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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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18일 

이라크 박물관 약탈과 광주 교도소 습격의 불가사의

   이번 이라크 전쟁의 특징은 전투 작전을 전세계인이 안방에서 동시에 보는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민간인 피해자가 없도록 배려하는 전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은 전투 작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군인보다 기자의 사망자 비율이 더 높았을 정도로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여군이 전투에 참여하였다는 것도 이라크 전쟁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최대의 화재거리 중 하나는 이라크 박물관 약탈 사건이다. 미국 편을 들었든 이라크 편을 들었든 지구촌 사람들이 한결같이 안타까워하는 사실은 지난 4월 10일(2003년) 무려 17만점의 유물이 약탈되었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가리켜“근래 중동 역사에서 최대의 문화 참사”라고 평했다.

   이라크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수메르·바빌로니아·아시리아·이슬람 문화가 차례로 이 지역에서 번창해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을 많이 갖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수많은 유물들이 있지만 수메르 시대 하프, 함무라비 법전 서판, ‘수풀에 있는 숫양’, ‘아카디아왕의 두상(頭像)’, 수메르 대리석 두상 등이 최고의 귀중품이다. 그런데, 군중심리라는 것이 무엇일까? 회교국에는 도둑질에는 가혹한 형벌이 가해지는 엄격한 계율이 있다. 그런데 후세인 정권 붕괴 뒤 약탈장으로 변한 바그다드에서 시민들이 국립박물관마저 습격하여 수천년 역사의 유물 17만점이 이틀 만에 사라졌다. 10일 아침부터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손수레 등을 끌고 박물관에 들이닥쳐 소장품들을 닥치는 대로 가져갔다. 그리고 가져갈 수 없는 것은 전부 깨뜨려버린 그 심보가 참으로 묘연하기만 하다.

   이라크 시민들이 박물관에서 이라크 유물을 훔쳐갔을 때 그들은 이라크인의 자존심을 훔쳐갔다. 이 문화의 유산들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이라크의 찬란한 고대 문화의 유산이며, 인류의 문명의 출발점을 말해주는 유산들이다. 한 가문에 가보가 소중하듯이 한 나라에 국보가 소중하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자기나라의 국보들을 약탈하고 부스었을까? 전쟁 상대국이 어느 나라이든 일단 전쟁이 발발하였으면 가장 애국심이 강렬하게 일어나야 할 시기인데 그들의 애국심은 박물관 유물 약탈로 표현되는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군중심리이다. 국부 후세인의 사망설과 더불어 치안이 마비되자마자 시민들은 약탈군들로 변했다.

   물론, 멀쩡한 신사 숙녀들이 일시에 약탈범들로 변하는 것을 우리가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1980년 5월 광주 사태 때도 그런 일이 있었으며, 1992년 4월 L.A. 흑인 폭동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코리아 타운에서 덩치가 큰 흑인 여고생이 상품을 훔쳐가자 항의하는 한국인 점포 여주인을 마구 때렸다. 이에 격분하여 손에 든 총이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한국 사람이 흑인을 차별하여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흑인들에게 퍼지면서 흑인들이 몰려들어 폭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코리아 타운이 불타자마자 멕시코인들이 모두 몰려들어 한국 교민의 재산을 약탈하여 갔다. TV며 냉장고며 가구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가들에서 약탈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약탈하고 있었다.

   평생 가꾸어온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는 상황에서 생존권의 위협을 느낀 한국 교민들이 흑인의 방화와 멕시코인의 약탈에 대항하기 위해 총기로 무장하고 경비를 서기 시작했다. 실로 폭동이 언제 또다른 유혈 충돌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였던가? 여고생 범대위를 조직하여 "살인마 처형하라" 시위를 하였는가? 아니다. 흑인이 폭동을 일으킨 것은 코라아타운인데도 전국의 미국인들(백인)이 교회에 와서 회개 운동을 하면서 흑인들에게 선조들이 그들에게 너무 심했던 것을 사과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즉시 한국 교민의 모든 피해를 보상하여 주고 사업 자금까지 지원하여 주었다. 집이 불탄 교민들에게는 호텔이나 고급 주택을 숙식처로 지원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미국 정부는 코리아타운에서 일어난 방화와 약탈 사건으로 인한 피해를 모두 보상하여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 박물관에서의 약탈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한번 훼손된 국보 유물은 다시 회복이 되지 않는다. 지금 유네스코에서 약탈된 이라크 박물관 유물들을 되찾을 방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라크인들은 박물관 유물들을 약탈하였을 때 그들의 역사와 문화와 정체성을 약탈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의 보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종류의 약탈이다. 그런데, 이런 고약한 약탈과 이상한 군중심리의 표출이 1980년 5월 광주 사태 때도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 사태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당시 합수부가 제기한 김대중 선생 주동설이 입증되는데는 몇가지 난관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광주사태를 주동한 이들이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한 이들이요, 광주민주화운동 포상을 한 이들이 그 수상자라는 사실에서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한 한 단서가 발견된다. 이해찬씨는 광주사태 발발 원인 제공자로서 김대중 대통령 정권 실세 인물이 되었으며,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하는 정부 실세 인물로서 또한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 수상자였으니 실로 그 동네는 별난 동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사태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임에도 그들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광주사태는 윤상원이라는 혁명가가 주동한 폭동이 그 도화선이었지만 그의 주변에는 북한의 배후를 제외하더라도 그의 그런 행동을 비호하고 지지하는 주변 세력들이 있었다. 김대중 선생의 장남 김홍일씨의 주도로 결성된‘민주연합청년동지회(이하 연청)’가 전국적인 청년 봉기조직을 결성하였다. 김대중씨와 지지세력이 5월22일 정오를 기하여 서울은 장충공원, 지방은 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할 ‘민주화촉진 국민대회"에‘연청’이 전국적으로 가세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서울대 복학생 이해찬씨가 중심이 되어 5월13일부터 5월15일까지 전국 각 대학에서 시위를 벌였다.

