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오디오 설교 김대령 에세이 황효식 칼럼 학술ㆍ생활 정보 추천 사이트
    2003년 2월 5일 

누가 한국 사람에게 차별 대우하였는가?

   요즘 미국 사람처럼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하는 일부 신세대 청년들은 한국적 머리카락 색을 고수하는 선배들을 구세대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분명 맥도날드 햄거거를 즐겨 먹으며 콜라를 마시고 커피는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요즘 신세대는 염색한 머리에서 나이키 신발을 신은 발끝에 이르기까지 친미 문화 일색입니다. 어느 정도 친미 문화인가 하면 미국 흑인들의 음악인 힙합과 흑인들의 힙합 패션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미 문화가 신세대 진보 문화의 대명사인양 으시대는 이들은 한국 사람다운 외모를 고집하는 선배들을 보수적인 세대로 몰아부칩니다.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들 노란 머리의 친미 문화 부류들이 반미 시위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12월에는 시청 앞 식당 앞에 "미국 사람 출입 금지"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는 사진이 전세계 신문에 실렸습니다. 서양인들이 한국에서 왕따를 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인을 왕따시키는 이유로 미국이 한국 사람을 차별 대우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어떤 차별을 받았나요? 얼마전 미국에서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내 두 미국인을 죽였는데 고의성이 없다고 무죄 판결 받았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차별 대우인가요?

   한국 사람도 근무하기 싫어하는 전방 지역에서 미군 병사들이 근무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 모두 한일월드컵 구경 가 있는 동안 하루 5시간도 못 자면서 북한 인민군 장갑차 격퇴 훈련을 받은 것이 한국 사람을 차별한 것인가요? 이 훈련은 한국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해 주기 위하여 미국 시민들이 일년에 30억불의 세금을 내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행정 기관에서는 미군 훈련 시간이 사전 예고되어 있는 동안만이라도 민간인이 미군 장갑차 전용도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주는 역할만 해주면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행정부 공무원들이 작년 6월 13일에 파주군 미군 훈련 작전 지역에서 근무에 태만하였습니다. 그럴진대, 우리편 공무원들의 해이해진 기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두 여중생 사고의 모든 책임 전가를 미국에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오히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미국의 명문대에서는 한국인 장애자가 입학하면 그 한 학생을 위하여 건물을 뜯어고치고 휠체어를 타고 캠포스 어디든지 갈 수 있느 시설을 새로 만드는 배려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모 가지고 사람을 왕따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제가 그 예를 하나 들기 위해 "성적소수자 홍석천과 하리수의 권익과 미모지상주의"라는 글을 하나 써 보았습니다.


   뽀뽀뽀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였던 홍석천의 경우 지난 해 (2000년) 9월 그가 동성연애자임을 밝히자마자 그의 커밍아웃에 대한 여론은 따가웠고 방송계는 즉각적으로 그의 출연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여론의 지탄을 못 이긴 홍석천 씨가 연예계 무대 뒤로 사라지자마자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등장하였는데 홍 씨에게 적용되었던 잣대가 하리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었으니 앞다투어 홍석천의 출연을 정지시켰던 방송계에서 앞다투어 하리수를 출연시켰던 것이다. 무려 오 년을 연예계에서 기반을 쌓고도 단지 동성연애자라는 이유로 한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설자리를 잃은 그때에 같은 성적소수자인 다른 한 연예인은 하루아침에 최고인기스타로 데뷔하였던 것이다. 도대체 그 두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려서부터 사내아이 놀이보다는 계집아이 놀이를 즐겼던 것도, 남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애정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도 그 둘은 같다. 그러나 똑같은 성적 소수자인 그 둘을 사회가 바라보는 잣대는 너무도 달랐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에는 완강하게 저항하던 여론이 얼굴이 예쁜 하리수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성적소수자 권익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럼 어째서 성적 소수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면서 실은 다른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모순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미모지상주의 때문이 아닐까. 사실 홍석천 씨도 결코 못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연예인은 머릿결에서 큰 대조를 이룬다. 한 쪽은 머리카락이 전혀 없고 한 쪽은 비단처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다. 머리카락이란 무엇인가? 신체의 일부이면서도 신체의 일부가 아닌 것이, 우리 몸에 잠시 붙어 있다가 매일 버리어 지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위하여는 중요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미용에는 몹시 중요하다. 사실 하리수의 성형한 얼굴보다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럼에도 하리수가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평을 듣는 것은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져 있다가 조그만 동작 조그만 바람에도 너울 치며 만발한 꽃처럼 피어나는 그의 아름다운 머릿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 기록에서 가장 머릿결이 아름다운 남자는 삼천 년 전 이스라엘의 왕자였던 압살롬이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미남이었으며,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 시대의 꽃미남 압살롬을 성서기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러나 화려하게 시작하였다가 그의 미모지상주의 때문에 그의 인생이 헤피 엔드로 끝나지 못한 압살롬 왕자의 이야기에는 우리 시대의 미모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려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왕자요 일대 미남으로서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춘 그였으나 그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는 부왕 다윗을 몰아내고 국왕의 위에 오르고자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분명 탈선이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왕자 압살롬의 허물에 그 시대 사람들은 너그러웠다.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다" (삼하 15:13).

