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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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25일 

러시아와 한국 대통령 취임식/ 참전 세대와 신세대의 만남

   오늘 (200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 모습은 우리에게 2000년 5월 7일 정오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당선자가 모스크바 크렘린 대궁전에서 러시아 연방 제3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왜냐하면 한가지가 너무도 공통적이고 한가지가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참전 세대와 신세대의 만남이라는 점이 너무도 공통적이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이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가 공산주의 시대를 말끔히 청산하는 의미가 있었다면 노무현 당선자의 취임은 한국인들에게 좌익과 우익 이데올로기 대립을 떠올린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하던 다음 날 북핵 위기를 선물하던 북한이 노 당선자 취임식 하루 전에 동해에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아무리 신세대가 참전 세대를 구세대라고 불러도 휴전선을 사이로 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결코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이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과 그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러시아 국민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공산주의를 청산한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은 평화의 축제였다. 스스로 핵무기를 하였을 정도로 러시아에서 전쟁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우리에게는 침략국으로 알려진 러시아는 자기네 역사를 외세의 침략을 받은 역사로 기록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러시아 역사는 몽골의 지배로 시작되었으며, 제국으로 성장한 후에도 나폴레옹 황제의 프랑스 군에 의해 모스크바가 함락되고 불탔다.

   푸틴 대통령 취임식 이틀 후인 5월 9일에 모스크바 쿠투조프의 「승리 공원」에 참전 세대와 신세대가 어우러진 백만 이상의 인파가 모여 제2차 세계 대전 55주년 전승 기념 행사를 펼쳤던 것도 그 한 예이다. 왜 하필 전승 기념일이 러시아 최대의 경축일이냐고 이국인은 의아해하겠지만 그 큰 이유 중에 레닌그라드 구백 일의 포위라는 민족적 경험이 있다. 구백 일이나 독일군에게 포위 당해 굶주리면서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은 시민 정신이 레닌그라드를 지켰고, 모스크바 방파제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독일의 단기전 전략에 장기전으로 버팀으로서 최후의 전승국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구백 일의 포위에서의 레닌그라드 시민 정신의 승리는 히틀러의 세계 정복을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데서, 그리고 위기의 때에 그들의 미술 문화재를 최우선적으로 지켰다는 데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이다.

   때는 천하 무적을 자랑하며 승승 장구하는 독일 나치군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전 유럽을 제패하던 1941년 여름이었다. 그때 가히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을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히틀러는 결정적인 두 가지 전략상의 큰 실수를 한다. 그 첫번째 실수는 1940년 여름에 히틀러가 영국을 동맹국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는 오판을 한 나머지 영국 공격의 최적 시기에 늦장을 부렸던 것이고, 그 두번째 실수는 1941년 여름에 너무 서둘러 러시아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해 6월 히틀러는 러시아의 스탈린과 맺었던 불가침 조약을 깨고 기습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때 그의 장성들은 겨울 전투복을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히틀러는 겨울이 오기 전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라며 막무가내였다.

   무적의 철갑 부대를 앞세운 독일군 대병력이 파죽지세로 모스크바 어구까지 진군하자 러시아는 풍전 등화의 위기에 처하였으며, 스탈린의 크렘린 궁에서는 단 두가지 방도밖에 없는 듯하였다. 하나는 폴란드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항복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수도 모스크바를 버리고 피난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강한 외적의 침입이 스탈린에게는 오히려 내부의 정치 위기를 해소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경제 위기로 자칫 공산당 지배 정권 붕괴 위기에 처한 김정일이 그토록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호전적인 모험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러시아의 국내 상황은 어떠하였던가?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 동안 무려 이천 만 명의 러시아인이 희생되었다. 자신의 어제의 혁명 동지들과 신복들에게 모두 반란죄를 뒤집어 씌워 차례로 처형하는 이 의심 많은 권력자의 테러 통치에 국민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스탈린의 병적 숙청에 불안감마저 느낀 러시안인의 반정부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바로 이때 독일군의 침공으로 모스크바가 함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탈린은 피난 가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구국 전선의 선봉에 서면서 러시아인의 애국심에 호소한다. 이래서 러시아인들은 스탈린은 밉되 먼저 나라부터 구해야겠기에 손에 무기를 들고 전선으로 모였다.

