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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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3월 26일 

두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

   현대의 국력은 수출 경쟁력이 좌우한다. 박정희 대통령 이전의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는 가난한 나라의 역사였다. 그런데, 조선왕조 때는 교역이 없이도 국가가 존속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오늘날의 경제는 그렇지 않다. 조선왕조 때는 수출이 없어도 나라가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출 경쟁력은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다. 그럼에도 좌익 경제 논리는 이점을 간과하는 모순에 빠져 있기에 한국 두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살펴 보기로 하자.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삼대 요소에 기술 경쟁, 가격 경쟁 및 마케팅 노하우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DJnomics로 내세우던 김대중 대통령은 "기술 경쟁, 가격 경쟁 및 마케팅 노하우" 이 삼대 요소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였다. 본래 DJnomics 란 1970년대의 그의 대중경제를 영문으로 표기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가 1970년대부터 대중경제 이론을 발전시켜 왔음에 바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럼 과연 그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는지 1970년대의 그의 대중경제부터 살펴보자.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지도자에게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목표와, 경제 발전 계획과, 그 계획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무진장한 자원을 가진 인도네시아는 그런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늘 원료 수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중동의 경제도 언제나 산유국 경제 그대로이다.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때에 와서야 이 세가지 자질을 갖춘 지도자가 출현하였다. 한국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는 있었다는 점에서 YS 와 구별되지만 경제를 발전시킬 올바른 계획(right plan)이 없었다는 것이 대중경제(DJnomics)의 취약점이었다.

   1971년 대선 때 김대중이 내세운 주장은 "대중경제"였고 박정희는 "조국근대화" 슬로건을 내세웠다. 후자, 곧 "조국근대화"는 수백년에 걸친 서구 산업 산업사회의 발전사를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한 다음 이를 한국 상황에 맞게 발전시킨 경제 이론이다. 참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 경제 이론을 개발 경제라고 부른다. 당시 서구학자들은 지하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시장 경험도 없는 한국 경제는 발전할 가망이 없다고 진단을 내렸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창안한 경제 이론이 성공하였기에 오늘날 서구 경제학계는 박정희의 개발 경제를 후진국과 개발 도상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모델로 삼고 있다.

   반면 대중경제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 이론에 DJ가 자본주의 경제 요소를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중경제는 치밀한 경제 이론이라기보다 DJ의 하향 평준화 신념이 담긴 일종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분배의 평등을 강조하기에 그의 경제 이론은 선(善)이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이론은 악(惡)인 것처럼 운동권 학생들은 인식하였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 정책이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이유도 386운동권 세대는 DJ의 대중경제를 신봉하는 세대였기 때문이다.

   1970년~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두 밑거름 중 하나가 바로 DJ의 대중경제 이론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 유물론에 뿌리를 박았으면서 민중신학의 간판을 단 일명 "민중신학"이란 사이비 신학이었다. 그의 노동운동은 강성 노조와 지나친 임금 인상을 초래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보니 한국의 노동 시장이 국제 사회에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려고 1996년에 노동법 통과를 무진 애썼다. 그러나 당시 국민회의 총재이던 김대중이 기아 자동차 사태를 장기화시키면서까지 방해하였다.

   바로 이것이 대중경제와 DJnomics의 자업 자득이었다. 대중경제는 한국 노동운동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DJnomics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노동법 개정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했다. 이미 커질대로 커져 공권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성 노조가 있으니 외국인의 설비 투자가 없다. 그리고 공적 자금을 지원하면 경제 대통령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해보고 보니 물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이미 한국 상품이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상태에서 기업의 이윤은 별로 없는데 기업 이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많은 노동 임금을 지불하니 기업의 자금난이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병은 대중경제가 밑거름이 된 노동운동이었으며, 준비된 대통령임을 자초하던 그는 그 병을 고치지 못했다.

   1971년에 김대중 선생이 자기 선거홍보용으로 발간한 책 "김대중씨의 대중경제"에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론'을 반박하는 이런 글이 있다.

집권자들은 이 길만이 조국근대화의 길이며 역사법칙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에 입각하는 한 경제발전의 추진력으로서 우선 자본가를 육성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사회의 자본가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적으로 성장하였지만 그러한 여건이 결여된 우리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육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광범한 무산대중의 출현, 나아가서는 비록 잠재적이기는 하지만 19세기적인 노사투쟁이 전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되풀이 될 수 없다. 대중경제에 있어서, 경제발전의 추진세력은 자본가가 아니라 대중이다. 대중경제가 육성하여야 할 것은 자본가가 아니라 오직 경영자 뿐이다.

   말하자면, 김대중 선생의 경제 이론은 그의 역사관을 반영한다. 그는 한국사회에서의 자본가의 출현은 노사투쟁의 형태로서의 계급 투쟁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한국 사회에 지금 그런 양상이 있다. 노무현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런 계급 투쟁으로서의 서열 파괴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강성 노조라는 것이 있으며, 그 문제는 노동운동을 선거에 이용하던 김대중 선생이 1996년 겨울에 노동법 개정을 방해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김대중이야말로 한국 노사투쟁의 원인 제공자라는 것이 대중경제의 모순점이다.