   1975년 3월 월남 중부 지방에서 1894년 4월의 동학혁명과 1980년 5월의 광주사태와 유사한 민중봉기가 일어나 월남군을 월맹의 남침 앞에서 무력화시킴으로 적화통일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문익환 목사가 한국에서는 제2의 동학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재야 출신 이문영 고려대교수와 문익환 목사의 ‘국민연합’이 그런 정치 집단이었다. 김대중씨의 흉상이 새겨진 메달들을 운동권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화갑씨가 김대중씨의 불법 연설 녹음테이프를 재야인사들에게 200여개 배포했다 (본인은 20개 배포했다고 주장.)

   1975년 3월 월남 중부지방에서 일어났던 민중봉기와 유사한 민중봉기가 남한에서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군을 휴전선에 총집결시켰으며, 미국도 김일성의 남침에 대비해 항공모함을 한국에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당시 김대중 선생이 구데타를 계획하고 있었는지 단순 시위를 계획하였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5.18사태가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적을지라도 5월 22일 거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의 남침 도발 위기와 더불어 당시 정부에서 5월 17일에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만일, 당시 김대중 선생과 그의 추종자들이 주동했던 시위들이 5.18 광주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면 이해찬 씨 등 국민의 정부 실세 인물들이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포상받을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포상받았다. 그렇다면 국민의 정부 실세가 5.18 광주사태 배후에 있었음을 그들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약탈 사건들이 있었다. 광주사태 초기에 계엄군의 수는 몇명 되지 않았다. 계엄 상황에서 최소한의 계엄군이 경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아직 전투경찰이 없던 때에 군이 충정작전이라 하여 오늘날의 전투경찰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폭동 초기에 광주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의 무기들을 약탈하여 무장하였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를 약탈하여 국군 장병들을 압사시켰다는 말인가?

   윤상원 일당의 폭도들이 광주 MBC 방송국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한 시간은 5월 20일 오후 8시 10분이었다. 그런데 이 폭도들의 군중 심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건은 그들이 21일부터 23일까지 3,000명의 죄수들이 있는 광주교도소를 습격하였다는 사실이다. 신창원이라는 한명의 죄수가 탈옥하였는데도 온 국민이 몇년을 얼마나 불안에 떨어야 했던가? 그런데 무려 3,000명의 죄수들을 총기로 무장시켜 탈옥시킨 다음 어떻게 하려는 의도였는가? 꼭 그렇게 해야만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인가? 이라크인들의 박물관 약탈은 일시적인 군중심리의 표출이었다면 폭도들의 교도소 습격도 단순한 군중심리의 표출이었을까? 정말로 그들의 배후에 북한이 없었는가? 그리고 몇명 안되는 계엄군이 결사적으로 막아싸우며 교도소를 지킨 것이 강경 진압인가? 만일 계엄군이 겁에 질려 밀려났으며 3,000명의 흉악범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탈출하면 그것이 광주를 위해 좋다는 뜻인가?

   지난 4월 10일 이라크 박물관을 약탈한 시민들의 군중심리는 그들에게서 이라크의 역사와 문화와 민족의 정체성을 약탈하였다. 마찬가지로 1980년 5월 20일 광주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를 약탈하여 국군 장병들을 압사시키고, MBC 방송 등 방송사들에 방화하고, 광주교도소를 사흘간 습격한 폭도들은 대한민국의 법치 민주주의를 약탈하였다. 우리는 과연 그것이 김대중 선생네가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화운동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군중심리의 표출이라 해도 그런 약탈 행위들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포상받을 일인지도 물어야 한다. 진정으로 포상받아야 할 광주시민들은 무장한 폭도들의 갖은 위협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의 폭동에 가담하지 않음으로서 북한의 남침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지켰던 선량한 광주 시민들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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