 첫 한글 인쇄물이되, 활자 크기가 같으며 한문을 섞지 않은 한글 인쇄의 효시는 1885년에 설립된 배재학당의 인쇄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렇듯 미션 스쿨이 발전시킨 한글 인쇄 문화는 일제의 암흑시대에도 출판을 통한 애국운동 독립정신 고취에도 기수 역할을 하였습니다.

   1883년에 발행된 한성순보가 비록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이기는 하였으나, 이것은 정부기관인 박문국에서 발행하였고, 또 순한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배해 1896년 4월 7일 창간되어 배재학당에서 인쇄한 1896년 4월 7일 창간한 독립신문은 최초의 한글 신문이요, 최초의 민간 신문이요, 또 개화기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1899년 12월 4일 폐간되기까지 구시대의 사고를 혁신시키고 백성들에게 신학문, 신사고를 유도함으로써 민족 정신의 계몽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학혁명과 갑오경장, 일본 및 러시아 등 외세의 침입이라는 시대적 격동기에 태어난 독립신문은 우물안 개구리였던 우리 민족에게 넓은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구의 발전된 학문과 기술을 소개하고, 서구식 실용주의 사상을 계몽하였다. 내부적으로는 정치 사회의 혁신을 강조하고 신학문 신교육의 도입을 제창하였던 독립신문은 실로 우리 민족의 민족 신문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 운동과 더불어 발달한 우리나라의 인쇄 문화의 또 하나의 예가 금년에 창립 90주년을 맞는 최고 인쇄사 보진재입니다. 지금의 40, 50대들에겐 중고등학교 교과서 출판사로 낯익은 이름, "보진재"(寶晋齋)입니다. 1920년대 기독교 서회와 성서공회가 발간하는 성서, 찬송가를 펴내기 시작하였으며, 이곳에서 생산한 인쇄물의 역사는 곧 우리 나라 근대화의 역사 기록이기도 하답니다. 예를 들어, 1935년 헐 박사 요청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국내에서 처음 인쇄하였지요.

   어학에 천재이신 아펜셀러 선교사님은 한글 띄어쓰기를 고안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지금은 띄어쓰기 없는 한글 표기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본래 한글은 띄어쓰기 없이 가로쓰기로 붙여쓰는 글이었습니다. 한글의 띄어 쓰기를 누가 처음 연구하였습니까? 성경을 번역하신 선교사님들입니다. 국어학자들은 1887년 로스 선교사님이 "예수셩교젼셔"를 번역하여 출간하신 연대를 근대 국어 발전의 분수령으로 여깁니다.

   우리나라 미션 스쿨의 역사는 또한 우리나라 현대 의학 발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미션 스쿨을 세우신 선교사님들이 병행하신 의료 사업 중 나환자 복지 시설의 예를 먼저 들어 봅니다.

   대한제국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했던 1909년에도 우리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 땅을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 포사이트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한의에서 대마풍이라 부르는 문둥병 환자가 많았는데, 아시는 대로 한의에서는 문둥병은 치료법이 없는 전염병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문둥병 환자가 생기면 동네에서 쫓아내었습니다. 어느날 길에서 한 더러운 옷을 입은 말기 문둥병 환자가 굶어죽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 포사이트 선교사님은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선교사님은 이 나환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정성을 다해 치료하여 살리셨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 여수애양병원 등 현대식 나환자 치료 시설이 설립되었습니다.

   전기도 안 들어오며 음식도 맞지 않는 이 나라에서 교육에 헌신하기 위해 무수히 찾아오신 선교사님들 중에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아펜셀러 선교사님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항에 도착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 주여 ! 우리는 부활의 아침에 이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세와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가는 이 민족에게 빛을 비추소서 ... " 그리고 아펜셀러 선교사님은 성경을 번역하시며, 정동제일교회를 세우시며, 배재학당과 이화여대의 전신 이화학당 등의 미션 스쿨들을 설립하셨습니다.

   지금은 교육열이 높지만 학비가 없던 현대식 교육 초창기에는 선교사님들이 교육을 미끼 삼아 학생들을 미국에 노예로 판다는 소문이 있었다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학생 신변 안전의 각서를 학부모에게 일일이 써주어야 했습니다. 1902년 6월11일 아펜셀러 선교사를 태운 배가 군산 항구 근해에 도착하였을 때 선박 충돌 사고로 이화학당의 여학생 두 명이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 때 그 두 여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신 선교사님은 필사적으로 두 여학생을 구출해내셨으나, 자신은 힘이 빠져 다시 물 위로 오르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한국인 여중생의 목숨을 구하고 바다에 빠져 돌아가신 선교사님의 슬픈 소식도 한국을 뜨겁게 사랑하며 찾아오시는 다른 선교사님들의 행렬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중 미국 명문가이자 대부호의 딸, 미국 사회에서 귀공녀로 여기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직 미혼인 자기 딸이 한국에서 선교하다가 병들어 죽자 이 부호는 딸이 한국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념하기 위해 자기 재산을 다 기증하여 우리나라에 병원을 세웠습니다. 아직 한국인의 재력으로는 현대식 종합 병원 설립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이것은 우리가 감사로 받아들여야 할 그들의 우정의 선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경찰의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병원 운영과 교육 활동을 하시던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입니다. 일제 시대 때 일본은 세계지도에서 Korea를 Japan으로 바꾸었으나 선교사님들은 끝까지 Korea로 표기된 지도를 사용하셨으며, 우리나라에 외교 사절이 없었던 때 민간 외교 사절로서 한국인이 일본 국민이 아니라 독특한 문화 유산을 가진 민족임을 만천하에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인 선교사님들의 이런 활동들은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일본 제국으로부터 자주 독립하도록 기여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인 두 여중생을 구하기 위해 대신 바다에 빠져 죽으신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기록되어 미국과 우리가 사랑으로 맺은 우정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랍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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