   완벽한 미모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릿결까지 갖추었으니 그는 꽃 중의 꽃이요, 왕자 중의 왕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 세 가지, 즉 신앙과 지성과 인격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별 관심이 없었으며, 실력을 쌓으려 노려하기보다는 인기 관리를 처세술로 삼았으며, 일대 미남이었으되 세기의 불효자였다. 압살롬은 부왕의 궁전을 빼앗은 뒤 부왕의 후궁들에게 성폭행하였는데 그것도 백성에게 영웅으로 비쳐지려는 인기주의 때문이었다. 그는 실속 없이 미모를 무기로 허세를 백성의 지지를 모으는데 명수였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의 처세술이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는 듯하였다. 부왕 다윗의 왕궁을 점령하고 정부를 접수한 여세를 몰아 그는 부왕과 신복을 추격하였다.

   마침내 추격하는 압살롬의 대군과 더 피할 곳 없는 다윗왕의 신복들 사이에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병력의 수에서 훨씬 우세한 압살롬은 기고만장하였다. 그는 노새를 타고 그 멋진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펄럭이며 병력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머릿결로 단장된 머리 속에 지략이 없었다. 병력의 우세만 믿고 지형이 험준하고 나무가 울창한 곳에서 전투를 벌인 것은 작전의 실패였으며, 상수리 나뭇가지가 우거진 곳에서까지 그 긴 머리를 펄럭인 것은 스스로 파국에 이르는 어리석음이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삼하 18:9).

   압살롬의 미모지상주의는 시작은 좋았으나 그 열매가 좋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이 그의 미모였으나, 미모지상주의는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어야 했을 그가 가장 불행한 자가 되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그의 지지자 중 아무도 그의 탈선을 지적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도 있었던 미모지상주의가 요즘 같은 영상 매체 시대에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홍석천은 동성연애자라는 사실만으로 연예계에서 퇴출시키면서 하리수의 "끼 있는" 모습은 오히려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팬들은 그런 탈선에 너그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하리수를 사랑하는 길일까? 요즘처럼 중성미 예찬자들이 많은 시대에 성적소수자 하리수가 연예인으로 활동할 권익을 주장하는 팬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性) 윤리의 잣대마저 무시하는 미모지상주의는 사회를 위해서도 하리수 본인을 위해서도 그 열매가 결코 좋을 수 없음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미모를 칭찬하고 싶되 그의 “끼 있는” 행동 때문에 우리 사회의 성문화에 탁류가 흐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그가 옷을 마구 벗어도 두둔하는 그의 팬들의 미모지상주의는 오히려 그의 재능이 채 꽃 피우기도 전에 시들게 할 수 있다. 그렇다! 진정으로 우리가 성적소수자의 권익을 말하려면 우리는 똑같이 공평한 잣대로 홍석천과 하리수를 대하여야 한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황효식 목사 칼럼 김대령 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