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오디오 설교 김대령 에세이 황효식 칼럼 학술ㆍ생활 정보 추천 사이트
    2003년 7월 15일 

한국 좌익의 반미주의에 감추인 제국주의 심리

   2002년 한일월드컵이 개최되기 꼭 20년 전에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그런데 6월 14일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의 개막전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경기였다.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패배하고 항복한 바로 그날 축구도 벨기에에 패배하는 안타까움이 겹쳤던 것이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는 월드컵 득점왕 마리오 켐페스(Mario Kempes)와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의 공격진은 스스로 <천하무적> 이라고 일컫는 환상의 구성을 이루지 않았던가. 1962년 이래 월드컵 개막전은 으례 0-0 무승부였다. 이날 개막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민의 자존심의 보류였던 축구의 신동 마라도나는 어이없게도 벨기에의 무명 선수 반덴베르그에게 멱살을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1982년은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국이 대외적으로 포클랜드 전쟁을,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강성 노조와의 전쟁을 치루었던 해이기도 하다. 독도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있는 곳이듯이 포클랜드는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영국의 여자 수상 대처를 얕잡아보고 일으킨 전쟁이었다. 사실, 대처 수상은 군사 분야에는 문외한이었다. 당시 강성노조와의 투쟁에 전념하던 대처 수상이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는 침공 소식을 접하였을 때 처음에는 무관심하였었다. 대처가 국방장관에게 영국 해병 파병에 걸리는 시간을 물었다. 장관이 석달 걸린다고 대답하자 대처 수상은 "Do you mean three days?"라고 반문하였을 정도로 그녀는 국방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즉각 40척의 해군기동함대를 출동시켰다.

   영국 대처 수상의 위대성은 선진국병을 감지하고 대처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강성 노조와 결코 탄압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번 "No" 하면 끝까지 "No"였다. 1981년 영국 광부들의 총파업 때는 경찰을 동원해 파업 노동자들을 곤봉으로 때려 강압적으로 일을 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영국의 강성노조는 결코 대처를 꺽을 수 없었다. 파업을 공권력으로 막으니 임금 인상을 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대처는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대처의 노동운동 탄압 십년 후에 영국 노동자들은 대처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것은 영국이 다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수입도 오히려 크게 증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하간, 1092년은 대처 수상의 영국 정부와 노조간의 전쟁이 치열하던 해였다.

   1982년은 아르헨티나도 정부와 강성노조간의 투쟁이 그 절정에 달하던 해였다. 세계 6위의 부국(富國)이었던 아르헨티나는 5000%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1989년)과 잇단 국가 채무불이행 선언(2001ㆍ2002년) 등으로 현재 경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좌익 이론 중 노동운동은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것인 바 김대중의 포퓰리즘도 아르헨티나의 페론이즘(Peronism)과 닮은 꼴이다. 1946년 2월 노동자들의 압도적 지지로 집권한 페론 대통령은 이들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 임금인상, 연금 등 유럽식 복지 도입, 철도ㆍ전화 등 기간산업 국유화 등을 추진했다.

   페론 대통령의 정책은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파업에는 뛰어난 노동자, 기업 경쟁력보다 정경유착의 꿀맛을 탐닉하는 기업가, 국가발전보다 제몫 찾기에만 급급한 이익집단, 부패한 정치인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공산품 수입 증가와 미국ㆍ영국의 아르헨티나 농축산물 수입제한 등으로 외환보유고는 1948년 약 6억달러에서 그가 쿠데타로 실각하는 1955년에는 8500달러로 줄어들면서 심각한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페론은 기존의 정책과는 정반대로 국영화한 기간산업의 민영화를 위해 외자유치에 나섰다. 그러나 민영화에 따른 노동조건 악화를 우려한 노동자들은 폭동을 일으키면서 그의 정책에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그 결과 페론은 1955년 9월 군사쿠데타로 실각하고 망명 길에 올랐다.

   페론이즘은 잠시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해주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영구의 망친 정책이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 잠깐 동안의 달콤한 맛을 잊지 못했다. 결국 새 정부는 아르헨티나 병을 고치지 못했으며, 페론은 1973년에 재집권하였다. 그가 1974년에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두번째 부인 이사벨이 대통령이 되어 페론이즘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식견이 없는 그녀의 노조편만 드는 포퓰리즘으로 나라 경제가 더욱 피폐해진 것이 1976년 라파엘 비델라 장군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이때 이미 아르헨티나의 노동 운동은 당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불어닥친 공산주의 확산과 연계되어 있었다.