   모스크바를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러시아 붉은 군대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독일군 사령부는 모스크바를 고립시키기 위해 그해 9월 8일에 러시아 제2의 심장부인 레닌그라드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어 공격한다. 독일군은 남쪽과 서쪽에서, 그리고 독일의 연합군인 핀란드 군은 북쪽에서 협공하여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포위하였으며, 이리하여 세계 제2차대전사에서 길이 기억되는 900일의 포위가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의 도시들은 동서 건축 양식의 조화로 유명한데, 그 중 특히 걸출한 곳이 구소련 시절의 지명이 레닌그라드(Leningrad)였던 뻬쩨르부르크(St. Petersburg)이다. 뻬쩨르부르크는 동서 건축미의 조화도 뛰어날 뿐더러 고전미와 현대미 역시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한 예술 세계인 것 같은 데다 도시 속에 유럽 풍의 고궁과 아름다은 자연 경관이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는 도시이다. 더구나 그 화려함과 동서 고금의 값진 미술품 소장의 규모에 있어 세계 최대인 예레미따지 박물관도 이 도시에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러시아의 애수의 역사가 서려 있다.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 동안 이미 많은 시민을 잃었던 이 도시에 장장 구백 일의 포위와 그에 얽힌 서민들의 갖가지 사연이, 그리고 장렬한 시민 정신의 승리의 일기가 있다.

   기습을 감행한 독일의 철갑 부대가 시시 각각 레닌그라드를 향해 좁혀 오고 있었을 때 아직 단 한번 시베리아 행 열차를 운행할 기회가 있었다. 피난 열차를 운행할 단한번의 기회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열차에 사람이 타지 않았다. 그들은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이었다. 그들은 먼저 그 열차에 예레미따지 박물관의 미술품을 실어 독일군의 군화가 미치지 못할 안전한 곳에 보냈다. 그리고 장정은 물론이요 여인을 포함한 전 시민이 총동원되어 밤샘을 하며 도시 외곽에 대전차 방어 요새를 구축하였다. 제 아무리 독일군의 철갑 부대라 하더라도 비오면 땅이 진흙 바다요 금방 겨울이 와 탱크가 빙설 위에서 얼어붙는 러시아의 천연 환경이 레닌그라드 시민의 편을 들어주는 데는 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독일군이 추위와 싸우며 포위망을 풀지 않고 있는 동안 레닌그라드에는 식량이 없었다. 열차 통행로가 봉쇄당했으므로 고작 썰매로 구해오는 양식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는 동안 이 집 저 집에서 연일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레닌그라드 시민에게 배고픔과 싸울 유일한 위안은 음악이었다. 구백 일 포위당해 있는 동안 시장은 배고픈 시민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회를 자주 열었다. 그러나 그 구백 일 동안에 무려 삼분의 일이 시민이 굶어 죽었다.

   한편 포위망을 풀지 않던 독일군 진영에서도 극한 상황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은 매한가지였다. 1943년의 러시아의 겨울은 독일 병사들에게는 유난히도 추웠는데 본국으로부터의 보급품 공급도 지연되고 있었다. 마침내 1944년 1월 27일에 독일 병력은 빙설 위에 얼어 붙은 중무장을 버린채 872일간의 포위를 풀고 철수한다. 당시 15세이던 레닌그라드의 한 소녀는 자신의 가족과 친척이 차례로 굶어죽은 날자를 그녀의 일기에 적었다. 애처롭게도 그녀 역시 독일군이 철수하기 불과 며칠 전에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녀의 일기책과 지금은 색이 바랜 그녀의 앳띠고 청순한 모습이 담긴 사진만을 남긴채로….

