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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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15일 

공산주의를 모르는 친공산주의자 김대중 대통령

   어제 (2003년 2월 14일) “최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치게돼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 없다”고 말하며 대북송금 파문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풀이 없어 보인다. 오년전 온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정권을 승계하던 개선 장군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 또한 씁쓸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스스로 실정법을 어긴 것도 어이없는 일이려니와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모습이 소신이 없어 보이기에 국민의 분통이 터졌다. 이런 어른에게 어떻게 국정을 맡길 수 있었던가? 그러나 김 대통령 편에서는 이북의 공산주의 지도자에게 받은 배신이 그를 혼란스럽게 하였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가를 자처하는 그는 친공산주의자였으며, 이북 공산 정권을 위해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임기말에 그들은 남한 동포를 핵인질로 삼고 전쟁 위협을 가해오므로 김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였다. 김정일 비밀 계좌로 송금시킨 5억달러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을텐데, 그 송금 당사자인 임동원 특사를 문전 박대하였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가장 이북 공산당 정권에 호의적였던 그가 가장 외교적 망신을 당한 것은 햇볕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며, 햇볕정책의 실패는 그의 대북비밀송금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불가피하게 하였으므로 김 대통령으로서는 김정일에 대해 어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대통령은 꼭 50년 전에 김일성이 박헌영을 배신하였던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20대 초반에 좌익 행동대원이었던 그는 친공산주의자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主敵 이북 빨갱이 정권을 미화하여왔다. 그러나 그는 배신이 빨갱이들의 생리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6.25 동란 전에 한국의 두 대표적 공산주의 지도자는 남한의 박헌영과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그리고 박헌영의 남로당은 오늘날의 빨갱이 조직인 범대위가 하고 있는 일을 훨씬 조직적으로 하였다. 주한미군 철수, 반미 시위를 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사회 각계 각층에 오늘날의 한총련과 같은 좌익 세력 조직을 확산시킨 다음 남한에서는 준비가 다 되었으니 쳐들어오라는 신호를 김일성에게 보냈다. 이북 빨갱이들이 수백만 명의 동포를 학살하는 6.25 동란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 그러면 김일성이 남한의 친북한 지도자 박헌영을 우대하였던가? 아니다. 오늘날 그 아들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의 친북한 호의를 배신하였듯이 김일성도 박헌영의 친북한 호의를 배신하였었다.

   1952년 12월 15일, 김일성은 노동당 제 5차 전원회의에서 핵폭탄과 같은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종파분자들은 당과 정권기관에 파고들기 위해 과거의 혁명생활에서 깨끗지 못한 것을 서로 엄폐해 주며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분자들을 묵과할 수 없다! 종파주의 잔재를 그냥 남겨둔다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들과 우리의 형제적 당들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의 마지막 길은 적의 정탐배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에 우리 당은 심심한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말과 더불어 더 이상 남한에서의 반미 시위, 반정부 데모를 위하여 이용할 가치가 없어진 남로당 간부들에 대한 김일성의 냉혹한 배신 행위는 시작되었다.

   1953년 2월 박헌영은 연금당했다. 동시에 이승엽, 조일명, 임화, 박승원, 이강국, 이원조 등 남로당의 지도부들이 검거되었다. 그리고 7월 30일 이승엽, 임화 등 등 남로당 간부들과 당원들이 기소되었다. 8월 3일 공판이 시작되었고, 8월 6일 이승엽과 임화 등 남로당 간부들에게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남한에서 반미 시위, 주한미군 철수, 반정부 데모를 위해 오늘날의 범대위, 자통협, 한총련, 전국연합처럼 싫컨 이용해 먹다가 사형시키는 데는 사흘 이상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공산주의 이론의 대가요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던 박헌영이었다.

   마크 워커 병장이 고의로 윤화사고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범대위가 그를 살인마라고 부르며 처형을 요구하듯이 이북 빨갱이들의 인민 재판은 범죄 증거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처형의 목적이 있으면 고문으로 엉터리 자백을 강요한다. 아무리 빨갱이들의 무법 세상이지만 김일성이 박헌영을 죽이려면 범죄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나 몇달 동안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미제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하기를 거부하자 김일성은 고문실에서 박헌영을 빨개 벗기고 여러마리의 세퍼트를 풀어 박헌영을 물어뜻게 했다. 온몸이 물려 뜯기고야 엉터리 자백 요구에 응한 박헌영은 1955년 12월 15일 초췌한 표정으로 빨갱이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9년부터 체포될 때까지 미국의 간첩으로 있었다…." 그리고 12월 17일 그는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이로써 당시 친북 좌익 세력이었던 남로당계는 괴멸되었다가 약 반세기가 지나 남한의 김대중 정권 치하에서 범대위, 자통협, 한총련, 전국연합 등의 친북 좌익 집단들이 다시 등장하였으니 실로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며, 김일성의 박헌영의 친북 활동에 대한 배신이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의 김대중 대통령의 친북 지원에 대한 배신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친공산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은 싫컨 이용하고 나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을 때는 냉혹하게 배신하는 빨갱이의 생리를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대국민 담화에서 그는 대북비밀송금은 민족의 평화를 보장받기 위한 통치행위였다고 해명하지만 그의 변명에는 힘도 확신도 없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화의 주역으로 알려져 왔으며, 외국에는 군사 독재와 맞싸운 민주 운동 투사로서 자신을 알려왔다. 그의 이름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 후보에 여러차례 거명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5억달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비밀 계좌에 송금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평화상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김정일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군사독재자이다. 그의 직함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방위원장이다. 지구상 그 어디에 국방위원장이 국가 원수인 나라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에 군사독재가 세습되는 예가 있단 말인가?

