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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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3월 28일 

북한 좌익과 남한 좌익의 근본적인 인식론적 차이점

   언뜻 보기에 북한 좌익과 남한 좌익은 동질 집단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김정일의 적화통일 구상에서 남한의 좌익이 학살 대상 명단 첫줄에 있는 이유는 이 두 집단은 인식론적 관점에서 서로 상극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식론은 사람이 지식을 얻기 위하여 생각하는 사유 모형을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할 때 여기에는 주관적인 앎과 객관적인 앎이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놓고 국론이 찬성과 반대 둘로 갈라지는 것은 이 문제를 주관적으로 판단하느냐 객관적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백팔십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한의 좌익과 북한의 좌익의 차이는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차이이다.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차이점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동양의 문명이 주관주의 사유에 의거하여 발전한데 비해 서구 현대 문명은 객관적인 사유에 의거하여 발전한 바 이것을 우리는 모더니즘 문명이라고 부른다. 동양의 문명은 주관적 사유에 의거한 문명이다. 동양 종교의 큰 줄기인 불교의 철학은 스스로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 전통 사회는 도사(道士)를 존중하는 사회였다. 도사(道士)는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감(感)을 소유한 인물을 일컫는다.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는 등불을 끄고도 떡 모양을 가지런히 썰으실 수 있었다. 이것은 오로지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감(感)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경지이다. 한석봉의 천하 명문의 서예(書藝) 역시 반복되는 정성과 뛰어난 감(感)의 결정체이다.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차이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예를 들어서 설명될 수도 있다. 유의태의 제자로서 동의보감을 저술한 명의 허준이 유의태에게 침술을 배울 때 과학 이론으로 배우기보다 더듬는 감각으로 배운다. 사람의 머리에도 무수한 혈점이 있는데 어느 혈점에 침을 놓느냐에 따라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하고 살 사람이 죽기도 한다. 그런데 어디가 침을 놓을 바른 자리인지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자리를 허준 같은 명의는 손가락으로 더듬어 봄으로서 찾아낸다. 이런 의술은 서양 의학의 방법으로는 증명이 안되지만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는 것이 한의학의 장점이다. 그러나 주로 임상 경험과 감(感)에 의해, 주관적 인식 수단에 의해 명의의 경지를 터득하는 한의학에는 서양의학에 없는 결정적인 맹점이 있기도 하다.

   명의 허준도 해결할 수 없었던 병이 당시 대마풍이라고 불리우던 문둥병이었다. 한의학의 치유 영역의 한계인 문둥병을 한의학은 치료법이 없는 전염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주관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불치의 환자들에 대한 냉대와 왕따가 심하다. 그래서 문둥병 환자가 생기면 동네에서 쫓아내었다. 대마풍 환자에게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인격적 왕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문둥병 환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미국인의 눈에는 왕따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했던 1909년에도 우리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선교사님들이 한국 땅을 찾아왔다. 그 중에 포사이트 선교사님이 있었다. 어느날 길에서 한 더러운 옷을 입은 말기 문둥병 환자가 굶어죽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 포사이트 선교사는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였다. 과연 공식 일정을 위한 여행이 지금 이 문둥병 환자를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 나환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깨끗이 씻고, 새옷을 입히고, 밥을 해주면서 정성을 다해 치료하여 살렸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 여수애양병원 등 현대식 나환자 치료 시설이 설립되었다.

   한국 문명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명이지만 때로 지나친 주관주의적 사고 때문에 왕따 문화가 생기기 쉬운 병폐가 있다. 1960년대의 한국 사회는 천막 까배기 공장 주인이 동네 유지요, 판자집 연탄 공장 사장이 중산층을 대표하던 때였다. 새로 등장한 모나미 볼펜은 참으로 신기한 발명품이었으며, 라면이 값싼 영양식으로 대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을 무렵 흑백 텔레비전이라는 신기한 물건이 등장했다. 그때 처음 등장한 TV 드라마가 "뻬앗긴 일요일"이었다. 이제 나이 아홉이나 되었을까 하는 거지아이가 깡통 들고 이집 저집 대문 두들기면서 "밥 좀 주세요"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이었다. 이 아이는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귀공자로 태어났다. 그런데 1953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에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이 이 아이의 삶을 이토록 비참하게 바꾸어 놓았다.