   라파엘 비델라 장군의 새 정부는 공산주의와 투쟁하는데는 성공하였으나 이미 페론 대통령 때부터 강성 노조로 망가진 아르헨티나 경제 복구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성 출신으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된 갈티에리는 경제적 내치에 어려움을 겪자 국민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다. 포클랜드는 영국 본토에서 12,860Km나 떨어져 있어 영국의 군대 파견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 강성 노조와의 투쟁에 휘말린 대처 수상에게 전쟁 통솔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갈티에리 대통령에게 있어서 이 전쟁은 아르헨티나에서 새 정부가 페론이즘의 잔존 세력, 즉 강성 노조 세력과 싸울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겨야 하는 중요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대처 수상의 영국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에도 승리하고 강성 노조와의 전쟁에도 승리한 반면 갈티에리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에도 패배하고 강성 노조와의 전쟁에도 패배하였다. 당시 경제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영국의 국운은 상승하였고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더욱 침몰하였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그리고 나라 경제에 독약인 페론이즘의 단맛은 한때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나 나라 경제에 양약인 대처리즘의 쓴맛은 한때 영국 국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도 한가지 공통점과 한가지 대조점이 있다. 대중은 이익 집단의 논리 때문에 나라 경제의 앞을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그러나 똑같은 강성 노조의 도전을 받았을 때 페론이즘을 선택한 아르헨티나 경제로 망가졌고 대처리즘을 선택한 영국 경제는 회복되었다.

   포클랜드 전쟁은 전쟁에서의 패배가 한 나라에 정권 퇴진을, 승리가 다른 한 나라에 정권의 연장을 초래하였다는 점도 대조적이다. 아르헨티나의 모순은 경제가 수렁에 빠지면 빠질수록 아르헨티나 병의 원인인 페론이즘을 물리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고수한다는 사실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페론이즘을 내세워 좌익 문민정부가 집권한다. 1982년에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하였기에 국민의 지지 기반을 더욱 상실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또 다시 퇴진하고 좌익 문민정부가 또 다시 들어섰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전쟁의 승리가 대처 수상에게 재집권의 기회를 주었다. 당시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욕을 먹는 여인이었다. 강성 노조를 경찰 곤봉으로 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을 한사코 거부하였다.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보다 약간 먼저 집권한 대처 수상은 인기 관리에는 전혀 무관심한채 나라 경제의 백년 대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닮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마녀로 풍자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으며, 따라서 재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었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가 영국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였기에 뜻밖에도 그녀는 재선되었다.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레이건 행정부는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지리적으로 남미 아르헨티나는 북미 미국의 이웃이다. 그러나 이웃 편을 들기 위해 미영 동맹 관계를 배신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레이건은 대처 수상이 포클랜드 전쟁에 해군을 파병하는 것을 묵인해 줌으로써 영국 편을 들어주었다. 이때 레이건 대통령이 한 말이 "아르헨티나는 우리 이웃이지만 영국은 우리 친구이다"였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도 친구가 중요하다. 그러면 한국에서 반미촛불시위할 때 그것은 한국은 미국이라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인가? 영국은 늘 미국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데 어째서 한국에는 반미 시위가 있는 것일까?

   반미촛불시위에는 "우리는 은혜를 모르는 민족"이라고 세계적으로 광고하는 효과가 있다. 자기네 목숨을 바치면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못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미국은 한국 전쟁 때 풍전 등화의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삼만 육천 명의 목숨을 바쳤다. 우리가 가난할 때 도와준 친구를 오히려 미워할 만큼 한국인의 자존심은 강한가? 신생국인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하였을 때 국가 재정 90%를 이십 년간 지원해 주어 오늘의 한국 경제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상전 나라인 영국도 이차 대전 직후에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과거의 머슴 신세 좀 졌다고 반미 감정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은 우리가 지난 날 미국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반미 감정의 이유로 삼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한일월드컵 심리학에서 일부 드러난다. 본래 월드컵 열기는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다. 유럽과 남미의 축구 강호들이 모두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후예이다. 그래서 유럽과 남미 국민들은 그토록 자국 대표팀의 승리에 집착한다. 그런데 월드컵에서 제국주의 심리가 제일 없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인에게 월드컵은 돈 주고 가라 해도 안 갈 만큼 흥미없는 경기이다. 한일월드컵 당시 전방에서 하루 5시간 미만의 강훈련을 받던 미2사단 장병들도 자국 선수가 출전하였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미국과 비겼을 때 우리나라는 전국이 흥미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지만 미국인에게 미국팀의 승리나 패배는 전혀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구경거리는 십만이 넘는 한국 시민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응원하는 모습이었다.