   외국 언론은 이 5억달러는 사상 최대의 거액의 뇌물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은 민족의 평화를 얻기 위한 댓가였다고 해명한다. 여하간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만일 이것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의 통치행위였을 때 야기되는 문제는 심각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5억 달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건넨 행위는, 그것이 대통령의 지시였든 허락이었든, 북한의 군사독재를 용인한다는 의미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정부의 논의와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과 즉석에서 발표한 6.15남북공동선언이 지니는 문제는 그것이 그가 북한의 군사독재 체제를 인정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김대중 대통령을 불굴의 민주주의 투사로서, 아시아의 만델라로서 극찬했던 외국 언론들이 요즘에는 서슴치 않고 그를 친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전에는 화해 정책으로 여겨지던 햇볕정책이 실은 친공산주의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북한 동포를 위해서 송금하였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중국의 탈북 동포들에게는 한 푼이라도 전해졌는가? 아니다. 그 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졌다. 북한이 어느 나라인가?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나라이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중국도 이미 경제적 실리를 위하여 공산당 헌장을 수정하였다.

   중국 공산당이 선진경제와 선진문화를 대표하고 중국인민의 총체적 이익을 대표한다는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이 공산당 헌장에 삽입되었다는 것은 중국이 이미 공산주의 경제를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구공산권 국가들이 모두 사라짐에 따라 외부 원조가 거의 끊긴 북한 정권도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리고 김정일이 공산주의를 수호하는 투사로서 마지막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그에게 달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달러를 김대중 대통령이 대 주었다. 그 달러는 김정일에게 그의 공산주의 정권을 유지시키는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럴진대, 해외의 언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친공산주의자로 비추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빨갱이들의 배신의 생리를 모르고 5억달러를 송금시킨 친공산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모르는 친공산주의자인 듯하다. 아마도, 그의 햇볕정책이 가장 큰 지지를 받던 때는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의 남북이산가족의 감격적인 상봉이 있던 때일 것이다. 이산 가족이 있었으며 이산 가족이 상봉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산 가족의 역사는 토지 개혁의 역사이다. 왜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 사이에 햇볕정책이 불가능하였으며, 어째서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떠나야 했던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토지 개혁 때문에 떠나야 했다. 아마 민주주의 철학의 신념으로 월남한 분들보다는 빨갱이들이 토지를 몰수할 때 신변의 안전을 위해 월남하신 분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1917년 레닌의 붉은 군대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자 누가 러시아를 떠나야 했던가? 대다수는 토지 몰수와 더불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자들이었다. 1949년 12월 모택동의 중공군이 중국을 장악하자 누가 대만으로 피난갔는가? 대다수의 피난민들은 토지 문서가 있는 자들이었다. 1975년 월남이 적화통일되자 누가 보트피플이 되었는가? 굶주린 채 바다 위에서 난민을 받아 줄 나라을 찾아헤매는 이들이 우리 눈에 가난하게 비쳐보여도 그들 중 대다수는 고향의 땅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우리나라도 이산 가족의 역사는 고향의 땅을 빨갱이들에게 빼앗긴 이야기의 역사이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빨갱이 완장을 찬 이들이 같은 동포인 누구를 죽창으로 찔러 죽였는가? 그 중 다수는 토지 소유주들이었다. 공산주의 혁명은 본래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경제 개혁이다. 무엇이 남북 통일의 장애인가? 바로 이 근본적인 경제 철학의 차이의 문제이다. 러시아도 중국도 공산주의 경제 정책은 모두가 가장 가난해지게 하는 정책인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버렸지만 이북 빨갱이들은 여전히 공산주의 경제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경제 정책이란 북한 전지역의 땅을 몰수하여 생산성이 낮은 땅, 식량 자급조차 못하는 땅이 되게 해놓고 군사력으로 남한의 땅마저 빼앗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 땅을 무력으로 뻬앗고 남의 재산을 강제로 몰수하는 그들의 경제 정책은 우리의 경제 철학과 맞지 않기 때문에 통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모르는 친공산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은 바로 이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에 그의 햇볕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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