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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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29일 

좌파의 진보는 퇴보임을 입증한 북한의 주체사상

    한국어로 진보사상이라고 잘못 번역된 영어의 liberalism은 본래 자유주의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자유주의가 정치 세력화되었을 때 그 정치 세력화된 집단을 우리는 좌익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유주의(liberalism)는 본래 비정통주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신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비정통신학이다. 19세기에 서구 문명이 과학 이성의 전성기를 이루자 유럽의 일군의 신학자들은 성경적 진리를 과학 이성의 논리 구조에 뜯어 맞추려 하였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을 신신학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이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신학을 종교 철학 혹은 종교 윤리 수준으로 타락시켰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는 믿음으로 배우는 진리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신학은 과학 이성의 틀 구조 안에서 성경의 기록을 설명하려 하였기에 기독교 진리의 정수마저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렇듯 자유주의 신학은 모더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19세기 신학자들의 실수였기에 진보가 아니라 타락 신학이었다.

   유럽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을 하나의 종교 철학 혹은 종교 윤리로 추락시켰을망정 그래도 종교 철학 혹은 종교 윤리는 있는 신학이었다. 그러나 이 자유주의 신학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층 더 엉터리 신학이 되어버린다. 한국어로 진보사상이라고 잘못 번역된 영어의 liberalism은 본래 정통주의에서 빗겨간 사상을 말한다. 한국에서 문익환과 홍근수 류의 사이비 종교인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민중신학이라는 한층 더 엉터리 신학으로 퇴보시켰다. 그들이 진보라는 간판을 갖다 붙이는 사상의 속 내용은 퇴보이다.

   문익환과 홍근수 류의 사이비 종교인들은 자유주의 신학파의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약칭이 기장인 그 교단은 유럽의 퇴보신학인 자유주의 신학에 짙게 물들었으나 그 중에 간간히 영적 체험을 한 목회자가 있기도 하다. 기장 목회자들 중에서도 순수한 목회자들은 있다. 그러나 그 교단 내에서 발전한 민중신학은 빨갱이 신학이다.

   19세기는 과학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당대의 지성인 다윈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천지 창조보다는 그의 진화론이 더 과학적이라고 했다. 사실 진화론 역시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과학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화론의 더 사실에 입각하였다고 믿는 지성인들이 많았을 만큼 19세기는 과학 이성이 인문 사상계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이때 일군의 신학자들은 신학에서 과학 이성과 대치되는 부분을 삭제하려 했으며, 그들의 이런한 실수는 정통주의 신학에서 빗겨갔다 하여 자유주의 진영으로 명명되었다.

   정통주의에서 빗겨간 이 자유주의(liberalism)를 한국의 자칭 진보 그룹에서는 진보사상으로 오역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정통에서 자꾸만 빗겨가는 것을 진보로 착각하는데서 그들의 이런 오역의 위험성은 가중된다. 비록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적 진리를 과학 이성의 틀구조에 두들겨 맞추려는 실수를 하였으며, 따라서 정통신학에서 빗겨간 비정통신학일 망정 그래도 기독교 신학의 한 갈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비정통신학이 한국에 와서는 문익환과 홍근수가 그 한 부류인 민중신학자들에 의해 한층 더 옆길로 빗나간 신학이 되어버린다. 즉, 그들은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의 유물론의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하려 하였다.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은 비록 정통에서 많이 빗겨간 신학일망정 그 신학자들이 당대 철학계의 최고봉에 올랐을 만큼 찬란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학문이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에서 한층 더 빗겨간 민중신학은 마르크스 사상이라는 빨갱이 세계관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빨갱의 색 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진리가 바르게 해석될리 없다. 문익환과 홍근수 류의 민중신학자들의 또 하나의 과오는 그들이 정치학에서 무지하면서 민중신학이라는 정치 신학을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편견만 있을 뿐 국제 정치의 사실을 보는 힘이 없다. 그리고 마르크스 사상과 그들의 편견의 짬뽕에 그들은 민중신학이란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간간이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해도 그것은 엄연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학도 아닐뿐더러 진보 신학도 아니다.

   목사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홍근수의 말을 듣다 보면 우리는 혹 이 사람이 북한 노동당 대변인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빗겨가 있다. 그런데 자칭 진보 세력이 진보사상이라고 잘못 번역한 영어의 liberalism(진보)의 진보는 퇴보인 예를 우리는 북한의 주체사상에서도 발견한다.

   공산주의의 세계에서도 정통과 사이비는 있다. 레닌의 공산주의는 정통 공산주의요, 북한의 세습 왕조는 사이비 공산주의이다. 일제 시대 때 한국 공산주의 이론가는 남로당의 박헌영 씨였으며, 김일성은 러시아 군의 한 하급 장교에 불과했다. 만일 해방 정국 때 박헌영 씨가 북한에 있었다면 러시아는 김일성이 아닌 박헌영을 지원하여 그를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에 앉혔을 것이다. 김일성은 공산주의 이론에는 무지한 직업 군인에 불과하였었다.