   6개월 후 다시 십만이 넘는 한국인 인파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이 날 한국인은 참으로 놀라운 선언을 하였다. "우리는 미국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한 세대 전의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당시 후진국 국민이었던 우리에게 미국은 선망의 대상이었지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신세대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한미월드컵에서 미국과 비긴 것을 그들은 국력이 동등해진 것으로 착각한 것일까? 사실 미국은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 주었다. 그럼에도 한국 신세대가 "우리는 미국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미국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심리를 표출한다. 진정한 우정은 친구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국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영국과 일본 수상은 미국 방문 중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별장에 초대되어 융슝한 대우를 받는다.

   한국 신세대가 "우리는 미국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고 말할 때 여기에는 우리는 미국을 친구로 여기지 않으니 미국도 우리를 친구로 여기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즉, 우리가 너희를 왕따시키니 너희도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왕따시키라는 외교적 의미가 있다. 이렇게 거꾸로가는 외교는 미국과 동등해지는 외교가 아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는 처음부터 이렇게 단추를 잘못 끼었기에 계속 국제 사회에서 왕따당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유세 때 마국과의 동등을 외치던 그가 중국 가서 모택동과 주은래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명분 없이 한국전에 중공군을 파병하여 무수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장본인을 우리 국가 원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시대를 거꾸로가는 사대주의이다. 시대를 거꾸로가는 사대주의는 미국과 동등해지는 길이 아니다.

   그리고 한일월드컵의 붉은악마응원단에는 한국인의 제국주의 심리가 깃들어 있다. 혹자는 붉은악마를 악마처럼 싸우라는 의미로만 해석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붉은악마응원단 명칭에는 한국인의 제국주의 심리가 깃들어 있다. 붉은악마응원단이 그 표식으로 삼는 치우는 중국 전설의 도깨비요 한국 민담의 도깨비이다. 치우가 중국 전설의 괴물이든 동이 전설의 영웅이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치우는 이웃 나라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무시무시한 제국주의자였다. 우리는 미국 주변의 나라가 미국의 침략을 경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치우는 이웃 약소국 국민을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살육하고 이웃 나라의 영토를 점령하는 제국주의 악마였다. 한국의 붉은악마응원단이 이 제국주의 악마를 그 수호신으로 삼았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한국의 북붉은악마응원단이 외국 경기장에 치우기를 꽂을 때 그것은 도깨비 주술을 거는 의미 외에도 제국주의자 치우 도깨비의 영토를 확장시키려는 제국주의 심리의 표출이다.

   실제로 미국 국민에게는 제국주의 심리가 없다. 본래 미국 민족이란 없다. 미국은 그 어느 민족이든 미국 땅에서 태어난 이가 미국 시민이 되는 나라이다. 따라서 전 세계 모든 민족이 그 시민권을 공유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럼에도 미제국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자들의 정체는 제국주의자들이다. 북한에서 미제국주의라는 말을 쓰는데 김일성, 김정일 치하의 북한은 제국주의 국가이다. 미국은 힘이 있다고 남의 나라를 정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힘이 있으면 남의 나라를 정복할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북한 제국주의의 첫번째 표적이 대한민국이다. 북한이 왜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군사적 제국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좌익에게도 반미심리가 있다. 미제국주의라는 게 있는가? 아니다. 오로지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과연 제국주의로 볼 수 있느냐의 질문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좌익 제국주의자들은 있지도 않는 미제국주의를 그들의 제국주의의 경쟁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좌익의 반미감정의 뿌리이다. 즉, 한국 좌익의 제국주의 심리가 그들의 반미 감정의 뿌리이다. 제국주의에 눈이 먼 한국 좌익에게는 그간 미국이 우리 민족에 베풀어 준 은혜가 보이지 않기에 역사를 왜곡한다. 그들은 사실과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일성,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더욱 취약한 그들은 한미 동맹을 해체시키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왕따당하게 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적 경쟁심리는, 국수적 민족주의는 애국이 아니다. 영국과 일본 국민은 미국이라는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황효식 목사 칼럼 김대령 목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