   전쟁이 할키고 지나간 땅에 무수히 많은 전쟁 고아들이 있었다. 인민군이 공무원, 군인, 경찰, 지식인들과 그 가족들을 학살하고 지나간 자리에 붉은 완장찬 남로당 빨갱이들이 도토리 키재기하여 자기네보다 잘사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래서 남북한 휴전 회담이 성립된 후에 우리나라에 무수히 많은 전쟁 고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낮에는 깡통 차고 구걸하러 다니며 밤에는 다리 밑에서 가마니 덮고 자던 이들은 그후 어찌 되었는가? 아무도 보살펴 주는 이 없던 그들은 그 시대의 가장 약자들이었다. 가마니 덮고 다리 밑에서 버티기에 겨울은 그들에게 너무도 추웠다. 한 명 두 명씩 그들은 추운 겨울날 다리 밑 가마니 속에서 움크리고 잠들다가 영영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도 무척 컸는지 모른다. 당시 이 전쟁 고아들의 유일한 구원의 수단은 미군 병사들에게 입양되는 것이었는데 이 전쟁 고아들의 이야기는 미국인의 가슴을 울렸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 예산의 90퍼센트를 지원하는 외에도 시민단체들이 학교, 병원, 사회복지시설 건립 기금을 엄청나게 송금하였다. 지난해 6월 미군장갑차 전용도로에서 두 여중생 사고를 당한 미2사단도 고아원, 양로원 등 대민 봉사를 아주 많이 하는 부대이다. 이 부대에서 먹이고 재우던 거지 소년들 중에 신호범이 있었다. 어느덧 청소년으로 자랐을 때 미군 병사들의 친절로 독학도 하면서 구두닦이 일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 끼니 걱정은 없어졌다. 그러나 하루는 가족이 너무도 그리워 엉엉 울었다. 그때 한 미군 장교가 뒤에서 포근하게 감싸더니 “얘야! 나하고 미국 갈래! 내가 너를 아들 삼으마” 속삭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켜 동양인 최초의 미국 상원이 되게 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왕따 대상이던 이 거지소년들을 미군 병사들은 그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입양하였기에 어제의 그 고아들이 이제 오대양 육대주에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방금 우리는 한국인은 감성(感性)이 우수한 민족이지만 사물의 옳고 그름을 오로지 주관적인 느낌에 의거하여 판단할 때는 왕따 문화로 흐르는 폐단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같은 한반도 내에서 북한 사회에서는 남한 사회에 비해 객관주의적 사유가 우세하다. 핵무기 가지고 미친짓하는 정일의 집단이 실은 냉철하게 객관적인 사고를 하는 집단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북한의 반미주의는 객관주의에 의거한 반미주의인데 반해 남한 좌익의 반미주의는 주관주의에 의거한 반미주의이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던 문부식씨가 이제는 더 이상 반미주의자가 아닌 이유는 주관주의에 의거한 반미주의는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도 마르크스의 유물론도 실은 서구 17~18세기의 계몽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시 계몽운동은 본래 우주론의 잘문, 즉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가?" 아니면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가?"의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17세기에 현대 과학의 길을 열어놓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갈릴레오(Galileo)와 케플러(Kepler)의 새로운 우주론이 서구 유럽인들이 천년 동안 안전하게 느끼며 살던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보이는 것처럼 태양이 동에서 떠서 서에서 지지 않는다. 우리가 두 발로 서있는 지구는 견고하게 느껴지건만 움직이는 것은 지구였다. 모든 보장되었던 확실성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당대의 유럽인들로 하여금 “이 불확실한 세계의 그 어디에서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여야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영혼에 대해서, 혹은 다른 무언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였다.

   이런 시대 배경에서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이 말의 골자는 뭔가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자는 것이며, 여기서 서양의 합리주의가 출발한다. 또 계몽운동의 창시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말의 골자는 실험을 통해 증명된 지식만을 사실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그는 주관주의를 버리고 객관주의에 의거한 과학 이성(scientific reason)을 추구하자고 하였기에 그는 서구 현대 과학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여기서 비롯된 모더니즘 문명의 발전이 서구의 정치 제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예전에는 나라의 통치자는 당연히 왕이었다. 그러나 객관주의에 의거한 합리론은 왕의 주관적 판단을 의심한다. "왕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보장이 무엇인가?" 하고 사람들이 묻기 시작하였을 때 왕정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으며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렇듯 서구 민주주의는 객관주의에 의거한 합리론에 그 바탕을 둔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과오인가? 그것은 객관적 사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은 "민주화 운동"이지만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5.18광주 폭동 때 여러가지 유언비어가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었는가? 당시 계엄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이 있었는가? 없었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유언비어의 출처를 확인하기에 좀처럼 유언비어가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5.18광주 사태 당시의 유언비어들의 출처는 폭도들을 동원하여 광주의 모든 방송국들을 불태우고,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광주 형무소에서 삼천 명의 죄수들을 탈옥시켜 그들의 손에 무기를 지어주려고 시가전을 일으켰던 혁명가 윤상원이 뿌린 삐라들이였다.