   박헌영은 김일성을 도와 남한에서 6.25 전쟁 준비를 한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28일에 서울이 수복될 때 그는 김일성을 따라 월북하였다. 서울을 다시 빼앗긴지 보름 만에 압록강변 강계라는 산골 마을로 도망친 김일성은 박헌영을 중국 모택동에게 원군 파병 요청 사신으로 보내고 모택동은 다시 사신을 러시아의 스탈린에게 보냈을 만큼 박헌영은 공산주의 국제 사회에서 명망 있는 이론가였다.

   당시 중국의 모택동과 주은래도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모험을 원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의 스탈린은 더욱이나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제 갓 건국1주년이 된 신생국이었으며, 러시아의 스탈린은 한국전의 불똥이 러시아까지 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데에는 박헌영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일단 박헌영의 남로당 사절의 외교로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낸지 두 달만에 김일성이 남로당을 모두 학살하였을 때 그것은 북한에서 정통 공산주의 이론을 숙청하였음을 의미하였다.

   북한에서 전후 복구 사업이 마무리된 후 김일성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주체사상이라는 이론 확립이었다. 주체사상이 무엇인가? 공산주의에서 빗겨간 사상이다. 즉 공산주의의 한 자유주의(liberalism)가 주체사상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하면 공산주의 내의 진보사상이 주체사상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러시아와 중국 등 그 어느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공산주의가 무엇인가? 모더니즘에서 빗겨간 사상이다. 모더니즘은 휴머니즘의 꽃을 피운 문명 사조였다. 모더니즘은 객관주의에 의거한 인식론이다. 모더니즘 문명권에서 왕조는 무너지고 지유 민주주의가 발달하였다.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하는 바 한국의 우익이 수호하는 자유 민주주의가 바로 이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만일 Liberal을 진보라고 번역한다면 진정한 진보 세력은 한국 좌파가 아니라 우익이다.

   여하튼, 모더니즘에서 빗겨간 사상이 공산주의이다. 즉, 모더니즘의 부정적 의미의 진보가 공산주의이다. 모더니즘의 휴머니즘에서는 사람의 권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전혀 무신론주의 사상이 아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에서는 모더니즘이 무신론주의 유물론으로 부정적 의미의 퇴보를 한다. 공산주의 사전에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은 없다. 공산주의 사상가에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의 질문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며 빵이 사람의 행복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미국이 생존을 위햐여 공산주의와 싸운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에게 북한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생존의 문제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의 남침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며 전쟁은 한민족 멸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인이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의 투쟁이다. 때로 월남과 한국 등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도발에 무력으로 방어할 군대를 파병하기도 하지만 미국인에게 공산주의와의 투쟁은 일차적으로 사상 투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공산주의와의 투쟁은 좀 더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58 년전 해방 정국에서는 분명 그것은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다. 그런데 공산주의가 북한에서 부정적인 의미의 진보를 하여 주체사상으로 변질되었다. 바로 이것이 러시아나 중국의 공산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가 다른 점이다. 러시아 공산주의는 마르크스-레닌 사상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70년간 실험해 본 후에 공산주의 경제 이론의 허구가 드러나면서 고르바쵸프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 공산주의를 허물어뜨렸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경제 개혁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였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중국의 국력이 허약해졌으며 대다수의 국민은 소작농이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무너진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두 세력 중 하나는 쟝개석 총통이 그 정상인 민족주의 세력이요, 다른 하나는 모택동이 그 거두인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1949년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한 중국도 오십 년 만에 공산주의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처음부터 공산주의 혁명의 목표는 중국 경제 발전이었으며, 공산주의 정책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이상 미련 없이 그들은 공산주의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공산주의는 다르다. 경제를 파탄에 빠지게 하였으면 당연히 전복되어야 하는 북한 공산주의 정권은 강하게 버티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공산주의는 또 한차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진보를 한 공산주의, 곧 주체사상인 까닭이다. 주체사상은 수령 숭배사상이라는 주관주의이며, 그러기에 이런 주관주의에 빠진 북한 당국자들은 러시아나 중국 공산주의자들보다 국제 정세의 현실을 보는 힘이 약하다. 공산주의 중에서도 가장 거부하여야 할 공산주의가 북한의 공산주의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주체사상의 골자는 김일성, 김정일 수령 숭배사상이기에 우리 민족에게 공산주의와의 투쟁은 김정일 수령 숭배사상과의 투쟁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렇듯 북한의 주체사상은 우리에게 부정적 의미의 진보의 진보는 퇴보임을 입증한다.


김대령 목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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