   위에서 우리는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삼대 요소에 기술 경쟁, 가격 경쟁 및 마케팅 노하우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 노동운동의 밑거름이 된 대중경제는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 모순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중경제는 기술 경쟁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서구에서는 200년 걸려 발전하는 중화화공업을 박정희 대통령은 황무지에서 출발하여 불과 십년 만에 세계2위의 수준으로 발전시키셨으며, 단기간에 포항제철 또한 세계적 철강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이라고 모든 기술 이전을 다해 주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선진기술이 하루 아침에 한국으로 이전되었는지 미국도 놀랐을 만큼 박정희 대통령은 기술 경쟁력 향상에 힘을 쏟으셨다. 그러나 DJnomics에서는기술 경쟁은 뒷전에 밀려난 개념이라는 것이 대중경제의 약점이었다.

   그러면 이제 이 간략한 경제 이론의 배경에서 수출 경쟁력의 제3요소인 마케팅 노하우를 고려해 보자. 사실 이점이 오늘날 좌익 경제 이론의 결정적 약점이기에 여기서 우리는 전두환, 김대중 두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그들의 경제 정책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인기에 무관심한 국민의 머슴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포플리즘이 강한 인물이었다.

   1980년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집권하면서 △2.7%의 마이너스 성장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는 전두환 정부와 공통점을 갖는 유일한 정부다. 그리고 20년 전에 전두환 정부가 당면했던 두 가지 선택도 김대중 정부의 두 가지 선택과 그 본질은 같다. 전두환 정부는 인기 없는 ‘안정화의 길’을 택했다. 당장의 성장회복에 연연하지 않고 완만한 성장회복과 구조조정의 길을 택했다. 그 결과 80년대 전반의 경제성장은 '83년의 11.5%를 제외하고는 6%∼8%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 우리 경제의 규모로서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정책은 1986∼88년 3년 동안의 12%대 성장으로 빛을 발한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1년반 만에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겠다”라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급속한 성장회복’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 선택의 배경에는 이 정권의 선천적인 大衆主義(populism)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경기부양을 계속하는’ 선택을 내린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급속한 경기회복이었다. '98년 하반기에 시작된 경기의 급속한 회복은 그 이후 2년 동안 계속되었다. 결국 본래의 정책 목표였던 ‘구조조정'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포플리즘을 가진 지도자의 한계였다. 그리고, 통계적 착시와 돈을 풀어 회복시킨 경기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 경제법칙이다.

   요즘 좌익은 노무현 정권이 이처럼 DJ에게서 병약한 경제를 인수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듯하다. SK 한번 건드렸다가 부도날 뻔한 경제를 이라크 참전 의사 발표 한마디로 가까스로 모면했다. 한국 경제의 신용도는 한미 동맹에 비례한다. 우리나라는 연 100억불 정도의 대미 교역 흑자국이며, 이것은 미국이 우리나라에 개도국 관세 혜택을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앞으로도 미국이 우리나라에 개도국 관세 혜택을 주기를 무엇으로 기대하려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한 것은 결코 그가 친미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한국 경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신용도는 한미 동맹의 견고함에 비례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장의 인기를 위해 경기부양책을 썼다. 이에 비해 그의 지도자 스타일이 국민의 머슴인 전두환 대통령은 당장의 인기는 없더라도 수출 시장 마케팅에 주력하였다. 전 세계의 수출 시장을 꼼꼼이 조사하고, 무역 장벽을 연구하며, 어떤 종목의 한국 상품이 어느 나라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마케팅 전략 지도를 만든 다음 각나라 지역 사정에 경쟁력 있는 한국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인 지원을 하여 주었다. DJnomics에서는 그런 마케팅 노하우가 없었다. 벤처를 육성한다고 벤처가 수출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생산 전문화와 전두환 대통령의 전략적 수출 마케팅의 노하우를 양김씨의 집권 이래 한국 경제는 잊어버리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두 주역임을 자처하는 양김씨가 오히려 한국의 자본주의 경제를 거꾸로가게 하였음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것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30년간 경제 정책의 주도는 정부가 했었지만 재야 경제 이론의 주도는 DJ의 대중경제가 하여 한국 노동운동의 밑거름이 되며 운동권 학생들의 투쟁 이론의 근간이 되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지금 386운동권이 노무현 주변에 포진하여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선 성장 후 분배는 세계 경제학계의 주류 이론이며, 좌익 운동권의 선 분배 후 무성장은 비주류 경제 이론이다. 개발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관문에 잠시 소득의 격차의 관문이 있다. 이 관문을 잠시 인내하는 민족은 선진국에 진입한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깽판부리는 좌익 경제 이론 때문에 후진국으로 도태한 나라들을 우리는 보았다. 자, 이제 위대한 민족 한국인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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