   민주주의 운동을 하려면 객관주의적 사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1980년대의 한국의 사이비 민주운동가들에게는 그런 사고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윤상원이 뿌린 삐라에 있는 유언비어들을 그대로 다 믿었다. 심지어 그들은 미국의 음모가 있었다는 말까지 다 믿었다. 그 유언비어의 출처에 신빙성이 있었는가? 전혀 없었다. 만일 윤상원이 광주시 전역에 뿌린 그 삐라에 적힌 그 유언비어들의 신빙성 여부만 물어보았더라도 그런 폭동은 일어났을리 만무하다. 그리고 객관적 사고 능력이 결여되었기에 일으킨 폭동은 결코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래 민주주의는 객관적, 합리적 사유에 의거하여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북한의 황해에서 일어난 폭동과 광주 폭동의 차이점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황해에서 인민군 탱크가 노동자들을 의도적으로 압사시킨 사건이 있었다. 탈북자들이 그 목격자들이다. 그런데 5.18유언비어는 아무리 청문회를 하여도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광주 형무소에서 3,000 명의 죄수들을 탈옥시켜 그들도 시민군에 편성시키려던 윤상원 폭도가 꾸며낸 거짓말들이었기 때문이다. 1995년에 한 검사는 광주 현장 조사를 위해 파견된 후에 "그럼에도 유언비어가 사실을 지배할 수는 없다"고 탄식했다. 이토록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맹신했던 민주운동가들이 바로 속칭 386운동권이라는 친북 좌익 집단이라는 데서 그들의 민주화 운동의 사이비 정체가 드러난다.

   객관주의적 사유 체계에 의거하여 발전한 두 정치 체제 중 하나는 자유 민주주의요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로 이성(理性:reason)을 중시하는 합리론과 기독교 철학이 합쳐진 곳에서 자유 민주주의 사상이 발전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합리론과 무신론적 인본주의가 결합한 곳에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등장하였다. 이 점에서 공산주의는 극단적 객관주의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설이 사람의 사유에서 모든 주관적인 요소들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객관주의로 빠져들 때 결국 사람의 정신마저 부정되고 인간의 행복은 빵에 달려있다는 유물론에 빠져들게 된다.

   무엇이 공산주의의 인간론의 문제인가? 공산주의의 인간 이해에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생각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생각하는 자이기에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을 우주의 의미로 보며, 따라서 역사적 대의로 삼는다. 그런데, 구소련의 스탈린, 큐바의 카스트로 등 무수한 공산주의 독재자들에게서 우리는 이런 계급 투쟁설이 허구임이 자명해지는 예를 본다. 이들의 설대로 하면 계급 투쟁을 위한 혁명은 되풀이되어야 하는데 일단 한 혁명 주체 세력이 또 하나의 기득권 집단을 형성하면 그들이 과연 새로운 혁명을 용납하겠는가? 그 비근한 예가 북한에서의 부자지간의 권력 승계인바, 이것은 계급 투쟁의 원천적인 봉쇄를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건국 이념으로 삼는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이율 배반이 있다.

   여하간 북한의 좌익과 남한의 좌익은 서로 각기 다른 모순을 지닌 상극 집단이다. 북한의 공산주의의 이념적 뿌리는 마르크스의 극단적 객관주의에 있다. 극단적 객관주의의 정치적 형태는 수령에게 절대 권한을 주는 전체주의이다. 독일의 나치 정권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의 히틀러 맘대로 정해졌으며,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김정일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북한에서는 극단적 객관주의 때문에 김정일 수령 숭배 사상이 생겼다. 남한에서는 극단적 주관주의 때문에 맹목적으로 김정일 수령 숭배 집단이 생겼다. 그러나 북한 좌익과 남한 좌익의 이런 근본적인 인식론적 차이점 때문에 김정일의 적화통일 구상안에서 남한의 좌익은 그의 학살 대상 명단 첫줄에 올라있는 것이다.

(* 이 글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편의상 북한 좌익이라고 불렀습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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