   모더니즘은 객관적인 지식의 추구를 이상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도 결국 힘 있는 독재자가 주무르기 나름이기 때문에 20세기의 지식인들은 모더니즘이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전제정치를 위해 악용되는 것을 보았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인류의 번영과 복지를 위해 독일의 나치 제국이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이런 통치자의 독선 앞에서 독일의 지식인들이 너무도 무력했었다. 그래서 이차 대전 후의 지식인들은 힘 있는 자가 자기 주장만 옳다고 하는 독선을 싫어한다. 즉, 모더니즘의 객관주의에 대한 역반응인 포스트모더니즘의 주관주의가 신지식인의 사조가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날 한총련을 비롯한 좌익 집단들은 우국 충정의 우익 인사들에게 이데올로기 투쟁의 선전 포고를 하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2000년 6월 온 국민이 남북정삼회담을 지지하던 심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국경을 넘음에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침략을 위한 넘음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 공존을 위한 넘음이다. 그해 6월 오십 년 만에 다시 삼팔선을 넘나들 때 우리는 이번에는 서로를 침략하기 위한 넘나듬이 아니요, 평화 공존을 위한 넘나듬이기를 바랐다.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를 침략하기를 원하지 않았되 삼팔선이 영구히 막혀 있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본래 한민족 공동체인 우리가 북녁 동포야 어찌 살든 삼팔선 이남에서 우리만 안주하기를 바라겠는가?

   이처럼 통일을 위한 염원은 같건만 통일을 명분으로 6.25 동란을 일으킨 북한의 인민군과 남한의 남로당이 너무도 많은 동포를 학살하였다. 휴전 후 50년이 지난 올해 그들이 또 다시 적화통일을 도모하려 하려 하고 있으며, 2000년 615 공동선언을 기점으로 김대중 정권 하에서 그들은 남한에 친북 좌익 집단의 조직을 확산시켜 왔다. 그럼, 여기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첨예하게 치닫고 있는 좌익 대 우익 이념 대결의 본질을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해부하여 보자.

   본래 모더니즘은 객관적인 지식의 추구를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니체가 지적하였듯이 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도 결국 힘 있는 독재자가 주무르기 나름이며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전제정치가 그 예이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인류의 번영과 복지를 위해 독일의 나치 제국이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독재자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합리화되는 그 비근한 예가 바로 북한의 김정일이다. 자신은 가장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삼백 만명의 인민들을 굶겨 죽여도, 남한 동포를 핵인질로 삼아도 오로지 "위대한 김정일 장군"으로 미화될 뿐이다. 그 획일적인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반동으로 몰려 죽음의 형벌을 받을 뿐이다.

   근자에 김정일 똘마니 집단은 스스로를 진보 세력으로 추켜 세우며 우국 충정의 인사들을 "수구 꼴통"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주객 전도라고 한다. 수령의 말이 초법적인 권위를 가지며, 수령 정치가 대대로 세습되는 파쇼 독재 정치가 21세기에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는 북한 수구 꼴통들의 사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남한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서고 있었다. 자유의 물결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유 분방한 사회가 되다 보니 알부 신세대에 어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풍조까지 생겼다. 이런 남한의 다원화 사회에 민주화 운동의 가면을 쓴 "빨갱이"들이 침투하여 오다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정면으로 이념 투쟁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진대, 이제 우리는 각자 자기 위치를 찾아야 한다. 좌익 논리, 즉 북한 김정일의 수령 통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이다. 더구나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며 소중한 자유마저 상실당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노사모가 원하는 것인가? 적화통일은 남한의 모든 사유재산이 김정일 정권에 몰수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그것이 노사모가 바라는 바인가? 북한의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 중심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외국 원조 없이는 굶어죽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그것이 노사모가 추구하는 바인가? 김일성은 6.25 남침을 이용하다 박헌영의 남로당을 이용하다가 전쟁 중에 남로당 간부들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오늘날도 이북 빨갱이는 잠시 이용하기 위하여 손을 잡다가 배신한다. 그럴진대, 친북 좌익 집단이 이념 투쟁을 선언한 오늘 노사모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와 더불어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인지 아니면 이북 빨갱이들에게 계속 이용당할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한다. 그리고 노사모가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잘 지지하는 방법은 우리와 더불어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좌익 이데올로기를 물리치는 것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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